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구백마흔여섯 번째
부자로 불리기를 원하나요?
경전經典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재물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재물이 주는 해악 때문일 겁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부유하게 되려고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라고 하여 재물이 많은 것을 경계하는 듯 보였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악의 뿌리가 되어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것을 염려했겠지요. 결국은 재산이나 권세 따위가 없어지고 보잘것없이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억만장자였던 카네기나 록펠러는 어떤가요? 사도 바울의 말 가운데 ‘부유하게 되려고 하는 자들’이라는 번역으로 인해 ‘부자가 되려는 마음이 죄인가?’라는 도덕적 강박과 신학적 혼란이 생깁니다. 그런데 아람어 본문으로 보면 ‘부자로 불리기를(to be called rich) 바라는 자’ 혹은 ‘부자의 명예(외식)를 탐하는 자’를 뜻한답니다. 성경은 정당한 노력을 통한 부의 축적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아람어 원문이 지적하듯 남들에게 부자로 보이고 싶어 하는 ‘외식과 허영’을 경계한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번역자가 이를 잘못 이해하여 성경을 졸지에 ‘청빈을 강요하는 책’으로 오해하게 만든 겁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부자인 척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돈을 잘 번다고 했던 사람들도 그 돈이 자동차가 됐고, 명품이 됐고, 여행이 됐고, 자녀 교육비가 됐고,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에 썼기에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인생인데 남은 게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자로 불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그리 만든 것이지요. 남의 얼굴을 보고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내면의 심상心相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