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말라
창세기 15:1-21
2023년 11월 5일 주일 낮 11시
인도, 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우리가 살면서 근심, 걱정, 두려움이 떠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브람도 삶의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찾아 오셔서 하나님이 그의 방패요 상급이라 하셨다.
“이 일들 후에(창 15:1a).” ‘이 일들’은 창 14장에 전개된 사건을 말한다. 그돌라오멜 연합군이 조공을 바치길 거부하고 배반한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왕들의 나라를 공격했다. 그돌라오멜 연합군이 승리하고 백성을 포로로 잡고 보물과 여러 재물을 약탈하여 갔다. 아브람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318명 용사들을 데리고 밤에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기습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아브람 일행은 포로된 롯 가족과 소돔과 고모라 등의 백성을 되찾고 보물과 재물을 노획하여 갖고 왔다. 거기에 소돔왕과 멜기세덱 왕이 마중을 나왔다. 멜기세덱 왕은 아브람을 축복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아브람에게 복이 있으라(창세기 14:19).” “너의 원수들을 너의 손에 넘기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하라(창 14:20).”
평강의 왕 멜기세덱의 축복은 아브람의 승리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일깨운 것이었다.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물리쳐 이긴 것은 아브람의 승리가 아니라 아브람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승리임을 아브람에게 깨닫게 하셨다. 이것을 깨달은 아브람은 평강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
평강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들고 아브람에게 왔다. 예수 그리스도는 빵과 포도주로 성찬식을 제정하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도록 하셨다. 평강의 왕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러나 그돌라오멜 연합군은 강한 자들이었다.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서 온 연합군들이었다. 아브람은 그들의 보복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두려움 속에 있었다.
그돌라오멜 연합군이 전열을 정비하여 언제 다시 공격해 올지 몰랐다. 또한 아브람의 성공은 가나안 원주민들과 그 주변 나라들에게 아브람을 경계하고 시기하게 만들었다.
환상 중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이다. 너의 상급이 클 것이다(창세기 15:1).”
하나님이 아브람의 방패이니 모든 아브람의 적들로부터 그를 보호해 준다는 의미이다. 아브람이 삼백여명의 적은 수와 함께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기습 공격하여 물리친 것은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주시고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아브람 아내가 애굽에서 보호받은 것은 아브람 후손을 잇게 하기 위함이었다. 롯과 분가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롯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브람과 그의 후손을 통해서 이어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아브람은 행동했으나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그의 언약과 섭리를 시행하고 계셨다.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서 온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물리친 것도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아브람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자신과 아내 사라를 통하여 아직도 자식이 없다는 것이 근심거리였다. 자신의 후손이 번창하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자식(아들)이 있어야 하는 데 자식이 없으니 어떻게 자손이 번창할 수 있는가?
아브람은 “주 야웨여 제가 무자한데 당신은 제게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제가 자식이 없는데 제 소유, 부, 권력이 무슨 소용입니까? “보소서 당신이 제게 씨를 주지 아니했으니 저의 집에서 태어난 자가 제 상속자가 되리이다(3).”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그가 아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상속자가 되리라(4).” 하나님이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라고 하셨다. 셀 수 없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그에게 약속했다(참고 22:17, 26:4; 출 32:13 등).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15:6). 아브람의 믿음을 무엇으로 나타냈는가?
하나님은 그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 그 땅, 가나안을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주기 위해 갈데아 우르에서 그를 이끌어 낸 야웨라고 선언하셨다(15:7).
아브람이 답하길, “주님 제가 그 땅을 소유하리라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나이까?(15:8)”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3년 된 소, 양, 염소, 그리고 비둘기를 준비하게 했다(15:9). 아브람은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대로 준비했다(15:10). 각 짐승을 반으로 갈라서 마주 보게 했다. 비둘기는 나누지 않았다. 아브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짐승을 준비한 행위 자체가 그가 그의 약속을 믿고 있음을 증거했다.
그리고 그 짐승들을 그런 방식으로 배열토록 하신 하나님의 행위가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선언이었다.
하나님의 행위의 의미는 18절에 요약된다. “그날 야웨는 아브람과 언약을 맺었다.” 결국 야웨는 그와 언약을 맺고 아브람을 그와 언약 교제 속에 취하여,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긴것이다.
6절에 “그리고 그가 야웨를 믿으니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 “믿었다”는 ‘아만’의 히필형 ‘헤에민’이다. 지속하여, 보존하여, 확고하게, 확정하여 신뢰하는 것, 믿는 것이다. “그 대상에 대하여 확신하는 마음 상태이고, 그것을 굳게 신뢰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굳은 내면의, 인격적으로, 특히 모든 존재의 근원인 인격적 존재에 대한 자기 항복적 신뢰이다.”
믿음은 단순히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이다. 희망이나 기대의 근거가 그 사건들의 자연적 과정에서 보이지 않아도 그렇다. 아브람의 믿음은 그런 것이었다.
3년 된 소, 염소, 양을 각각 반으로 갈라서 마주 보게 놓았다. 비둘기는 가르지 않았다. 제물이라면 제단 위에 올려서 태웠을 것이다. 이것은 언약식에 쓰는 제물이었으므로 마주 보게 하여 두었다(10).
“해가 기울 때 아브람이 깊은 잠에 빠졌다. 큰 어둠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했다(12).” 하나님은 잠에 빠진 아브람의 꿈 속에 말씀하셨다. 아브람의 자손들이 이방 땅에서 400년 동안 나그네로 살면서 억압받고 종노릇 할 것을 말씀하셨다(15:13-16).
약 사 백 년 후에 그 나라를 심판하고 그의 자손들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을 말씀하셨다(14). 아브람은 하나님이 주신 수를 다 누리고 평안히 조상들에게 돌아갈 것을 말씀하셨다(15).
아브람 자손은 사 세대 만에 즉, 사 백 년 후에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을 말씀하셨다. 아모리 족속 즉 가나안 족속의 죄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16). 하나님의 심판은 때가 찰 때 이루어진다.
예레미야 34:18에서 언약의 저주를 말한다. “내가 언약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이 짐승처럼 나를 만드실지라.” 이 경우는 백성이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갔다.
애굽 430년 노예 생활에서 건져주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스라엘은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은혜를 잊고 불순종 했다.
자기 히브리 동족 중에 가난한 자들이 빚을 못 갚아서 자신이나 자녀들이 히브리 동족의 노예가 되는 일이 있었다. 하나님은 6년 동안은 종살이시키고 칠 년째에 자유인으로 풀어주라고 하셨다. 그러나 가진 자들, 힘있는 자들이 칠년째에 풀어주었다가 다시 잡아다가 노예로 삼는 불의한 일이 있었다(예레미야 34).
하나님은 칼과 기근과 염병을 일으켜서 그의 앞에 언약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유다)을 심판하셨다. 쪼개진 짐승처럼 그들이 죽거나 망하고 포로가 되게 하셨다(예레미야 34).
오늘 본문 17절에, 해가 지고 아주 어두워지니 연기 나는 가마가 나타나고 불타는 횃불이 그 쪼개져 마주 보게 놓인 소, 양, 염소 사체들 사이로 지나갔다(15:17).
그러나 오늘 본문에 쪼개진 짐승 사이로 아브람이 지나가지 않았다. 지나간 분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 자신이 그 저주를 감당하신다는 의미이다. 쪼개진 짐승은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 곧 쪼개진 짐승은 교회의 성도를 의미한다. 쪼개진 짐승들을 덮치려 한 맹금류는 불결한 나라들, 이방 나라들 혹은 애굽을 의미한다(15:11).
쪼개진 짐승 즉 이스라엘 사이로 하나님이 지나가셨다. 죄로 인하여 죽은 자들인 우리는 쪼개져 생명이 없는 짐승과 같다. 그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함께 하셨다.
쪼개진 생명없는 짐승과 같은 우리를 위해, 주님 예수 그리스도기 오시고 십자가에 대속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신 것이다.
아브람이 쪼개진 짐승을 덮치지 못하도록 몰아내 막아낸 것은 아브람이 자기 자손들을 방어하여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아브람은 175세에 죽었다(창 25:7).
죽은 아브람이 어떻게 자기 자손을 보호하는가?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맺었으므로 그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아브람을 생각하여 그 자손을 보호하시는 것이다.
출애굽기 2:23-25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했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유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킬 수 없었다.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언약 백성, 이스라엘, 택한 백성, 교회의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 그분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시고 치유하셨다.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대속 제물이 되셨다.
11월 19일 추수 감사 주일에 거행할 성찬식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그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이신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그 빵과 포도주를 통해 증거하신다. 성찬 참여자들에게 영적인 복이 흘러가게 하신다.
영혼이 잘되어야 모든 것이 잘 되고 강건해 진다(요한 3서 1:2).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 자손들이 말씀과 기도 속에 날마다 경건의 훈련과 연습을 통하여 영혼이 잘되고 모든 것이 잘되고 강건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