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오늘의 부처님 말씀]
혹시라도 나쁜 짓을 했다면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소부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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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선어록 산책]
성철스님의 신심명 · 증도가 강설_ 증도가(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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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신심명 · 증도가 강설_ 증도가 (79)
증도가證道歌 79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하니
찾은즉 그대를 아나 볼 수는 없도다.
不離當處常湛然하니
불리당처상담연
覓則知君不可見이로다.
멱즉지군불가견
우리가 일상 행(行),주(住),좌(坐),와(臥)에서 이 물건을 떠나려야 떠날 수 없고 언제든지 이 가운데서 살고 있으면서도, 진리의 광명은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지 항상 그 광명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하다'는 것입니다. 담연(湛然)이란 청정하여 때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진여자성이란 것을 일체 중생인 유정(有情),무정(無情)이 다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항상 청정하여 때가 없습니다.
'찾은즉 그대를 아나 볼 수는 없다' 함은, 찾으면 분명히 알지만 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배고프면 밥 달라하고 추우면 옷 달라고 하니 분명히 알지만, 그 자체를 찾아보려고 하면 미래겁이 다하도록 찾아도 찾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찾은즉 그대를 안다'는 것은 쌍조(雙照)를 말한 것으로 진여대용이 그대로 있으니 분명히 알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쌍차(雙遮)가 되어서 일체 명상이 다 끊어졌기 때문에 보려야 볼 수 없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이차(照而遮)하고 차이조(遮而照)하여 차조동시(遮照同時)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모든 것이 다 청정무구(淸淨無垢)하여 일체 망상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그걸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 볼 수 없다'고 해석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명상이 끊어진 것만 가지고 주장하게 되는 것으로써 쌍차쌍조(雙遮雙照)한 중도정견은 아닙니다.
혜가스님이 "밝고 밝게 항상 아니 말로써 미칠 수 없다[了了常知나 言之不可及]"는 말씀과 같으니 거기에서 해가스님은 달마스님에게서 인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밝고 밝게 항상 안다'는 것은 곧 '찾은즉 그대를 안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렇지만 '말로써 미칠 수 없다'는 것은 모든 명상이 다 끊어져서 말하려야 말할 수 없고 보려야 볼 수 없으며 들으려야 들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석해야만 쌍차쌍조한 차조동시(遮照同時)가 되어 전체가 다 드러나서 중도정견이 되지만 그렇지 않고 '찾으려고 해도 볼 수 없다'고 하면 이것은 바른 해석이 아니라 변견적인 해석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철스님의 신심명.증도가 강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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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깨우는 오늘의 부처님 말씀( 949)
"소젖이 당장은 변하지 않듯
지은 죄가 나타나지 않아도
잿 속에 묻혔던 불씨와 같이
그늘에 숨었다가 때가 되면 나온다."
<출처 : 법구경>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3번)
♣법신진언 :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3번)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3번)
♣소원성취진언(所願成就眞言)
옴 아모카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훔(3번)
♣광명진언(光明眞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왈라 쁘라와르 타야훔(108번)
♣보회향진언(普回香眞言)
옴 삼마라 삼마라 미만나 사라 마하 자거라 바라훔(3번)
"행실을 항상 바르게 하고
부당한 것을 피하는 자는
악인의 미움을 살 수는 있지만
언제나 어진이의 사랑을 받으리라."
<출처 : 법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