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년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03년이나 04년이 뭐가 다를 게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런 말은 무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젊은이들은 해가 바뀌는 게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나이가 든 사람은 하루하루가 새로운 것이다. 같은 시간이라도 그 느낌이 다른 것이다. 나이에 따라 시간 개념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세월의 느낌을 10대는10Km, 20대는20Km, 30대는30Km, 40대는40Km, 50대는50Km의 속도를 느낀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속도를 빠르게 느끼는 것이다.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는 몰라도 정확한 표현이다.
해도 바뀌고 또 휴일이고 해서 새로운 마음을 위해 오늘도 아내와 무학산을 오른다. 오늘은 지난봄에 사 두었던 새 등산화를 신었다. 아내가 백화점에서 8만원씩이나 주고 사온 신발이다. 너무 비싼 신발이라 야단을 치고 그냥 두었던 것이다. 그동안 신던 등산화는 15년 전 거리에서 산 1만 원짜리 싸구려 신발이다. 나는 1만원짜리 싸구려신발을 15년이나 신었다. 산에 적게 다닌게 결코 아니다. 아내는 내가 입은 등산장비가 신발에서부터 모자까지 1백50만원이나 들였다는 것이다. 깜짝 놀랄일이다. 자신은 내 헌 체육복을 입으면서 나에게는 고급품만 입히려한다. 사람이 작아서 맞는 옷이 있나 또 입으면 폼이 나나,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란다. 내가 너무 초라하다 보니 아내를 나무랄 입장이 못된다.
많은 사람이 내려오고 또 올라간다. 우리가 12시 가까이 되어서 집을 나섰으니 사람이 많이 다닐 시간이다. 우리 앞에 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니, 이들의 이웃에 사는 부부가 일출을 보기위해 산을 오르다 아내가 넘어져 손을 다쳤다는 것이다.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뼈가 부러져 너덜너덜하더라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날이 흐려서 일출을 보기 어려웠을 터인데 새벽에 산을 올랐다는 말인가. 우리부부도 일출을 보기위해 새벽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날이 흐려 포기했었다. 밤길은 위험하다. 낯선 길은 더욱 위험하다.
산을 오르면서 올해는 좀 조용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근래에 와서는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정치권은 대선자금으로 난장판이다. 국회는 그야말로 파렴치범의 집합소다. 국민은 국민대로 조그만 이해관계만 걸려있으면 죽기 살기로 투쟁한다. 너무 살벌하다. 우리 사는 세상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 툭하면 가난을 핑계 삼아 어린자식을 죽이고, 돈을 빼앗기 위해 죽이고, 사람 죽이는 일을 예사로 생각한다.
이는 대통령과 정치권이 반성을 하고 달라진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줘야한다. 지금껏 정치권에서는 국가 미래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모습이라곤 보여주지 못했다. 현직대통령은 사람이 너무 가볍다. 무게를 좀 잡아야한다. 입이 너무 가벼워서 스스로 덫에 걸린 꼴이다. 역대 선거 중에 가장 깨끗하고 검소하게 선거를 치렀으면서도 그놈의 입이 방정맞아 덫에 걸려들었다. 범죄조직에서나 있을법한 상상을 초월한 차떼기 정치자금을 끌어 모은 야당은 멀쩡하다.
나는 지난 대선에서 처음으로 내가 찍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흥분했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러줄 것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대체 뭐하나 딱 부러지게 한 게 없다. 많은 실망 중 가장 큰 실망은 대북사업 특별검사제를 승인했다는 점이다. 노대통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특별검사제를 승인하지 말았어야 했다. 김대중 전임대통령의 업적을 무조건 깔아뭉개려는 의도로 제청한 특별검사제라는 사실을 알면서 승인했다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기본이 안됐다는 뜻이다. 그릇으로 본다면 김대중 전임대통령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심스러운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임대통령은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을 설득하여 남북관계를 우리가 주도하면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형식을 택해 성공을 거두었다. 남북정상회담은 자신의 통일 철학을 꽃피운 일대 사건이다. 이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정치행위이며 업적이다. 임기 내내 공들여 성공시킨 남북관계를 그저 흠집이나 내려는 야당에 발맞춰줬으니 김대중 전임대통령에게 결례를 한 셈이고 북으로부터도 외면당하는 꼴이 됐다.
나는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김대중 대통령이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감히 자신 있게 말한다. 지역감정에 젖어있는 사람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김대중 대통령만큼 덕목을 갖추고 업적을 남긴 대통령은 없다고 본다. IMF조기 졸업과 남북관계, 노벨평화상 등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의 입증이다. 거기다 임기 내 사형집행이 1건도 없었다는 사실은 전 세계인이 알아주는 인권대통령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같은 독재자 내지 나라 부도낸 건달대통령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가오는 4,15총선 후에는 질서를 잡아야할 것이다. 정치권은 지나간 일에 매달려 역겨운 싸움질은 그만 두고 국가 미래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한다. 경제를 살리고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생활고를 못 견디고 어린 자녀들과 동반 자살하는 일이 없도록 민생을 살펴야할 것이다. 그것만이 국민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다. 그리하여 사회가 안정되고 활기 넘치는 사회를 가꿔가야 한다.
나 개인의 소망은 내 자신이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불과 한 달 전까지는 형편없었다. 무릎이 안 좋고 폐활량이 나빴었다. 통근버스에서 내려 집에까지 오는 길에서도 숨이 가빴다. 조그만 언덕길을 걸으면 목에서 쇠 소리가 났다. 숨이 차올라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나는 등산을 자주하는 편이나 그럴 때마다 고통을 겪었다. 숨이 차서 빨리 오를 수 없다. 회사 산악회서 산행할 때에도 언제나 후진으로 쳐진다. 목에서 나는 쇠 소리가 왜 그리 큰지 창피할 정도였다.
아내 하고 산을 오를 때에도 그렇다. 나는 아내도 못 따라간다. 나의 체력은 봉화산을 거쳐 무학산 정상까지 왕복 4시간 걸린다. 아내는 같은 코스를 2시간 30분에 주파한다. 나하고 같이 오를 때에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 이유로 배낭은 항상 아내가 멘다. 이것은 진폐증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젊은 청년시절 탄광에서 후산부로 4년을 일했었다. 발파한 막장은 탄가루와 화약연기로 앞이 안 보일정도다. 이런 상태에서 마스크도 없이 일했다. 가래를 뱉으면 시커먼 탄 뭉치가 나왔다. 이런 조건에서 장장4년을 일을 했으니 폐에 탄이 얼마나 쌓였을까?
지난해 초 태백에서 광부로 일하는 친구 집에서 하루를 유했었다. 거기서 들은 얘기지만 광부로 은퇴한 전직광부 대부분이 진폐로 죽어간다 했다. 숨을 가쁘게 쉬다 종래는 바짝 말라죽는다는 진폐증이다. 진폐증은 치료방법이 없단다. 강릉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도 만났었다. 거기서도 함께 고락을 했던 선배들이 벌써 진폐로 많이 죽었다는 것이다.
한 달 전부터 나는 키토산이라는 약을 먹고 있다. 몸의 노폐물을 씻어 낸다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먹고 있다. 최소 6개월은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하여 별 기대도 안했었다. 그런데 복용한지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놀라운 효과를 보고 있다. 목에서 나던 쇠 소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숨도 그리 가쁘지 않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통증도 없다. 이제는 산을 수월케 오른다.
신기할 정도다. 지난 한 달 동안 4회에 걸쳐 산을 올랐는데 모두 전 같은 고통은 한 번도 없었다. 아내도 놀라워하며 싱글벙글 한다.
무릎이 나쁜 것도 탄광에서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체중이 70Kg은 되어야 막장일을 하는데 있어 무리가 없겠으나 49Kg의 체중으로는 견디기 힘들다. 나는 순전히 악으로 한 것이다. 아내와 아이 셋, 부양가족이 줄줄이 달렸으니 게으를 수 없었다. 만근을 하면 라면 한 상자를 주었었다. 나는 그 몸으로 라면을 30여 상자나 탔었다. 전체광부 150명 중 만근 자는 10명 정도였다. 그런 상황이었는데 무릎에 이상이 안 온다면 오히려 이상하겠다.
지난해에 무릎에 좋다하여 글리코사민이라는 약을 두통이나 먹었다. 관절에 좋다는 엉게나무 삶은 물을 먹고 있다. 또 돼지 족발에 산초를 넣고 푹 고아 그 물을 먹고 있다. 아내도 나 때문에 고생이다. 그 덕이었는지 많이 좋아지고 있다. 내 몸이 전보다 훨씬 더 좋아져야한다.
아내도 지금처럼 건강했으면 좋겠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아내는 건강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다. 뼈마디가 쑤시고 시리고 저렸었다. 밤에 잠들면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잠자리가 흠뻑 젖을 정도였다. 오래 전에 코피를 많이 흘렸었다. 아침저녁 출퇴근시간에 흘렸다.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두루말이 휴지 한개를 다 풀어서 닦을 만큼 흘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병원을 못 갔었다. 아마 그때에 몸이 나빠진 것 같다.
아내는 쇠처럼 단단했던 사람이다. 그런 몸을 너무 믿고 무리하게 일만해서 골병들었던 것이다. 아내는 저혈압이라 그 상태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었다. 무릎도 안 좋아 병원에도 많이 다녔다. 3년 전부터 아내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해 무학산을 30회 이상 올랐다. 만남의 광장까지는 이틀마다 다녔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은 식은땀도 흘리지 않고 어디 쑤시거나 시리거나 저리는 곳이 없다. 순전히 산행으로 건강을 다시 찾은 것이다.
올해부터는 아내와 온천을 부지런히 다녀야겠다. 우리 나이에는 온천욕이 좋다. 지난해에는 세 번밖에 못 갔었다. 북면온천과 신마산 해수온천, 부곡온천을 각각 한 번씩 다녔었다. 해수온천은 무학산을 올랐다 만날재로 내려갔었다. 북면온천은 천주산행을 마치고 북면방향으로 내려가 시내버스를 타고 갔었다. 부곡온천은 어제 휴가를 내서 갔다 왔다. 부곡은 어렵지만 북면과 해수온천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 진전면의 양지촌 온천도 있다. 대중탕은 비용도 저렴하다. 산행을 마치고 온천에 몸을 푹 담갔다 오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렇게 건강도 챙기고 아내와도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다음은 아들 상갑이가 올해는 경찰직시험에 떡 붙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전문대를 나와 군까지 필하고 옳은 직장을 못 구하다 지난해부터 시험 준비를 해왔다. 그동안 세 번이나 낙방하였다. 나이도 벌써 29살이다. 올해는 운이라도 따라 원하는 경찰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출가한 두 딸들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를 소망한다. 큰 딸 경희는 직장에 나가느라 아이들이 고생이다. 외손자 선교는 1학년인데도 듬직하다. 외손녀 민서가 걸린다. 어린 것이 하루 종일 놀이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강단하지를 못해 더 마음이 쓰인다. 오막살이에서 세를 산지 3년이다. 올 후반기에는 장유의 새 아파트에 입주할 것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경희 몸도 좀 불어야겠다. 어려서 클 때에는 골격이 남자 같았는데 왜 그렇게 말라가는지 모르겠다. 넉넉하게 살이 지면 얼마나 좋을까.
작은 딸 수희는 몸이 약해 늘 마음 쓰인다. 집에서 살림만 하면 딱 좋을 아이가 직장을 그만 두지 못하는 가난이 걸린다. 김서방 직장이 안정되지 못해 더하다. 다행이 아파트는 한 채 장만했지만 여건상 세를 놓고 있다. 외손자 용빈이는 장난이 너무 심해 불안하다. 밝은 성격은 좋으나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니 늘 불안하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점잔아 지겠지. 하여간 몇 년 만이라도 수희가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나라일도 잘 되고 죽기 살기로 반대 투쟁하는 모습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든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한쪽이 나쁘면 한쪽은 좋은 것이 있다. 나쁜 것만 가지고 집단민원으로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이제는 역겹다. 그렇게 반대만 해서 나라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포철, 경부고속도로, 각종 댐 공사, 대규모 공단조성 등 모두 야당에서 반대했었다. 당시 야당에서는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반대했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다. 이제는 모든 문제를 서로 마주앉아 타협하고 양보하여 국가이익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야 한다.
우리 민족은 좀 별난 민족인 것 같다. 별문제가 아닌 것을 두고 너무 크게 일을 벌여 그르치는 예가 종종 있다. 명분에 너무 집착하는 것이다. 작은 명분 때문에 돈을 잃고, 작은 명분 때문에 직장을 잃고, 작은 명분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우리 주위에는 작은 명분 때문에 쪽박을 깨는 일이 너무 흔하다. 어느 외국인은 한국인을 표현하기로 너무 작은 것에 목숨을 건다하였다. 적절한 말이다.
우리는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좀 냉철해야할 것 같다. 차분하게 분석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여유가 있어야할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소금 맞은 미꾸라지처럼 팔딱거리는 습성을 버려야한다.
정치인은 정치를 제대로 하고, 공무원은 공무원으로서 직분에 충실하면 국민은 조용히 따를 것이다.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대폭 풀어야 한다. 실업자를 줄여야한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이 제 할일을 제대로 한다면 자연히 사회는 안정이 된다. 시끄러울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험한 꼴 안보고 올해부터는 좀 조용히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