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달 18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발표한 이후, 러시아(혹은 우크라이나) 주둔 북한군의 동향에 관한 보도는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다. 대개는 미국 등 서방 외신을 인용하고, 일부는 우크라이나 고위 인사의 발언이나 언론 매체를, 또 일부는 텔레그램 등 SNS를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들이다.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 언론 매체가 포착된 정보를 일일이 '팩트 체크'(사실 확인)한 뒤 내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전시에 횡행하는 프로파간다(선전)와 팩트(진실)을 구분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대개는 촌각을 다투는, 혹은 이슈(의제)를 선점하고자 하는 언론 속성상, 일단 질러놓기(기사를 쓰기) 마련이다. 가짜뉴스 혹은 허위정보가 범람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경험칙으로도 '전쟁 저널리즘'이 실제로 작동할 여건은 안된다고 본다.
하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껍데기(가짜뉴스)는 벗겨져 나가고 속살(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우리가 꼭 그때까지 기다려야만 할까? 기존의 흐름과 상식선에서 팩트 체크가 가능한 것들은 없을까?
전쟁의 한 당사자가 가짜뉴스를 만드는 것은,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아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다. 아군 진영에서는 모두가 주목할 만한 '전쟁 영웅'을 만들어 띄우고, 적진에서는 고위 지휘관을 비롯해 병력들이 최대한 많이 죽거나 다쳤다고 알리는 게 목표다. 이같은 의도가 반영된 프로파간다성 정보를 주요 언론 매체가 받아 쓰는 순간, 알게 모르게 가짜뉴스를 퍼뜨린 게 된다.
◇전시 보도에 팩트 체크가 필요한 이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측 진영 논리에 갇힌 우리는 전쟁 1,000일 동안 숱하게 많은 서방 외신발(發) 가짜뉴스를 진짜로 믿곤 했다. 나중에 허위로 밝혀지더라도 이미 지나간 '과거'였다.
대표적인 예로 두가지만 든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후, 국내외 언론에서는 '키예프(키이우)의 유령'으로 명명된 전설적인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가 주목을 끌었다. 홀로 적(러시아군) 전투기 10여대를 격추시켰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기사였고, 결국은 우크라이나군이 만든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전시 '영웅 만들기'의 대표적인 프로파간다다.
국내외 언론을 달궜던 '키예프의 유령'은 조작으로 드러났다/사진출처:유튜브
또 전쟁이 한달쯤 지난 뒤, 장성급을 포함한 러시아군 고위 지휘관들의 전사 소식이 쏟아졌다. 일부 언론 매체는 벌써 9번째, 혹은 11번째 러시아군 장성 사망이라고 기록했다. 실제로 전장에서 죽은 지휘관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허위정보였다.
그 즈음(3월 말), 우크라이나군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나온 안드레이 모르드비쵸프 러시아군 장성(중장)의 제거 주장. 모르드비쵸프 장군은 당시 가장 격렬한 격전지였던 도네츠크주(州) 항구도시 '마리우폴' 공격을 일선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상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성향의 '아조프(아조우) 연대로, 러시아군의 포위망 속에 완전히 갇힌 상태였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아조프 연대'에게 결사항전을 독려하던 그때, 우크라이나군의 SNS에는 모르드비쵸프 장군을 붉은 색깔로 X자로 그은(제거한) 사진이 올라왔다. 국내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다. 그리고 잊혀졌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우리식으로는 합참) SNS에 올라온 모르드비쵸프 장군의 모습(위)와 이를 인용 보도한 국내 언론매체/캡처
시간이 2년 가까이 흐른 2024년 2월, 도네츠크주 주도인 도네츠크시(市)를 코앞에서 압박해온 우크라이나군 요새인 아브데예프카(아우디우카)가 러시아군에 의해 함락됐는데, 이 작전을 이끈 이가 바로 모르드비쵸프 중장(중부군단 사령관)이었다. 마리우폴 공격에서 제거됐다는 그가 다시 살아나 아브데예프카까지 함락시킨 것이다. 그는 '마리우폴' 전투에서 우크라이나군 2천여명을, 아브데예프카에서 200여명을 포로로 잡았다.
더욱 웃기는 것은, 모르드비쵸프 중장의 신상에 관한 우크라이나 측의 엇갈린 정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은 2022년 9월 모르드비쵸프 장군을 '마리우폴'의 아조프스탈(아조우스탈) 공장에 대한 공격 명령을 내린 장본인으로 지목했다. 이미 제거된 적 최고 지휘관을 6개월 뒤에 아조프스탈 공장 진압 책임자로 규탄한 것도 모자라서, 서방 언론은 얼마 뒤에 그를 러시아 '중앙군단' 사령관으로 임명됐다고 보도했다. 그가 러시아군 중앙군관구 사령관으로 정식으로 발령난 것은 이듬해(2023년) 2월이었다.
◇ 돌고 도는 가짜 뉴스 유형들은?
이런 류의 뉴스는 돌고 도는 모양이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고리로 한국으로부터 살상용 무기 도입을 모색해온 우크라이나 측은 북한군이 참전중 사망했거나, 자신들의 폭격으로 북한군 장성급 지휘관이 부상했다고 주장하는 등 적극적으로 기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모르드비쵸프 장군의 제거 주장이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 측이 이를 확인할 리는 없고, 주장만 난무한다. 러시아는 물론, 북한은 러시아 파병마저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서방 당국자들을 인용, "러시아 쿠르스크주(州)를 겨냥한 우크리아나의 전날(20일)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 공격으로 북한군 고위 장성(A senior North Korean general)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뒤이어 23일에는 미국 군사전문매체 글로벌 디펜스코퍼레이션이 ‘스톰 섀도’ 공격으로 북한군 500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물론, 이 매체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스톰 섀도' 미사일이 아무리 정교하다고 해도, 500명이 죽는 판에 부상자가 3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부상자가 사망자보다 더 많은 게 통상의 폭발사건이다.
또 우크라이나 매체 'RBC-우크라이나' 등은 전쟁 관련 첩보를 제공하는 텔레그램 채널 '도시에 쉬삐오나'(Досье Шпиона, 스피아 문서라는 뜻, 이 텔레그램은 'Top Secret'의 문서 사진을 문패로 쓰고 있다/편집자)를 인용해 당시 스톰 섀도 공격으로 18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다쳤으며, 부상자 중에는 북한군 3명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북한군 부상자는 남성 2명과 여성 1명으로, 이 여성은 의무병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북한군 부상 소식을 전한 텔레그램 '도시에 쉬삐오나'/캡처
텔레그램 '도시에 쉬삐오나'는 특별 서비스(정보기관)의 직원이 만든 것이라며 '나는 여러분과 함께 있고 여러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포스팅을 보면 친우크라이나 채널로 분류된다.
국내 일부 매체는 'RBC-우크라이나'를 인용하면서 북한군 부상자를 남성장교 2명과 여성 1명으로 썼다. 원문을 보면, '부상자에는 북한군인 3명이 포함돼 있다(중상을 입은 2명의 남성과 경미한 부상을 입은 여성 의료병).' Среди раненых числятся трое военнослужащих КНДР (двое мужчин с тяжелыми ранениями и одна женщина-медик с легким)으로 나와 있는데, 왜 굳이 북한군 장교로 확대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서방 외신들이 '스톰 섀도'가 겨냥한 타격 목표물은 북한군 고위 장성과 러시아군 지휘관들이 은신해 있는 지하의 지휘 통제실일 가능성을 제기했기 때문일까?
맨 아래쪽 5줄이 북한군 부상을 전하는 대목이다/캡처
◇ 러시아, 북한군의 진짜 피해는?
스톰 섀도 공격을 받은 러시아 측의 피해는 정말 어느 정도였을까?
푸틴 대통령은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오레슈니크'로 우크라이나 드네프르 지역을 타격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응조치임을 분명히하면서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9일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 6기가, 20일에는 '스톰 섀도' 미사일이 각각 브랸스크주(州)와 쿠르스크주에 있는 러시아의 군사 표적을 공격했다. 브랸스크주 탄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쿠르스크에서는 북부군관구의 지휘소 하나가 공격을 받아 시설 경비원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었으나, 군인들은 다치지 않았다."
북한군의 사상자 관련 보도와 푸틴 대통령 발언의 앞뒤 맥락을 맞춰보면, '스톰 섀도'가 러시아군 지휘소 하나를 때렸고,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온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 군인들은 다치지 않고 시설 경비원이 사망하고 부상했다고 하니, 시설 경비원들을 북한군 병사들로 치환하면 '팩트'는 일단 맞다. 그렇다면 북한군이 시설 경비를 담당하고 있었을까? 파병된 북한군이 후방에서 시설을 경비하고,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공병부대원들이라면, 이 추측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국정원)도 24일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중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구체적 첩보’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러시아측으로부터 보급품을 배급받는 장면/텔레그램 캡처
하지만, 지금까지 외신 보도로만 보면, 북한군은 특수부대를 포함해 직접 전쟁에 참전해 '총알받이'가 될 보병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국정원도 지난 20일에는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군이 최전선 전투에 참여하기 시작한 만큼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사상자 보도와 관련해) 사실관계가 상충하는 정보가 많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고 당시 여야 정보위 간사가 전한 바 있다. 시설 경비와 전쟁 참여, 그리고 사상자 발생 간에 어쩐지 아귀가 안맞는 느낌이다.
◇북한군 파병은 공병부대가 주?
오히려 미 CNN이 22일 보도한 북한군의 마리우폴, 하르코프(하르키우) 투입설이 전체 흐름과 아귀가 맞는 것 같다.
CNN은 우크라이나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도네츠크주) 마리우폴에 북한군 '기술 자문들'(technical advisers)이 도착했다"면서 그러나 "방문 목적은 불분명하며, 모두 러시아 군복을 착용했다"고 보도했다. 또 러시아군 병력과는 다른 곳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했다.
마리우폴은, 앞서 설명한 대로 개전 직후 최대 격전지로, 러시아군은 2022년 5월 점령한 뒤 2년 6개월 이상 실효지배를 굳혀온 곳이다. 스트라나.ua는 개전 1주년(2023년 2월) 특집 기사에서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점령지 재건작업의 '상징 도시'로 선정해 복구 작업을 펴왔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도 그해 3월 마리우폴을 찾아 도시 복구작업을 독려한 바 있다.
2023년 5월 마리우폴에 모습을 드러낸 카페 모습/틱톡 영상 캡처
마리우폴의 문제는 복구 인력의 부족이다. 러시아 정부는 특수 군사작전에 참전하는 계약 군인들 못지 않는 조건으로 (마리우폴 등) 점령지 복구 작업에 투입될 기술 인력을 구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파병 북한군 공병부대, 즉 '기술자문'들이 이 곳의 복구작업 상황을 둘러보러왔다면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기술자문'을 북한군이 제공한 KN-23 미사일(우크라이나측 주장)의 운영 지원단으로 해석하면, 최전선에서 100㎞이상 떨어진 곳에 왜 미사일을 배치했지, 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국내 일부 언론은 북한군의 마리우폴 진입을 이 곳에서 100㎞ 이상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하기 위한 전진 배치로 해석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한군은 또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주요 전선 중 한 곳인 하르코프에서도 포착된 것으로 CNN은 보도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CNN에 이 소식을 전한 이는 하르코프 주둔 우크라이나군 대변인 예브게니 로마노프다. 그는 "무선 감청으로 하르코프 지역에 있는 북한군을 포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르코프 군정청은 이를(북한군의 하르코프 진입) 부인하면서 "로마노프 대변인은 자신의 권한 밖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객관적으로는 하르코프 군정청의 주장이 타당하다.
스트라나.ua는 개전 1,000일을 목전에 둔 지난 18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의 '최전선 상황'(Ситуация на фронте) 코너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함락 직전으로 몰린) 쿠라호보에서 그리 멀지 않는 군사요충지 포크로프스크를 거쳐 (러시아군이 이미 진입한) 쿠퍈스크 전선을 방문했다"며 "최근 몇달 만에 이뤄진 최전선 시찰"이라고 보도했다. 쿠라호보, 포크로프스크, 차소프 야르 등은 도네츠크주 격전지이고, 쿠퍈스크는 루간스크주(州)와 가까운 하르코프주 도시다. 북한군이 전선에 투입된다면 하르코프가 아니라 쿠퍈스크로 가야 한다. 하르코프에 북한군이 없다는 군정청의 주장이 합리적인 이유다.
쿠퍈스크도 하르코프주 안에 있는 도시이니, 하르코프에 북한군이 나타났다는 표현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고, 굳이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럴 경우, CNN이 도네츠크주의 도시인 마리우폴과 하르코프를 나란히 지목한 것, 자체가 어색하거나, 형평성이 서로 맞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