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2018. 1. 19.
아내와 함께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몰 영화관에서 '1987' 영화를 보았다.
내가 일흔 살 노인이라서 그럴까? 1987년 당시의 기억이 가물거려서 영화를 보다가는 더러는 눈을 감았다.
사실과 다르다는 느낌이 이따금 들었기에.
오래 전 아내가 '1987'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했을 때에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영화는 허구일 뿐, 거짓이라고 보았기에 그런데도 어제는 내가 자청해서 영화를 보러 가자고 서둘렀다.
문학카페에 '1987' 영화에 대한 개인 소감이 올라왔기에 나도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영화가 다 끝나고 관람객들이 다 빠져나갔어도 나는 끝나버린 영화를 계속 지켜보았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영화를 만든 모든 사람의 이름을 끝까지 다 읽어 주는 게 예의이다' 아내한테 말하고는 자막이 마지막으로 사라질 때까지 극장 안에 남아 있었다.
집에 돌아온 뒤 영화 내용을 떠올렸어도 무엇인지가 자꾸만 헷갈린다.
역사사실과 허위의 극중 내용이 헷갈리기에...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인터넷으로 검색을 계속한다.
영화는 1987년 1월 박종철 사건, 6월 이한열 사건을 함께 엮어서 사실인 양 했다.
핵심은 맞았으나 더러는 허구였다.
서울 용산구 갈월동 소재에 있는 남영동치안본부 대공분실(對共分室) 5층 수사실에서 일어난 사건, 공안처장 박처원 등 극히 일부한테만 책임이 있는 양 스토리를 전개했다. 상부기관인 치안본부장(강민창), 내무부장관(김종호), 안부기부장 장세동, 안기부 이해구차장 등은 거의 언급이 없었다.
그럼에도 일개 하수인에 불과한 박처원을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몰아간 것은 너무 지나쳤다.
특히 고문기술자인 이근안도 슬쩍 비켜 나갔다.
전국에 대공분실이 얼마나 더 있겠고.
본질은 치안본부장, 내무부장관, 안기부, 청와대에 있는데도 하급기관인 남영동 대공분실에 포커스를 맞췄다.
당시 내무부장관은 김종호(1986. 8. 26 ~1987. 1. 21.).
'어? 이 분 처가집 사람 아냐?' 어제 영화를 같이 본 아내한테 물었더니만 나는 '잘 몰라요'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김종호 장관을 검색했더니 전남 광양군 출신이다. 군인 출신이고 국방부 군수차관보도 역임하고....
어? 이상하다? 이분은 건설부장관인데...
앗차, 내무부장관이 아니었네! 하는 의문이 들어서 내무부장관을 검색하니 똑같은 이름이 떴다. 그는 충북 괴산 출신이다. 사진을 보니 어렴픗이 기억이 난다. 30년 전의 얼굴이다.
숨을 길게 내쉰 뒤에 아내한테 얼른 말했다.
'1987년 1월 박종철 사건 당시에 재임했던 내무부장관은 다른 사람이네. 월남전 참전했던 김종호 장군은 내무부장관이 아녀.'
그제서야 전남 광양출신의 아내의 얼굴빚이 펴지면서 제자리에 돌아왔다.
나는 1970년대 말 서울 용산구에서 근무했다.
직장 근처인 용산역 부근의 갈월동 남영동 위치를 어느 정도껏 안다. 검은 빌딩.... 그게 그렇게 악명 높게 유명세를 탈 줄은....
영화로 돌아가자.
박종철을 욕조 물에 강제로 고개를 물러서 물 먹이고, 욕조 턱에 목이 눌려서 질식사시켰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이름이 영화에서는 부각된는지 안 되었는지 나는 기억이 안 났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고문기술자 이근안(1938년생)은 경찰 순경으로 시작해서 공안부장 박처원(이 사람도 이북사람, 가족이 몰살 당하자 17살로 남하하여 순경으로 시작해서 대공업무에 두각을 나타낸다, 계급은 치안감)의 심복 부하가 된다.
박처원은 박종철 사건을 은폐하려고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희대의 명언을 창조했다.
박치안감은 징역1년 집유 2년으로 교도소에 가지 않고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고 한다(미확인).
이근안은 1988년 퇴직하여 숨어 지내다가 1999년 자수하여 대법원 판결을 거쳐 7년간 복역했다고 한다.
위 박치안감이 도피자금을 대주었다고 한다.
영화 속의 인물들이 역사 사실과 다르게 변질되었다. 일부는 맞는 듯해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중앙일보 기자(신성호)가 이홍규 과장 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엿들어서 특보를 냈으며. 영화 속에서는 대공요원들이 신문사에 쳐들어와서 마구 검거하는 양했는데 사실이 아닌 가짜팩트란다. 허구란다.
여자대학생 '연희'도 전혀 가공의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는 엄청난 역활이다. 허구, 가짜다.
이런 점이 영화에서는 재미를 일으키겠으나 진실성을 떨어진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는 말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1987년. 나한테는 벌써 31년 전의 일이다.
기억이 가물거린다. 당시에 내가 쓴 일기장을 꺼내서 확인하지 않는 한 당시의 일이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하고는 무관한 생활이었기에. 봉양해야 할 어머니, 아내와 자식이 넷이나 있는 소시민이었다. 적극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할 계기는 아니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
1979년 12월 12일.
서울 용산지역에 총을 난사하며 어떤 건물을 장악했던 일단의 군사반란이 발생했다.
한 사무실에서 숨어서 한밤중에 떨면서 그 긴 밤을 공포스럽게 보냈던 민간인 나.
아래 사람들은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출세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 중정부장 서리, 대장전역, 대통령
노태우 9사단장 - 수경사령관, 보안사령관, 대장전역, 대통령
허화평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 청와대 정무 제1수석 비서관, 국회의원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 - 대통령 사정 수석 비서관, 국회의원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 - 대통령 경호실장, 중장전역, 국가안전기획부장
이학봉 보안사 대공처장 - 대통령 민정 수석 비서관, 국회의원
정호용 50사단장 - 특전사령관, 육참총장, 대장전역, 내무장관, 국방장관, 국회의원
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 - 대장전역, 중정부장, 국회의원
황영시 1군단장 - 육참총장, 대장전역, 감사원장
차규헌 수도군단장 - 대장전역, 교통부장관
박희도 1공수여단장 - 특전사령관, 육참총장, 대장전역, 토지개발공사 이사장
김진영 수경사 33경비단장 - 수경사령관, 육참총장, 대장전역
최세창 3공수여단장 - 수경사령관, 합참의장, 대장전역
박준병 20사단장 - 보안사령관, 대장전역, 국회의원
정기오 5공수 여단장 - 중장전역, 총무처장관
정동호 청와대 경호실장 - 도로공사 사장, 국회의원
고명승 경호실 작전담당관 - 수경사령관, 보안사령관, 대장전역
백운택-육사 11기 준장 71방위사단장(대통령의 참모총장 연행 재가 서명 주도)
장기오-육사 12기 준장 5공수여단장(반란 주요임무 종사)
이상규-육사 13기 준장 1기갑여단장(1기갑여단 불법출동)
박희모-갑종 소장 30사단장(1공수여단의 행주대교 통과 방조 및 90연대 병력 불법출동)
권정달-육사 14기 대령 보안사 정보처장(보안사에서 보안감찰 주도)
정도영-육사 14기 대령 보안사 보안처장(보안사에서 보안감찰 주도)
우경윤-육사 13기 대령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육참총장 체포 주도)
조홍-육사 13기 대령 수경사 헌병단장(수도경비사령관 체포 지시)
신윤희-육사 18기 대령 수경사 헌병부단장(수도경비사령관 체포 주도 및 수경사 점령)
박종규-육사 24기 중령 3공수여단 15대대장(특전사령관 체포 및 비서실장 사살)
구창회-육사 17기 대령 9사단 참모장(9사단 30연대 병력 출동 지시)
이 외에도 이름이 무척이나 많이 뜨겠다. 인터넷으로 확인하면...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1979. 12.12군사구테타에 관한 내용이 떴기에 아랫처럼 복사했다.
1공수는 국방부까지 쳐들어 간다.
국방부를 지키던 군인들은 기관초총을쏘며 방어를 한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요.
아직은 멀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