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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삼회 청산도, 보길도, 완도 여행
일시:2014.4.21.월요일~22.화요일 1박 2일
장소:보길도 세연정, 청산도 서편제 촬영지, 완도 신지 명사십리 해수욕장
2014년 4월 21일 월요일
* 해남 땅끝항
공주사대부고 13회 여자동창 모임인 일삼회에서 작년 진도 여행에 이어 금년에도 남도 기차여행을 했다. 내가 회장이어서 올해에도 3월부터 추진하여 이루어진 뜻깊은 여정이다. 이번에는 청산도, 보길도, 완도 여행이다. 기차로 목포에 와서 1시간 30분 정도 육로로 달려온 곳은 해남 땅끝항이다. 땅끝항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에 위치하는 한반도 최남단 어항이다. '한반도 최남단 땅끝'이라는 돌비가 높이 세워져 있다. 여객선도 운행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보길도행 유람선을 승선했다. 배가 출항하자 산정에 땅끝 전망대가 오롯하게 보인다. 작년에 왔을 때 올라갔던 곳이다. 우리 친구들은 작년 여행을 추억하며 행복했다.
* 노화도 신양진항
해남 땅끝항을 출발한 배가 40분 정도 달려 완도 노화도 신양진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육로교통으로 보길도로 갈 것이다. 노화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에 딸린 섬이다. 보길도 역시 완도군의 한 섬이다. 노화도와 보길도는 보길대교로 이어져 있다. 바다 가운데 작은 섬 장사도가 있어서 보길대교 2개를 넘어서 간다. 윤선도가 이 섬으로 올 때 어린 종을 데리고 왔다 하여 ‘노아도奴兒島’라 부르기도 하고, 갯벌에 갈대꽃이 피면 장관을 이루어 갈대 ‘노蘆’, 꽃 ‘화花’자로 ‘노화도’라 불렀다고도 한다. 평범한 어촌이었는데 1980년 노화도와 보길도로 가는 최단항로가 되면서 알려졌다. 80년대 이후 노화도 산양진항과 해남 땅끝항을 통해 교류가 주로 이뤄지고 있다. 70년대까지는 노화도의 이목항을 통해 목포와 왕래가 이뤄졌다. 이목항은 제2의 목포라는 뜻으로 목포의 물자가 들어오는 보길도 등 주변 섬사람들의 상업 중심지였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도 이목항은 매우 발달되고 세련된 해변마을이다. 노화도는 유인도 13개, 무인도 25개로 이루어져 있다. 상당히 큰 섬이다. 노화도의 관문은 예전에는 이목항이었으나 지금은 산양진과 동천항이다. 김 양식이 주업이었으나 전복 양식으로 바뀌고 있다. 노화도는 대한민국 최대의 전복 양식장이다. 우리나라 전복 생산량 70%가량이 노화도 양식장이 차지한다. 신양진항은 노화도의 북쪽에 있고 이목항은 노화도의 남쪽에 있다. 우리는 신양진항에서 하선하여 이목항쪽으로 내려와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를 향해 달려갔다.
*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
노화도 신양진항에서 하선하여 이목항으로 내려와 보길도로 간다. 이 길은 다리로 이어져 있어서 육로로 간다. 노화도와 보길도 사이의 바다에는 작은 섬 장사도가 있다. 보길대교는 그 장사도를 경유한다. 장사도를 경계로 양쪽으로 보길대교가 바다 위에 세워져 있다. 노화도에서 장사도까지는 440m, 장사도에서 보길도까지는 180m의 보길대교가 놓여있다. 아름다운 다리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로 갔다.
* 보길도 원림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의 문신, 시인, 학자였던 윤선도(1587∼1671)의 유적지다. 대한민국 명승 제34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에 있다. 그의 나이 51세 때인 조선 인조 15년 1637년 왕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으리라 하고 제주도로 향해 가던 중, 상록수가 우거진 아름다운 보길도 섬을 발견하고는 터를 잡았다. 이곳에서 85세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부용동이라 이름짓기도 했다. 실제로 보길도는 중앙 분분이 오목하고 가장자리가 높은 산으로 이어져 있어 섬으을 일주하는 도로가 없다. 어느 곳을 가던 다시 돌아와야 하는 지형이다. 그는 보길도의 주봉인 격자봉 밑에 낙서재를 지어 거처를 마련했다. 원림은 세연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매표소이며 문이다. 우리는 기와지붕의 문으로 들어가서 원림 전시관을 거치며 윤선도에 대한, 세연정에 대한 자세한 전시 게시물을 살펴보았다. 문 밖에는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장관이다.
* 보길도 세연정
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12㎞쯤 떨어진 보길도는 상록수가 우거지고 물이 맑아 자연경관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이다. 그 중에서도 세연정은 보길도의 보석이다. 많은 사람들이 윤선도의 족적이 담긴 세연정을 보기 위해 찾는다. 우리도 역시 그런 목적으로 이곳을 탐방온 것이다. 세연정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양식이다.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탄생시킨 곳이다. 연못과 나무, 기이하게 생긴 암석 등 최소한의 인공으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렸다. 세연이란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란 뜻으로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 때 지은 정자다. 정자의 중앙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세연정이 있다. 세연정 동쪽에 호광루, 서쪽에 동하각, 남쪽에 낙기란 이란 편액을 걸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한 곳에 정자를 지어 노래와 춤과 시로 마음을 닦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 윤선도의 정취가 흐르는 곳이다. 세연정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안빈낙도의 이상세계를 구현하려던 윤선도 사상이 담긴 곳이다. 그가 보길도에서 지은 20여 곳의 건축물 중 세연정은 유희의 공간이었다.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 독서를 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다가 오후가 되면 가마에 술과 음식을 담아 무희와 함께 세연정으로 향했다. 인공 연못 사이로 작은 배를 띄워 악공들의 연주소리와 무희들의 노래를 들으며 술과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신선들의 놀이터 같은 풍경이 그대로 있다. 낚시를 즐기던 칠암바위, 인공폭포와 구름다리의 구실을 겸한 판석보, 악공들의 연주를 위하여 석축으로 쌓은 단상인 동대, 서대 등이 있다. 산 중턱의 옥소암에는 악공과 무희를 보내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모습이 연못에 비추도록 하였다. 세연정 주변에는 아직 지지않은 동백꽃이 붉은 입술로 그날을 노래한다. 세연정을 돌아 판석보를 건너 숲길을 따라 거닐어며 정원을 감상했다. 윤선도의 시심이 서린 정원에서 보람되고 흐뭇한 시간이었다.
* 보길도 세연정 판석보
세연정의 판석보는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한다. 연못의 물이 다 빠지지 않도록 만든 둑이며 다리다. 반반한 자연석으로 내부가 비도록 한 후, 속을 강회로 채우고 위에는 다시 돌판을 깔아 만들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돌판만 쌓아 놓은 것 같지만 실제는 그런 독특한 시설물이다. 한국식 정원의 독특한 유적이다. 판석보는 세연지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회수담으로 흘려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물이 많으면 넘치는 폭포 기능도 갖추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보는 한 단면이다. 판석보를 건너 세연정을 감상하며 돌아나왔다.
* 보길도 원림 유채꽃
세연정을 돌아보고 나오자 들녘에는 유채꽃이 장관이다. 노란 꽃들이 참으로 아름다워 발길을 멈추게 한다. 우리들은 소녀처럼 유채꽃과 함께 마음껏 웃으며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산과 푸르고 울창한 나무들 그리고 기와지붕의 원림 건물이 유채꽃과 조화를 이뤄 절창이다. 고등학교 학창시절로 세월을 되찾아준 유채꽃밭이다. 남은 세월도 저토록 고운 유채꽃과 같길 소망하며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원림 세연정을 떠나왔다.
* 보길도 동천석실
동천석실은 하늘과 연결되는 윤선도의 서재다. 세연정에서 차를 타고 나와 부용동 마을 길에서 산속 오롯한 곳에 서 있는 동천석실 두 정자를 바라보았다. 보길도의 부용동 마을은 윤선도의 이상 세계였다. 동천석실이 바라다보이는 부용동 너른 터를 닦아 자신의 살림집 낙서재를 짓고 그의 삶을 다 하던 85세까지 살았다.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가 조그마한 세 채의 기와집을 짓고서 주자학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낙선재 바로 건너 앞산 중턱 절벽 바위 위 한 칸 짜리 집의 조그마한 정자서재가 동천석실이다. 동천석실은 보길도 최고의 경관을 보여주는 하늘 정원이다. 윤선도 스스로가 신선이 머무는 곳이라 칭하며 가장 사랑했던 공간이다. 작은 봉우리들이 부용동을 감싸듯 휘감고 있다. 동천석실은 홀로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어 하였던 윤선도의 구름 위의 독서실이다. 절벽 위로 계단과 석축을 쌓아 층마다 화원을 꾸미고 작은 다리와 연못을 만들었다. 넓고 편평한 바위 위로 작은 홈을 내어 찻상다리를 고정하게 만들어 차를 즐기고 두 갈래로 갈라진 바위틈으로 나무로 만든 도르래를 달아 필요한 물품들을 날랐다. 비록 낙서재는 흔적만 남아 있지만 푸른 숲에 둘러싸인 낙서재와 하늘을 바라보는 동천석실을 오가며 독서를 하고 차를 마시던 윤선도의 자취는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두 차례의 귀양을 가고 벼슬을 하여 서울로 가거나 해남 등 다른 곳에서 지내기도 했으나, 결국 85세로 낙서재에서 삶을 마치기까지 보길도 여기저기에 세연정, 무민당, 곡수당 등 건물을 짓고, 바위 등 자연의 경승에 대臺의 명칭을 붙였다. 이 정자와 대가 모두 25여 개에 이르며 오우가, 산중신곡 등 많은 가사와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비롯하여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를 남겼다. 부용동 마을은 아담하고 한적하다. 선대 문인이 걸어다녔을 보길도 부용동에 와서 그 족적 위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격스럽다. 보길도의 원림, 세연정, 동천석실 등은 이번 여행에서 내게는 가장 소중한 여정이다.
* 보길도 동천항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를 다 돌아보고 완도로 가기 위해 노화도 동천항으로 향했다. 아까 들어올 때 승선하던 선착장이 아니다. 보길도에서 노화도로 가는 길은 아까처럼 보길대교를 두 차례 건너간다. 보길도와 노화도 사이의 장사도가 바다 위에 섬으로 떠 있어서 그렇다. 동천항은 노화도의 오른쪽에 있는 항구다. 선착장에서 인솔자가 배 승선표를 사라 간 사이 잠시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노화도는 전복 양식장이 많다던 말이 실감나도록 바다 위에는 전복 양식장이 널려 있다. 다시마 양식장도 있다. 전복은 반드시 다시마와 함께 양식하는데 그 이유눈 전복이 다시마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승선할 배가 들어왔다. 평화로운 노화도를 아쉬운 걸음으로 떠난다.
* 보길도에서 완도 가는 배
보길도는 완도군의 섬이다. 청산도도 그렇다. 우리가 배를 승선한 선착장의 노화도 역시 완도군이다. 완도는 섬이 201개나 된다. 바다 곳곳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다. 배는 바다 위를 질주하여 완도로 달려간다. 하얗게 가르는 포말이 참으로 아름답게 바다를 수놓는다. 완도 바다의 전복과 다시마 양식장을 많이 보았다. 어부의 기름진 손길이 서린 바다 위 소중한 터전이다. 석양이 바다에 드리운다. 더욱 멋진 낭만이 여정을 행복하게 이끈다.
* 완도 화홍포항 도착
보길도 노화도읍의 동천항을 떠난 배가 40여 분 질주하여 완도의 화홍포항에 도착했다. 화홍포항 대합실이 보인다. 이곳에서 차를 타고 완도항으로 다시 이동했다. 보길도에서 완도로 나올 때는 화홍포항으로 오지만 완도에서 청산도로 갈 때는 완도항에서 배를 타야 해서다. 보길도는 완도의 왼쪽 즉 서편에 있고 청산도는 완도의 오른쪽 즉 동편에 있다. 역시 화홍포는 완도의 서쪽 보길도 쪽에 있고, 완도항은 완도의 동쪽 청산도 쪽에 있다. 화홍포항과 완도항은 같은 완도읍에 가까이 있다.
* 완도 회정식 석식
완도항에서 건어물 가게에 들려 완도의 미역과 다시마 등 특산물을 둘러보고 저녁식사를 했다. 메뉴는 회정식이다. 우리를 위해 잘 차려진 식탁이 참으로 정성스럽다. 여러가지 완도의 싱싱한 해산물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 완도 타워 하산길 야경
저녁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하는 목적으로 완도 타워에 올라갔다. 완도 타워는 완도읍 동망산 정상 부근에 있다. 오롯한 산 정상까지는 차로 갔다. 캄캄한 밤이어서 완도 타워의 불빛이 찬란하다. 완도 시내와 완도항을 밝히는 명물이다. 레이저로 발사하는 불빛과 수시로 변하는 타워의 조명이 장관이다. 76m의 높은 완도 타워는 타워 광장, 산책로, 쉼터 등을 갖춘 일출공원에 있다. 완도의 일출과 일몰은 물론 완도항과 신지대교 등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낮에는 서편제의 촬영지인 청산도, 보길도, 노화도, 소안도, 신지도, 고금도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맑은 날엔 제주도, 거문도까지도 볼 수 있다. 타워 바로 옆에는 봉수대가 있고, 봉수대 바로 옆으로 동망산을 일주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 완도 타워1층에는 특산품 전시장, 영상 합성사진, 휴게실, 음식점, 영상시설 등이 있다. 영상시설에서는 '건강의 섬', 'Slow City', '완도의 소리'를 주제로 완도를 소개한다. 2층에는 이미지 벤치, 포토존, 완도의 인물 등이 있다. 전망데크에는 완도의 인물인 최경주 선수와 장보고 대사를 모형으로 제작하여 사진촬영을 허락한다. 전망층에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한 영상모니터와 전망쌍안경이 설치되어 있다. 야간에는 완도 타워의 경관 조명이 켜지고, 매일 환상적인 레이저 쇼를 연출한다. 우리는 밤 시간으로 문을 닫아서 타워 내부는 들어가지 못했다. 정상에서부터는 계단을 따라 걸어서 하산했다. 완도항의 야경이 바다와 함께 비경이다. 소녀 같은 마음으로 학창시절의 동심에 젖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오늘의 이 밤 완도 타워 산책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먼 후일 오늘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웃을 거라고, 꼬옥 손을 잡고 우정을 다지며 걸어 내려왔다.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 완도 숙소
우리가 유숙한 숙소는 '그리스'라는 상호의 모텔급 호텔이다. 인솔자 말로는 전에는 '시애틀'이라는 숙소에서 잤는데 얼마 전에 '그리스'로 바꾸었단다. 시애틀이든, 그리스든 모두 내게는 세계여행에서 환상적인 행복을 느껴온 곳이다. 지난 밤 우리 일삼회 벗들은 나의 시 3편 [찔레꽃], [내 정원의 백합, 그리고 라일락], [들꽃]을 시낭송하는 시간을 갖었고, 일삼회의 발전을 위한 회의를 밤 1시까지 했다. 그 결과 나는 일삼회의 회장으로 다시 유임되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나이로 보아 앞으로 여행 갈 수 있는 연한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행을 추진하는 사람으로 내가 적임자라는 것에 촛점이 맞춰져서다. 일삼회 벗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다시 2년간 회장을 수락하며 나는 다짐했다. 일삼회 모든 벗들을 위해서 오늘처럼 이렇게 멋진 여행을 이끌겠다고. 그리고 우리 모두 건강하자고, 그래서 내년에도 우리 모두 일삼회 여행에 꼭 함께 가지고 다짐했다. 행복하여서 잠을 설쳤지만 아침 6시 모닝콜에 깨어 분주하게 단장을 마치고 그리스 숙소 앞 차량으로 7시 20분까지 모였다. 그리스 숙소의 붉은 색과 검정색 장식의 벽면이 매우 이국적이고 아름답다. 식당으로 이동하여 아침식사로 전복죽을 맛있게 먹었다.
* 완도 완도항
완도항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청산도행 유람선에 승선했다. 완도항은 연안 도서 정기 연락선의 기항지이며, 김 출하항으로도 유명하다. 1982년 제1종항으로 승격되어 제주도와 최단거리 해상항로를 확보하였다. 1991년에는 국제항으로 승격되어 외국선박 입출항이 자유로워졌다. 완도는 장보고 청해진이 설치됐던 지역이다. 완도는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중심에 201개의 아름다운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54개 섬에는 사람이 살고 146개는 무인도다. 서해와 남해가 교차하는 청정해역으로 전복과 김, 미역과 다시마 양식장이 많다. 완도항을 출항하자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떠 있는 아담한 섬이 하나 있다. 둘레가 495m에 불과한 이 섬은 동그란 형상이 마치 구슬과 같다고 해서 주도珠島라는 지명이 붙었으며, 또는 추섬으로도 불린다. 둥글고 자그마한 이 섬은 온통 상록수에 뒤덮여 있는데, 다도해의 푸른 바다와 초록빛 섬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주도에 자생하고 있는 식물의 수는 137여 종이며, 섬 중앙에는 원시림이 그대로 남아있어 바다에 떠 있는 수목원이다. 완도의 주도 상록수림은 고란초 등 온대식물의 보고로서 식물생태 연구상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어 일반인들은 맘대로 출입할 수 없다. 섬의 중앙에 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못에는 은 그릇이 하나 떠 있어서 오직 식수로만 사용해야 하는데, 갓 시집온 새댁이 굴을 까러 갔다가 그것을 모르고 그만 물에 젖은 발을 씻는 순간 못이 없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주도 섬과 신지도와 연결된 긴 다리, 그리고 지난 밤 산책했던 완도 타워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완도의 뱃길을 달려 청산도로 향했다.
* 완도에서 청산도 가는 배
완도항을 떠난 배가 청산도를 향해 바다를 달린다. 배는 상당히 크다. 1, 2층은 선실인데 사람들이 누워서, 또는 앉아서 좌담을 나누며 간다. 나는 3층 갑판으로 올라갔다. 크고 작은 섬들이 지나간다. 나무올 지어놓은 정자가 있어서 그곳에 앉아서 쉬기도 했다. 배는 어느새 청산도 가까이 오고 하선 준비를 했다.
* 청산도 도청항
청산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딸린 해안선 길이 42km의 아름다운 섬이다. 완도에서 19.7㎞ 지점에 있다. 완도항에서 유람선으로 50여 분을 달려 청산도 도청항에 도착했다. 도청항은 청산도의 나들목이다. 예전에는 완도항에서 출발하여 목포로 향하는 여객선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항구였다. 청산도 중심의 도청항은 주변 해역의 어장 조건이 양호하여 수산업이 크게 발달되었다. 면소재지인 도청리 항구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유명한 곳으로 고등어가 많이 잡히는 섬이었다. 지금은 멸치,·삼치,·갈치 어장이 있고 소라, 전복, 미역 등의 해산물을 양식한다. 도청리에서 바로 옆에 있는 당리에는 영화 '서편제'의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청산도의 중심지이자 가장 대표적인 명소다. 당리는 도청항에서 약 1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오늘 우리는 이곳 '서편제' 영화 촬영지를 보기 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다. 크고 작은 배와 바다, 그리고 산, 아담한 시가지 등이 어루러져 항구 주변은 비경이다. 해변거리에는 지게에 청산도의 작물을 실어 전시해 두어 더욱 한국의 정취를 자아낸다. 아름다운 청산도 도청항 해변로를 따라 서편제 촬영지를 향해 이동했다.
*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
청산도 도청항 해변로에 '청산도슬로우걷기축제'라는 문구의 안내판을 크게 설치해 두었다. 이곳 청산도 제6회 슬로우 걷기축제가 4월1일부터 4월 30일까지 열린다. '느림은 행복이다'라는 주제로 시작된 행사다. 국가 중요농업 유산 1호로 지정된 구들장논이 한국 최초로 세계농업유산으로 확정됨에 따라 등재 선포식도 함께 열렸다. 구들장논 세계농업유산 등재 선포식 사진도 크게 걸려있다. 느림의 종도 세워져 있어서 우리는 종을 치며 느림의 행복을 맛 보았다. 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은 '청산완보'로 슬로길 11개 코스 42.195km를 느리게 걷고, 웃으며 걷다보면, 어느새 완보하게 된다는 의미의 걷기 프로그램이다. 완주하는 사람에게는 청산도의 기념품도 준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2박 3일 걸린다하여 우리는 짧은 일정으로, 웃음으로 대신하였다. 우리는 오늘 주 코스인 1코스 슬로길을 걸을 것이다. 바닷가에 있는 전복 양식 기구도 보고, 신비로운 풍경의 청산도 해변을 따라 계속 이동했다.
* 청산도 보리밭
청산도 서편제 영화 촬영지를 향해 오르는 길에 파란 보리밭을 만났다. 4월의 아름다운 보리가 고운 정취를 자아낸다. 우리는 학창시절의 소녀인듯 행복한 웃음으로 멋진 포즈를 취하며 사진 속에 추억을 저장했다.
* 청산도 동구정
힘겹게 오르는 길에 동구정 샘물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조선숙종 때부터 조성된 샘이고 마을의 동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 동구정이다. 청산도의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였다.
* 청산도 슬로길
청산도 슬로길은 11개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오늘 그 중에서도 주 코스인 1코스의 길을 걷는다. '청산도 슬로길 1'이라는 안내 간판이 있다. 이 길은 서편제 길이기도 하다.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이 걸으며 판소리를 하던 곳이다. 가는 길에 담쟁이 넝쿨이 담벼락을 휘감은 길을 만났다. 우리는 담쟁이 푸른 넝쿨 속에 한 명씩 몸을 넣고 멋진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 나이를 잊고 행복한 웃음을 선사하는 풍경이다. 마늘밭도 있고, 돟구정 샘물도 있고, 어촌 풍경의 큰 벽화도 있고, 모두 아름다운 청산도의 명물이다. 마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멀리 서편제 길이 보이는 1코스 슬로길을 계속 걸어갔다.
* 청산도 독살 바다
독살 바다라는 말이 참으로 신기하다.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은 바다의 가장자리 일부를 뾰족한 돌로 막아 바닷물이 고이도록 해서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많이 밀려올 때 물고기가 그곳에 들어오면 독살로 인해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다. 더러는 손으로도 잡는단다. 바다 바로 앞에는 '청산 도락 행복마을'이라는 안내도가 있다. 큰 소나무와 함께 청산도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다.
* 청산도 구들장 논
청산도의 구들장 논은 세계농업유산에 등재되었다. 농림부가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지정한 다랑논 즉 계단식 논이다. 16~17세기 무렵 청산도에 정착한 사람들에 의해 조성된 것이며, 청산도에서만 발견되어 국가적으로 보존 가치가 큰 유산이라고 평가 받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온돌 문화를 이용한 것으로, 자갈층에 통로수를 깔고 그 위에 구들장을 놓은 후 진흙을 쌓아 만들었다. 구들장 위에 토양층을 얹어 벼를 키우면 논물이 잘 빠지지 않는데, 이는 돌이 많고 흙과 물이 부족한 섬의 특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청산도 구들장논은 전국 64건의 후보를 제치고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선정기준은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질 것, 국제적 국가적으로 대표성을 가질 것, 관광 휴양의 기능이 동시에 가능할 것 등이었다. 정부는 2016년까지 1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이 지역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서편제 오르는 길에서 청산도의 여러가지 고유한 풍경을 많이 보게되어 더욱 뜻깊고 보람된 여정이다.
* 청산도 서편제 길 유채꽃
청산도 해변을 벗어나 서서히 들녘을 따라 서편제 촬영지로 오르는데 유채꽃 노란 물결이 비경이다. 이 길은 영화 서편제에서 보았던 서편제 길이다. 청보리와 유채꽃으로 장식된 뽀얀 길은 구불구불 휘어지며 한국의 고유한 가락처럼 구성진 풍경이다. 우리는 유채꽃 속에서 꽃처럼 웃으며 행복했다. 여행은 이렇게 항상 일상을 벗어난 여유로운 휴식으로 기쁘고 즐겁다. 고운 우정의 학창시절 벗들과 왔으니 우리는 오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천진한 낭만에 젖는다. 손을 잡고 유채꽃 만발한 꽃길을 걷기도 하고, 뒤로 돌아보며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하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된듯 고아한 자태로, 함박꽃 웃음으로 걸음마다 고운 자취를 남긴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먼 후일 석양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때에도 우리는 오늘을 이야기하며 행복할 것이다.
* 청산도 서편제 촬영지
청산도 슬로길 1코스를 따라 오르막 길을 다 오르니 평평한 정상에 서편제 촬영 세트장이 있다. 영화 장면과 간단한 영화 내용을 적어 놓았다. 그날 판소리를 부르며 쳤던 악기 북도 놓여있다.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북을 둥둥 쳐 보았다. 영화 서편제는 1993년에 개봉한 한국영화다. 이청준의 원작을 바탕으로 판소리라는 한국 고유의 전통음악을 소재로 한국인의 한을 훌륭하게 그려낸 임권택 감독 작품이다. 이 영화는 관객 113만 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백만 명 이상의 기록을 세웠다. 한국 기네스 북에 최다관객동원 영화로 기록되었다. 대종상 6개 부문을 휩쓸었고 주연을 맡은 소리꾼 오정해는 이 서편제로 영화계에 급부상하게 되었다. 우리 고유의 가락과 아름다운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져 극찬을 받았던 영화다. 제31회 대종상에서 작품, 감독, 촬영, 신인여우, 신인남우, 녹음상 등 6개 부문 수상했고, 제1회 상해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판소리와 한恨이라는 소재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준 영화다.
1960년대 초 누나와 아버지를 찾아 다니던 30대의 동호(김규철 역)는 소릿재 주막 주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소리품을 팔기 위해 어느 마을 대가집 잔치집에 불려온 소리꾼 유봉(김명곤 역)은 그곳에서 동호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양딸 송화(오정해 역)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동호와 송화는 오누이처럼 친해지지만 아기를 낳던 금산댁은 아이와 함께 죽고 만다. 유봉은 소리품을 파는 틈틈이 송화에게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쳐 둘은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루며 자란다. 그러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줄고 냉대와 멸시 속에서 살아가던 동호는 어미 금산댁이 유봉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과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간다. 유봉은 송화 또한 떠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소리의 완성에 집착해 소리에 한을 심어주기 위해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유봉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송화를 정성을 다해 돌보지만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송화의 눈을 멀게 한 일을 사죄하고 숨을 거둔다. 유봉이 죽자 송화는 떠돌면서 소리를 하며 살아간다. 그로부터 몇년 후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송화와 유봉을 찾아나선 동호는 어느 이름없는 주막에서 송화와 만난다. 북채를 잡은 동호는 송화에게 소리를 청하고, 송화는 아비와 똑같은 북장단 솜씨인 그가 동호임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시 헤어짐의 길을 떠난다. 소리꾼 집안의 연대적 서술로 그려낸 영화는 고난과 만남에 의해 발동하고 혼을 일으키는 소리의 장이다.
나는 서편제 영화를 아주 인상 깊게 보았다. 주인공들의 열연에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편제 길은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다시 유채꽃 만발한 서편제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저 아래로는 청산도 앞바다가 평화로운 풍경이다. 전복, 다시마 등 양식장이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청산도 어촌마을의 주택들도 고운 색상으로 아름답다. 한 걸음, 두 걸음 그 주인공들이 한스러운 숨결로 걸었을 서편제 길을 동일한 한국인으로 걸었다. 눈물겹도록 승화된 슬픔, 눈먼 송화의 목청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 청산도 여인의 향기 촬영지
서편제 영화 촬영지에서 서편제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SBS 드리마 '여인의 향기' 촬영 세트장도 있다. 그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처럼 얼굴을 맞대고 사진을 찍도록 하는 설치물이 있다. 우리는 그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둘이 얼굴을 맞대고 사랑하는 남녀로 연출하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세월을 잊은 천진한 시간이다.
* 청산도 봄의 왈츠 촬영지
이곳은 영화 서편제 외에도 '봄의 왈츠'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유채꽃 노란 물결 사이로 세트장이 오롯하게 세워져 있다. 주인공 남녀 네 명도 아름다운 집 앞에 세워져 있다. 드라마 무대의 집안으로 들어가 내부 관람도 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 못하여 내용은 잘 모르지만 정성껏 지어놓은 2층 집의 촬영 세트장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뒤편에는 조개공예 판매점도 있다. 청산도를 무대로 탄생된 영화와 드리마가 천혜의 빼어난 자연 풍경과 함께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 청산도 해변마을 풍경
청산도에서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 세트장만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꼭 그런 명소만을 보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 명소를 둘러싼 바다와 산, 어촌마을 풍경이 장관이다. 독살 바다와 해산물 양식장 등 아담한 해변마을에는 풍요와 평화가 넘실거린다. 이것이 우리나라 한국의 드높은 위상이며,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부럽지 않은 넉넉한 풍경이다.
* 청산도 서편제 벽화
서편제 영화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크게 그려 벽면 한자락을 가득 채운 벽화가 있다. 송화와 동호가 유봉의 판소리 가르침을 받으며 청산도의 이 서편제 길을 걷는 장면이다. 곁에는 쟁기질을 하는 농부도 있다. 청산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멋진 장면이다.
* 완도군 청산도
청산도는 완도군의 한 섬이다. 보길도도 마찬가지로 완도군의 한 섬이다. 서편제 영화 촬영 세트장을 모두 관람하고 지름길로 내려오는 중에 '건강의 섬 완도, 완도군 청산도'라는 팻말을 만났다. 청산도가 완도군의 섬이라는 것을 더욱 또렷하게 가르쳐 준다.
* 청산도 도창항 출발
청산도 슬로길 1코스를 한 바퀴 돌며 서편제 영화 촬영 세트장 등 명소를 관람하고 다시 도청항 해변으로 내려왔다. 우럭매운탕으로 맛있는 중식을 하고 따사로운 4월의 봄햇살을 받으며 유람산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청산도에서 아주 보람되고 뜻깊은 여정을 보내고 도청항을 출발했다. 우리를 태운 배는 아까 올 때처럼 매우 큰 유람선이다. 바다를 하얗게 가르며 완도항으로 간다.
* 완도 연안여객선 터미널
청산도에서 완도 여안여객선 터미널로 왔다. 아주 크고 깨끗한 연안여객선 터미널이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했다. 오늘 목포역에서 오후 4시 50분 상행선 기차를 타야하기 때문에 서둘러서 출발했다.
* 완도읍 빙그레 공원
완도항에서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빙그레 공원을 보았다. 완도 시내에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 빙그레 웃을 완'과 '섬 도'자가 조합하여 완도라서일까. 완도라는 이름에 담긴 뜻 그대로 빙그레 공원이라는 이름이 정겹다. 인공폭포와 연산홍 붉은 꽃이 어우러져 장관이다.
* 완도 신지 명사십리 해수욕장
완도의 부속 섬 신지도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한적한 이곳 신지도는 여름철이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들이다. 우리나라에는 명사십리明沙十里라는 이름의 해수욕장이 여러 곳에 있다. 하지만 이곳 신지도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은 명사明沙가 아니라 명사鳴沙 즉, 모래가 운다는 뜻이다. 은빛 모래밭이 파도에 쓸리면서 내는 소리가 십리 밖까지 퍼진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완도 뿐만 아니라 남해안 일대에서도 최고의 해수욕장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해안선의 길이가 4㎞나 되고 백사장의 너비만도 100m에 달하는데다 수심이 아주 완만해서 가족의 피서지로 적합한 곳이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 뒤로는 울창한 송림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야영과 취사가 허락된다. 2층 전망대에서는 망망대해를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일출 풍경이 장관이다. 해수욕장 주변에는 바다 낚시를 하기에 적합한 갯바위도 많다. 2005년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연륙교가 개통되어 육로로 이동이 가능하다. 우리 친구들은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 고운 발자국으로 수를 놓으며 바다 가까이로 다가갔다. 인솔자는 우리에게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으란다. 공부만 열심히 한 모범 엄마들 같다며 이런 엄마들 처음 보았단다. 지난 밤 저녁식사 시간에는 우리 벗들 모두 소주 한 병도 다 못 먹어서 남겼다고, 한 두잔 마신 소주로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하였더니,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던 인솔자다. 어제도 이런 엄마들 처음 보았다고, 공부만 잘 한 엄마들이라고 하더니 오늘도 마찬가지의 말을 하여서 한바탕 웃엇다. 그래, 우리는 그 유명한 공주사대부고 졸업생이 아닌가. 공부에 주력하였을 뿐 놀 줄도 모르고, 술을 마실 줄도 모르는 모범 엄마들이다. 모범 엄마들이란 호칭이 결코 듣기 싫지 않은 당연한 호칭으로 수긍하며 행복했다. 손잡고 펄쩍 뛰어 올라보란다. 우리 친구들은 손을 잡고 바다를 배경으로 힘차게 솟구쳐 보았다. 그런데 발이 백사장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60이 넘은 나이에 뛰어지겠는가. 뛰어오르는 폼보다 더 멋진 고유의 폼들로 사진을 장식했다.
* 완도 대교
신지 해수욕장에서 청산도 보길도 완도의 남해안 기차여행의 여정은 모두 막을 내렸다. 완도 대교를 넘어 서둘러 목포역으로 향했다. 완도 대교가 있어서 내륙과도 육로 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목포역에서 오후 4시 50분 상행선 기차에 탑승했다. 이번 여행으로 청산도와 보길도 그리고 완도에 대하여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여행은 항상 큰 교훈과 건강한 에너지를 선사한다. 그래서 또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내년에는 고창 청보리밬과 신안군 증도를 여행하기로 잠정적으로 약속했다. 일삼회 회장으로 나를 다시 유임시킨 벗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내년에도 멋진 여행을 주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