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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4. 지금까지 부대의 임무와 주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음은 지휘체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답) 먼저 최초에 파견된 제1이동외과병원때의 지휘 및 운용체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월남군측에서는 행정지원문제와 관련하여 자기들의 운영상 통제하에 둘 것을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측은 다른 제3국군과 같이 미군의 운영상 통제하에 둘 것을 희망하였습니다. 나는 입원환자와 관련하여 행정상으로는 월남군과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기능적인 면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상급의료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와 지원이 요청되고 후송수단과 긴급시의 대책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미군측의 의견에 동의함으로서 나의 의견대로 미군의 운영상 통제하에 두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보충질문 : 제1이동외과병원의 지휘체제를 결정하는데는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는데 비둘기부대의 지휘체제를 결정할 때는 어떻게 되었는지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통상적인 지휘체제에서는 듣기 힘든 삼자 대표로 구성되는 정책회의 제도는 어떻게 채택되었으며 그 내용은 어던 것인지에 대해서도 좀 말씀해 주십시오.
(답) 임무와 주둔지에 대해서 설명할 때 언급한바 있었습니다 만은 당시의 월남 정세는 참으로 앞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지휘체제를 결정할 때도 회의가 결렬되는 등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선발대장을 사이공에 도착하여 며칠 안돼는 1월13일“웨스트모얼랜드”장군을 방문하였을 때 증파되는 비둘기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주월 미군사지원사령관에게 위임한다는 우리정부의 방침을 전달하였습니다. 그 후 약 1주일이 지난 22일 주둔지후보지를 정찰하고 돌아온 저에게“스틸웰”참모장으로부터 긴요한 문제에 대하여 상의하고 싶다는 전갈이 와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 동안 여러 가지로 연구 검토한 결과 한국군 증파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미군사지원사령관에게 위임하는 문제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나 월남의 정치적 상황으로 보아 이를 표면에 내세울 수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월남군측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자신들이 행사해야 되겠다고 강경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월남을 지원하려온 외국군 부대의 통제권은 당연히 월남군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흔한 말로 자기들의 앞가림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자기들의 작전통제하에 두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니…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미군사지원사령부의 브리핑을 받은 월남의 정세분석과 최근의 월남상황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터인데 지휘체제에 대한 그들의 동향을 듣고 서운함 감마저 들었으나 나는 월남 파병 목적을 되씹어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가 증파되는 한국군을 미군사원조사령부의 작전통제하에 두려고 하는 목적은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함으로서 효율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주월 한국군에 대한 원활한 지원과 불안정한 월남정세 하에서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한국군의 안전에 대하여 미국은 자국군과 같은 책임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대의 명분이 서고 한구군 지휘관의 위상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고 나는“스틸웰”장군에게 이러한 경우를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던가 미군이 비상철수를 해야할 경우 USMAC-V는 한국군의 안전과 비상철수를 보장한다는 비밀각서를 교환할 것. 그리고 작전통제 문제는 한국군지휘관 책임하에 두되 한ㆍ월ㆍ미 삼자간의 정책적인 문제 즉, 부대의 작전지역, 임무(사업계획) 주둔지 등에 대하여는 삼군대표로 구성되는 정책회의 같은 기구를 두어 그곳에서 협의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스틸웰”장군은 잠시 생각한 후 한․미간의 비밀약정 문제는 주월미군사원조사령관의 권한 밖의 일이므로 보다 높은 차원에서 다루어져야할 문제라고 말하면서 나의 제안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정책은 월남에서 철수한다는 문제자체를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밖에 지원 면에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스틸웰”장군은 며칠 후(1월 24일) 합동회의가 개최될 때까지 계속 월남측과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날 상호 교환된 문제를 한 ․ 미간의 비밀사항으로 월남측에는 누설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예정대로 1월24일 최초로 합동회의를 열게 되었습니다.
-제1차 한ㆍ월ㆍ미 합동회의-
한ㆍ월ㆍ미 대표로 구성된 합동회의에서는 그 첫째 의제였던 한국군 증파부대에 대한 임무를 전문위원회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건의 토록 하고 다음 의제였던 한국군의 지휘체제에 관해서 토의하기로 하였습니다. “스틸웰”장군이 먼저“지금부터 3번째 의제인 지휘체제를 토의하자”고 제의하여 본격적인 토의에 들어갔습니다. 스틸웰”장군은“칸”장군과“웨스트모얼랜드”장군 사이에 최소에 합의된 협정문서 내용을 설명하고 난 다음 자신의 견해를 말하였습니다. 월남 주둔 한국군은 한국군 부대장이 지휘하고 작전 통제권은 어느 나라에도 부여하지 않으며 특별한 협약이나 부대위치 그리고 임무 등은 정책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월남 군과의 작전지휘 관계는『협조와 협력의 관계』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월남 측의 작전참모부장“탕”장군은 벌떡 일어나서 이 기회에 월남군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 두겠다고 하면서 다소 상기된 어조로 말을 이었습니다.
「최고 사령부와 군단장 및 한국군간의 명백한 관계를 규정할 것을 건의합니다. 우리는 한국군과의 관계를 매우 신중하게 검토하였습니다. 우리는 미군사원조사령부의 제의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군단장은 한국군부대의 활동지역을 규정지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하 대대장에게 야간수색정찰을 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책임하에 있는 부대에 대해서「협조와 협력의 관계만을 규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스틸웰”장군은「협조와 협력관계에 둔다고 하여서 군단장의 권한을 침범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군단참모나 예하 부대장에게 한국군 또는 미군에게 통보하여 협조하도록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한국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음에는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의 소신을 말하였습니다.「월남의 자유수호를 위한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증파되는 한국군 선발대장으로서 나에게 부여된 임무를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군의 지휘권은 대한민국의 정부가 임명한 주월 한국군원조사단장에게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줄로 압니다.
곧 도착하게 될 한국군공병부대는 파괴된 각종 시설의 피해복구와 건설을 통하여 월남의 평정계획을 지원하게 되어있는 비전투부대입니다. 이 부대는 전투부대와 다르므로 이 부대와 관련되는 임무주둔지 그리고 부대이동 등 운영상의 기본이 되는 모든 문제는 3개국 대표로 구성되는 정책회의와 같은 기구를 설치하고 그 모임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회의에서 한국군의 주둔지와 임무 등 기본문제가 결정되면 한국군은 한국군지휘관에 의해서 지휘 운영되어야 하며 제3국군의 지휘관과는「협조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데 그쳐야 합니다. 한국군을 월남에 파견하는 근본목적은 자유월남을 지원하는데 있으므로 이 기본정신을 살려 활동한다면 한국군이 월남군의 작전통제하에 들어가지 않아도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나의 확고한 견해를 듣고 “탕”장군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한국이 우리나라를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원조해 주는 것이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네 원조를 요청하도록(미국으로부터)설득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진퇴양난에 처한 미국의 입장-
미국측 대표 “스틸웰”장군의 표정이 굳어졌고 월남 대표“뇬”장군의 당황한 표정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나는“탕”장군의 망언을 호되게 추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자제력을 발휘하여 참고 넘겼습니다.“뇬”장군의 눈길은 미안하다는 무언의 표시를 나에게 보내주었고 탕 장군에게는 못마땅하다는 눈총을 주었다. 그는 장내의 긴장된 분위기를 의식하고 잠시 멈칫하다가
「우리는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한계를 설정해야 합니다.『협조와 협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하고 앉았습니다.
이번 회의가 열리기 하루전인 1월 23일에도 월남의 역사적인 도시“후에”시에서 학생들과 불교도들이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으며 일부 데모대가 미문화원 도서관을 습격하여 많은 장서들을 불태우고“후옹”수상을“테일러”대사의 앞잡이라고 몰아치는 인쇄물이 도처에 뿌려졌습니다.
사이공에서도 미대사관앞에서 반미, 반“후옹”구호를 외치며 대대적인 시위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웃지 못할 심각한 정정 속에서도 위기에 처한 우방 자유월남을 지키겠다고 미국과 다른 우방들이 결연한 의지로 피를 흘리면서 생명을 받쳐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한 집단방위의 현장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면서도 한편 신기하기까지 느껴꼈습니다. 이대로 내버려두다면 자유월남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사이공에 주재하는 외교계에서도 한결같이 안타깝게 생각하며 어떤 극적인 전기가 없는 한 지탱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긴박한 상황과 공통의 과제를 눈앞에 놓고 자신들을 도우러 오는 건설과 복구공사를 주로 담당하게될 비 전투부대에 대한 지휘체제를 놓고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내세우며 무례한 발언을 한는 이 젊은 군인의 모습을 과연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 안쓰럽기만 하였습니다. 나는 원래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유월남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저돌적인 언행을 지혜롭게 보아주기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작전통제권』대『협조와 협력』
나는 “탕”장군의 발언에 대해 최대한의 인내심을 가지고 조용하게 말하였습니다.「오늘 우리 증파부대의 작전통제문제가 제기되면서 의견이 대립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 자기 주장만을 내 세울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한국과 월남정부간에 교환된 서한내용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이 서한에는 분명히「평정계획에 입각한 비 전투적 임무를 수행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월남에 국군을 파병하는 것은 월남의 평정계획에 따르는 피해지역 복구와 재건사업 등 비 전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군의 임무는 평화적인 복구와 재건사업에 있으며 이러한 사업에 투입될 월남군을 한국군이 대신 함으로서 베트콩소탕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여 소기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파견부대가 경비병력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체방어를 위한 것이지 공격을 위한 병력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월남의 정세로 보아 전술적 상황이 우려되거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월남군은 우리부대를 보호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평소에 협조체제를 잘 갖추어 놓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하고 끝을 맺었습니다.“스틸웰”장군이 나의 말을 받아서「이 장군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면서 실례를 들어「1군단지역 공군기지에서는 미국과 월남군의 원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탕”장군은「그 지역에는 전지역에 대해 책임을 지고있는 지역사령관이 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스틸웰”장군도「충분히 협조하도록 되어있는 사령부만 있으면 된다」고 응수를 하였습니다.“탕”장군 역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사이공은 이미 평정된 지역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한 지역이라도 100% 평정되엇다고 총이 필요치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고 엉뚱한 강변을 펴고 나왔습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토론을 매듭을 짓도록 하기 위해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지역 사령관이 그 지역내의 안전유지와 책임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3국군과의 적절한 협조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실증을 우리는 월남 전선에서도 많이 그 실례를 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국군 증파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신상철”대사를 국회에 출석시켜 현재 월남정세의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 우리에게 가장 정절한 단어는『협조와 협력』이라는 말 이외에는 할말이 없다”고 말함으로서 한구군을 월남의 작전통제하에 둘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하였습니다.
-합의점 찾지 못하고 사실상 결렬-
“스틸웰”장군이 나의 발언에 동조하면서“우리 의견이 상당히 접근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작전 관계는 군단장과 제3국군부대간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사령관과 부대간의 문제로 규정되어 있다.”고 미ㆍ월간 교환된 각서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탕 장군은 다시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탕”장군은 다시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지금까지 우리가 체험한 경험으로 보아 단순하게『협조와 협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말하자 미측 작전참모“디퓨이”장군이 반박하고 나왔습니다.“현재 월남의 포병, 보병부대와 미군 헬리콥터부대는 상호간에 아무런 지휘계통도 없지만 협조가 원만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꼬집어 말했으며“스틸웰”장군이 그 뒤를 이어 따지듯이 말했습니다.
“귀하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긴급상황에 처했을 때의 이야기만 하는데 우리는 그럴 경우에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부대라는 규정만 내려지면 해결될 문제를 가지고 새삼스럽게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는 구절을 구태여 삽입할 필요가 있는가”고 따졌습니다.
이에 대해서“탕”장군은 끝내 양보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우리의 관심사는 바로『작전통제권의 행사』이며 그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스틸웰”장군도 더 이상 설득할 생각을 포기한 듯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당신네 주장이 오직 그것뿐이라면 우리로서도 분명히 답을 주어야 될 것 같소. 그 제의는 수락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해 두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탕”장군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우리보고 어떤 일정지역을 뚝 떼어 한국 친구에게 주고“당신은 우리를 도우러 왔으니까 이것을 가지고 마음대로 하시오”하고 넘겨주라는 말인가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은 우리의 영토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엉뚱한 망언을 또 꺼냈습니다. 이것은 바로 월남사람들의 가슴속 깊이 깔려있는 소위 피해의식에서 나온 말인지 모를 일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병적인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 이었습니다.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또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대표는 내가 이 자리에 협상하러 온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나는 양국간의 합의사항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파견된 선발대장입니다. 우리 증파부대는 전투를 하고 어떤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서 파견되는 것이 아니므로 월남의 어느 한 구석의 땅도 우리가 점령하고 다스릴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월남을 지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 또한, 비 전투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견된 한국군부대를 전형적인 전투부대의 상황으로 끌어 드리려한다면 대단히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둔하는 곳과 작업지역에 대한 일반적인 경계책임은 월남군에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현재상황아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조정신입니다. 서로 믿고 협조하는 정신 없이는 아무런 좋은 제도를 앞세워도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겠습니다. 우리는 협조와 협력 이외의 체제는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나의 말을 의식해서 인지 “탕”장군의 말씨가 좀 부드러워 졌습니다.
“우리는 한국군의 파병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모두 군인이기에 정치적인 면을 떠나서 순수한 군사적인 각도에서 검토해 봅시다.
나도 미국에 가서 군사학을 배우고 돌아왔으며 협조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월남과 같은 상황 아래서 협조만 가지고는 사태 해결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틸웰”장군이 다시 그의 말을 받았습니다.
“월남군 지역사령관에게 관할지역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한국군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군단장이 그 책임을 어떻게 실행하느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군단장은 대게의 경우, 예하 부대장이나 참모로 하여금 대행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는 한국군 주둔지역의 성장(현역군인)이나 면장과 협조하게 하면 어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절충시키려 하였으나 월남측에서는 당시의 실권자인“캉”장군과 상의해보기 전에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다음 회의 날짜도 정하지 못하고 사실상 결렬상태가 되고 말았다.
-국방부 장관에게 회의 진행상황 보고-
합동회의를 마치고 나는 합참본부장 경유 국방부장관 앞으로 회의내용을 전문으로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본국으로부터「증파부대를 미군의 작전통제하에 두도록 협의하라」고 훈령이 왔습니다. 나는 현지사정으로 보아 월남측에서는 절대 수락할 수 없는 조건이며 이를 굳이 관철시키려고 한다면 3자 대표 회의조차 성립될 수 없으며 월남군측의 강력한 주장으로 미군측도 이 문제는 포기하고 있는 상태임. 현지사정으로 보아 선발대장으로서는 이 이상의 조치를 취할 수 없으므로 선발대장 이상의 수준에서 정책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라고 회신하였습니다. 그후 본국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본국에서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최대한으로 보완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애담스 소장 한국측의 양보를 요청-
한ㆍ월ㆍ미 합동회의가 작전통제 문제로 교착상태에 들어가자 미군측에서는 매우 당황하여“테일러”대사가“구엔 칸”장군을 직접 방문하여 월남측의 태도를 완화시켜 주도록 건의하였고 미군사원조사령부측에서도 참모회의를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하는 등 노력하고 있었으나 사태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했습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월 26일 미군사원조사령부 기획참모“애담스”소장이 단독면담을 요청해 왔다. 그의 집무실로 찾아간 나에게 한국측의 양보를 요청하는 진지한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 이유로 논쟁의 초점이 된 한국군의 지휘체제에 대해서 월남측의 태도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있으며 23일과 25일에 일어났던 반정부 반미 데모는 두 나라의 관계를 더욱 거북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시의 월남 사정을 종합해 볼 때 한국군을 원남군의 작전통제하에 둘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미군에게도 한국군의 입장을 분명하게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애담스”소장에게 증파되는 한국군을 어떠한 경우에도 월남군의 작전통제하에 둘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미국이 이에 대한 역할을 다해줄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참모장 스틸웰 장군과 지휘체제 합의-
“애담스”장군과 만난 후에 미국측 수석대표인 미군사원조사령부 참모장 “스틸웰”소장을 그의 요청으로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미 태평양지구사령부에서 제3국군의 지휘, 통제, 협조에 관한 지침이 왔다고 하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3국군의 지휘, 통제 및 협조 1)월남주둔 제3국군의 지휘권은 해당 정부에서 임명한 군지휘관에게 있다. 2)월남주둔 제3국군의 각 구성부대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보장하기 위하여 해당 제3국군을 위한 군사정책회의를 개설한다. 이 정책회의는 월남군 총 참모장을 의장으로 하고 미군사원조사령부 참모장, 해당 제3국군지휘관으로 구성되며 회의의 기본임무는 제3국군 운영의 기본 개념을 발전시키고 이를 규정하는데 있다.고 되어있었습니다.
“스틸웰”장군이 제시해준 미 태평양지구사령부방침은 지난 1월 12일 제1차 한ㆍ월ㆍ미군 합동회의 참석에 앞서 “스틸웰”장군과 만나 내가 제안했던 한ㆍ월ㆍ미 대표 3자로 구성한 정책회의 제도를 구체화시킨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전에 있었던“애담스”장군의 제의와는 다르나 이 방안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가장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군부대가 월남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한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필요할 때에는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안에 찬성하였습니다.
“스틸웰”장군은 이 합의 안을 가지고 월남측과 의견을 조정해 보겠다고 하였으며 나는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그를 격려하였습니다. 이날 우리 국회에서는 비 전투부대의 월남 증파안이 125표 중 可가 106표 否가 11표 棄權 8표로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설득 당한 월남 수석대표 뇬 장군-
1월 10일에 사이공에 도착한 이래 우리 선발대는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미군사원조사령부와 월남군총사령부를 번갈아 다니며 한국군 증파부대와 관련된 제반문제를 협의하고 지원 및 협조 체제를 확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증파부대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대의 주둔지, 임무 그리고 지휘체제만은 각국대표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회의를 거듭하였으나 주둔지역과 일반적인 업무만을 대체로 합의하였을 뿐, 지휘체제는 1월 27일 현재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미군측에서는 교착상태에 있는 지휘체제 문제를“테일러”대사가“캉”장군을 만나 해결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정세와 분위기로 보아“테일러”대사가 그 문제로“칸”수상과 만나자고 할 처지가 못되었으므로“존슨”부대사가 그 역할을 대신해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나는 작전을 바꾸어 공식회의가 아니라 개별접촉으로 이를 풀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월남측 수석대표“뇬”장군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구면인 월남군총사령부 소속장교를 통하여 나의 뜻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1월 28일 아침 나는 일찍“뇬”장군을 그의 사무실에서 극비리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월남군부의 실력자들은 미군과의 미묘한 분위기로 인해 자리에 없다는 핑계로 그쪽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기피해 왔으나 나의 면담요청에 응해준 것은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뇬”장군에게 우리 한국군의 입장을 조용히 이야기하려고 왔습니다.” 이렇게 전제하고 나는 우리측의 입장을 설명하였습니다.
「이번에 증파되는 한국군은 피해복구와 재건사업을 주로 하게 되는 비 전투부대이므로 우리는 월남군 뿐만 아니라 미군의 작전통제하에 들어가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임무의 성격상 월남, 한국, 미국대표들로 구성된 정책회의 같은 기구를 두어 중요문제를 협의하고 방침을 결정하여 그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휘체제에 대한 한국측의 입장을 나는 분명하게“뇬”장군에게 말하고「한국과 월남 두 나라는 다같이 불행한 과거역사를 지니고 있을뿐 아니라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비극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해방이라는 미명아래 국토를 적화시켜 공산독재국가로 만들려는 음모를 분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공동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 월남이 처해있는 입장을 이해하고 도우러 왔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 여러 나라도 공산침략을 저지하고 자유월남을 지키기 위하여 월남에 파견되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나라마다 각기 국내사정이 있습니다”
월남정부는 이와 같은 실정을 감안하여 대국적인 견지에서 참전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호관계를 돈독하게 하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진정한 우정으로 그를 설득하였습니다.」이러한 나의 설득에 거무스레하고 무표정한 뇬 장군의 얼굴에 차츰 화색이 도는 것을 알아차릴수 있었습니다.
“이 장군의 말씀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캉”장군에게 건의하여 그 방향으로 마무리 지어 보겠습니다.”
“뇬”장군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나의 설득력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비슷한 처지에 있는 두 나라의 현실을 상기시킴으로써 감정적으로 얼어 붙었던 그의 마음이 녹아 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뇬”장군을 만나고 돌아와 약속대로 비밀을 지키고 추이를 지켜보았습니다. 며칠 후 원남 측이 양보하여 이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되었습니다.
-군사실무 협정체결-
1965년 1월 10일 사이공에 선발대가 도착한 이후 수차례에 걸쳐 당초에 예정을 변경하면서 증파부대에 대한 제반협의를 마치고 증파부대의 임무, 작전지역, 지휘체제 등을 비롯하여 각종지원 및 협조체제를 협의하고 그 내용을 문서화한 군사실무협정을 2월 7일에는 한ㆍ월간에 2월 8일에는 한․미간에 체결함으로서 증파되는 부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발대장인 나에게는 미국과의 사이에 해결해야할 중대한 문제가 또 하나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은 증파부대에 대한 만일의 사태를 대한 대책이었습니다. 지난 1월 22일 작전통제권문제로 참모장“스틸웰”장군과 요담 하였을 때 이야기했던 미군과의 작전통제에 관한 비밀협정을 체결해야 되겠다는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문제였습니다.
2월 8일 한ㆍ미군사협정을 체결한 다음 별도로 “스틸웰”장군을 만나 한ㆍ미간의 일반협정 외에 예측할 수 없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지난번에 거론했던 비밀협정을 별도로 체결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상당히 난처해했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주월미군사지원사령관에게는 그러한 비밀협정을 체결할 권한이 없다고 완곡하게 설명하면서 만약의 경우라도 미군이 철수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군을 해외에 파견한 이상 그 책임은 미국이 책임져야한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한국군이 미군의 작전통제하에 들어있다면 이런 문제가 일어날 필요도 없겠지만 현재상황으로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입니다.
월남의 정치적, 군사적 상황의 변동으로 긴급한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주월미군사원조사령관은 주월한국군을 미군과 동등하게 보호하고 철수 등의 비상사태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미군과 동일한 우선 순위에 의하여 철수 되도록 보장하는 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스틸웰”장군도 나의 끈질긴 요구에 동의하고 나서「이 사실이 제3국에 누설되면 절대로 안됩니다.」는 조건부로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이 문서는 1급비밀로 분류되어있다.
나는 귀국 후 격동하는 월남정세와 군사실무협정의 내용을 상사에게 보고하고, 한․미간에 체결된 비밀협정은 제한된 상사에게만 보고하였으며 그 문서는 합참의장이 직접 보관하였습니다. 나의 보고를 받은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은 부대임무 특히, 주둔지와 지휘체제에 대한 나의 조치에 대하여 만족하게 생각하였으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한․미간의 비상조치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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