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야 가지 말란 곳 가서 너네 주님 개빡쳤어”
“사라야 가지 말란 곳 가서 너네 주님 개빡쳤어.”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교섭’에 달린 한 네티즌의 댓글이다. 지금 수많은 패러디 ‘짤’로 더 유명해진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송혜교가 극중 사라를 향해 뱉은 대사를 빌어 댓글을 단 것이다. 극중 사라는 송혜교(문동은역)의 고교시절 학교 폭력 가해자인 동시에 마약에 절은 대형교회 목사의 딸 이름이다. 성인이 되어 교회를 찾아간 송혜교는 말끝마다 주님을 찾는 사라를 향해 “너네 주님 개빡쳤어!”라는 말로 조롱했다. 이 댓글이 영화 ‘교섭’에 대한 관객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댓글을 단 사람은 별 다섯개에 한 개반의 평점을 줬다.
영화 ‘교섭’(감독 임순례, 2023년)은 분당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선교팀 피랍 사건을 다룬 영화다. 임순례는 그의 최고의 명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 국가대표 여성 핸드볼 선수들을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년),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을 다룬 ‘제보자’(2014년)를 비롯해 아나키스트적 영화 ‘남쪽으로 튀어’(2013년), ‘리틀 포레스트’(2018년) 등 수작(秀作)을 만든 명감독이다. 그가 그 동안의 주제 의식이나 연출 스타일과는 판이한 영화 ‘교섭’을 찍었다.
‘교섭’은 2월 4일 기준 네이버 통계로 국내 박스오피스 2위에 154만 명이 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이은 2위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관객 212만명에 훨씬 못 미친다. 3위는 개봉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아바타:물의 길’로 1000만명이 넘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교섭’은 손익분기점인 350만명을 못 넘을 것으로 보인다.
2007년 7월 3일 여행자제지역으로 분류된 아프가니스탄을 여행중이던 분당샘물교회 선교팀 23명(2명 피살로 돌아온 사람은 21명)이 탈레반에 납치되어 8월 30일 석방되기까지 약 2개월 여 걸린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 ‘교섭’이다. 우리 국민이 피랍된 사건이지만 떨어진 개신교의 신뢰도, 무리한 선교 행위 등으로 인해 여론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인천공항의 ‘아프칸 여행 자제 요망’이라 쓰인 포스터 앞에서 승리의 V를 들고 찍었던 사진은 비난 여론에 불을 붙였다.
노무현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던 언론의 보도 태도는 인질들을 구하라는 것인지, 못구해서 노무현 정부의 실책이 부각되기를 바라는 것인지 모호했다.
임순례 감독은 자기의 스타일과도 맞지 않는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샘물교회 선교팀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아니면 비난하기 위해서? 둘 다 아니다.
‘면죄부’라는 용어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 납치한 세력이 죄를 지었지 피랍된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지었냐는 반문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잘못은 분명히 했다. 그들의 이동을 담은 위성 사진을 보고 위험을 자초했다는 외신도 있었고, 2개월 동안 국력을 낭비시킨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선교팀은 자원이 빈약한 척박한 땅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침략을 견뎌온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무지했고 대부분의 선교행위가 그렇듯이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은 하나도 갖지 않았다. 구 소련이 물러 났고, 최근에는 미국도 포기한 나라다.
임순례 감독은 영리했다. 영화에는 그들을 향한 비난도 동정도 없었다. 심지어 교회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 앞서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어도 완전한 창작물이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가공으로 조차 교회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 공포에 떠는 피랍자의 장면도 아주 절제된다. ‘특정 종교’와 ‘신파’를 배제한 것이다.
영리한 임순례는 안타깝게 이런 종류의 영화가 보여준 영화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랐다. 외무부 소속의 정통 외교 관료인 정재호(황정민 분)와 국정원의 박대식(현빈 분)이 대립하면서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상투적인 ‘문법’말이다. 외교적 해법과 현장의 실상을 고려한 해법이 충돌하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일종의 ‘버디 무비’인데, 황정민과 현빈의 연기도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다. 현빈은 ‘공조 1,2’와 티브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보여준 신사적인 북한 장교 역할을 벗어나려는 듯한 작위적 거친 연기가 어색했다. 황정민 역시, 감독의 디렉팅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정통 외교관료 답지 않게 거칠었다.
이 거친 두 사람은 우리 국민이기 때문에 구해야 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결국은 구해낸다. 언론은 연일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면서 위기를 고조시켰지만 솔직히 밑바닥 민심은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것처럼 ‘구하거(이기거)나 말거(지거)나’였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여론상황에서도 주인공 두 사람은 인질들을 구출해냈다. ‘대한민국 만세!’다. “가지 말라는데 왜 갔냐”는 비난은 현지 통역을 맡은 이봉한(강기영 분)의 입을 통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임순례 감독의 연출 의도는 다른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다’는 영화 카피처럼 임감독은 그런 사람들이 그리웠던 게다. 민주주의의 정점을 찍었던 대한민국이 이토록 주저 앉게 된 데는 민주주의 과정에서 자신들을 던졌던 ‘그들’의 노력이 잊혀지고 지독한 개인 보신주의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감사원과 재벌이 유착했다고 폭로한 이문옥 감사관은 잊혀지고 지금 감사원은 정권의 충직한 하수인이 되어 과거에 이미 결론난 사건도 뒤집고 있다. 윤석양은 이병의 신분으로 보안사 사찰을 고발했고 이지문 중위는 군내부 부재자 투표의 부정을 고발했다.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에는 용기있는 교사들이 있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때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는 언론 검열을 피해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2단 기사를 그날 석간에 실었다. 요즘은 멸칭으로 불려도 보란듯이 멸칭에 걸맞은 행태들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언론인들로 넘쳐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 황적준 박사는 군부와 경찰의 협박과 회유를 물리치고 박종철 열사의 고문사 의혹을 밝혔다.
삼성그룹 구조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이재용의 삼성그룹 승계과정의 문제점을 밝힘으로써 특검으로까지 이어졌다.
여론이 어찌되었건 간에, 잘잘못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의식을 잃지 않고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내는 그런 사람들을 임순례는 애절하게 찾고 있는거다. 이런 ‘공의(公義)’가 사라지면서 무너진 것은 민주주의 뿐이 아니다. 이웃의 죽음에 대해 무감각을 넘어 조롱과 비난이 넘쳐난다. 그래서 세월호 비극은 어느 목사의 입을 통해 ‘가난한 집 아이들이 비싼 수학여행을 간 사건’으로 둔갑하고 이태원 사고는 ‘자기들이 놀러 나갔다가 당한 일’로 국가의 책임을 안 물으려 안간힘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행태들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송혜교의 말을 해주어야 한다. “너네 주님, 아니 우리 주님 개빡쳤어!”
현실은 어둡고 극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영화 ‘교섭’의 장르를 ‘액션’도 아니고 ‘버디 무비’도 아니고 ’첩보’도 아니고 ‘판타지’로 구분하련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고 쓰리지만.
첫댓글 판타지...ㅜ
간혹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경우를 생각하며 영끌하여 희망을 모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