Key <포레스트 검프>의 로버트 저메키스와 톰 행크스가 마련한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 못 드는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단짝 로버트 저메키스, 톰 행크스가 <포레스트 검프>와 <캐스트 어웨이>에 이어 세 번째로 의기투합하여 선보인 영화는 3D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다. 제안은 네 아이를 가진 자상한 아버지 톰 행크스의 습관적인 동화책 읽어주기에서 비롯됐고, 합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줘야 한다는 두 어른들 사이의 소명의식으로 이뤄졌다. 메마른 어른들조차 현실을 구부러뜨려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크리스마스 전야, 그날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동화 <폴라 익스프레스>는 그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소재로 비쳤을 것이다. 산타를 기다리는 혹은 의심하는 스크린 안팎의 아이들 앞에 로버트 저메키스와 톰 행크스는 북극으로 가는 특급열차를 대령한다.
산타는 가짜다! <폴라 익스프레스>의 주인공 소년은 수집한 자료들을 서랍에서 다시 꺼내 확인하며 아쉽고도 불쾌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잠자리에 든다. 그때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고, 집 앞에는 난데없이 ‘폴라 익스프레스’가 당도한다. 차장의 권유로 기차에 올라탄 소년은 친구들을 사귀고, 또 열차 위에서 사는 떠돌이도 만난다. 드디어 도착한 산타마을. 그곳에서 소년은 없다고 믿었던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확인하며 기쁨에 젖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든 뒤 맞은 크리스마스 아침. 여느 때처럼 소년은 눈을 뜬다. 변한 것이 없다. 꿈이었나? 그러나 산타클로스가 쥐어줬던 방울이 선물상자에 들어 있음을 확인하고는 ‘믿는다’. 산타는 진짜다!
톰 행크스는 여기서 특수한 센서가 달린 기계장치 의복을 입고, 이른바 ‘퍼포먼스 캡처 기법’을 통해 주인공 소년, 소년의 아버지, 차장, 떠돌이, 그리고 산타클로스까지 1인5역을 한다. 톰 행크스가 이 수고를 마다지 않고 해낸 것은 아마도 <폴라 익스프레스>를 교육적인 장으로 벌여보고자 하는 열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폴라 익스프레스>가 담고 있는 교훈은 믿음이다. 떠올려보면, 로버트 저메키스와 톰 행크스는 이미 전작 두편의 영화에서도 본질적인 인간 요건에 초점을 맞추기로 합의를 본 적이 있다. 실상, 인성만큼은 병들지 않은 바보 소년 포레스트 검프가 대변한 것은 순수의 힘이었고,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려 한 건 존중할 만한 인간의 의지였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요즘 유행하는 어른 애니메이션들과는 확실히 상반된 길을 간다. ‘흉물스러움’, ‘촌철살인의 조크’, ‘특이한 반영웅’을 골자로 하는 어른용 애니메이션과 달리 여기에는 눙치는 기교들이 없다. 되도록 원작의 삽화와 유사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원작에 실린 몇장의 그림으로 담기에는 불충분했던 문자의 이야기들을 아이들의 눈앞에 직접 끌어와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것이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잡아낼 수 있는 퍼포먼스 캡처 기법과 다각도의 3D 디지털 촬영기법을 동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인물들은 마치 실사의 배우들처럼 살아서 움직이고, 장면들은 실제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 그 과정에 사라진 것이 한때 로버트 저메키스의 장점이었던 곡예 서술이고, 그러면서 피할 수 없게 된 단점은 맥풀린 이야기 구조이긴 하지만, 마치 거대한 성곽처럼 지어진 선물 공장 또는 산더미처럼 어마어마한 선물 보따리, 왕국처럼 그려진 산타마을의 광장 한복판 등은 눈앞에 당도한 것처럼 재현된다.
그런 점에서 <폴라 익스프레스>는 3D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시각장의 신천지라고 이해되는 편이 옳다. 아이들을 태운 특급 열차는 능선과 절벽을 오르내리며 감각을 놀라게 하고, 한순간에 점에서 전체로 퍼지는 조감숏은 심장에 바람을 불어넣고, 마음대로 좁혀졌다 넓어지는 건물과 광장 사이의 길목은 시야를 흔든다. 즉, 프레임의 전진과 후진, 상승과 하강, 막힘과 트임을 반복하며 입체적인 시각장의 깊이와 너비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폴라 익스프레스>의 핵심이다. 그 점에서 <폴라 익스프레스>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은 아이맥스 극장을 찾는 것이다. 현지의 혹평 속에서도 아이맥스 극장에서만큼은 성공을 거두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쨌거나 시즌마다 이런 아버지들의 성심이 담긴 영화를 만날 때마다 좀 난감해지는데, 아이들에게 보여줄 크리스마스 선물용 애니메이션이 무엇에 그리 위해될 것이 있겠는가? 정말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만 있다면, 못 만들어도 그만 아니겠나? 다만, 실재의 한쪽에 이미 물든 어른들에게, 폴라 익스프레스를 이미 놓쳐버린 어른들에게, 그것을 강요하지는 말자. 그러면 그 유원지를 건설하기 위해 동원된 자본의 거대함에 대해 무효화를 부르짖고 싶어지니까.
톰 행크스와 로버트 저메키스에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자신의 아이들 머리맡에 앉아 동화책을 읽을 일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들이 손에 잡을 만하다고 여길 만한 품위있는 동화책이 없었다면,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건 바로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세계다. <폴라 익스프레스>의 원작자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동화작가이기도 하고 삽화가로도 유명하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미술에 더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뉴욕의 여러 곳에서 전시회를 열며 1979년부터 목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우연히 휴튼 미플린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그림동화를 써볼 것을 제안받았고, 이후 그는 크게 성공하여 미국의 부모들이 존중하고, 아이들이 사랑하는 최고의 동화작가로 서게 됐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1986년 작품이고, 이 책으로 그는 <주만지>(1981) 이후 칼데콧 상을 두번이나 수상하는 명예를 남겼다.
국내에도 <장난꾸러기 개미 두 마리> <나그네의 선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 <압둘 가사지의 정원> <리버벤드 마을의 이상한 하루> <자수라(끝나지 않은 주만지 이야기)> 등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책이 다수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 그의 작품들은 주로 환상주의적이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인 성격의 이야기들과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으로 그려져 있는 파스텔톤의 삽화들로 유명하다.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가 추구한 것도 그런 원작의 느낌들을 3차원적으로 구현해보고 싶은 열망에서였을 것이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세계에서 주인공들은 어떤 일상에서의 계기를 맞이하여 험난한 혹은 비현실적인 시공간의 세계를 모험하거나, 맞이한 뒤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내용들이 자주 소재의 중심이 되곤 한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그중에서도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전날 북극으로 가는 기차가 집 앞에 느닷없이 도착하고, 잠을 자려고 누웠던 소년은 잠옷 바람으로 산타를 만나러 가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특징은 이처럼 갑작스럽게 현실과 그 경계 너머의 무언가가 만나게 된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 모험의 시간을 단지 꿈으로 접어놓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것이 우리가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이라고 일러주는 것에 있다. 영화로는 주사위 게임판을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린다는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또 다른 동화 <주만지>가 이미 로빈 윌리엄스, 커스틴 던스트 등이 출연했던 <쥬만지>(감독 조 존스턴)로 만들어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