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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5월 30일 토요일
[(녹) 연중 제8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유다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온 것인지 대답해 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은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나서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 유다서의 말씀입니다. 17.20ㄴ-25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고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20 여러분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십시오.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22 의심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23 어떤 이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해 주십시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살에 닿아 더러워진 속옷까지 미워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십시오.
24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기쁘게 나서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
25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 하느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위엄과 권능과 권세가 창조 이전부터,
그리고 이제와 앞으로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7-33
그 무렵 예수님과 제자들은 27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28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31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터이니,
32 ‘사람에게서 왔다.’ 할까?”
그러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33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마르 11,28)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문제 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라는 시골 출신으로 아무 직함도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권위에 약합니다. 2007년 1월,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바이올린 연주가 조슈아 벨이 미국 워싱턴 D.C.의 지하철역에서 남루한 차림으로 40분가량 연주하였습니다. 35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잠시라도 서서 음악을 들은 사람은 일곱 명뿐이었고, 스무 명 남짓만이 동전을 던졌습니다. 며칠 전 그가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같은 곡을 연주하였고, 표는 매진되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음악 자체보다 외부적인 권위에 먼저 이끌림을 보여 줍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을까요? 바로 진리 자체로 하느님을 알아보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권위가 아닌 말씀, 행위, 사랑 그 자체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시며,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지만, 온 생애로 진리를 증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는 무관심하지 않는지 돌아봅시다. 성경을 집에 두기만 하고 읽지는 않고, 미사에서도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리사이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들으려고 미사에 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자체에 귀 기울입시다. 화려한 포장이 아니라 그 안의 진리를, 외적 권위가 아니라 말씀 자체를 들읍시다. 그 진리의 선율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것입니다.(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오늘 우리에게도 거룩한 분노가 필요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우리 인간 각자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얼굴은 천가지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때로 극심한 고통과 깊은 상처로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세상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얼굴을 드러내십니다.
때로 깊은 좌절감에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일으켜 세우시고 격려하시고 고무하시는 든든한 보호자의 얼굴로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마냥 그러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가지 말아야 할 죽음의 길을 걸어갈 때에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거룩한 분노를 터트리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모두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때로 끌어안는 것도 사랑이지만 떼어놓은 것도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러한 하느님의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회를 주고 기다렸지만, 끝끝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거룩한 성전이 크게 훼손되고 타락한 모습에 진노하신 예수님께서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까지 불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 엎으셨다.”
보십시오, 복음서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는 예수님의 과격한 행동입니다. 강도의 소굴로 타락한 성전 앞에 거룩한 분노를 터트리신 것입니다. 일종의 성전 정화 작업을 하신 예수님의 행동이 과격했던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때로 마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살아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을 예수님께서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거룩해야 할 성전이 천박한 배금주의로 타락할 때, 거룩한 분노가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크게 언성을 높여야 마땅합니다.
교회가 고유한 본성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모습으로 변질될 때, 거룩한 분노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분연히 일어나 반기를 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교회의 보물이요 중심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들러리요 애물단지로 취급받을 때, 거룩한 분노가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등불처럼 불을 밝히고 과감히 일어서서 그 부당함을 외쳐야 마땅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반드시 고통이 뒤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1 베드 4, 12-13)
내가 청하는 것을 내가 존중하는지 먼저 물어야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마르 11,33)
찬미 예수님! 연중 제8주간 토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오?"라며 아주 예리한 질문을 던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진지한 구도자들의 모습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례자 요한의 권한이 하늘에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되물으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속으로 얄팍한 계산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왜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군중이 두렵고.' 결국 그들은 진실을 외면한 채 "모르겠소"라고 거짓말을 해버립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단호하게 선언하십니다. "나도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은 왜 진리를 묻는 이들에게 침묵하셨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진리에 대한 '존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이용하려 했을 뿐입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정직하지 않으면서 진리를 훔쳐 가려는 자들에게는 결코 하늘의 신비를 내어주지 않으십니다.
어느 마을에 허풍이 심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몸이 자꾸 아파서 아주 용하고 신통하다는 명의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남자의 진맥을 짚어보더니 차트를 들고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환자분, 정확한 진단을 위해 묻겠습니다. 평소 식습관은 어떠시며, 술과 담배는 얼마나 하십니까?" 남자는 의사 앞에서 자신이 게으르고 방탕하게 산다는 것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아, 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요. 술과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식사도 철저하게 유기농 채소 위주로 소식하며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지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처방전을 써주었습니다. 남자는 비싼 돈을 주고 지어온 약을 매일 정성껏 챙겨 먹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병이 낫기는커녕 증세가 악화되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화가 잔뜩 나서 의사를 찾아가 멱살을 잡았습니다. "당신 명의라더니 다 사기꾼 아니오! 당신이 준 약을 먹고 내 몸이 더 망가졌소!" 그러자 의사가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싸늘하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지어드린 그 약은 완벽한 명약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약을 '새벽마다 조깅을 하고 술 담배를 안 하는 건강한 사람'을 위해 지어주었지, 매일 밤 술을 퍼마시고 기름진 고기만 먹는 선생님 같은 분을 위해 지어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진짜 모습을 속였는데, 어떻게 내 처방이 당신 몸에서 진리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진리를 대하는 우리의 영적 태도가 얼마나 완벽한 무결점을 요구하는지, 현대 첨단 공학의 법칙 하나를 통해 명확히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Clean Room) 법칙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들어가는 초정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 공기가 아닌 완벽하게 통제된 '클린룸'이라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 방은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가닥도 허용되지 않는 우주에서 가장 깨끗한 공간입니다. 작업자들은 온몸을 방진복으로 꽁꽁 싸매고, 에어 샤워를 거쳐야만 그 방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까요? 반도체 웨이퍼 위에 그려지는 회로는 나노미터(10억 분의 1미터) 단위의 초미세 설계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작업자가 귀찮다고 방진복을 대충 입고 들어가서, 아주 미세한 각질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한 톨이라도 그 웨이퍼 위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나노미터의 정밀한 회로는 즉시 끊어지고 쇼트가 나서, 수백억 원어치의 반도체가 전부 불량품이 되어 폐기 처분되고 맙니다.
하느님의 진리는 이 반도체 회로보다 수억 배 더 정교하고 거룩한 우주의 설계도입니다. 이 거룩한 진리가 우리 영혼의 웨이퍼에 새겨지려면, 우리 마음은 반드시 정직이라는 완벽한 클린룸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기도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 합리화와 거짓말이라는 미세먼지를 풀풀 풍기고 다닌다면, 하느님의 진리는 우리 영혼 안에서 즉시 쇼트를 일으키고 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쏟아부어 주시기 위해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조건은 똑똑한 머리가 아닙니다. 내 죄와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잔인할 정도의 '솔직함'입니다. 진리를 청할 때는 솔직해야 하고, 은총을 청할 때는 죄를 짓지 않을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청하는 것을 존중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얼마나 자주 유다인들처럼 속을 감추고 하느님 앞에 섭니까? 교회의 위대한 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은 『고백록』에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진리는 빛과 같아서, 거짓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린 자에게는 맹인의 흑암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비참함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는 자는, 영원히 진리의 문고리조차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성지순례 중에 바르셀로나에서 성가정 성당을 방문하였습니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이 성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의 ‘복음서’와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성당에는 탄생의 문, 고통의 문, 영광의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따라가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마치 하느님의 은총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안에는 한국어로 된 ‘주님의 기도’도 있었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과 열정이 도시 전체를 변화시키고,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성당의 지하에는 가우디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 곁에서는 지금도 매일 미사가 봉헌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성당이라도 미사가 없다면 그저 건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미사가 봉헌되는 순간, 그곳은 살아 있는 하느님의 집이 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차로 한 시간쯤 가면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습니다. 화려한 도시 한가운데 있는 성가정 성당과는 달리, 이 수도원은 깊은 산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약 천 년 전, 목동들이 신비한 빛과 소리를 체험했고, 그곳에서 ‘검은 성모님’을 발견하였습니다. 이후 그 자리에 수도원이 세워졌고, 지금까지 기도와 미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깊은 산속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영적인 갈증 때문입니다. 세상은 화려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침묵과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성가정 성당이 ‘세상 속의 신앙’을 보여 준다면, 몬세라트 수도원은 ‘하느님 안에 머무는 신앙’을 보여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그들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이었습니다. 능력, 재력, 권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는 전혀 다른 곳에서 나옵니다. 첫째, 예수님은 ‘어린양’이십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분입니다. 힘이 아니라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둘째, ‘고난받는 야훼의 종’이십니다. 고통과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이루신 분입니다. 셋째,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을 완성하시고, 참된 생명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넷째, ‘말씀’이십니다. 태초부터 계셨고, 만물을 창조하시며, 지금도 우리를 비추시는 빛이십니다. 이 네 가지 모습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참된 권위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권력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권위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권위, 사랑을 통한 권위입니다.
순례의 길에서 저는 두 가지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화려한 성당이었고, 다른 하나는 깊은 산속의 수도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사’와 ‘기도’였습니다. 사제로서 저는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더 크고, 더 화려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미사를 충실히 봉헌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교우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이 아무리 크고, 삶이 아무리 풍요로워도 그 안에 기도와 하느님이 없다면 공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삶이라도 하느님이 함께하시면 그 삶은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십자가에서 드러났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야 합니다. 겸손과 희생, 그리고 사랑의 길입니다.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입니다.
주님,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겸손과 희생으로 사랑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삶이 주님께 드려지는 살아 있는 성전이 되게 하소서.
오늘의 성인
성녀 잔 다르크(Jeanne d’Arc)
활동년도 : 1412-1431년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아르크(Arc)
같은 이름 : 요안나, 요한나, 잔, 잔느, 잔다르크, 잔다크, 쟌, 쟌다르크, 쟌다크, 조안, 조안나, 조한나
일명 오를레앙(Orleans)의 처녀로 불리는 성녀 잔 다르크(아르크의 요안나, Joanna Arcensis)는 1412년 1월 6일 프랑스 동북부 샹파뉴(Champagne) 근처에 있는 동레미(Domremy)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인 농부의 다섯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출생한 시기는 백년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고, 당시 동레미는 영국군의 침략으로 많은 피해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열심했던 그녀는 1425년 13세가 될 무렵에 대천사 미카엘(Michael, 9월 29일)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11월 25일)와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et, 7월 20일)와 함께 나타나 부친의 집을 떠나 프랑스 군대의 사령관을 찾아가고 나아가 오를레앙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 군대를 몰아내라는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었다. 그녀는 이 목소리를 하느님이 보내신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그 ‘음성’의 지시에 따라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표시로 순결 서약을 하였다고 한다.
1428년 5월에 그녀는 샤를 7세(Charles VII)를 도와 부르고뉴(Bourgogne)가 영국과 동맹을 맺음으로 인해 영국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 오를레앙 지역을 탈환하고, 내전으로 분열된 프랑스를 국왕의 통치 아래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하느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샤를 7세가 보쿨뢰르(Vaucouleurs)에 파견한 장군을 찾아가 프랑스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허락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예언대로 샤를 7세의 상황은 더욱 불리해져, 1428년 10월 12일 그의 거점 지역인 오를레앙이 포위되었다. 1429년 프랑스군이 오를레앙 교외의 헤링 전투에서 영국군에 의해 패배하자 그녀는 3월 시농(Chinon)에 피신해 있던 샤를 7세를 찾아갔다. 샤를 6세의 아들인 그는 백년 전쟁에서 영국인들에 의해 프랑스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가 못된 인물인줄 알았으나 계시에 따라 그에게 순종하였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사명을 인정하게끔 하여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군사 작전에 나서기 전 푸아티에(Poitiers)로 가서 주교와 학자들 앞에서 최종적인 심문을 받게 되었다. 이때 잔 다르크는 ‘음성’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그 결과 그 ‘음성’은 사실로 인정되었고, 그녀의 주장에서 이단이나 미신적인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하느님이 파견한 예언자이자 투사로 알려졌고, 그녀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흰 갑옷을 입고 전투에 참가한 그녀는 1429년 5월 7일 오를레앙에 입성하고 5월 8일에 영국군을 퇴각시킴으로써 프랑스군에 최초의 승리를 안겨주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마침내 1429년 7월 17일 샤를 7세는 랭스(Reims)에서 대관식을 올리게 되었고, 이 때 그녀는 왕 옆자리에 앉았으나 그때부터 왕은 더욱 방자해져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모으고 활동하다가 1430년 4월에 위험에 빠진 콩피에뉴(Compiegne)를 구하기 위해 출정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엄청난 액수의 몸값을 받고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그녀는 자신을 이단으로 모는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 틈새에서 자신이 들은 계시가 마귀의 짓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사기극을 벌인 당시의 지도자들은 그녀를 끝내 화형에 처하기로 결정하고, 1431년 5월 30일 루앙(Rouen)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교황 칼리스투스 3세(Callistus III)는 그녀에 대한 새로운 조사 위원회를 설치해서 조사한 결과, 1456년 7월 잔 다르크에게 화형 판결을 내린 재판을 폐기하고 무효화하는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그녀의 명예 역시 복권되었다. 그리고 잔 다르크는 1909년 4월 18일에야 비로소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0년 5월 1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녀는 프랑스 제2의 수호성인이다.
성 요셉 마렐로(Joseph Marello)
신분 : 주교, 설립자
활동지역 : 아퀴(Acqui)
활동연도 : 1844-1895년
같은이름 : 마렐루스,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성 요셉 마렐로(Josephus Marello)는 1844년 12월 26일 이탈리아 북서부의 토리노(Torino)에서 아버지 빈첸초(Vincenzo)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마렐로(Anna Maria Marello)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족들은 토리노에서 아스티(Asti) 근방의 산 마르티노 알피에리(San Martino Alfieri)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그는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동정 마리아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고, 이 신심은 후에 그가 성소를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충실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12살 때 아스티의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그의 선한 품성과 거룩한 생활은 동료들의 모범이 되었다.
19살에 발진티푸스에 걸렸을 때 그는 살려주시면 꼭 사제가 되겠다고 성모님께 약속했고, 무사히 병이 나아 1868년 9월 19일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그는 열성을 다해 사제다운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처음에 그는 아스티 교구에서 주교의 비서로 일했고, 이어 교구청의 행정을 조정하는 사무처장의 직책을 수행했다.
그는 사목직 안에서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와 교리교육에 헌신하며 젊은이들의 윤리와 종교 교육을 충실히 도왔다.
또한 어려운 시기를 맞은 교회를 위해 교황과 그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통해 평신도들을 끌어 모았다.
그러면서 그는 카르투지오회에 들어가 전적으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삶에 대해 고심하였다. 하지만 그의 주교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일깨우며 단념하도록 설득했다. 주교는 성 요한 마렐로의 전인적인 헌신과 열망이 새로운 수도회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 당시 혁명 법의 여파로 아스티에서 질식하다시피 쇠퇴한 남자 수도회의 소생을 알리는 시작이 되기를 원했다.
결국 성 요셉 마렐로는 1878년 3월 14일 하느님 말씀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예수님을 돌본 성 요셉의 모범을 따르는 ‘성 요셉의 봉헌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새로운 수도회의 신부와 수사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성 요셉의 헌신을 전파하고, 젊은이들을 교육하며, 지역 교회의 직무를 충실히 돕는 임무를 맡겼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 그는 자신의 주교를 돕는 비서로 동행했는데, 후에 교황 레오 13세(Leo XIII)가 된 조악키노 페치(Vincenzo Gioacchino Pecci) 추기경은 이때 그의 덕성과 재능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황에 즉위한 레오 13세는 그를 아퀴의 주교로 임명하였고, 그는 1889년 2월 17일 주교품을 받았다.
성 요셉 마렐로 주교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자신의 주교직을 수행하면서 그는 교리교육과 젊은이들의 신앙교육 그리고 본당사목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켰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 필리푸스 네리(Philippus Neri, 5월 26일) 선종 300주년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사보나(Savona)에 갔다가 1895년 5월 30일 선종하였다.
1993년 9월 2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아스티에서 그를 복자품에 올리면서 애덕의 모범으로,
젊은이와 소외된 이들을 위해 꾸준하면서도 소리 없이 노력한 모범으로 그를 제시하였다.
또한 하느님 백성의 모든 사목자와 전 세계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모든 이들이 그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2001년 11월 2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발스타노 (Walstan)
활동년도 : +1016년
신분 : 평신도
지역 : 노리치(Norwich)
같은 이름 : 발스타누스, 왈스탄, 월스탄
성 발스타누스(Walstanus, 또는 발스타노)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노리치 근교 바우버(Bawbough) 출신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부친 베네딕투스와 모친 블리다의 좋은 표양을 받고 자람으로써 그의 앞날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다. 12세 때에 이미 그는 유산을 포기하고 집을 떠나 테버햄(Taverham)에서 하인 생활을 하였다. 그는 애덕이 지극하여 자기의 음식이나 신, 옷가지들을 항상 걸인에게 주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받는 세경조차 보속이 정신으로 남에게 주었다. 그는 독신서원을 발했으나 수도원 생활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이 일하던 목장에서 선종했는데, 잉글랜드의 하인들은 그의 무덤을 순례하고 큰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월스탄으로도 불린다.
성 펠릭스 1세 (Felix I)
활동년도 : +274년
신분 : 교황,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펠리체
성 펠릭스는 로마인이며 그의 부친이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269년 1월 5일에 교황 디오니시우스(Dionysius)를 계승하여 교황좌에 올랐고, 카타콤바의 순교자 묘지 위에서 미사를 봉헌하도록 명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는 로마 순교록에 순교자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복자 야고보 베르토니(James Bertoni)
활동년도 : 1444-1483년
신분 : 신부
지역
같은 이름 :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자크, 제임스
이탈리아 파엔차(Faenza) 출신인 야고보 베르토니(Jacobus Bertoni)는 아홉 살에 성모의 종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수도 서원을 앞두고 부친의 중병으로 연기하였다가, 몇 년 뒤에 서원하여 가장 훌륭한 수도자의 모습으로 살았다. 그는 죄를 철저히 미워하여 매일같이 고해성사를 본 사람으로 유명하다. 외관상으로 그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매우 여위었다. 사제로 서품된 뒤에 그는 수도원내의 여러 직책을 맡아 모범적으로 수행하다가, 39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66년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