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567
■ 2부 장강의 영웅들 (223)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29장 오자서(伍子胥)의 분노 (6)
오자서(伍子胥)는 형 오상(伍尙)을 보내고 나서 즉시 망명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중에 또다시 자기를 잡으러 오는 군사가 영성을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아, 무도한 왕이 어찌 이리도 집요한가?"
오자서는 아내 가씨(賈氏)를 불러 그 동안의 일을 들려준 후 말했다.
"이제 나는 다른 나라로 도망가서 그 나라 군사를 빌려 아버지와 형님의 원수를 갚아야겠소. 내가 그대를 돌볼 수 없게 되었으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가씨(賈氏)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아버지와 형님이 억울하게 떠나시는 것만으로도 대장부의 간장이 끊어질 지경일 터인데, 어느 겨를에 아낙네를 돌본단 말씀입니까?"
"당신은 나의 걱정일랑 하지 마시고 어서 떠나기나 하십시오. 공연히 우물쭈물거리다 붙들리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는 오자서(伍子胥)로서는 그녀를 사지(死地)에 내버려두고 혼자 떠나기가 힘들었다.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자 가씨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실로 들어갔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아무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어쩐 일인가 궁금하여 오자서(伍子胥)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가씨(賈氏)는 목을 매고 자결한 뒤였다.
오자서(伍子胥)는 또 한바탕 통곡을 했다.
"하늘이시여, 저 오자서로 하여금 반드시 이 원한을 풀게 해주십시오."
그는 죽은 아내의 시체를 고이 싸서 매장했다. 소복(素服)으로 갈아입고 어깨에 활을 매었다. 허리춤에는 칼을 차고 당읍(棠邑) 땅을 떠났다.
그가 반나절쯤 걸어 넓은 초원지대에 이르렀을 때였다.
별안간 뒤편에서 요란한 수레 소리가 들려왔다. 오자서(伍子胥)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한 무리의 군사가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초평왕(楚平王)의 명을 받들어 오자서를 잡으로 온 무성흑(武城黑)과 그 군사들이었다. 오자서는 예상했던 터라 침착하게 활을 꺼내들어 무성흑의 병차를 모는 어자(御者)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정확하게 그 어자의 가슴팍에 가서 꽂혔다. 어자는 구슬픈 비명과 함께 병차에서 떨어져 죽었다.
오자서(伍子胥)는 다시 시위를 당기고 무성흑을 향해 외쳤다.
"내가 너를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으나 잠시 목숨을 살려주겠다. 너는 돌아가서 초왕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만일 초(楚)나라의 종묘사직을 온전히 유지하고 싶거든 우리 아버지와 형님을 죽이지 말라고 일러라."
"그렇게 하지 않고 나의 아버지와 형님을 죽인다면 나는 기필코 초(楚)나라를 무찔러 없애고 무도한 왕의 배를 갈라 그 간을 씹어먹으리라!"
화살을 겨눈 채 버티고 서 있는 오자서(伍子胥)의 모습은 흡사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神將)같았다.
무성흑(武城黑)은 감히 달려들 생각을 못 하고 돌아서서 영성으로 돌아갔다. 초평왕에게 오자서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초평왕(楚平王)은 분노했다.
"나의 배를 갈라 간을 씹어먹겠다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비무극(費無極)을 돌아보며 외치듯 명령했다.
"옥에 갇혀 있는 오사(伍奢) 부자를 끌어내어 참하라."
오사와 오상은 시장 거리로 끌려나갔다. 오상(伍尙)이 참수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나온 비무극을 발견하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너는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간신 짓거리로 왕을 홀리고 충신을 죽이는 게냐?"
오사(伍奢)가 오상을 만류했다.
"그럴 필요 없다. 신하란 원래 임금을 위해 죽는 것이 도리이니라. 왕을 현혹케 한 자는 백성들과 후세의 공론이 처단할 것이다. 꾸짖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보다도 네 동생 오자서(伍子胥)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앞으로 초나라 임금과 신하들은 한시도 잠을 편하게 자지 못할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말을 마치자 오사(伍奢)는 오상과 함께 목을 내밀었다.
칼 빛이 허공에서 번뜩였다. 두 개의 목이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선혈이 주변으로 튀었다. 많은 구경꾼들은 오사 부자의 억울한 죽음에 자기네 가족이 처형된 듯 오열을 터뜨렸다.
별안간 하늘이 어두워지고 구슬픈 비풍(悲風)이 불어왔다. 해도 빛을 잃었다.
오사 부자가 처형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초평왕은 비무극에게 물었다.
"오사(伍奢)가 죽을 때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는가?"
"별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다만, 오자서(伍子胥)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초나라 임금과 신하들이 한시도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겠구나, 하고 말했을 뿐입니다."
비무극의 대답에 초평왕은 등골이 오싹했다.
"오자서(伍子胥)가 그토록 용력이 뛰어나단 말인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자를 잡아죽여야 하겠구나."
"그렇습니다. 그가 비록 달아났다고는 하나 아직 국경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전국에 체포령을 내리고 추격군을 보내면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초평왕(楚平王)은 전국 각지에 오자서의 초상과 현상 방문(榜文)을 내걸었다.
- 누구든 간에 오자서(伍子胥)를 잡아오는 자에겐 곡식 5만 섬과 함께 상대부 벼슬을 내리리라. 그러나 오자서를 숨겨주거나 달아나도록 돕는 자가 있다면 그자의 가족까지 모조리 참형에 처하겠다.
그는 모든 길과 관(關)과 강나루와 행인의 왕래가 잦은 지역마다 검문을 철저히 시행하라는 명을 내리고, 여러 나라 제후들에게도 사자를 보내어 오자서가 망명해 올지라도 결코 받아들이지 말라고 손을 써놓았다.
또한 좌사마 심윤술(沈尹戌)을 불러 군사 3천 명을 내주며 말했다.
"무성흑의 말에 의하면 오자서(伍子胥)는 하얀 소복에 하얀 신발을 신고 있다고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자서를 잡아오라."
오사(伍奢)의 말대로 초평왕(楚平王)은 오자서의 시체를 보지 않는 한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