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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상식 팩트 체크] (16) 스카풀라는 원래 옷이다?
부적 아닌 신앙생활 돕는 신심의 도구
- 스카풀라는 원래 어깨너비의 천을 앞뒤로 길게 늘어뜨려 입는 수도자들의 겉옷에서 유래했다. 스카풀라 자체보다 스카풀라를 착용한 사람의 신앙생활이 더 중요하다.
스카풀라를 아시나요? 성물방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데요. 보통 성모님 그림이나 글귀가 적힌 두 개의 작은 천이 긴 끈으로 연결된 형태의 물건입니다. 스카풀라는 생김새 때문에 ‘목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 스카풀라는 목걸이가 아니라 옷입니다.
수녀님들이나 수사님들이 꼭 앞치마 비슷하게 몸 앞뒤로 길게 걸쳐 입고 있는 옷을 보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옷이 바로 스카풀라입니다.
스카풀라(scapula)는 라틴어로 ‘어깨’라는 뜻입니다. 어깨너비의 천을 몸 앞뒤로 길게 늘어뜨려 입는 소매 없는 겉옷이기에 이런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스카풀라는 초기에는 수도자들이 일할 때 수도복 위에 걸쳐 입는 옷이었는데요. 점차 어깨에 지는 십자가와 멍에를 상징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각 수도회의 영성을 따르고자 하는 평신도들도 13세기경부터 스카풀라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16세기부터 점차 간소화되고 작아지면서 오늘날 우리가 착용하는 스카풀라의 모습이 됐습니다.
특별히 스카풀라 하면 ‘성모님’이 떠오릅니다. 성물방에서 파는 스카풀라들도 성모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곤 하지요. 스카풀라와 성모신심이 깊은 연관을 지니게 된 것은 1251년 가르멜수도회 성 시몬 스톡 신부님께 성모님이 발현하시면서부터입니다. 성모님은 스톡 신부님께 갈색 스카풀라를 보여 주면서 “이 스카풀라를 죽는 순간까지 착용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특권을 누릴 것이며, 그가 죽은 후 첫 번째 토요일에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천국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스톡 신부님께 나타난 성모님만 스카풀라를 언급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1917년 10월 13일 포르투갈 파티마에 나타난 성모님은 묵주와 함께 스카풀라를 들고 계셨다고 합니다. 파티마 성모님을 목격한 가경자 루치아 산토스 수녀님은 이것이 “모든 사람이 스카풀라를 착용하도록 하려는 까닭”이라면서 “스카풀라는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대한 봉헌의 표시이며 스카풀라와 묵주는 분리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보통 스카풀라라고 하면 갈색을 떠올립니다. 수도복에서 온 것이니 갈색이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녹색 스카풀라도 있습니다. 1840년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쥐스틴 비스케뷔뤼(Justine Bisqueyburu) 수녀님에게 나타난 성모님은 녹색 스카풀라를 보급할 것을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성모님은 “믿음을 지니고 (녹색)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신앙이 없는 이들과 냉담한 이들을 회개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카풀라는 언제까지나 옷일 뿐입니다. 스카풀라가 아니라 스카풀라를 착용한 사람의 신앙생활이 더 중요하겠지요. 가르멜 수도회 윤주현(베네딕토) 신부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착용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 부적처럼 여긴다면 왜곡된 신심에 빠질 수 있다”면서 “성모님의 마음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삶을 스카풀라를 통해 늘 상기시키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기 쉬운 미사 전례] (16) 복음의 탁월함
하느님과의 대화 구조, 복음에서 정점에 도달
‘우월’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예전 어머니들이 자식을 야단치면서 주변에서 보기 쉬운 비교 대상이자 자기 자식이었으면 하는 허상인 ‘엄마 친구 아들’(엄친아), ‘엄마 친구 딸’(엄친딸)을 말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비교 우위를 말할 때 ‘우월’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 반대로는 ‘열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교급의 ‘우월’보다는 최상급인 ‘탁월’이 복음에 더 적합한 수식어가 아닐까 합니다.
말씀 전례의 전체적인 구성은 ‘복음 선포’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제1독서 구약, 화답송, 제2독서 서간서, 복음환호송으로 이어지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의 대화 구조는 ‘복음’에서 정점에 도달합니다. 이러한 배치로 신구약 성경과 구원 역사의 단일성이 밝혀지고, 그 중심에는 파스카 신비로 온 인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교우들이 인지 했든 못했든 교회는 전례에서 복음의 탁월함을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예식을 행합니다. 백성 전체의 일어섬, 복음 준비 기도, 향과 촛불 행렬, 교우들에게 인사, 십자 표시, 복음집 분향, 복음 후 기도, 복음집 강복 등은 모두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결국 요약하면 복음을 통해 현존하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준비, 환영, 존경, 경청, 감사, 결심, 간청 등의 표시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 환호송(알렐루야)을 부를 때는 모든 이가 일어섭니다. 이는 복음을 선포하러 오시는 주님께 대한 존경심과 환영을 드러내며, 그분 말씀을 경건히 경청하여 실천하겠다는 자세입니다. 복음을 봉독할 부제는 주례자 앞에 나아가 고개를 숙이고 축복을 청합니다. 부제가 없는 경우에는 주례자가 제대에 허리를 굽히고 속으로 “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어 합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복음 선포는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면 합당하게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은총을 청합니다. 이 기도는 11세기경 미사에 들어왔으며, 이사야서 6장 5-7절의 소명 기사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부제는 제대로 가서 입당할 때 들고 온 「복음집」을 높이 들고 향로와 촛불을 든 복사들과 함께 독서대로 갑니다. 이런 성대한 행렬은 고대 로마의 황제 행렬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복음집」에 존경과 예우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복음집」은 주일과 의무 축일 미사 때 봉독하는 복음만 수록해 놓은 전례서로, 동방과 서방의 전례 전통에서는 늘 「복음집」과 「미사 독서」를 구별했습니다. 복음을 봉독하는 부제나 사제는 독서대에서 먼저 교우들에게 인사합니다. 12~13세기에 도입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인사는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복음을 선포하심을 암시하며, 다른 때와 달리 손을 벌리지 않습니다.
복음 선포자는 복음서와 이마, 입술, 가슴에 십자를 그으면서 복음 명칭을 알립니다. 복음의 참 저자는 하느님이시고, 복음사가는 오직 그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기에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때 교우들은 “주님, 영광 받으소서”하고 응답합니다. 그리고 복음에 분향하고 복음을 선포합니다. 반면에,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성금요일의 수난 복음 봉독 때에는 복음 전 인사, 십자 표시, 분향, 촛불 등이 모두 생략됩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죄인이 되어 수난을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생각하여 일시적으로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예식들을 유보하는 것입니다.
전례에서 선포된 복음의 탁월함은 이런 예식을 통해서도 드러나지만, ‘살아있는 복음집’인 우리들을 통해 드러날 때 그 탁월함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전례-기도하는 교회 (3) 전례, 하느님의 일? 아니면 인간의 일?
우리는 전례를 감정적인 차원에서 무미건조하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열심을 드러내는 도구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이는 전례를 인간의 행위로만 혹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전례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일”에 참여함을 의미한다.”(1069항)라고 정의합니다. 전례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일(opus Dei)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전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구원 사업을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계속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천지 창조 때부터 역사 안에서 준비하시고 때가 차자 사람이 되신 말씀을 통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인간과 화해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성자께서는 인성을 취하셔서 인간 구원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육신과 영혼의 의사”가 되시고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라는 완전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고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는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곧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전례 헌장 5항 참조).
성부께서 성자를 파견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을 파견하시어, 모든 이에게 성자의 파스카 신비로 이루어진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선포하는 구원은 전례 생활의 중심인 성찬례와 성사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세례성사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결합됩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며,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그렇게 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참된 예배자가 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구원의 희생 제사를 거행하며 주님의 죽음과 부활하심을 선포합니다. 교회는 성찬례를 통해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전례 헌장 6항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구원 사업을 계속하시기 위해 교회에, 특별히 전례 안에 현존하십니다. 주님의 현존은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의 인격 안에 또한 성체 성혈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어 십자가상의 희생 제사를 교회와 함께 봉헌하고 계십니다. 다른 성사 안에서도 똑같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례 안에서 당신의 사제직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이는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일입니다.(전례 헌장 7항 참조)
교회의 신앙 안에서, 구원은 인간의 성화(聖化)이고 하느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부인 교회와 결합하여 인간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동시에 교회는 주님을 부르며, 주님과 함께 그리고 주님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립니다. 이처럼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은 계속된다면, 전례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일입니다. 동시에 이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교회, 곧 감사와 찬미를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인간의 일입니다.(전례 헌장 9-10항 참조)
결론적으로 전례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이며 동시에 인간의 일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일인 전례에 신앙으로 참여하며,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전례 안에 현존하시며, 활동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맡겨드리며 응답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구해 주시며 당신 자녀로 살아가도록 돌보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좋으심을 드러냄으로써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는 참된 전례에 참여하는 신앙인의 모습이며, 전례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을 살아가는 이들의 실존입니다.
[기도하는 교회] ‘손으로 하는 영성체’의 근거와 주의할 점을 알려주세요
영성체의 본디 방법은 입으로 영하는 것입니다. 1969년 5월 29일자 경신성 훈령(Memoriale Domini)은 손영성체를 허용하면서, 각국 주교회의가 이 허용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해 교황청에 보고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1974년 4월 18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손영성체 허용 여부를 각 교구장에게 일임하였습니다.
이후 1985년 4월 3일자 경신성 지침(De Comunione eucharistica)은 손영성체에 관해 몇 가지를 주의를 당부하였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마땅한 존경을 표하며 양손으로 성체를 받는다;
2.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에 “아멘”이라고 고백한다;
3. 손에 성체를 받은 후 옆으로 비켜서되 제단을 향해 서서 즉시 성체를 영한다;
4. 반드시 성체 분배자로부터 성체를 받아야 한다;
5. 손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6. 성체 가루라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
7. 신자들에게 손 영성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에 따라 1995년 4월 16일에 공표된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 78조는 “영성체는 혀로나 손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위 1항의 양손으로 성체를 받는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 1985년 7월 1일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회보」 제31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받쳐, 축성된 제병을 오른손으로 집어 입에 옮겨 모셔야한다.” 3항은, 뒷사람을 배려하여 비켜서서 영하며, 성체를 가진 채로 이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4항은, 성체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므로 성합이나 성반에 놓인 성체를 교우가 스스로 집어서 영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7항은, 본디 방식대로 입으로 영하고자 하는 교우를 성체 분배자가 거절해서는 안 됨을 알려줍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78. 미사 해설 – 마침 예식 (1) 마침 예식의 의미
시작 예식을 통해 거룩한 만찬이 시작되었고,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를 통해 영육 간에 힘을 얻는 하느님 백성은 미사의 마지막 부분인 마침 예식에 참여 후 다시 우리들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마침 예식에서 중요한 것은 사제의 강복입니다. 우리는 강복을 받음으로써 신앙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삶으로 전환되었으며, 제자들을 굳센 신앙으로 변하게 하시어 신앙의 제자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데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특별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선물은 제자들에게 평화와 함께 성령을 주시는데(요한 20,21-22), 마침 예식의 강복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신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또한 강복의 의미는 영원한 삶을 간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활력을 주고, 세상을 위한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표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침 예식은 단순히 전례의 마침표를 찍는 차원이라기보다는 파견의 의미로써 새로운 시작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은총이기도 합니다. 어제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서 삶을 살아가고, 그 삶을 주님과 함께 재시작한다는 점은 마침 예식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를 통해서 다시금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고, 이러한 희망을 통해 신앙적인 삶을 새롭게 할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마침 예식은 미사에서 얻은 하느님과의 일치와 사랑을 통해 우리들의 일상 안에서도 그 은총이 확대되어 우리가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강복과 파견으로 이루어진 마침 예식은 우리의 일상 안에서 거룩한 이 시간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도록 주님의 힘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는 다음과 같이 마침 예식을 거행하도록 인도합니다.
90. 마침 예식은 아래와 같이 진행된다.
㈀ 필요하다면 공지 사항을 짤막하게 알린다.
㈁ 사제는 인사와 강복을 한다. 강복은 어떤 날이나 특별한 경우에는 백성을 위한 기도나 장엄강복을 더 성대하게 할 수 있다.
㈂ 부제 또는 사제는 신자들 각자가 돌아가 선행을 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도록 그들을 파견한다.
㈃ 사제와 부제는 제대에 입을 맞춘다. 그 다음에 사제와 부제는 물러나서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에 깊은 절을 한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15) 부활삼종기도는 원래 성모찬송이다?
부활의 기쁨 담긴 성모찬송 '레지나 첼리'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1년 중 50일 동안 바치는 기도가 있지요. 바로 부활의 기쁨을 가득 담은, 마치 노래와도 같은 기도, 부활삼종기도입니다.
부활삼종기도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말씀처럼, 부활의 기쁨과 즐거움이 담겨 있기에, 예전에는 희락삼종경(喜樂三鐘經)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삼종기도는 무릎을 꿇고 바치는 기도지만, 기쁨을 드러내는 이 기도는 늘 일어서서 바쳐야 합니다.
아무래도 삼종기도(안젤루스) 대신 바치다보니 부활삼종기도는 삼종기도 중 하나라 여기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활삼종기도는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 기도해온 성모찬송 중 하나입니다.
찬송은 라틴어 안티포나(Antiphona)를 번역한 말입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공적기도인 시간전례, 즉 성무일도 중 시편과 찬가 전후에 바치는 짧은 노래 선율과 그 기도문을 말합니다. 중세의 수도자들은 성무일도의 끝기도를 바친 후에 성모님을 위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이것이 성모찬송이 됐습니다.
오늘날 「성무일도」 책에는 5가지의 성모찬송이 실려 있습니다.
끝기도 후에는 성모찬송 중에서 선택해서 바칠 수 있는데요. 주로 전례시기에 따라 성모찬송을 바치게 됩니다. 대림·성탄 시기에는 ‘알마 레템토리스 마테르’(Alma Redemptoris Mater)를, 성탄 이후부터 재의 수요일까지는 ‘아베 레지나 첼로룸’(Ave Regina Caelorum)을, 부활 시기에는 ‘레지나 첼리’(Regina Caeli)를, 연중시기에는 ‘살베 레지나’(Salve Regina)를 바칩니다. 그리고 ‘숩 투움’(Sub Tuum)을 바칠 수도 있습니다.
성모찬송은 「성무일도」에만 실려 있는 기도는 아닙니다. 한국교회 공인 기도서인 「가톨릭 기도서」에도 여러 성모찬송이 실려 있습니다. 특별히 ‘살베 레지나’는 신자들에게 성모찬송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기도인데요. 많은 신자분들이 묵주기도의 마지막에 바치는 성모찬송이며, 「가톨릭 기도서」에도 ‘성월 기도’ 중 ‘묵주기도 성월’에 분류돼 있습니다. 그리고 ‘숩 투움’(Sub Tuum)은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성무일도」에는 1971년에 추가된 성모찬송이지만, 실은 이미 3~4세기경부터 신자들이 바쳐온, 오래된 기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삼종기도’로 바치는 성모찬송이 ‘레지나 첼리’입니다. 레지나 첼리는 10~11세기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1742년 베네딕토 14세 교황님이 부활 시기 동안에는 삼종기도 대신 레지나 첼리를 바치자고 정하면서 ‘부활삼종기도’가 됐습니다.
교황청 경신성사부는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원칙과 지침」을 통해 “(부활삼종기도는) 말씀의 강생 신비와 파스카 사건을 적절하게 결합시키고 있다”면서 “교회 공동체는 성자의 부활을 기념해 이 기도를 성모님께 바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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