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술작(述作)의 유래
본초는 1271년 9월 12일 대성인 50세 때, 헤이노사에몬노조(平佐江門尉) 요리츠나(頼綱)에게 보내신 편지로, 9월 10일에 요리츠나를 대면하신 일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필은 현존하지 않습니다.
『종종어진무어서(種種御振舞御書)』에 「10일과 12일 사이에 진언종의 죄과(罪過), 선종·염불 등 료칸의 기우가 허사가 된 일, 소상하게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타일렀더니」(신편어서 p.1058)라 있는데, 대성인이 10일과 12일에 요리츠나와 대면하셨음이 분명합니다.
또 본초의 고(古) 사본에는 ‘9월 12일’이라 되어 있는 점을 보더라도 1271년 9월 12일 다쓰노구치(竜の口) 법난 직전에 쓰신 것이라 배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 일생의 화도는 다쓰노구치 법난과 사도 유배를 경계로 하여 「사도 이전」과 「사도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경계로 인해 대성인의 경계가 크게 바뀌었는데 본초는 바로 이 경계에서 쓰신 어서입니다.
대고중인 요리츠나는 집권 세력인 호조(北条)씨의 적통 도쿠소우(得宗) 가문의 가신(家臣)으로서 도키무네(時宗)와 사다도키(貞時) 2대를 섬겼으며, 군·경찰 및 정무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등 권세를 떨쳤습니다.
하지만 사승(邪僧), 료칸의 무리와 결탁하여 대성인의 간언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대성인을 참수형에 처하고 아쓰하라(熱原) 법난을 일으키는 등, 끝없는 모략과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입멸 후 10여 년이 지난 1292년, 막부 반역의 죄로 참수형에 처하게 되어 일족이 멸망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몸이 더우면 쉽게 지치고,
마음이 지치면 수행도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한 번의 제목이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하고 삶을 더욱 밝게 비추는 공덕이 됩니다.
무더운 8월도
불도수행에 정진하시는 달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