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으로부터
김지민
가벽 너머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따금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거나 우지끈 무너지는 소리 그러나 가벽은 잘 서 있고
가벽을 따라 걷는다
사시사철 울창한 녹음과 픽셀이 깨진 석양과 때가 탄 바다와 공중에서 한없이 유예되는 폭포가
가벽을 따라 나란히 인쇄되어 있다
임시적인 풍경을 따라 걷는다
참새는 가벽 위에 비스듬히 앉아 있다가 가까운 나뭇가지로 훌쩍 내려앉는다
현장이 파헤쳐지는 동안에도
가벽은 높고 잠잠해
나는 마음껏 생각에 잠길 수 있고
현장으로부터 가려진다
가벽을 따라 현수막과 가로수의 치밀한 그림자가 되풀이되고 어제와 오늘 사이의 접힌 자국을 발견하고
실감 없이 살아 있다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거나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
가벽 위로 솟아 있는 타워 크레인이 천천히 선회하고
가벽 위에 난 문이 열리자
흙먼지를 뒤집어쓴 인부가 걸어 나온다
그 곁을 지나는 나는
잘 닦여 있다
우리 정치인들이 정치란 ‘무보수-명예직’이라는 말의 참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했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벌써 모든 부정부패를 대청소하고 일등국가의 일등국민이 되었을 것이다. 국회의원 세비는 연간 5,000만원이면 충분하고, 손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물론, 중앙당과 지역구 사무실을 없애고 날이면 날마다 국회로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회의원 사무실은 50여 명씩 칸막이 합동사무실로 정하고, 전국의 지역구의 민원과 대한민국 국회의 상임위원회의 정책을 연구하는 보좌관을 두면 될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그 연구 보좌관들과 함께 민원을 검토하고 수많은 정책을 연구하며, 그 어떠한 표절밥과 뇌물밥과 부패밥도 거절하면 모든 공직사회는 저절로 맑고 투명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대학교는 광주를 옮겨가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교로 육성하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대구로 옮겨가 사법정의를 실현하고, 남해에는 K-POP, 즉, 한류문화의 본고장을 만들어 해마다 수천만 명씩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하면 된다. 청와대와 국회는 즉시 세종시로 옮겨가고, 독서중심 글쓰기교육으로 사교육비가 하나도 안 들게 하는 것은 물론, 대학원까지 무상으로 가르치면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고 전인류의 모범국가가 될 것이다. 모든 부동산 투기와 부의 대물림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면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도 순식간에 해결되고, 모든 주택과 도시들은 천년, 만년 미래의 문화유산으로 건설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보수-명예직’이라는 말인데, 왜냐하면 뇌물밥과 표절밥과 부패밥을 삼대 진미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왜, 정치를 하시는지요? 뇌물밥을 좋아 하기 때문이지요! 왜, 공부를 하셨나요? 표절밥을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대한민국이 왜, 살기 좋은 나라인지요? 부패밥을 먹고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가벽 너머에는 공사가 한창이고, 이따금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거나 우지끈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가벽은 잘 서 있고, 가벽을 따라 걷다가 보면 “사시사철 울창한 녹음과 픽셀이 깨진 석양과 때가 탄 바다와 공중에서 한없이 유예되는 폭포가/ 가벽을 따라 나란히 인쇄되어 있다.” “참새는 가벽 위에 비스듬히 앉아 있다가 가까운 나뭇가지로 훌쩍 내려”앉고, “현장이 파헤쳐지는 동안에도/ 가벽은 높고 잠잠해/ 나는 마음껏 생각에 잠길 수” 있다. “가벽을 따라 현수막과 가로수의 치밀한 그림자가 되풀이 되고 어제와 오늘 사이의 접힌 자국을 발견”하면, 현장으로부터 너무나도 완벽하게 가려진 현실을 실감 없이 살아 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지민 시인의 [현장으로부터]는 문명비판의 시이며,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거나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 가벽 위로 솟아 있는 타워 크레인이 천천히 선회하고/ 가벽 위에 난 문이 열리자/ 흙먼지를 뒤집어쓴 인부가 걸어 나온다”라는 시구에서처럼, 가벽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비애를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가벽은 더럽고 추하고 지저분한 현장을 은폐하기 위한 가림막이며, 그 지옥같은 현장의 실상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가벽 속은 아비규환의 지옥이고, 가벽 밖은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낙원이다. 가벽 속은 최저 임금의 빈곤이 지배하고, 가벽 밖은 자본주의 사회의 풍부함이 지배한다. 가벽은 ‘픽셀의 공간’, 즉, 가상우주의 ‘메타버스공간’이며, 그 가벽에는 사시사철 울창한 녹음과 시원한 폭포와 더없이 넓고 깨끗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요컨대 가벽은 이상낙원의 입구가 되고, 이 가벽이 걷히면 사시사철 젖과 꿀이 흐르고, 너와 내가 다같이 손에 손을 잡고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향유하게 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등,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으로 그 엄청난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오늘날의 알프스 산과 가장 잘 어울리는 집을 짓고 그 옛날의 아름다운 마을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돌담과 축대를 쌓고 집을 지으며, 창문하나를 내는 것도 마을 전체 회의를 거쳐 오랜 시간을 두고 완성해냈는데, 왜냐하면 천년, 만년, 그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산수와 자연은 인류의 공동자산이며, 이 전인류의 공동자산을 함부로 훼손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손을 다치거나 발을 다쳐도 불구자가 되고, 얼굴을 다치거나 머리를 다쳐도 불구자가 된다. 불구자는 장애인을 말하고, 장애인은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몸으로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피해를 입히게 된다. 땅을 파고 산을 깎고 댐을 막는 것도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고, 집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고 우주선을 띄우는 것도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다. 문명과 문화는 자연의 터전 위에 기초해 있지, 자연의 파괴 위에 기초해 있는 것이 아니다. 산과 강과들과 바다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오염시키면 이것은 반드시 전체 인류의 재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인간이 자연의 창작품이지, 자연이 인간의 창작품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본래 자유로운 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쇠사슬에 묶여 태어났던 것이다.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군대와 사회조직 속의 쇠사슬이 그것이며, 이 쇠사슬은 전통과 역사와 도덕과 법률이라는 천국 속의 그림으로 포장되어 있다. 픽셀, 즉, 메타버스의 현장에서 전통과 역사와 도덕과 법률을 쇠사슬이 아닌 자유의 조건으로 인식하게 되면 그는 문명과 문화인이 되어 “잘 닦여”지게 되는 것이다. 자연과 문화는 대립적이지만, 그러나 이 자연과 문화를 잘 조화시키는 것만이 그 자연 속에 순응하는 문화를 꽃 피우는 일일 것이다. 풀 한 포기를 뽑아도, 나무 한 그루를 베어도 자연의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산을 파헤치고 강물을 막아도 자연의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엘리뇨와 라니냐, 수많은 화산의 폭발과 대지진도 자연의 신음 소리이고, 사나운 비바람과 눈보라, 남극과 북극의 해빙도 자연의 신음 소리이다. 수많은 뱀이 죽고, 참새가 죽는다. 수많은 꿀벌이 사라지고 울창한 나무가 죽어간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인부가 이상낙원을 파괴하는 폭도로 돌변할 수가 있듯이, 땅을 파고 강물을 막고 집을 지을 때에도 자연의 신음 소리를 생각하며, 그 고마움의 속죄제를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과연 인간이 자연의 고마움을 이해하고, 자연 속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가 있을까?
탐욕, 탐욕, 이 만악의 근원인 탐욕을 미화시킨 ‘픽셀문화’, 즉, ‘메타버스 문화’는 전체 우주의 대재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