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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오늘도 예배드리러 나오신 귀한 우리 성도님들 삶과 가정과 일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 주 동안 기쁨으로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좌우 앞에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설렘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돌아보니까 설레었던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누구나 다 있을 것입니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학생 때 소풍 가기 전날 첫 소풍 갈 때 그 마음 그거는 참 귀했던 것 같아요. 내일 소풍이다. 그래서 전날 저녁에 가방을 싸놓은 걸 또 한번 열어보게 닫았다. 열었다가 그러다가 자야 되는데 왜 또 잠이 이렇게 안 오는지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는데, 내일이 오려면 빨리 잠들어야 되는데 이리 뒤쳐 저리 뒤쳐 그러다가 어떻게 어떻게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누구보다 일찍 깨는 거죠. 평소에는 그렇게 깨워도 일어나던 그러한 학생들이 대부분 그날 그 설레임 앞에 일찍 깨어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평소에는 절대 그럴 수 없었던 모습이 설렘 때문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한 번쯤 다 경험해 보셨죠?
표정들이 경험 안 해보신 표정인데 저만 그랬나 보네요. 그죠?
한 번쯤은 다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가요를 잘 몰라요. 그런데 학생 때 수학여행 가서 들었던 가요 가사 중에 연애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참 잘 대변해 주었다. 그 설렘에 대한 그런 가사가 적힌 가요를 들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한번 잘 생각해 봤습니다. 야 정말 그러면 설레겠다 그게 여러분 어떤 노래였냐면 우선 제목이요. 그녀를 만나기 전 100m 전인가 이제 그런 노래였어요. 그녀를 만나기 100m 전에 자신의 상황을 노래한 거죠. 그 가사가 그렇습니다. 저기 보이는 노랑 찾지. 오늘은 그 열세 번째 만나는 날 마음은 그곳을 달려가고 있지만 가슴이 떨려오네. 뭐 이런 노래예요. 잘 들리지 못해서 좀 죄송하지만 하여튼 가사가 이렇습니다. 100m 전에 내가 가고 있는데 가슴이 떨려온다. 두근두근 여러분 데이트하면서 세 번째 만났을 때 그 마음 그 마음을 우리는 다 공감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 올 때도 그런 때가 있었죠. 제가 그 노래 가사를 맞춰서 한번 이렇게 계산해 봤습니다. 저기 보이는 빨간 벽돌. 오늘은 주일 교회를 가는 날 마음은 그곳을 달려가고 있지만 가슴이 떨려오네. 우리 아이들은 지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창피함은 우리 가족의 몫. 우리 제가 볼 때는 권사님도 좀 부끄러우신가 봐요. 역시 부채질을 하고 계시는데 제가 부끄러울 때 여러분의 몫으로 제가 다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우리 교회가 그렇게 성도들이 교회에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인가 굳이 따지고 보면 여러분 사실 설렘이 있을 때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때입니다.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뛴다. 잠이 오질 않는다.
왜일까요?
거기에는 기대와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대라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소망이 아직 현실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에요.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설렘이 점점 사라지는 거죠. 살다 보니까 처음 갔던 소풍이 그렇게 행복했고 첫 수학여행 집을 떠나서 하룻밤 외부에서 자는 게 그렇게 행복했고 교회에서 수련회 갈 때 야 그래 함께 가서 열심히 은혜받는 것 그 사모하는 거 그렇게 사모했었는데 어느 순간에 그 설레는 마음이 사라지고 여행을 가면 쉬러 가는 시간 그래 그동안 고생했다. 좀 쉬다 오자. 그래서 우리가 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그러한 떨림이나 두근거림이 없이 그냥 일상의 하나의 삶의 모습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점점 기대와 소망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의 신앙도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예전에는 예배가 기다려졌습니다. 아직 그 은혜가 부어지지 않은 시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가면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실까라는 기대와 소망 때문에 주일을 기다리는 것이죠. 기도할 때는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확신 때문에 기도하면서 설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까?
할렐루야 그런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죠. 겉으로는 우리의 모습이 여전히 예배드리지만 또한 기도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그러한 설렘이 사라진 상태가 아닌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딱 그런 상태였다라는 것이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예루살렘을 떠나서 엠마오로 가는 그들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 가운데 부활의 주님이 찾아와 주셨다.그리고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잃어버렸던 설렘을 다시금 뛰게 하셨다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 두 제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식어 있던 마음이 다시 뛰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사라졌던 설렘이 다시 살아나는 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 번째는요. 소망이 식어지면 사람은 조용히 방향을 바꾸게 된다는 것이죠. 오늘 21절 말씀 한번 읽어보실까요? 21절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여러분 이 구절을 한번 자세히 보시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상태를 아주 잘 표현해 주고 있죠. 특별히 바람노라라는 이 단어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형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대했지만 과거에는 기대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그 기대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방향을 돌이키게 된 것이죠.
여러분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 얼마나 설렜겠어요?
내일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오병요의 기적을 경험했어요. 이 주님이 앞으로 또 어떤 일을 하실까 아픈 자를 고치십니다. 놀랍지 않아요.
그걸 보면서 우리 주님과 함께 다니니 이런 놀라운 일을 보내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여러분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하루하루를 내다보면서 기뻐하면서 또한 기대하고 소망이 차고 넘쳤던 것이죠. 말씀을 들을 때 야 우리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 거기에 대해 집중하였고 그 말씀이 끝나면 저녁 때 주님 그 말씀 좀 해석해 주십시오. 그 말씀의 해석을 들으면서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고 소망했던 그들의 모습 복음을 위해 파송 받았을 때에는 여러분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내어 쫓는 경험을 통해서 우리도 더 큰 역사를 이룰 수 있겠다라는 그 설렘과 두근거린 마음.
그런데 그들 가운데 이제 그 기대가 사라진 것이죠. 사실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이분이야말로 진짜다 이분이야말로 우리의 왕이시다.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이시다라고 기대하며 따라갔던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런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이제 더 이상 그들의 곁에 계시지 않으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그들의 기계를 산산조각 내어버리게 한 사건이 된 것이죠. 그리고 이제 이들은 더 이상 소망이 없자 예루살렘을 떠나서 엠마오로 조용히 내려가고 있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요. 소망이 있을 때는 앞으로 나갑니다.앞을 향해서 갑니다. 그런데 소망이 사라지면 그냥 멈추는 것이 아니에요. 거기에서 방향을 바꾸더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출애굽기 16장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광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을 때가 더 좋았다.
여러분 정말 애굽이 더 좋았을까요? 여러분 그 자리는 노예의 자리예요. 그런데 왜 이들이 애굽을 그리워했을까요?
그들이 소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앞을 바라보지 못하면 결국 뒤를 그리워할 수밖에 왔다는 것이죠.
열왕기상 19장의 엘리아의 사건도 동일했습니다. 갈멜산에서 불이 임했고 엄청난 승리를 경험했지만 이세벨의 위협 한마디에 광야로 도망가면서 그가 했던 이야기가 뭡니까?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소망을 잃어버린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 사람은 환경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껴질 뿐이지 사실은 소망이 식어져 버렸기 때문에 조용히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두 제자를 한번 보십시오. 이들이 울고 있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 멈춰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들은 걸어갑니다. 예루살렘에서 덴마울 예수님에게서 멀어진 점점 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그들의 길 위로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셨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죠. 여러분 이것을 우리는 은혜다 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주님을 떠나 세상을 향해 가고 있지만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그 길 위에 찾아와 주신다.
여러분 이 은혜가 얼마나 감사하죠?
나는 몰라서 나는 부족해서 때로는 이탈하고 주님을 멀리하지만 그때마다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와 주신다라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우리의 삶도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마음의 방향이 조금씩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분은 계시지 않는다. 예배를 드려도 기대가 없고 기도는 하지만 확신은 없고 교회는 점점 능력을 잃어 그러한 마음으로 혹시 기대감 없이 소망을 잃어버린 채 그렇게 신앙의 여정을 걷고 계시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 괜찮습니다. 왜요?
오늘 이 시간 주님이 찾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소망이 식어버린 그 길 위에 주님은 우리에게 다시금 찾아오셔서 소망을 갖게 하시는 것이죠. 소망이 잃어버린 우리 마음과 가정과 교회 가운데 부활의 주님이 찾아와 다시 일어나 다시 힘 있게 걸어가는, 다시금 회복의 자리로 나아가는 존경하는 저와 여러분 삶과 가정, 교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요. 소망의 말씀을 들어야 돼요. 소망은 말씀을 통해서 회복되어진다는 것이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한번 보십시오. 그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찾아왔어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두 사람이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걸어가면서 대화 중에 예수님이 그 자리에 함께 합류했는데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영적인 눈이 가려졌기 때문인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그 예수님께 예수께서 겪으셨던 사건을 소개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걸어가면서 그들은 계속해서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바랬던 것이 있었다. 그런데 결국 우리가 바랬던 것처럼 되지 않고 이렇게 돼버렸다.
낙심하게 된 거죠. 여러분 낙심한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계속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 상황 이야기만 반복하게 되는 것이죠. 문제가 이것이고 이것 때문에 실망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상처받았다. 쉽게 말해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낸다는 거예요.
그런데 감사한 것은 그 자리에 주님이 찾아오신다는 것이죠. 오늘 이 제자들에게도 주님이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아마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25절을 보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고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야 너희들 믿음이 왜 이렇게 없냐라고 말씀하시면서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죠.
환경을 바꾸어 주신 것도 아니더란 말이에요. 주님은 부활의 주님을 깨닫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서 말씀을 풀어주셨다라는 거예요. 27절 말씀을 한번 같이 읽어봅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여러분 이들이요. 십자가 사건을 보면서 끝났다. 이제는 기대가 없다 그러면서 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 사건을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라는 사실로 선지자들의 이야기로부터 풀어 풀어 풀어 다 설명을 해 주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의 눈을 열도록 주님이 말씀해 주셨다는 거예요. 이처럼 예수님은 이들의 상황을 바꾼 것이 아니라 해석을 바꿔주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따라서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소망은요 환경이 바뀔 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다시 들릴 때 살아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말씀이 바르게 들려질 때 우리 가운데 소망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로마서 15장 4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시작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기록 목적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말씀을 통해서 소망을 얻게 하시고 소망 가운데 위로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똑같습니다. 상황은 같을지라도 말씀이 내 안에 붙들려지기 전과 말씀을 붙든 후의 삶은 반드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어떤 성도님께서 겉으로 보시기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근데 어느 날 목사님께 찾아와서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요즘 그냥 마음이 비어 있는 것 같아요. 통이 빈 같습니다. 그것을 이야기할 기대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그 성도님에게 권면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부터 시간을 정해서 말씀을 소리 내어서 읽으십시오.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첫날부터 뭔가 뿅 하고 뭐가 일어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어떤 일어남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목사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순종해야지 순종해야지 그러면서 성경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읽다가 딱 멈추게 된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니라
그 말씀을 읽는데 그 말씀이 그전에는 그냥 글자였을 뿐인데 이제 그 말씀이 내 안에 레마로 임하게 되어서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것이죠. 그날 이후로 이 성도님에게 상황이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상황은 똑같았어요. 똑같은 삶을 살아갔어요. 그러나 고백이 달라졌습니다.
목사님 이상하게 다시 괜찮아졌습니다.
다시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뭐가 바꿔진 거예요?
상황이 바뀐 겁니까?
아니죠. 말씀이 들어간 거죠. 그의 영혼에 말씀이 들어가니 상황은 똑같아도 내 마음의 변화, 내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언제 살아나는가 상황을 보는 눈이 아니라 말씀을 해석하는 눈이 열릴 때 그때 살아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말씀을 읽어도 모르겠고 요즘 말씀이 들리지 않고 예배를 드려도 그냥 흘러갑니까?
오늘 본문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말씀을 풀어주시면 마음이 다시 살아난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 말씀 앞에 서는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말씀이 들리면 다쳤던 마음이 열리는 것이 말씀이 들리면 우리의 영안이 열려서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를 보게 되는 것이고 말씀이 들리면 다시 기대하게 되고 소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이 사실을 놓치지 마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다시 듣게 해 주시옵소서 말씀이 내 마음 가운데 레마로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위해서 여러분 말씀을 펼치시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순절 날 제가 여러분 사순절 그래도 신앙 안에서 보낼 기를 소망하면서 내일 성경 그것을 요약하고 질문지를 이렇게 함께 올려드렸는데 사순절이 끝나도 계속 올려드리고 있어요. 제가 소망하는 것은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말씀을 펼쳐 묵상하고 거기에 있는 질문지를 가지고 질문도 해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도 해보고 기도도 해보기를 소망하는 마음. 그래서 여러분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그 말씀 속에서 회복되어지는 소망이 저와 여러분 삶의 현장 가운데 매우 드러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합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안 된다 하면서 자꾸 안 된다 안 된다 내가 아무것도 순종 안 하면서 안 된다 안 된다 하지 마시고 되는 길이 있음을 가르쳐 드릴 때 여러분 순종해 보십시오. 그 순종이 나를 살리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마지막 세 번째는 소망이 살아나면 인생의 방향이 다시 바뀐다라는 거 이제 말씀을 듣던 두 제자에게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들의 고백을 보십시오. 32절입니다. 우리 한번 큰소리로 읽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말씀이 들려졌을 때 주님께서 말씀을 풀어주셨을 때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니 뜨거워졌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 한 문장 안에 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식었던 마음이 다시금 뜨거워진 것이죠. 꺼져 있던 소망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소망이 사라진 건 아니죠. 잠시 식었을 뿐이죠. 그런데 그 식었던 소망을 회복시키 눌려 있던 소망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 그래서 말씀이 들어가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짜 변화는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 오늘 33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실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11 제자 및 그들과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여러분 이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 떠났잖아 어디로 엠마오로 그 길에 주님을 만나 엠마오의 자리까지 갔어요.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회복되었으니 어디로 다시 돌아갑니까? 예루살렘 방향을 다시 주님께로 향하더라. 방향을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더라. 이것이 그들의 변화이죠. 여러분 그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 걸어서 내려갔을 것 아니에요. 그렇게 힘들게 걸어갔던 그 자리를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그런데요 그들은 돌아갔다는 거예요. 왜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에 소망이 살아났기 때문인 것이죠. 말씀이 들어가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났지만 말씀을 들은 후에는 다시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더라라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묵상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 14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죠.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해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여러분 부활의 소망을 만난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뒤를 붙잡지 않는다는 거, 앞을 바라보고 나아간다는 거, 실패한다고 머무르지 않는 것, 계속해서 전진해 간다는 것입니다. 앞을 향해 앞에 있는 것을 잡고자 왜 그 앞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에 그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잡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죠. 엠마오로 내려갔던 두 제자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뒤에 있는 것을 내려놓고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존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신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신앙은요. 과거를 붙잡고 머무는 것이 아니라 표대를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저앉지 않습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납니다. 다시 걸어갑니다.
다시 달려갑니다. 여러분 이것이 부활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 감정 내적인 변화가 끝이 아니라 우리의 방향을 바꿉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나의 신앙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나는 방향을 틀어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 부활의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말씀이 다시금 회복의 길로 주님을 향한 길로 돌이키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교회에 가고 싶은 설렘, 예배 드리고 싶은 설레임, 찬양하고 싶은 설레임 여러분 이런 설렘이 우리 안에 있어 자꾸 주님을 만나 주님과 함께 거하는 복된 성도의 삶 이것이 바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소망입니다.
그렇죠.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다. 소망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일어납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에 포기할 만한 것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푯대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망을 잃어버리지 마시고 소망 가운데 일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도 소망, 기대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의 여정 나아가는 거룩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