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살래길’
폭염주의보가 내린 며칠 전, 파주 ‘살레길’을 찾았다. 서울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계속 달리다가 ‘제1자유로’에 접어들면 한강과 임진강의 물줄기가 합류하는 파주 탄현에 닳게 된다. 그리고 길은 다시 오두산(鰲頭山)과 검단산(黔丹山) 사이를 가르고 길의 끝자락인 문산 임진각에 이르게 된다. 그곳 검단산에 예쁜 이름의 ‘살래길’이 조성돼 있다. ‘살래길’이라는 이름은 '몸을 살래살래 흔들며 가볍게 걷는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살래길은 파주시 탄현면법흥리에 있는 통일동산 중앙공원과 성동리의 검단산을 이은 약 4.2km의 산책코스로 그 이름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검단산은 높이 150m의 나지막한 산으로 예전에 이곳 산마루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산허리에는 천년고찰 검단사(黔丹寺)와 고려의 임금과 충신들의 위패를 봉안한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이 있으며, 살래길 가까이에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가 있다.
검단사에서 길을 잡아 왼쪽 산허릿길을 걸어가다 보면 자유로 건너편에 오두산전망대가 보이고 오래 걷지 않아 고려통일대전 문 앞에 이른다. 그러나 고려통일대전은 무슨 까닭인지 철문은 굳게 닫은 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산등성이길을 걸어 산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임진강과 한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임진강 건너 북녘땅의 개풍군이 눈앞에 성큼 다가온다.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산길을 내려오다 보면 산마루 아래 세운 지 오래지 않은 삼층석탑이 나타나고, 그 주변에 자연석으로 쌓은 돌무지탑 여러 개가 있는 돌탑마당에 이른다. 사람들이 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며 얼마나 많은 것을 빌었을 것인가. 돌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지극한 소망이 느껴졌다. 돌탑마당에서 검단사에 이르는 길은 꽤나 가파른 편이다. 이암(泥岩)으로 이뤄진 절벽 아래를 걸어 내려오면 바로 검단사에 다다른다.
검단사(黔丹寺)는 통일신라시대 문성왕 9년(847년)에 승려 혜소(慧昭)가 창건했다. 혜소스님은 얼굴이 유난히 검어 검단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사찰 이름은 그의 별명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검단사는 창건 당시 파주 문산읍 운천리에 있었으며, 인근에 있던 조선조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인 장릉(長陵)의 원찰이었다. 그런데 장릉에 뱀과 지네가 들끓는다는 이유로 능침을 탄현면 갈현리로 이장하면서 검단사도 장릉 인근에 있는 이곳으로 옮겼다.
검단사 절집으로는 법당인 법화전(法華殿)과 무량수전, 명부전, 그리고 요사채가 있고, 유물로는 아미타불탱화와 신중탱화,·검단선사영정 등이 있다. 탱화는 19세기 말에 제작된 것이고, 검단선사영정은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원본을 토대로 조선 후기에 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단사의 절집 가운데 무량수전과 지장전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느 사찰과는 달리 현판과 주련을 모두 한글로 썼다는 것이 특이하다.
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다. 살래길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북한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6.25전쟁 때의 이북 실향민들이 근처에 있는 동화경모공원에 묻히고자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검단사 입구에서 출발하여 살레길 4.2km를 걸어 검단사로 되돌아오는 데 2시간이 걸렸다. 한편 살레길 인근에는 헤이리예술마을, 오두산통일전망대, 통일동산, 장릉, 정연선생묘, 황희정승묘가 있어 하루 나들이로 적당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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