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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세계를 가르친 현대불교의 스승 10인
1. 들어가며
중화권에서는 ‘성운대사(星雲大師)’나 ‘불광산(佛光山)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비록 대만에 근거지를 두고 있지만 성운 스님은 중국 본토(대륙)와 해외의 중국계 사회에서도 인지도가 매우 높은 불교 지도자이다.
불광산을 창건한 성운 스님은 1927년에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태어났다. 1938년 중일전쟁 당시, 어머니를 따라 남경(南京)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나갔다가 서하산(棲霞山)에서 지개(志開)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오철(悟徹)이라는 법명과 금각(今覺)이라는 호를 받았다. 그 후 초산불학원(焦山佛學院)에서 체계적인 총림의 강원교육을 받았다. 1949년에 대만으로 건너간 후 ‘대만불교강습회(臺灣佛敎講習會)’에서 교무 주임이라는 직책을 맡았고, 1953년에는 의란염불회(宜蘭念佛會)의 지도 법사가 되었다.
1957년에 대북(타이베이)에서 불교문화서비스센터[佛敎文化服務處]를 설립해서 불서, 범패 음반과 불교용품 등을 유통하면서 불교 관련 동화책, 소설집도 출판했다. 이는 훗날 불광산에서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포교 방식의 원형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1964년에 수산불학원(壽山佛學院)을 창립하여 체계적인 불교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1967년에는 불광산을 창건하여 “문화로 불법을 알리고,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하며, 자선 사업으로 사회를 이롭게 하고, 수행 공동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한다.”라는 종지(宗旨)를 세웠다. 그 후 50여 년간 불광산은 ‘인간불교’를 실천하는 종단으로 세계 각지에 300여 개의 사찰, 16개의 불교 강원, 25개의 미술관과 도서관 등 다양한 종교 · 교육 · 문화 시설을 설립하고 포교 활동을 이어왔다. 성운 스님은 2023년 2월 5일 정월 대보름 오후 세랍 97세, 법랍 82년으로 입적했다.
위와 같은 업적을 이룬 성운 스님과 그가 창건한 불광산은 한국 불교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글은 성운 스님의 ‘인간불교’를 간략하게 살핀 후, 그가 이 사상을 바탕으로 펼쳐온 포교 활동의 특징을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한국 교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고찰할 예정이다.
2. ‘인간불교’란 무엇인가
1) 태허의 인생불교
‘인간불교’는 태허(太虛) 스님이 1934년에 발표한 〈인간불교를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怎樣來建設人間佛教]〉라는 글에서 처음으로 전문용어처럼 등장했다. 태허 스님이 1932년에 발표한 다른 글에서 이미 ‘인간불교’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 ‘인간불교’는 훗날 더 잘 알려진 ‘인생불교(人生佛敎)’와 사실상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태허 스님의 ‘인생불교’는 사후 세계와 귀신에만 관심을 가졌던 당시 중국 불교도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죽음이 아닌 삶을, 귀신이 아닌 인간을 중요시하는 ‘인생불교’를 제안함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면 죽음의 문제도 저절로 풀릴 것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또한 1928년 〈중국 불교 혁명 승려에게 쓴 훈사[對於中國佛教革命僧的訓詞]〉에서는 태허 스님은 대승 보살 사상에 입각한 ‘인생불교’로 사찰과 승가 제도를 개혁하며, 신도들을 현대 사회에 걸맞을 신행 단체로 결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 인순의 인간불교
태허 스님의 제자인 인순(印順) 스님은 ‘인생불교’의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비판적으로 발전시켰다. 그가 ‘인간불교(人間佛敎)’를 주장하여 모든 부처님이 천상 세계가 아닌 인간 세상에서 성불하셨다는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의 구절을 특히 강조하였다. 대승 보살행을 실천하여 성불해야 된다는 데에는 인순 스님의 입장이 태허 스님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교리와 불교사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인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대사(태허 스님)는 ‘인생불교’를 주장하고 나는 ‘인간불교’를 주장한다. 일반인들이 죽음과 귀신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태허 대사는 이를 고치기 위해 인생불교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불법은 인간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니 ‘천신화’해서도 안 된다. 불교는 귀신의 종교도 아니고 천신의 종교도 아니다. 귀신화도 천신화도 되지 않은 인간불교야말로 불법의 진실한 의미를 천명할 수 있다.
그러면서 불교는 청년과 이타행(利他行)을 중요시해야 하는데 대승 보살행은 이에 제일 맞는 법문이라고 했다. 부처님 당시 출가자들은 항상 단체로 탁발하는 것처럼, 불교는 단체 생활로 자신을 성장시키며 정법(正法)을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게 하는 것이지, 중국인들이 말하는 ‘은둔’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보살행을 닦는 재가자들은 신행 단체로 이타행을 실천해야 하며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3) ‘성운 스타일’ 인간불교
성운 스님이 정의한 ‘인간불교’는 ‘부처님이 설하시고 인간이 원하고 정화(淨化)되며 착하고 아름다운 것[善美]’이다. 즉 행복한 인생의 실현에 도움이 되는 가르침은 모두 ‘인간불교’에 속한다는 것이다. 인생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고, 교육을 중요시하고, 신행 단체의 설립으로 재가자들에게 보살행을 실천할 기회를 제공하는 포교 방식만 봤을 때, 성운 스님의 ‘인간불교’는 태허, 인순 두 스님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탈귀신 · 탈천신화’에 있어서는 성운 스님은 다른 길을 택한 것 같다.
민간신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대만인과 해외의 중국계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불광산에서는 다양한 ‘방편’을 사용해 왔다. 우선, 성운 스님은 인순 스님이 지양했던 부처님에 대한 신격화를 기피하지 않았다. 그의 수많은 저서와 기도문에서 석가모니불을 ‘구주(救主)’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자력(自力)보다 타력(他力)에 더 의존하는 일반인의 구미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민간신앙에 대해서도 매우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예를 들어 불광산에서는 점복의 형식을 ‘법어 뽑기’로 바꿈으로써 운수를 점치는 민간 풍속을 존중하면서도,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한시 대신 부처님의 연기법을 설한 대덕 스님들의 법어를 ‘점복’의 결과로 내어 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성운 스님의 ‘인간불교’는 여전히 ‘인생’ ‘인간’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포교 방식에 있어서는 《유마경》에서 말한 “먼저 욕망으로 이끌고, 그다음에야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한다.”와 같이 매우 포용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다. 또한 “여덟 개의 종파를 모두 가르친다[八宗兼弘]”라는 종풍(宗風)을 세워 실천해 온 것도 초기 대승 경전과 용수의 사상이 아함경과 일맥상통하면서도 보살도를 가르치는 것이니 부처님 본뜻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 인순 스님과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3. 성운 ‘인간불교’식 포교의 특징
1) 접근하기 쉬운 방법을 활용한 설법
성운 스님은 언제나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방법으로 설법해 왔다. 이런 방법은 언어, 언론 매체, 그리고 문화 콘텐츠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젊은 시절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운 스님은 강연 및 글쓰기로 불법을 전해 왔다. 그의 글은 현대 중국어의 구어체인 백화문(白話文)으로 되어 있고 스토리텔링 기법을 항상 활용했다. 어려운 교리를 분석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비유와 흥미로운 이야기로 청중과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강연할 때는 강소 지방의 억양이 섞인 표준 중국어를 사용하지만, 비구니 제자인 자혜(慈惠) 스님이 오랫동안 민남어(閩南語) 통역을 맡아준 덕분에 대만 현지 포교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한편 교리를 기억하기 쉬운 구호로 요약하는 방법도 많이 활용됐다. 신구의 삼업을 닦는 수행에 ‘삼호운동(三好運動)’이라는 명칭을 붙여 “좋은 일 하고, 좋은 말 하며 좋은 생각을 하자[做好事, 說好話, 存好心].”라고 호소하는 캠페인을 만들었다. 육바라밀 중의 보시 바라밀은 ‘네 가지 보시[四給]’, 즉 남에게 신심, 기쁨, 희망과 편리를 주는 것[給人信心, 給人歡喜, 給人希望, 給人方便]으로 재해석하여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선행으로 제시했다.
언론 매체를 활용한 포교도 성운 스님의 장점이다. 1960년대부터 라디오 방송을 활용한 포교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8월에 대만 방송 사상 최초의 불교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감로(甘露)〉를 중화텔레비전[中華電視]을 통해 방송했다. 그 후 성운 스님은 대만 방송 3사에서 각종 불교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매우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1998년에는 불광위성텔레비전[佛光衛視]을 설립하여 케이블방송 채널을 확보했고, 현재 인간위성텔레비전[人間衛視]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2000년에는 〈인간복보(人間福報)〉를 창간하여 불교 일간지 발행의 역사를 쓰기도 했다.
문화 콘텐츠를 이용한 포교 역시 성운 스님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방법이다. 범패에 능한 비구 · 비구니 제자들로 구성된 ‘불광산 범패 찬송단’은 성운 스님이 설법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불교 법회나 행사에서도 음성 공양을 한다. 또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음반사를 설립해 스님들의 염불에 전통악기의 반주를 입혀 의식 음악과 감상용 음악 두 가지 기능을 지닌 범패 음반을 발행했다. 그 외에도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창작된 대중가요식 찬불가를 꾸준히 음반으로 발행해 왔다. 한편 매년 설 명절에는 성운 스님이 한국의 입춘방과 비슷한 ‘춘련(春聯)’을 붓글씨로 써서 무료로 대중에게 나눠주고, 대만과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는 전통등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중국 전통 민속과 결합한 이런 홍보 수단은 불광산의 인지도를 높이고 많은 사람을 사찰에 오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 교육과 청년 포교 중시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성운 스님은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해 왔다. 현재 불광산에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각급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고, ‘불광산 교단 대학 컨소시엄(佛光山教團系統大學)’에는 총 7개 대학(전문대 포함)이 가입되어 있다. 그중에 ‘불광산총림학원’이 있는데 고졸 학력의 18~35세 미혼 남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3년제 불교 전문 교육기관이다. 총림학원을 졸업한 재가자들은 나중에 출가하지 않아도 교단의 행정 업무나 포교 활동에 전문 인력으로 종사할 수 있다.
성운 스님의 수제자들은 거의 다 청년 시절부터 포교 활동에 동참했다. 그래서 성운 스님은 청년 불자 양성을 매우 중요시하고 청소년 포교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어린이를 위한 불교 여름 · 겨울 수련회와 불교 학교, 청소년을 위한 불교 독서 모임 등은 대만 본산과 전 세계 불광산 도량에서 운영되고 있고, 불광산의 신도 단체인 국제불광회 산하에도 불광청년단을 두고 있다. 청소년으로 하여금 불교에 친근감을 느끼고 사찰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한 성운 스님의 이런 노력은 대만과 해외 중국계 사회에서 불교가 ‘노인 종교’ 이미지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으로 볼 수 있다.
3) 평등한 수행 공동체 조성
불광산의 또 다른 특징은 ‘평등’이다. 우선 비구와 비구니의 지위가 거의 동등하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성운 스님의 1,000여 명 제자 중 비구는 200~300명에 불과하다. 불광산의 해외 대량은 주로 비구니들이 주지를 맡고 있고, 성운 스님의 외국어 통역도 비구니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불광대사전》의 편찬, 《불광대장경(佛光大藏經)》의 간행, 서래 · 불광 · 남화 세 대학의 창건 등 모두 비구니들이 주역을 맡아 완성한 문화 · 교육 사업이다. 성운 스님은 여러 곳에서 비구니 제자들의 공로를 기리는 글을 남겼고, 팔경법(八敬法)을 이유로 비구니들의 공경을 요구한 외부에서 온 비구를 꾸짖었다는 일화를 저술에서 소개한 바 있다.
성운 스님은 “출가자는 사찰을 운영하고 재가자는 승단을 외호한다.”라는 전통을 답습하면서도 재가자들에게 상당한 지위와 역할을 부여했다. 과거 중국불교에서는 재가자가 설법하는 일[白衣上座]을 말법시(末法時)의 상징이라고 여겼는데, 성운 스님은 불법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춘 재가자의 학식과 역량을 포교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93년 10월에 국제불광회에서는 ‘단강사(檀講師)’ 제도를 실시했는데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친 재가자가 ‘단강사’에 임명되면 일반 신도들을 상대로 설법할 수 있게 된다. 현재 1,000여 명의 ‘단강사’가 포교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불광청년단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여 검증받은 청년단의 남녀 간부를 각각 ‘선재강사(善財講師)’와 ‘묘혜강사(妙慧講師)’에 임명하여 청년 불자들에게도 포교에 동참할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4) 화교 사회와의 유대감을 통한 해외 포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불광산은 해외에서 약 300개의 도량을 운영하고 있다. 성운 스님은 해외 포교에 있어서 현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계로 미주, 호주, 유럽 등 외국에서 사찰을 창건할 때, 해외로 파견 나간 스님들은 항상 현지의 언어를 습득하고 현지인 신도들이 봉사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지 화교나 중국계 사회와의 유대감을 포교에 효율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성운 스님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 국가를 방문할 때, 항상 현지 중국계 단체로부터 환영받았고, 중국어 일간지도 그의 방문 일정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현지에서 불광산보다 더 일찍 자리 잡은 중국불교 계통의 사찰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중국계 인사들이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는 것은 해외 사찰 창건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한국에 있는 서울불광산사도 창건 초기에 한국 화교들로부터 인력, 재력 및 행정 업무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세워진 해외 도량은 종교적 기능 외에도 중국 문화를 계승 ·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중국어 수업을 시작해서 태극권반, 수묵화 강좌, 서예반과 명절 행사에 이르기까지 현지 화교나 중국계들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런 포교 방식의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말레이시아를 꼽을 수 있다. 불광산이 말레이시아에 정착한 후에 갈수록 많은 현지 중국계 청년들이 성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성운 스님은 다문화 환경에서 자란 그들의 장점을 살려 세계 각국의 도량 창건 현장에 보냈다. 이처럼 화교나 중국계 사회와의 공생 관계는 역으로 불광산 교단의 국제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4. 나오며
성운 스님의 ‘인간불교’는 현담(玄談)보다는 현실을, 개인보다는 대중을, 산림보다는 사회를, 자리(自利)보다는 이타(利他)를 강조한다. 현담보다 현실을 중요시하니 선문답 대신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설법한다. 개인보다 대중이 더 중요하기에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들도 조직화된 단체에서 수행하게 한다. 산림보다 사회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찰은 출가자만의 수행 공간이 아니라 대중이 언제나 불법을 배우러 갈 수 있는 도량이 된다. 그리고 자리보다 이타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스님들도 신도들도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실천적인 포교와 수행 방식으로 너무 세속화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성운 스님은 체계적인 불교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불교학 연구 사업에 장기적으로 지원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평이한 언어와 포교 방식은 일반인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먹고살기 바쁜 현대인들은 오계를 지키며 십선만 실천해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그중에 불교 교리를 깊이 탐구하고 싶은 사람은 불광산의 총림학원이나 종립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참선이나 염불로 수행 정진에 전념할 사람은 관련 법회에 동참하거나 세계 각지 도량에 부설된 선방에 들어가면 된다.
실천하기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점 남을 이롭게 하는 보살행으로 확대해 나가고 성불에 이른다는 것은 태허 · 인순 스님의 주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것이 바로 성운 스님이 제시한 ‘인간불교’의 수행 로드맵이다. ■
소열녕 yeolnyeong@naver.com
말레이시아 페낭 출생. 국립말라야대학교(University of Malaya) 중문과 졸업. 한국 정부 초청 외국인 장학생으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문학석사,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국어학 전공) 학위 취득. 유학생 시절부터 서울불광산사에서 10년 동안 중국어 강사로 자원봉사를 했다. 현재 광운대학교 국제교육원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