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대단한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작은 돌부리,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 하찮은 것에 걸려 넘어질 뿐입니다.
걸려 넘어진 다음에 ‘뭐가 나를 넘어지게 했지?’하고 돌아보면 ‘뭐 저런 것에 걸려 넘어졌을까?’어처구니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한심하기도 하지요.
도산 안창호 선생,
그를 우리는 독립 운동가라고 부릅니다.
1907년 항일비밀결사대인 신민회를 조직했고,
1913년엔 미국에서 흥사단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분입니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총장과 국무총리 대리를 지내셨습니다.
윤봉길 의거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돼 본국으로 송환되기도 했습니다.
도산은 백범 김구 선생과도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두 분 다 냉면을 좋아해서 만나면 두 그릇씩 비우셨다고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정직한 분이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산에게 독립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맡기기도 했습니다. 백범도 도산으로부터 자금을 제공받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그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고 신뢰했습니다.
나라 사랑하는 일에 인생 전체를 쏟으신 분입니다.
도산은 아주 온화하고 화도 잘 내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이북이 고향이면서도 사투리 하나도 안 쓰고 서울말만 썼다고 합니다.
저녁 10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고 아침 6시면 시계 같이 일어나서 태극권이나 검술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 했다고 합니다.
취미라고는 꽃에 물주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술은 한두 잔만 마시면 얼굴이 빨개져서 많이 하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담배는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눌 때에도 입에 물고 있을 만큼 많이 피워서 그를 돕던 ‘구익균’이란 분이 물었습니다.
“아니 선생님은 왜 다른 건 다 실천하시면서 담배 끊는
것만은 못하십니까?”
결국 담배도 감옥에 가서야 끊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철저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치열하게 살아간 분이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십니다.
해군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서 3,700톤급‘도산 안창호함’잠수함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산도 사소한 것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선생이 감옥에서 석방 된 뒤에 여러 사람들이 환영하면서 잔칫상을 열어 줬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고생하셨다고,
이 사람 저사람 다투어서 잘 한다고 잔치를 열어줬는데 그 바람에 과식을 하고 위장병에 걸렸습니다. 트림이 아주 심했고 결국은 그 위장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정말 인생은 태산에 걸어 지는 게 아닙니다.
오래 전 일입니다. 어느 건물 지하 유리창에 앞 치아를 박치기 했습니다. 유리가 없는 줄 알고 서두르다가 쾅하고 부딪히고 나딩굴었습니다. 머리가 디이잉 했습니다.
치아가 흔들거렸습니다.
그때 얼른 병원에 갔어야 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고생바가지로 합니다. 아마도 평생 고생할 모양입니다.
어느 해변에 겨울이 되자 갈매기들이 떨어져 죽기 시작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전문가들이 조사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어처구니없는 일 때문입니다. 여름에 관광 온 사람들이 잘 받아먹으니까 재미 있다고, 생각없이 과자를 던져 줬습니다. 갈매기들은 주는 것, 편하니까 덥썩덥썩 받아먹다가 물고기 잡는 힘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누구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심심풀이에 걸려 넘어집니다.
사람 사이에 틈이 생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소한 일로 생긴 걸 그냥 놔두면 점점 벌어집니다.
용기를 내면 금방 메울 수 있는데 그냥 놔두면 확 벌어집니다. 조심할 일입니다.
크게 바라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작은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도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종종 자세히 살펴야지요.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종종 하찮은 것들, 시시한 것들에 걸려 넘어져서 낭패 보는 일이 있음을 아는 것도 퍽 지혜로운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