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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량한 역에서
이 문 열
가끔씩 이럴 때가 있다. 대개 그 전날은 누군가와 어울려 진탕 술을 마시고 엉망이 된 그러한 날로, 그래서 이불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눕자마자 곯아떨어진 후, 새벽, 타는 듯한 목, 쓰린 위며 지끈거리는 머리 같은 것들로 마음이 한껏 비참해져 눈을 뜰 때인데 ― 그때 나는 갑자기 주위가 맹렬한 속도로 변화하는 것을 보게 된다. 천장이 엄청나게 높아지는가 하면, 방문은 어느새 대합실의 출입구가 되고 잠자리는 그대로 길고 딱딱한 나무 벤치로 변해…… 주위는 온전히 작고 초라한 시골역의 풍경으로 바뀌고 만다.
그 돌연스럽고 또 약간은 엉뚱한 환각에 대해 나도 정확히는 원인을 알 길이 없다. 그저 막연히 짐작하는 바로는 지난 삶의 어떤 부분에 대한 내 기억의 턱없는 애착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그런 날은 어디 짧은 여행이라도 떠나든가 하다못해 하숙집이라도 옮겨야 할 정도로 그것들이 남긴 인상은 강렬하다.
“아직도 역이구나. 나는 또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그런 새벽 어스름 속에 홀로 앉아 텅 빈속으로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면서 언제나 내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게 되는 말은 그랬다. 그리고 그때는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희뿌연. 탐배 연기마저 내게는 낯설어지고 만다.
여자는 내 앞에 몽롱하게 앉아 있다. 무엇인가 끝나 버렸다는 공허 때문이에요. 무엇인가 끝나 버렸다는……. 낮게 가라앉아 있지만 젖은 듯한 목소리가 쓸쓸하다. 그러나 그뿐, 마치 투명한 막 건너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그 목소리에 실린 의미는 전혀 와 닿지 않고, 나는 자신도 의미 모를 미소를 지은 채 여자의 입술만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핏기 없고 떨리기까지 하는구나. 가엾게도 그것은 예전에는 얼마나 붉고 뜨거운 것이었던가. 찻집은 오래된 서부영화 주제곡의 경쾌한 휘파람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함부로 뿜어 대는 담배 연기와 내 우울로 꽉 차 있다.
어린 시절 한때 나는 작은 역이 있는 소읍(小邑)에서 산 적이 있다. 분명히 말하면 그것은 대략 내가 한 살에서 열네 살까지를 보낸 M읍으로, 우리 집은 그 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역사(驛舍)는 그 무렵 만 해도 중앙선을 지나는 사람이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일본식 목조건물이었다. 마름모꼴 함석으로 이은 지붕, 늘상 허약하게만 느껴지던 회벽 사이의 나무 기둥과 창틀, 우중충한 시멘트 바닥 ― 이러한 것들은 지금도 내가 이웃의 어느 집처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그 밖에도 내가 그 역과 관련지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쓰지 않아 벌겋게 녹슨 구식 펌프와 별로 손보지 않아도 가을이면 곧잘 코스모스로 환해지던 화단, 엉성한 나무 울타리 곁으로 줄지어 선 오륙 년생의 측백나무와 그 한 켠에 쌓여 있던 석탄 더미 등이 그것들인데, 모두가 당시로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작은 역의 구성물들이었다.
내가 처음 그 역과 가까워지게 된 동기는 또래들과는 좀 색달랐다. 아직 죽음의 의미를 모르던 내게 영문 모를 아버지의 부재(不在)를 어머니는 멀리 여행을 떠난 것으로 설명하셨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내가 역 주변을 놀이터로 삼게 된 것은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면서 돌아오는 그를 식구들 중 누구보다 먼저 맞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나중에, 그가 떠난 것은 매우 먼 길이며 그래서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란 결 알게 된 후에도 내 놀이터는 변하지 않았다. 지
금에 와서 보면 어느 정도 오늘날의 내 운명을 암시하는 듯도 생각되지만, 그때로 봐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역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의 역장은 몸집이 유별나게 자그마한 사람으로 어쩐 일인지 나의 그런 침입을 개의치 않았다. 아마도 그가 무던히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나 자신 별로 말썽을 부리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는 얼굴과 옷에 온통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돌아와 어머니에게 몹시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으로 보아 그때의 나는 주로 석탄 더미 근처에서 놀았거나 또는 철길을 따라가며 기차에서 떨어진 석탄을 자루에 주워 담던 아주머니들과 함께 다녔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시절의 기억은 하도 희미하여 내 나이 몇 살 때쯤 그것이 끝나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굵은 각목으로 만들어진 개찰구와 한 때 내 동경의 대상이었던 키 큰 개찰원의 모습뿐으로, 추측하건대 내가 그 주위를 맴돌기 시작할 무렵이 내 최초의 추억 마지막 부분에 해당할 것 같다.
처음 얼마간은 그 개찰원의 흰 장갑 낀 손에 쥐어진 반짝이는 개찰용 가위(훰씬 나중에 가서야 나는 그것이 펀치[穿孔機] 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았다.)가 매혹되기 쉬운 내 어린 영혼을 사로잡았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역으로 달려간 나는 거의 매(每) 발착 시각마다 개찰구에 붙어 서서 열망에 찬 눈빛으로 그 가위를 바라보며 그 개찰원과 친해질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 개찰원은 무척이나 거만하고 신경질적임에 분명한 사람으로 그러한 나를 귀찮게 여기는 빛이 역력했다. 뿐만 아니라 때로 그는 그 당시만 해도 흔하던 무임승차자를 붙들 경우 무서운 고함 소리와 함께 사정없이 따귀를 올려붙이고 발길질을 해 뎀으로써 무자비하다는 인상까지 곁들였다. 그리하여 그는 곧 어린 내게 쉽게 친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단정되고 따라서 나는 그와 친해져 내 손으로 승차권에 구멍을 뚫어 본다는 간절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스스로를 그 개찰원으로 가정하고 승차권에 구멍을 뚫을 자리를 마음속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조그만 위로를 삼았는데, 가끔씩 그것은 그 개찰원의 결정과 일치하여 현실적인 기쁨이 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내가 그 개찰구 주변을 일 년 가까이나 붙어 서 있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여 주는 표정의 공통성이었다. 자신의 관찰력에 스스로 감탄하며 낸 그 시절의 통계로는 ―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되지만 ―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음울하고 돌아오는 이들은 항상 피로에 차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따금씩은 예외가, 곧 돌아오는 자의 기쁨과 출발하는 자의 희망이 나를 섭섭하게 만드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더 자주 나는 내 통계의 확인에 만족할 수 있었다.
언젠가 그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화사한 차림에 고귀한 얼굴을 한 여인네가 기차에서 내려 그 개찰구를 나왔을 때, 나는 괜히 그 여자 앞을 가로질러 뛰어가선, 역 앞 조그만 구멍가게에 몸을 숨기고 혹시 그 여자가 우리 집으로 향하여 가지 않는가를 가슴 두근거리며 엿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공연한 얼굴 붉힘이며 가슴 두근거림은 지금도 이상하다…….
그 뒤 제법 자라 응당 다른 놀이에 열중해야 할 초등학교 상급반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역 주변에 남아 있었다. 그것도 이번에는 한술 더 떠, 위험한 철길 주변에 나가 살듯이 함으로써 홀어머니를 속 썩이는 말썽꾸러기로서였다. 나는 그곳에서 한 사람 ― 그 후의 내 삶 도처에서 무슨 불길한 별처럼 음산한 빛을 던지고 지금도 내 영혼 깊숙이 그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한 늙은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전의 자그만 역장이나 석탄을 줍던 아주머니들이나 키 큰 개찰원이 사라져 버린 기억의 빈자리에 당연하다는 것처럼 나타난 초로의 외팔이 검차원(檢車員)이 그랬다.
그는 방금 도착한 화물열차의 강철 바퀴를 작은 망치로 바쁘게 두드리며 지나갈 때조차도 그걸 신기하게 여기며 졸졸 따라다니는 나를 조금도 성가시게 여기지 않았다. 그게 먼저 호감을 일으키고 나아가서는 그에게 자신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가한 여름 오후 나를 잡고 이것저것 말을 건 것을 시작으로 그는 외로움에 분명한 자기의 세계에 나를 기꺼이 받아들여주었다. 그다음은 당시의 그 역의 어느 누구도 굳이 방해하려 들지않던 우리들의 조그만 역사였다.
그와의 역사에서 무엇보다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어린 나를 친구 삼아 그가 수없이 들려준 이야기들일 것이다. 느긋이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철로가에서나 어떤 때 비라도 오는 날은 떼어 논 객차 안 같은 데서 들려준 그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철로와 역을 따라 이어지는 그의 지난 삶에 대한 회상이었다. 경부선 연변의 어느 산골 소년이었던 그는 매일 그곳을 지나는 기관차의 위용과 승무원의 제복에 매혹되어 어느 날 기어이 ‘열차를 타고’ 말았다. 그때부터 삼십여 년 전의 어느 날로, 한번 그렇게 고향을 떠난 그는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역의 잠역부며 전철수(轉轍手), 화부(火夫)에서 기관사에 이르기까지 철로가 가진 거의 모든 직종을 전전하다가 결국에는 철도사고로 왼팔까지 상한 채 그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철로는 온 생애의 증인인 동시에 그 또한 이 땅 철로의 역사를 가장 생생히 말할 수 있는 증인이 되었다.
철로는 알고 있었다. 매캐한 석탄 연기와 강철의 소음 속에 허망히 흘러가 버린 그의 청춘을. 그 옛날 ‘북만(北滿)의 눈보라와 남항(南淃)의 동백꽃을 벗 삼아’ 구름처럼 떠돌던 시절의 그는 얼마나 훤칠한 용모와 유쾌하고 성실한 정신을 가진 젊은이였으며, 그 생활 또한 어떤 멋과 여유로 가득 찬 것이었던가를. 또한 선악을 불문하고 그를 찾아든 그 후의 여러 재난과 갖가지의 삶의 애환도 철로는 남김없이 알고 있었다. 사랑하던 첫 아내와 딸을 앗아 간 불의의 사고가 어떤 것이었으며 상당한 나이가 들어 다시 맞은 젊은 아내는 얼마나 간교한 일인(日人) 매표계의 꼬임에 빠져 그를 버리고 달아났나를. 그 뒤 전처의 두 아들만 데리고 지내 온 그의 장년기는 얼마나 쓸쓸한 것이었고 ― 이제는 그들마저 장성하여 떠나간 저 낡은 관사의 거처방이 그 어떤 공허와 사양(斜陽)의 외로움에 가득 차 있나를.―
그러나 그도 또한 알고 있었다. 이 땅의 모든 철로가 무슨 이유로 언제 부설되었으며, 그들은 몇 개의 터널과 위험한 커브를 가졌고, 몇 개의 역과 교량을 지나게 되었는가를. 그 수많은 생성과 소멸의 내력 역시 그가 자신의 일처럼 상세히 알고 있는 바였고, 그 위에서 일어난 온갖 희비의 사건 또한 그는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런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얘기들은 그대로 변천하는 시대의 연대기(年代記) 였다.
먼저 그는 아라사(我羅斯)와의 불가피한 회전(會戰)을 앞두고 그의 유년을 질주해 간 일본의 군용열차에서 머지않아 닥쳐올 동아시아의 맹렬한 진통과 폐허가 될 세계의 깊숙한 고뇌를 예감했다. 고종 임금의 국상을 당하여 상경하던 백립(白笠)의 늙은이들에게서는 몰락하는 우리들 왕조의 마지막 영광을 보았으며, 북상하는 나남 사단(羅南師團)의 군가 속에서 그 쓸쓸한 증언을 들었다. 거부의 꿈을 안고 만주로 떠나던 일본 청년의 밝은 표정에서 신흥 국민의 기개를 보았고, 역시 그 땅으로. 떠나던 동포의 어두운 얼굴에서는 실향과 이산의 우수를 읽었다. 끊임없이 증가되는 관동군을 실어나르며 빈사의 노(老)대국 중국을 동정했고, 때로는 쏘만 국경의 살벌한 풍문과 은밀히 남양으로 빼돌리는 병력으로 가득 찬 일제의 군용열차에서 휘황하던 그들 대동아(大東亞)의 꿈에 간 무참한 균열을 느꼈다. 학병으로 혼잡한 역두(驛頭)에 샌닌바리 〔千人針〕를 들고 다급하게 달려오는 일녀(日女), 징용이나 징 병에 끌려가는 님을 위해 손수건에 삶은 계란을 싸 든 채 쿨쩍거리는 조선의 여인을 보면서는, 무모하게 확대된 전선과 더불어 그들 이 세기 전반을 장식한 섬나라 민족을 성원하던 군신 ‘마르스’의 무정한 변심을 직감했으며 ― ‘얍본스끼(日本人) 까리스끼(韓國人) ’를 연발하는 소련군 병사의 충혈된 눈과 윤간당하는 어린 일본인 소녀의 애처로운 비명 속에서 역사의 짖궂은 작희와 흥망성쇠의 급속한 일회전을 보았고, 진주하는 미군의 위용과 풍요에서는 화려하게 등장한 이 세기의 새로운 주인공을 확인했다. 그리고 6·25…….
따라서 그런 그에게 있어서 철로와 역은 온 생애를 일관한 근거 없는 애착의 대상인 동시에 항상 열려 있는 영혼의 창이기도 했다. 그는 그것을 통하여 외부의 넓은 세계와 내부의 조그마한 자아를 연결해 온 것 같았다. 이미 십여 년이 지나갔지만 삶의 지혜와 그것에 비유해 들려주던 잠언(箴言)에 가까운 충고는 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 모든 기억의 해석이나 그것을 표현하는 그의 말을 내가 모두 그때 그대로 전하고 있는지는 자신이 없다. 이 나라 초기 철도의 하급 노동자로 잔뼈가 굵어 그에게서 깊이 있는 역사 이해나 그걸 드러낼 세련된 말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조숙하긴 해도 나 또한 그때 기껏 열두셋의 어린애에 불과하였으며, 나의 이해란 것도 지극히 피상적이었을 수밖에 없었다. 오직 내가 그의 얘기를 재미있어했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의 젊은 날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언제나 새로운 사물만 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열두셋의 소년에겐 얼마나 매력 있고 동경할 만한 일이었을까. 그 나머지의 의미로 충만된 내 기억은―그 뒤 오랜 세월에 걸친 의식 속의 부단한 심화와 세련으로 새롭게 재생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무렵의 그에 대한 기억으로 더 정직한 것은 그저 한 유쾌한 친구로서였다. 우리들은 레일에 귀를 대고 거기서 나는 미세한 진동 소리로 누가 더 정확히 다음 열차의 도착 시간을 예측할 수 있나 내기하였고, 때로 나는 그의 제자가 되어 작은 망치로 열차의 강철 바퀴를 두드린 후 그 짧고 딱딱한 소리로 어떻게 이상이 있나 없나 알 수 있는가를 배웠다. 그 두 가지 별난 기술은 모두 내가 상당한 나이가 되어서도 은근한 우월감까지 느끼며 남에게 자랑했던 것들이다. 만약 우리들의 사이를 우정으로 말할 수 있다면 후일에 내가 경험하게 된 그 어떤 것보다 더 순수하고 참된 것이리라.
그러나 나의 늙은 친구는 나보다 한 해 가량 앞서 그 역을 떠났다.
“잘 있거라, 어린 놈아. 살다 보면 어느 역에서든 만나게 되겠지.”
그것은 여느 때처럼 그를 찾아갔을 때, 내가 하학할 때까지의 한나절을 데리러 온 큰아들과 함께 기다린 그가 갑자기 던진 작별 인사였다. 그리고 뜻밖의 이별에 망연해 있는 나를 두고 그 늙은 친구는 성큼성큼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아직 기차가 도착하지도 않은 철로가에 이르러서도 그는 어떤 이유에선지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큰아들이란 삼십 대의 남자만이 처음 나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의 기묘한 눈길로 흘깃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이 모든 추억은 꽤 선명하고 소상히 묘사되긴 하였지만 듣는 사람에겐 지리한 것이 되지나 않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얼핏 보아 대단한 의미도 없어 보이고 신기하거나 특출한 것도 없는 이 기억의 단편들이야말로 계속해 나갈 나머지 부분과 더불어 뒷날의 내 삶에 씻어 내지 못할 상처와도 흡사한 흔적으로 남게 된다.
계속될 나머지 부분이란 병적인 조숙의 눈물에 얼룩진 것으로 그것은 내 늙은 친구가 떠난 지 한 달도 안 돼 결정적인 파국을 맞은 가계(家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란으로 남편과 재산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어머니는 어린 우리들과 함께 하나뿐인 외삼촌을 의지해 그곳 M읍으로 갔던 것인데, 그런 우리 생계를 도맡다시피 했던 그 외삼촌이 난데없이 국회의원에 입후보했다 떨어져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로 나앉게 된 탓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주로 대합실의 나무 벤치 위에 막연히 앉아 시간을 보내었다. 아마도 내 어린 영혼이 미처 주체할 수 없는 커다란 슬픔 때문이었거나 아니면 그만큼 찬란한 공상에 잠겨서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내게는 이미 신기한 것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대합실 주변에 대해서도 별다른 기억이 없다. 다만 그 장소와 결합된 것들 중에서, 그때의 내 슬픔이나 공상의 두터운 벽을 뚫고 의식에 아프게 와 닿은 것만이 때때로 애련한 슬픔 속에 떠오른다.
가출(家出)하는 누님을 몰래 전송해 주었던 저녁, 내가 삶의 우수를 본 것도 그 대합실에서였고, 질주하는 야간열차의 창에서 새어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을 알지 못할 애상에 젖어 바라보며, 그 속의 창백한 얼굴들에서 원인 모를 연민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그 대합실에서였다. 아아, 부슬비 오는 날 내 심금의 G현(絃)을 울린 것은 산굽이를 돌아가는 열차의 긴 기적 소리였지. 어느 곳으로든 떠나고 싶다는 열망과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강한 결심으로 내 작은 주먹은 얼마나 자주 텅 빈 대합실의 나무 벤치를 내리쳤던가 ― 이윽고 나는 열네 살이 되었고, 오래잖아 나 자신이 한 여객으로 그 역을 떠났다.
제게도 이제야 겨우 승차권이 마련되었어요. 당신에겐 항시 그렇게도 수월했던 것이 제겐 왜 그리 어려웠는지 훌훌 털고 일어서도 좋을 것을, 하찮은 아망과 아집 때문에…… 자, 보세요. 이번에는 제 차례예요. 당신처럼 열차를 타는 겁니다. ‘손수건을 흔들어’ 주시겠어요? 여자가 아름답게 웃는다. 한 서린 체념이나 슬픔 어린 독기는 남자의 얼굴을 꾸미지는 못하지만 여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화장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조화된 지금의 너는 그 어느 때보
다 더욱 아름답다.
M읍을 떠난 이후 나는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살게 운명지어져 있었다. 먼저 나 스스로 이어 가야 할 학업이 나를 내 집과 어머니로부터 떠나 여러 낯선 도시를 떠돌게 하였으며, 이윽고 그것이 한 습성이 되어 이미 그럴 필요가 없어진 때조차도 내게 새로운 출발을 강요하였다. 어떤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나를 휘몰아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어머니와 사랑과 친구를 그리워하게 하였으며, 결국은 도달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아득한 고향에 대해 열
렬한 향수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 수많은 출발 전야의 마음 설렘,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동경과 기대, 출발 아침의 번득이는 햇살, 정들었던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순간의 감미로운 슬픔, 괴로운지 즐거운지 구별 못 할 떠나야 할 곳에 대한 마지막 회상 창변에서 멀어져 가는 거리에 던지는 허심한 결별의 눈인사, 새롭게 도착할 곳에서 고생스럽고 힘들여 개척해 가야 할 것임에 분명한 생활의 그러나 자신 있고 낙관적인 상상…… 그리고 ― 그런 출발의 길 위에 서면, 나는 항상 M읍의
조그만 역사(驛舍)와 함께 저만치서 표표히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 내 지난날의 늙은 친구를 떠올리게 되고, 그제야 점차 그 의미가 뚜렷해지는 그의 얘기들도 부추김 의 목소리로 나를 격 려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나에게 역은 언제나 최초의 환영객이었고 또한 변함없는 마지막 전송자였다. 처음에는 내가 가는 어느 도시에나 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무슨 풀지 못할 상징이라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더욱 여러 곳을 떠돌게 되면서부터 나는 한 도시에서도 점차 많은 역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윽고는 그 도시 전체가 역으로만 이루어진 것임을 알았다.
먼저 내가 졸업한 학교치고 그 졸업식장에서 역을 느껴 보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었다. 엄숙하게 서 계시는 교장 선생님의 머리에는 늘상 어릴 적 그 작은 역에서 본 역장의 제모가 얹혀 있는 것이었고, 도열해 있는 선생님들조차도 그만한 수의 승무원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하는 듯했다.
“유쾌한 여행이 되기를 빕니다. 여기는 ○ ○ 역 입니다.”
그러면 내 주위에 있는 아이들의 표정에도 어느새 여객의 피로가 짙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비록 머무는 순간의 길고 짧음은 있었지만 가정이 그러하였고 직장이 그러하였으며 사람이 머물게 되는 모든 곳이 그러하였다. 사람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영원히 머물 수는 없으며, 필경은 떠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의 확대는 지구조차도 하나의 커다란 역으로 만들었다.
나는 지구의 역장을 보지는 못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신성한 머리 위에다 역장의 제모를 얹는 것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언제든 올려 보기만 하면 마침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따로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저 푸른 하늘, 우리의 육신을 낳고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형태를 보존하는 데는 늘 실패하고 마는 대지(大地), 얼핏 보아 변치 않을 것처럼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내려앉고 솟는 산맥들, 항시 새롭게 흐르는 강과 그 모임인 바다 ― 이 모든 것들은 광활한 우주 속의 한 조그만 역을 이루는 구성물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디서 오는지도 모를 무수한 생명을 한 여객으로 받아들이고 또 때가 되면 어딘지 모를 역으로 묵묵히 전송하였다.
나는 이 역에서 필요로 하는 승차권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역시 상행과 하행은 있으며 상행(上行)인 죽음은 자신에게 고통을 지불하고, 하행(下行)인 출생은 그 어버이에게 쾌락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로 조잡한 대로 승차권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늙은 친구의 작별 인사를 이해하게 되었다. 늙은 친구여, 그래서 우리들은 어디서든 역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었구려.
그런데 이 짙은 허탈감과 피로는 또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네요. 혹 당신이라는 역에 내린 후 너무 무리한 관광을 한 탓이나 아닌지 모르겠어요 ― .
날선 비수처럼 빛나던 여자의 얼굴이 어느새 알 수 없는 우수로 흐려지고 돌연히 그녀를 감싸게 된 애처로움은 하마터면 나를 울릴 뻔하였다.
당신이 여기저기서 떼어 낸 가설(假說)의 판자로 성의 없이 세워둔 관념의 사원들을 저는 남김 없이 순례해야 했지요. 그곳의 여러 우상들에 대해서는 당신보다 더 경건히 무릎 꿇어야 했고, 그 박물관에서는 당신이 분별없이 모아 벌여 둔 지식의 단편들을 감탄하며 관람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그러나 그사이에도 당신의 시선은 벌써 새로운 것을 향해 있고, 간신히 그걸 깨달은 내가 허전하여 돌아보면 당신의 몸과 마음은 언제나 낯선 곳을 헤매고 있었지요. 여전히 제 손은 텅 비어 있고, 당신의 영지에는 무릎 대일 땅조차 없는 거예요. 결국 나는 내려야 할 역이 아닌 곳에 잘못 내린 거죠. 그래서 ― 늦은 대로 다시 출발해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설령 당신의 사랑이 진실했다 하더라도 이런 제 결심은 당연히 용서하셔야 해요. 내가 이 역에 아무런 미련이나 애착이 없는 것도…….
내가 지상의 수많은 역 사이를 왕래하며 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천민과 귀족, 어진 이와 어리석은 사람, 악한 자와 선한 자, 고매한 인격과 속물, 잘생긴 사람과 못난 사람, 혹은 이미 죽음과 어둠의 세계로 가 버린 이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도.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과 나는 사랑, 우정, 존경 또는 신뢰나 미움, 불신, 경멸 등의 그 어느 한 관계로 묶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들 또한 하나의 역으로 착각하였다. 이미 말한 대로 역의 의미를 턱 없이 확대하는 버릇에다 우리들이 어떻게 만났건 결국은 서로에게서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런 착각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차츰 사람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면서 나는 우선 그들과 역을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약간은 애매한 대로, 우리들이 어떤 역이든 우연하게 내리는 법은 매우 드물지만 사람들의 만남은 오히려 대부분 우연에 의해서라는 점이 ˙바로 그 기준이었다. 거기다가 또한 사람은 하나의 역이 되기에는 너무 왜소하였으며 순간적이고 불완전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기껏 어떤 역의 구성원 또는 부속물이거나 땅 위의 무수한 역 사이를 왕래하는 여객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과 나와의 관계도 온전히 우리들의 기나긴 여행 중에 일어난 한 토막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였다.
그런데도 한때 내가 그것들을 무한히 중요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전혀 무책임한 언어의 조작이나 감정의 무리한 비약 탓이었다. 그 괴상하고 앞뒤 없는 왜곡과 과장 ― 그것에 나는 그렇게도 자주 현혹되고 터무니없이 도취해 왔다.
당신들은 누구와 사랑에 빠져든 적이 있는가? 당신들은 틀림없이 그 고귀함이나 감미로움, 헤어질 때의 고통과 슬픔이며 그 후의 공허함 따위를 미화하고 과장하려 들 테지만 기실 그 진상은 뜻밖에도 단순하고 명백하다. 그것은 당신이 이 여행 중에 눈길을 끄는 한 소녀와 만났다는 것이며, 결국은 부정확하기 마련인 관찰에 이어 당신이 던진 호의 섞인 눈길에 그녀가 답했다는 것이며, 무료를 함께 달래자는 당신의 용기를 다한 요청에 그녀가 다소곳이 응했다는 것이며 ― 그리하여 약간은 야릇한 열에 들뜬 당신들이 깜빡깜빡 자기를 잊어 가며 주고받은, 분명 달콤하고 섬세하나 또한 그리 대단할 건 없는 몇 개 유형의 행위와 가끔씩은 정색해도 좋을 대화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설혹 당신들에게 공통되는 추억과 꿈이 있었고, 그래서 많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들을 얘기했으며, 혹은 그런 것들 자체를 행위로 주고받았다 할지라도 당신들 중 누군가는 도중에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우리의 대지에는 너무나 많은 역이 있고 대개의 경우 우리들 각자의 행선지는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종 당신들은 만나기 전보다 훨씬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헤어져야 하며 불행히도 마땅한 새 상대를 구하지 못할 경우 그 나머지 여정은 피로하고 지리하여 못 견딜 것이 되어버린다.
물론 헤어질 무렵에는 서로가 오래도록 기억해 줄 것을 열렬히 희망하고 혹은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하지만 그 또한 온전히 허망한 것이 되기 일쑤이다. 세상은 너무도 기억할 것이 많고, 한번 헤어진 이들이 다시 만날 수 있기에는 너무 넓은 까닭이다.
어쩌다 운 좋게 둘의 행선지가 같은 경우에도 결과의 허망에는 큰 차이가 없다. 서로가 미지(未知)이던 시기, 열정의 한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침내 당신들은 서로를 묶고 있는 그 무료하고 권태로운 관계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될 것을…….
당신들은 이제 나에게 우정을 말하려는가? 그러나 그것 역시도 우리들 삶의 한때를 현란하여 애매한 빛으로 채색하고 사라진 한 장의 의례적인 삽화(揷畵) 일 뿐, 미문(美文)으로 장황하게 서술되거나 감격에 찬 목소리로 수다하게 떠들어 댈 만한 것은 못 된다. 열차에 올라 객석에 앉게 되거든 주위를 둘러보라. 누군가 그 시각 그 객차에 올랐다는 우연만으로 당신과 함께 앉게 되어 있는데, 그게 바로 당신이 열 올려 얘기하려던 우정의 시작이다.
우의(友誼) 라는 이름 아래의 달갑잖은 복종과 양보, 영혼의 밑바닥부터 육체의 머리 꼭대기까지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지극히 피상적인 이해, 다소 해로움이 있더라도 참아 주어야 한다는 성가신 의무감, 항상 멀리 있어 정체 없는 것에 대한 논쟁과 건성으로 하는 수긍의 싱거운 미소, 크게 다를 바 없는 경험의 지리한 교환, 머리 기대는 것을 참아 주는 대신에 팔을 상대의 어깨에 걸치는 계산, 그나마도 당신들의 동석이 길어짐에 따라 끝내는 흐지부지되고 말 그 모든 관계 ― 그것이 한때 그렇게도 굉장한 축복으로 여겨졌던 우정의 진정 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들이 그런 사랑이나 우정의 결핍을 커다란 불행으로. 여기고 각별히 그것을 고독이란 이름으로 과장하고 싶을 때, 비단과 보석으로 치장한 천한 육체에다 조야(粗野)한 정신밖에 지니지 못한 여인과의 무분별한 관계 속으로 떨어지고 싶거나, 거리에 넘쳐나는 천민들이며 가망없는 속물들에게 ‘앞발이 아니라 두 손을 내밀고’ 싶을 때에는 내 마음속에 있는 내 늙은 친구의 담담한 충고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게 좋다.
“어린 놈아, 우리는 때로 빈 객석에 홀로 앉아 여행하게 되는 수도 있단다. 그럴 때 동석자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것은 천하지. 오히려 이제 너를 스쳐 가면 다시 보기 힘들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거나 어떤 가치 있는 생각에 잠겨 홀로 앉아 가는 쪽이 훨씬 멋스러운 법이란다…….”
그의 말이 옳다. 만약 우리가 감정의 과장에서 벗어나 그 본질 자체를 응시할 수 있다면 고독이란 죽음 그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슬픔이나 고통의 이유는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당신들의 몸과 마음을 그렇게 세차게 떨게 했던 미움이나 원한도 ㅡ 결국 우리들의 여행 중에 일어난 대단찮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는 이미 말한 우정이나 사랑과 다름이 없다. 즉 그것은 열차에 오르기 전 잘 닦아 신은 당신의 구두를 한 무뢰한이 밟고 지나간 것이며, 참지 못한 당신의 거친 항의가 그와의 언쟁을 낳게 한 것이며, 그 언쟁은 듣기 거북한 욕설로 번지고 혹은 실력 행사로 들어가 ― 그래서 공안원의 제지로 끝났건, 이웃의 만류로 참았건, 또 당신들이 열없이 돌아섰건, 오징어포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화해를 했건 도대체 그 일련의 불쾌한 돌발사가 당신들의 여행에 무슨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하여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이 있다면, 맹렬한 증오로 그와 그가 끼친 해악을 기억하고, 또 그 정당한 보복을 가슴 깊이 맹세한 일이 있다면 당신은 다시 내 늙은 친구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어린 놈아, 우리들 (삶의) 열차는 종종 너무 혼잡하여 본의 아니게 남의 발을 밟게 되는 수가 있단다. 만약 네가 진심으로 착하고 슬기로워지기를 원한다면 그런 것을 잘 이해하고 너야말로 남의 발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라. 불필요한 시비는 너 자신을 피로하게 하고, 이웃을 괴롭힐 뿐이란다.”
그러하다. 한때 우리들의 기쁨이며 보람이었던 모든 것들, 그리하여 그처럼 쉼게 우리를 감격시키고 앞뒤 없는 우리들의 찬사와 경이를 찬탈해 간 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메울 수 없는 슬픔이나 끝 모를 경멸의 원인된 모든 것들, 또 그렇게도 세찬 불길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르던 분노와 원한도 본질에 있어서는 그러하다. 오, 그 모든 우발적이며 단순하고 순간적인 것들…….
여자여 우리들도 그러하였다.
처음 만나던 때부터 저는 줄곧 이상한 예감으로 당신을 불안하게 여겨 왔어요. 당신은 당신 속의 불균형 ― 이를테면 대범히 지나쳐야 할 것에 대한 집요함. 철저해야 될 것에 대한 속단, 무디어야할 곳에 대한 날카로움과 예민해야 할 곳에 대한 엉뚱한 둔감 같은 것들 때문에 마침내는 상처받고 죽게 되리라고.
벌써 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기억이 생생하군요. 그러니까 나이를 알 수 없는 떠돌이 소년과 도회의 여고 1년생이 만나게 된 일. 강둑에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피어 있을 무렵인데 그날 당신은 형편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제 아버지를 찾아오셨지요. 누렇게 바랜 당신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무슨 부적처럼 지닌 채. 원래대로라면 당신은 이미 그 몇 년 전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지만, 무슨 숙명과도 흡사한 힘이 당신을 수많은 낯선 도시를 떠돌게 한 후 늦게서야 처음의 목적지인 우리 집으로 인도한 것이라고 후일 들었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불행하게 죽은 옛 친구의 아들을 눈물로 반겼고, 그날부터 당신은 우리 가족의 한 사람이 되었지요.
제가 당신을 처음 본 것은 바로 그 오후, 지리한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제 방문을 열었을 때였어요. 아직 한낮인데도 당신은 정신없이 곯아떨어져 있었는데, 뜻밖의 침입자에 발끈해서 방문을 연 나는 이내 그 엉뚱한 예감에 빠져들게 된 거예요. 당신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년답지 않게 꺼칠한 피부에 움푹 꺼진 눈두덩이. 함부로 기른 머리칼에 거지나 다름없는 행색으로 누워 있는 당신의 가슴에 얹혀 있던 것은 기이하게도 허락 없이 내 책꽂이에서 빼낸 것임에 분명한 혜세의 시집이었어요. 물론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당신과 그 시집의 당연한 부조화가 그때는 어찌도 그렇게 절실한 조화로 제 가슴에 닿아 오던지.
그다음 제가 다시 그 엉뚱한 예감을 경험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안 돼 당신이 우리들의 정원에서 제 화구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였어요. 당신은 키 큰 히말라야시다와 몇 그루의 동백나무 등홍색(橙紅色) 꽃이 피기 시작하는 석류와 활짝 핀 넝쿨장미로 싱싱하던 유월의 정원을 회색과 갈색만으로 망쳐 놓고 있었지요. 그때 당신은 이미 약장수를 따라다니며 배웠다는 몇 가지 초보적인 마술로 우리 남매와 친해져 있을 때인데도, 화면을 가득 채운 기괴한 색조에서 나는 다시 그 엉뚱한 예감에 젖게 된 거예요. 당신이 어떤 간판장이의 조수 노릇을 한 적이 있다든가, 그 간판장이는 실패한 화가로서 회색과 갈색을 특히 잘 썼다든가 하는 따위는 아직 듣지 못했을 때의 일이지만.
그 뒤 아버지의 배려 속에, 당신이 체계 없는 독서로 보낸 중고등학교 과정을 속성으로 밟고, 다시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은 중도에서 그만둔 그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의 몇 년간에도 저는 몇 번이고 그런 예감으로 괴로워하고 불안해했어요. 주로 당신의 잦은 가출 때였는데, 그러나 당신은 그때마다 일부러 그런 저를 부끄럽게 만들려는 듯이 건강하게 돌아왔어요. 정말 당신은 훌륭한 언어의 곡예사였고, ‘유리알 유희’의 명수였지요. 떠날 때 절대로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던 당신의 이른바 ‘난제(難題)’는 어린 날의 제가 늘 경탄했듯이 훌륭한 해결을 가지고 돌아왔으며, 그리하여 쇼펜하우어만이 유일한 우주의 이해자라고 단정하던 당신이 결국 우주를 더 잘 이해한 것은 라이프니츠 쪽이었다고 엄숙하게 선언하는 거예요. 물론 그때 사용했던 언어나 논리는 나중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런 것이었지만…….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기실 당신이 내게 보여 준 것은 실제와는 전혀 다른 것임에 틀림없어요. 단조로운 일과 변함없는 생활 ―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평범한 일상 속에 머물면서는 풀 수 없는 그 난제들이 떠올라 준 것은 당신을 위해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어요. 돌아온 후에는 언제나 성공적으로 아버지와 가족들의 이해를 얻어 낼 수 있었던 것도.
아직도 당신은 많은 것을 혼동하고 있고, 그보다 더 많은 것에 편견과 독단을 지닌 채 지극히 불리한 방법으로만 세상을 살고 있지만 당신이야말로 결코 죽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 당신이 막벌이 노동판을 전전하고, 채사선(採砂胎)의 인부며 머슴살이 같은 천하고 힘든 직업에 몸을 담거나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남도(南道) 일대를 샅샅이 돌았다고 해서, 또 몇 주 내내 술만 마시고 살았고, 팔백 리 길을 이레 만에 걸어 보았으며 눈 덮인 대관령을 맨발로 넘었다고 해서, 도대체 그런 피상적인 육체의 고통들이 당신의 삶에 무엇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제게 파리로 갈 것을 제의해 왔어요. 형식적인 유학이 끝나면 돌아와서 부유하고 성실한 남자와 결혼한다는 조건으로 저도 거기에 동의했어요. 당신에게 여지를 남기지 않은 것은 반드시 그분의 잘못만일 수는 없어요. ‘학문이나 예술에 기생(寄生)하지 않고, 사회의 정당한 성원으로서 그것과의 부끄럼 없는 대차 관계를 가지기 위해’ 당신이 그때껏 빠져 있던 허망한 생활을 청산하고 법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흐뭇해하시던 아버지를 기억하시죠? 겨우 스물다섯이었고, 당신 것이라고는 풀어진 실오리조차 갖지 못한 당신이 제게 청혼을 했을 때도 그분은 기꺼이 허락하셨지요. 일찍 죽은 옛 친구의 아들에게 느끼는 동정과 연민 이상의 어떤 따뜻한 관계가 당신과 그분 사이에는 분명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약혼식이 있고 채 일 년도 안 돼 어느 저녁 다시 훌쩍 집을 나갔지요. 궁성을 떠나는 싯다르타 왕자처럼 또는 전(前) 세기의 흔해 빠진 교양소설의 주인공처럼이나. 그리하여 우리가 애태우고 있는 동안도 당신은 난데없는 원양어선의 갑판원으로 낯선 바다를 떠다니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두 해가 지난 지금 당신은 여전히 씩씩하고 건강하게 돌아왔어요. 변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당신에게 불리한 것도 없는데,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과 산다는 것을 혼동하며 세상에 대한 독단과 편견도 어느 것 하나 잃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한 채 ― 담배는 변함없이 비틀어서 태우고, 항상 충혈된 눈에도 커피는 한꺼번에 석 잔씩 마시며…….
벌써 오래전부터 당신에게 묻고 싶던 게 있었어요. 말하자면 당신이 비록 우수한 기억력을 가졌고 경탄할 만큼 언어를 구사할 힘이 있으며, 남보다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또한 무슨 큰 구도자처럼 수다한 인간들의 거리를 떠돌아다녔으며, 그래서 그만큼 다양한 삶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게 당신의 그 많은 독단과 편견에 대한 정당성의 근거가 될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 선량하고 부지런한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정직하고 생명에 대한 성의로 가득 찬 상식을 경멸하고 농락할 권리가 있어요? 항상 다수를 의심하는 악습, 의미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뛰어넘으려 드는 무모, 거기다가 젊음과 재능의 명백한 낭비를 끊임없이 미화하며, 그래 당신의 그 거창한 오디세이아가 끝나면 무슨 유별난 삶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하긴 아직 괴로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진실로 잘못된 것이 당신인지 제가 범속으로 타락한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아, 저는 지금 무슨 애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좀 더 일찍이 당신과의 이런 유희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었던 것을…… 끝나 버린 것에 그토록 연연해서…… 예까지 끌어오구선…….
아아, 이 여자, 너는 언제 이렇게 훌륭히 자랐는가. 무엇이 네 싸늘한 이성(理性)의 눈을 뜨게 하고 나를 초월하게 하였는가.
나는 안다. 내 귀가 얼마나 오랫동안 나의 노래 부르기 위한 노래로 귀 막혀 있었으며, 내 사유(思惟) 또한 얼마나 오랫동안 나의 고뇌하기 위한 고뇌, 번민을 위한 번민에 집착하고 있었던가를. 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것은 오직 바보에게만 가능할 뿐이며, 모두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홀로 외면하는 것은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도 좀 더 일찍 이 세상의 여러 단순하나 건전한 지식에 만족하고 거기에 충실해야 했다. 어느 누구도 그 상식으로 절여진 범인(凡人)들을 무시할 권리는 없으며, 또한 자신의 미덥 잖은 생각을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더욱 없음을 이해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 늙은 친구와 만나게 된 것을 불행으로 여길 줄 알고, 그가 묘사한 낯선 도시의 풍경이나 그 방랑의 즐거움이 대부분 과장에 지나지 않았음도 진작 깨달았어야 했다. 용케도 그는 늙도록 살았지만 결국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은 실제에 있어서는 내게 지극히 불리할 뿐이라고 이웃이 깨우쳐 줄 때 나는 그것에 겸손히 귀 기울여야 했다. 그 후 이번에는 운명이 부당히도 내게 그것을 강요했을 때 나는 거부하려고 노력하거나, 적어도 기왕에 해 온 것처럼 그렇게 기꺼이 받아들이고 모든 출발을 기쁨으로 대해서도 안 되었으며 ― 세상의 온갖 것을 다 알고 더구나 그것을 스스로 체험하기에는 우리들 삶의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도 마땅히 알아차렸어야 했다. 현존하는 모든 것을 긍정하지 못하는 것, 사물의 외관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배후에까지 당돌한 의혹의 눈길을 던지는 것, 그것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노릇인가 그리고 그것들은 장차 나를 얼마나 지치고 슬프게 할 것인가도 나는 미리 짐작했어야 했다. 하여 나는 어느 한 도시의 주민으로 눌러앉아 어떤 한 분야의 조그만 지식으로 나의 빵을 벌며 불평 없이 살아가게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끝내 이렇게 되고 만 것, 이것이야말로 필요 이상의 사랑을 그 심장에 부여받은 자, 쏘아 댈 너무 많은 동경의 화살을 지닌 채 태어난 정신의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어떤 신이 있다면, 지난날 내 내부에서 끊임없는 동경을 유발시키고 무분별한 행위를 충동질하고 온갖 격정 온갖 광기로 나를 내몬 것은 바로 그 신의 목소리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런 내게 있어서는, 여자여, 존재한다는 것과 산다는 것이 왜 굳이 구별돼야 하는지 지금에조차도 오히려 이상하다. 어차피 우리들의 삶이 한 기다란 여행이며, 우리들은 이 거대한 역의 한 여객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들의 구별이 무슨 큰 의미를 가진다는 말인가.
예컨대 어떤 여객이 한 역에 내렸다 하자. 그가 값비싼 비단옷을 걸쳤건 허름한 무명옷을 입었건 또 화려한 레스토랑만을 골라 미식(美食)을 즐겼건 싸구려 식당에서 가락국수로 공복을 면했건, 그가 역에 내렸다는 사실 자체에 무슨 차이를 준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그 뒤 그가 은성(殷盛)한 무도회에서 꽃과 여자에 싸여 여가를 즐겼건 딱딱한 대합실 벤치에 앉아 이나 빈대에 물어 뜯기며 몇 권의 책으로 시간을 보냈건, 또는 음향이나 색채에 관한 특별한 재능으로 많은 사람들의 갈채를 사거나, 경청할 만한 시국 강연회로 공중(公衆)의 존경과 지지를 획득했건, 그것들이 그 역에 내렸다는 사실, 즉 우리들 존재 그 자체의 무엇 하나를 건들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그러한 여러 삶의 형태는 우리들 존재의 단순한 외양이며, 허용된 만큼의 시간이란 그릇에 제 나름의 의미를 채워 가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 것을, 그리하여 네가 그토록 힘주어 말한 ‘산다는 것’도 실은 ‘존재한다는 것’의 사소한 변형일 뿐인 것을…….
여기 당신이 제게 준 것 모두가 있어요. 한때는 제 것이기도 했지만 이젠 오직 당신만의 것이 된 당신의 언어예요. 이 편지, 이것들은 얼마나 자주 저의 기쁨이 되었던지. 당신이 돌연히 사라진 후 몇 날이고 마음 졸이며 지내다 보면 불쑥 날아들던 이 편지를 눈물로 적신 것도 여러 번이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한갓 부담일 뿐이에요. 제게 남아 애써 정리한 감정을 헝크는 것도 싫지만 그보다는 이것들로 인해 다시 울게 될까 봐 더욱 겁나요. 당신에겐 그 모든 지난 일이 하찮을는지 모르지만 제겐 소중하고 그리운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어디로 여행할 때 기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줄곧 창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있다. 때문에 종종 내 여행은 창밖의 다양한 변화로 인해 별로 길다고 할 것도 없는 것이 아주 길었던 것으로 착각될 때가 있다.
그러한 기억의 왜곡 내지 과장은 기차 여행 이외에도 나의 경험 속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그것은 특히 추억이란 감상적인 이름으로 재생 될 때 더욱 그러하다. 사실 추억이란 우리들 기억의 광맥에서 떼어 낸 한 덩이의 자연석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련과 가공을 거치는 동안에 엄청난 감상과 상상력이 끼어들어 실제와는 전혀 다른 모조품이 만들어지고 또 원래의 것과는 엉뚱한 빛을 우리에게 던진다.
나 자신 그리 숙련된 제련공도 세공사도 못 되지만 때로 그 당시에는 별로 소중하거나 아름답게 느끼지 못한 것들이 꽤 오랜 세월 후에는 몹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로 재생되는 것을 보고 당황하는 수가 있다. 그래, 너는 그렇게도 열심히 냉철한 이지(理智)로 살아 가고자 원하면서, 그와 같은 기억의 과장이나 왜곡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단 말인가
벌써 기차는 오래전부터 플랫폼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전송 나온 사람들 틈에서 희끗희끗한 아버지의 머리칼이 보여요. 안녕히 계세요.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 가엾은 분…… 살다 보면 또 어느 역에선가 다시 만나게 될 테지만, 그때는 우리 서로 낯선 그 도시의 주민이 되는 거예요. 어쩌다 거리에서 마주쳐도 허심한 목례로 지나쳐 갈 용기를 가져요.
여자가 침착하게 일어선다. 찻집 안이 갑작스러운 정적에 빠지고, 멀어져 가는 여자의 발자국 소리만이 무슨 날카로운 금속성처럼 텅 빈 내 머릿속을 교란한다. 언젠가 오리라던 날이 왔지만 떠나는 사랑의 뒷모습은 너무 아름답구나…….
그러나 여자여, 참으로 떠나야 할 것은 네가 아니었다. 생각하면 나야말로 아무런 애착도 미련도 없이 너무 오래 이 황량한 역을 배회하고 있었다. 네 조그만 번민과 고뇌로부터, 자기가 창출한 여러 가치를 이것저것 고르기만 하고 끝내 선택하지 않는 자에 대한 이 대지의 불쾌한 기억으로부터 진작 떠났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지금 내 귀에는 새로운 출발을 재촉하는 기적 소리가 들린다. 일찍이 어린 나의 새벽잠을 깨우고 성장한 나를 끊임없이 떠돌게 한 저 기적 소리. 그리고 지금은 더 머물 곳도 없는 이 대지로부터의 출발을 재촉하는 저 기적 소리. 기약하지 않았으되 날은 다 되었고, 나는 올 때처럼 무망하게 떠나지 않으면 안 되리라……
그러면 이제야말로 안녕, 이 황량한 역이여.
(1980년)
2016년 11월 3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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