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본업이라면서 물건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무슨 명품을 얼마나 써봤기에, 쇼핑에 얼마나 공을 들이기에 신문에 명품 칼럼을 연재하고, 명품에 대해 책까지 내나 싶었다. 혹시 그는 쇼퍼홀릭shopaholic이거나 얼리 어답터early adaptor? 그게 아니면 요즘 한창 얘기하는 ‘신상남新商男’? 얼마 전 출간된 <윤광준의 생활 명품>(을유문화사)을 펼쳤다. 책 속 60가지 물건 가운데 이른바 명품으로 통하는 브랜드의 것은 거의 없다. 1000만 원이 훌쩍 넘는 앤티크 가구부터 쓰리엠3M 포스트잇과 홀더, 쓰리세븐777 손톱깎이 같은 사소한 물건까지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생활 명품’이라….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은 정말 많다. 이사할 때마다 웬 짐이 이리 많은가 새삼 놀란다.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물건이 사는 집 같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뭘 이렇게 사들였나’ 한심해하다가도 ‘성철 스님 같은 사람을 제외한다면 물욕物慾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몇이나 되겠나’ 하며 자위한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별 필요 없는 물건 앞에서도 갈대가 되기 일쑤이니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라면, 게다가 좋은 물건이라면 갖고 싶은 욕망은 더 불어난다. 좋은 물건이란 뭘까? 한마디로 말하면 명품이다. 그럼 명품은 뭔데? 아마 사람마다 그 의미를 조금씩, 혹은 꽤 다르게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물건을 ‘명품’이라 부르는 것은 그 물건의 가치를 인정하고 높이 산다는 말이다.
1 윤광준을 매료시킨, 혹은 그에게 즐거움을 주는 명품도 모델로 함께 참여했다. 그의 작업실에 있던 포커시스Focusis 벽시계와 토렌스Thorens 124 턴테이블은 덕분에 지하를 벗어나 외출했다. 스티클리Stickly의 모리스 암체어는 더베이갤러리 소장품이다.
명품의 가치를 가늠할 때 어떤 이는 외형의 완성도에, 어떤 이는 만든 이의 이름값에, 어떤 이는 완벽한 실용성에 더 무게를 둔다. 당신은 어느 쪽인지? 책에서 좋은 물건에 대해 이야기한 후 나를 무슨 해외 브랜드를 섭렵한 명품 전문가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써본 물건만 이야기할 뿐이다. 이 세상 모든 물건을 다 써볼 수는 없겠지만 내가 선택했든 남들이 인정했든 명품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더라. 첫째, 어쩌다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이다. 좋은 것이 한 번 나오기는 쉽다. 하지만 지속되며 발전하기는 쉽지 않다. 지속성은 역사나 전통을 만든다. 둘째, 차별성이다. 이것은 품질과 디자인에 대한 부분이다. 세 번째가 제일 어려운데, 오라aura가 더해져야 한다. 기품과 격조, 즉 물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힘이다. 이 셋을 충족시킨다면 개인 취향과 상관없이 명품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세 조건 모두 중요하지만 한둘만 제대로 하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명품인 거다. 사람도 지적이고 얼굴도 예쁘고 돈도 많고, 이런 사람 보기 힘들지 않나. 물건이든 사람이든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추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책에서 말한 60가지나 되는 물건이 모두 이 세 조건에 부합한다는 것인가? 별의별 게 다 있던데? 거의 그렇다. 아쉬운 점까지 말한 것도 있고. 절대적 의미의 명품이라는 것이 있을까? 나만 그렇게 느꼈다면 주관적 명품인 거다.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면 객관적 명품이고. 내가 생각하는 명품은 럭셔리luxury보다는 프레스티지prestige에 가깝다. 즉, 사치가 아니라 품격이다.
당신이 탄다는 자전거는 1000만 원이 넘고, 침이 마르게 찬탄하는 오디오 기기는 수천만 원에 이른다. 비싸야 명품은 아니지만 솔직히 명품은 비싸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최고 명품으로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은근히 재산가인가 보다. 천만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물건을 사러 다닐 시간도 없다. 내 호사는 몇몇 부분으로 제한된다. 일하는 데 필요한 카메라라든가, 내가 좋아하는 오디오나 자전거 정도. 생활 면면에 명품을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명품제일주의자는 아니다. 실용이 됐든 가치가 됐든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을 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최고의 만족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그 분야에서 가장 돋보이는 물건을 알게 되고, 써보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에게는 명품이라기보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좋은 도구의 의미다. 그걸 위해 들이는 돈은 당연한 거고, 대신 다른 욕심이나 욕망의 범위를 줄인 거다. 나는 옷을 탐하지도, 구두를 탐하지도 않는다.
2 커피의 마술에 필요한 도구 칼리타Kalita 황동 포트. 묵직한 중량감의 황동 재질은 알맞은 열전도율로 물 온도를 맞춰주고, 얄미울 만큼 절묘한 곡선의 물부리는 유속을 조절한다. 기능성의 완결과 아름다운 형태는 별개가 아니다.
어차피 물건에 대한 욕망인데, 옷이나 구두를 탐하는 것이 카메라나 오디오를 탐하는 것과 다른가? 카메라는 내 일이고, 오디오는 취미다. 옷이나 구두는 용도로나 가치로나 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패션은 조화와 균형이 핵심이지 브랜드를 따질 문제가 아니며, 남이 알 정도로 패션을 구사하는 것은 하수下手라고 본다. 패션은 이를테면 신체를 캔버스로 한 표현인데, 내 신체라는 캔버스에 어울리는 것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안 되는 캔버스에다 뭣 하러 과다하게 포장을 하나. 물론 멋진 패션을 감각적으로 소화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게 자신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거고. 카메라나 오디오와 무관한 사람이 남들이 사니까, 좋은 거라고 하니까 덩달아 산다면 그 경우는 전혀 다르다. 오디오든 옷이든 중요한 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냐, 자신의 지향을 위한 것이냐다. 남들 눈?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인가! 결국 코어core의 문제다.
코어의 문제? 자신은 이게 좋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뭐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것. 내적인 부족함을 감추려 물건으로 치장하는 것. 자신의 코어가 빈약해 흔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운 좋게도 직업상 언제나 머리보다 발이 앞섰고, 남보다 먼저 국내외의 다양한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누린 편이다. 덕분에 나의 코어는 경험과 시간으로 구축됐고, 공고해졌다. 글 쓰는 교육을 따로 받은 것도 아니며 그것이 본업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글을 쓰면서 살게 된 것도 경험 때문이다. 물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경험의 결과다. 글쟁이도 아닌데 무슨 글을 쓰느냐는 수모도 많이 겪었는데, 그들과의 차이는 관념이 아니라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해본 것만 이야기한다.
3 야생에서 자라 농약도, 비료도 필요 없는 쐐기풀은 농약을 들이붓는 면화보다 한참 상급이다. 쐐기풀로 짠 옷감 네틀Nettle로 옷을 지으면 평생 입어도 좋을 만큼 튼튼하며 입을수록 부드러워진다. 몸에 해가 없고, 질기고도 부드러우며, 보기에도 좋은 옷감. 무엇을 더 바랄까.
좋은 물건을 사용하는 즐거움과 만족을 느끼는 계기가 된 운명적 명품을 꼽는다면? 시작은 라이카 카메라다. 30대 중반쯤이었나? 일에서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거였다. 그다음엔 차에 관심이 생겼는데, 차는 내 경제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서 욕심은 내지 않았다. 그래도 미련이 좀 남아 차 타령을 하니까 옆의 친구들이 다 해결해주더라. “내 차 한번 몰아봐라” 하면서.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경험으로 충족의 지점에 도달한 거다. 나는 컬렉터가 아니며, 소유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이 충족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물건으로 누리는 호사가 정점으로 향한 것은 오디오에 빠져들면서부터다.
인터뷰 전 미리 윤광준을 찾아갔다. 일산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이름이 ‘비원’이라고 했다. B1, 지하 1층이라는 표시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이라고 그가 쓴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건물 입구에서 계단을 하나, 둘쯤 내려가니 귀에 음악 소리가 소르르 흘러들어온다. 아름다운 소리가 나를 내려오라 한다. 그가 문 앞에서 반겨준다. “남들에게는 누추한 지하실이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공간이다”라는 말로 비원을 자랑한다. 한 번 더 문을 들어서니 우람하고 탄탄한 덩치의 키 큰 스피커가 서 있고 그 옆으로 진공관 앰프 등 여러 오디오 기기가 보인다. 문외한이라 뭐가 뭔지 잘 몰라도 예사롭지 않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스피커의 신화라는 탄노이 오토그래프라고 한다. 계단에서는 소리가 ‘들린다’고 느꼈지만 그 앞에 앉으니 소리는 살갗을 묵직하게 쓰다듬고 혈관을 타고 울렸다. 이 스피커 때문에 이사도 수차례 했단다. 오토그래프가 소리를 뿜으면 “당신 혼자 사나!” 항의가 빗발쳤다. 비원은 다섯 번째 작업실인데, 무엇보다 맘 편히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어지간히 보물단지구나 싶었다.
4 디지털 시대가 됐어도 기억을 위한 도구의 최강자는 수첩이며, 그중 가장 매력적인 것은 몰스킨Moleskine이 만든 수첩이다. 인조 가죽이지만 경박하지 않은 표지와 견고한 제본, 속지의 감촉과 두께 등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부분에서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오디오 평론가로도 인정받지 않았나. 명품 좋아해 집까지 판 사람 봤나? 그게 나다. 오디오에 빠져 집 한 채를 들어먹었다. ‘남의 눈’을 의식한 ‘치장’의 의미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내 취향의 만족에 도달하기 위해 선택했으므로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바로 ‘이것’을 갖고 싶은데 이런 이유 때문에 안 되고 저런 이유 때문에 안 되고 하면 너무 괴롭다. 그 마음이 평생 갈 수도 있다. ‘나중에 돈 모아서’라며 미루면 평생 못하는 거고, 형편에 닿는 다른 것으로 대치해봐야 충족 비슷한 것도 못 느낀다. 집 한 채를 날릴 정도로 실컷, 원 없이 해봤더니 충족이 되더라. 물건을 갖는다는 것이 별거 아니란 것도 깨달았다. 객관적 관점에서는 바보 같은 사람이다. 아니면 이기적인 사람이거나. 오디오를 사들이는 대신 돈을 모았다면 집도 안 팔았을 거고 살뜰히 평수를 늘리거나 한 채를 더 살 수도 있었을 거다. 난들 그런 아쉬움이 한순간도 없었겠나? 그렇지만 집을 한 채 더 산들 내적 가치의 충족은 아니지 않나. 그랬다면 오디오에 대한, 소리에 대한 욕망과 아쉬움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작지만 집 한 채라도 날려버렸으니 충족된 거다. 그럼 나한테 득이지 실인가? 결국 가치 기준의 차이다.
윤광준이 말하는 명품의 조건 역사와 전통을 만드는 지속성 품질과 디자인의 차별성 스스로 힘을 발하는 격조와 품격
명품을 찾아내는 감식안을 기르려면? 안목은 경험과 시간의 산물! 지식보다 체험이 먼저! 관심과 선택은 최대한 촘촘하게!
명품과 즐겁게 지내는 법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라 절실한 욕망은 채우라 소유가 아닌 ‘사용’에 충실하라
어떻게 그런 가치 기준을 따를 수 있나? 물론 가끔씩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확 질러버려?’ 하는 충동은 느낀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한다. 아니, 못한다. 왜 못하는 줄 아나? 잔머리 때문이다. ‘요렇게 하면 이렇게 될 거고,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거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안 돼!’라고 결론 내린다. 커다란 욕망을 조막만 한 다른 물건으로 대치하고선 ‘됐어. 이걸로 만족하자’ 그래 본들 해결되나? 안 된다. 그러니 내내 괴로운 거다. 비단 물건의 문제만이 아니라 삶의 문제다. 지향이 확실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5 근래 윤광준의 ‘욕망’을 사로잡은 스티클리 의자. ‘불변’이라는 철학이 담긴 견고하고 심플한 의자에 앉는 순간 쿠션의 안정감과 구조의 인체 공학을 느꼈다는데. 절실한 욕망은 아니었던 걸까? 오디오에 탐닉하며 얻은 충족 덕일까? 자기 것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더베이갤러리 소장품.
그렇게까지 흠뻑 누려본 적은 없어서 감도 못 잡겠다. 하지만 아무리 실컷이라도 한두 번 충족하는 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신념 같은 것 때문이 아닐까? 신념은 무슨! 합리로 포장하지 않고 단순해지면 되는 거다. 1과 2, 둘을 놓고 저울질하면 항상 1도 2도 아닌 이상한 쪽으로 간다.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다음에는 깊이와 시간만이 필요하다. 그러면 몰입의 즐거움도 알게 된다. 질문과 대답 사이에는 실오라기 하나 지나갈 틈도 없었다. 하도 단숨에 명쾌하게 답하니 시원한 반면 이런 궤변을 보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가 달인 같은 모습으로 슬쩍 웃으며 “그렇지 않아?”라고 물으면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것도 코어의 문제인가? 정작 얘기하려던 건 명품의 조건이었는데 그건 첫 질문에서 한 방에 명쾌하게 답이 끝나버렸다. 그러고는 대화는 물건에 흔들리지 않고 욕망을 다스리는 법으로 흘러간다. 그것도 아주 술술.
6 쓰는 순간 얼굴의 일부가 되는 안경은 다른 물건보다 더 촘촘한 기준과 까다로운 심미안을 충족시켜야 한다. 꺾이는 부분마저 경첩 없이 매끈한 아이씨 베를린IC! Berlin 안경은 그가 안경잡이 30년간 갈아치운 수십 개의 안경 중 가장 가볍다.
필요한 부분만 한정해 호사를 누린다고 하지만 다른 부분도 대충 만족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안목이라는 게 있는데…. 눈높이와 현실 사이의 격차 때문에 괴로울 때는 없나? 전혀! 절실하지 않은 것에서 왜 만족을 갈구하나. 나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필요한 ‘그것’만 원한다. 생활의 다른 전반에는 기대치가 높지 않다. 무작정 최고급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눈높이와 욕망에는 상한선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 모든 욕망을 채우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게걸스러운 탐욕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욕망을 무한대로 내버려두면 어떤 부자도 감당할 수 없다. 부자가 아니라면 말할 것도 없고. ‘짝퉁’이 뭔가.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수 없는 경제력의 한계에도 욕망은 멈추지 않고 이것이 상업성과 만나 탄생한 기형이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취향이 기준이라면 ‘짝퉁’ 따위가 판칠 리 없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거나 다스리지 못하면 무분별하게 소비할 뿐이다. 아들아이가 네 살쯤 됐을 때 장난감 자동차만 보면 사달라고 떼를 썼는데, 하나를 고르더니 옆의 것을 또 하나 집는다. “비슷하니까 하나만 사”라고 하는 대신 진열된 자동차를 모조리 사줬다. 아이는 다 갖고 싶었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한두 번 그러고 나니까 차에 집착을 안 하더라. 막상 다 가져봤더니 별거 아니거든. ‘못 사면 말지’ 하고 관심이 다른 데로 옮아간다. 배 터지게 먹어보는 게 중요하다. 그러고 나면 더 안 먹으니까. 나한테는 그게 오디오였고. 충족의 지점에 한번 흠뻑 빠져봐야 절실한 욕망이 끝나는 것, 바로 욕망과 충족의 메커니즘이다.
그렇게 충족한 다음에는 어떤가? 욕망에 흠뻑 빠져들어 소유한 물건이니 애착이 대단할 것 같은데. 인생의 비용과 시간을 뭉텅이로 들여 장만한 보물단지니까. 그렇지 않다. 물건인데 뭐. 나는 컬렉터가 아니다. 폼을 잡으려는 것도 아니고. 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기도 한다. 필요하면 또 사면 된다.
좋은 물건을 쓰는 즐거움에 대해 책까지 냈으면서 의외로 물건에 대한 태도가 참 데면데면하다. 내가 정말 명품을 몰라서 그런 건가? 특별한 물건이므로 이것을 꼭 지켜야겠다, 그런 건 없다. 물건일 뿐이니까. 만약 사람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물건이니 버릴 땐 버리고 줄 사람에게 주면 그뿐이다.
7 글씨를 쓸 수 있다고 다 같은 필기구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필 회사 파버카스텔Faber-Castell의 ‘퍼펙트 펜슬’은 편의와 품격을 모두 갖추었다. 250년의 영속성은 그 자체로도, 윤광준의 손에 쥐어져 무언가를 써낼 때도 빛을 발한다.
아무튼 당신이 선택한 물건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탄하며 심지어 부러워한다. 그런 안목은 타고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안목은 길러가는 것이다. 술은 다 좋아해서 와인도 마시기 시작했는데 한 5년 마시니까 저절로 알겠더라. 아, 이게 카베르네 소비뇽이구나, 메를로구나 하면서. 나중에 책을 읽으니까 쫙 정리가 되더군. 머리로 먼저 깨치려는 사람은 그 맛을 알까? 지식을 얻고 체험하는 것이 일반적 방식이라면 나는 체험하고 지식을 확인한다. 술을 뭘 공부하면서 마시나. 나는 재능을 별로 안 믿는다. 재능은 출발일 뿐이고, 인자인 셈이며 그것을 발현하는 것은 개인의 관심과 노력이다. 어떤 것도 무심히 흘려보내면 가질 수 없다. 관심과 선택이 촘촘할수록, 시간과 노력을 들일수록 더 많은 것이 쌓인다. 물론 관심 분야에는 안테나를 세워 ‘뭐가 어떻게 돌아가나’ 하는 건 알아둬야겠지.
물건은 물건일 뿐이라…. 그럼 명품은 명품일 뿐인가? 물론 그렇다. 명품이 별건가? 좋은 물건이 명품이지. 하지만 좋은 물건을 발견하면 즐겁고, 그것을 사용하는 재미는 더 크다. 기분도 좋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 거다. 여러 분야에 관심을 쏟고 느끼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안목이나 물건이 부수적으로 따라온 것이지 처음부터 좋은 물건을 찾아 나선 것은 아니다. 칼럼을 쓰고 책을 낸 것도 물건을 잘 고르는 원칙을 일러주거나 어떤 물건이 좋으니 한번 써보라고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떻게 물건이 메인이 되겠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향유하는 자신과 삶의 격조다. 물질의 영역은 아주 단순하게 충족시킬 수 있지만 정신의 지향은 그렇지 않다. 오디오로 호사의 절정을 추구하며 물질의 충족은 느꼈지만 50년 생애 많은 경험으로 구축한 코어는 아직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 지향은 버리지 않았지만 충족은 영원히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건은 물건일 뿐. 좋은 물건은 명품일 뿐. 간단하고도 명료하다. 다시 원점이다. 일상의 물건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용하는 대상이다. 윤광준은 실용이 됐든 가치 추구가 됐든, 명품이든 아니든 물건을 탐하는 첫째 요소로 ‘필요’를 꼽았으며 소유가 아닌 사용으로도 욕망이 충족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소용되지 않는 순간 물건은 가치를 잃는다고 했다. 확실히 소장자collector가 아니라 사용자user의 관점과 태도다. 일상의 물건은 갖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쓰는 것, 써서 좋은 것이 목적이다. 필요하면 찾고, 이왕 찾는 것 촘촘한 관심으로 한번에 제대로 된 물건을 고르면 더 좋다. 무조건 최고, 최상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향과 교차점을 이룬 최상의 것을 찾는 것, 그리고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위해 다른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배 터지게 먹었다 싶을 만큼 충족을 향해 올인하는 것. 엄두도 안 나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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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은 사진기자로 직업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월간 <마당>, 월간 <객석>에서 활동했으며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사진부장을 지냈다. 전국, 나아가 세계를 돌아다니는 직업 덕에 문화의 품격과 취향이라는 것을 체득하게 됐고, 몇 가지 취미를 지독하게 파고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경험의 산물을 글로 쓰면서 본업인 사진가보다 칼럼니스트로 더 알려졌는데, 지은 책으로 <잘 찍은 사진 한 장>, <소리의 황홀>, <내 인생의 친구> 등이 있고 2002년 출간한 <윤광준의 생활 명품 산책>의 심화 확대판 격인 <윤광준의 생활 명품>을 얼마 전에 펴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탄노이 오토그래프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는 스튜디오 ‘비원’은 ‘자초한 고립’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만의 동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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