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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발사 광경
[ 영화, 아폴로 13 ]
<아폴로 13>은 1995년에 개봉된, 우주선 아폴로 13호에 관한 영화입니다.당시 아폴로 13호의 사령관이었던 짐 러블이 제프리 클루거와 함께 쓴 <Lost Moon: The Perilous Voyage of Apollo 13>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론 하워드, 주연은 톰 행크스, 영화음악은 제임스 호너가 담당하였습니다. 아폴로 12호에 이어서 세 번째로 아폴로 13호가 달에 착륙할 계획이었는데, 산소탱크 쪽에서 발생한 고장으로 우주선의 기능들이 하나하나 마비되어 갑니다.
* 아폴로 13호 우주비행사들, 가운데가 톰 행크스
우주공간 속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상요원들과 조종사들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사태를 하나하나 극복해가며 모두 무사히 귀환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달에 착륙하지는 못했으나, 이 일련의 사태로 주목을 받았습니다.영화의 장치상 몇가지 점이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거의 사실에 입각하여 제작되었다고 당시 아폴로 13호의 사령관이던 짐 러블이 인정했습니다.
다수의 장면을 실제 무중력에서 촬영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무중력 장면이 나오면 이런저런 눈속임과 CG를 동원해서 촬영하곤 하는데, 아폴로 13호는 아예 실제 무중력 상태에서 촬영했습니다. 방법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나사가 보유한 무중력 실험기를 대여해 내부에 세트를 설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유낙하 상태에서 촬영했다는 겁니다.
* 우주선 내부
물론 모든 장면을 이렇게 촬영할 수는 없으므로 지상의 세트에서 각종 눈속임과 장비를 동원해 연출한 무중력 장면과 이어붙이는 식으로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몇 분 사이에 지상-무중력-지상-무중력 식으로 촬영장소가 엄청나게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이 방법을 사용한 덕분에 주스를 짜서 마시는 장면이라든가, 승무원들이 몸에서 떼어낸 계측 장비가 둥둥 떠다닌다던가 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곁들어졌는지 지금 봐도 영화의 완성도 자체는 상당합니다. 90년대 영화지만 자신이 NASA와 우주에 관심이 있다면 2010년대인 요즘 구해서 봐도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 우주인들, 왼쪽에서 세 번째 매팅리는 안타깝게...
특히 러블을 비롯한 우주 비행사들의 심리상태가 매우 섬세합니다. 예를 들어서 영화 초반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장면을 바라보다가 밖에 나와서 아폴로 8호에서 달에 갔지만 착륙하지 못했던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고 달을 바라보는 장면, 달에서 원래 착륙할 예정이었던 장소를 바라보며 달에 착륙하는 상상을 하는 장면, 그런 와중에도 집에 가야 한다는 정신력을 되새기는 장면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한글자막 번역이 당시의 짐 러블과 우주 비행사들의 선후배관계를 생각하면 서로 반말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 볼 수도 있습니다. 러블은 제미니 계획 시절부터의 베테랑이지만 프레드 헤이스와 켄 매팅리, 잭 스위거트는 처음으로 우주 나가는 새까만 후배들입니다. 당장 군 계급만 봐도 러블은 대령이지만 매팅리는 소령이었습니다.
* 홍역에 대한 면역이 안되어 있다고 탈락한 매팅리,사령실의
베테랑인 그는 사고가 난 후 관제센타에서 큰 역할을 수행합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끼리 낄낄거리는거야 그렇다 쳐도 기수관계에 익숙한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적절치 못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사족이지만 실제 주인공인 짐 러블과 그의 아내 마를린 러블이 카메오로 출연합니다.
마를린의 경우 발사를 구경하러 올라가는 사람들 중에 섞여있고, 짐 러블은 마지막 장면인 바다에 착수한 우주인들을 구하기 위하여 출동한 이오지마 함의 함장인 미 해군 대령으로 출연합니다.
톰 행크스와 론 하워드 감독은 이후 이 영화의 제작 장비와 노하우를 활용하여 다큐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를 만들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 음향 등 2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 간략한 줄거리 ]
여러 번의 우주비행을 해낸 노련한 42세의 우주비행사 짐 러블(톰 행크스 분)은 1969년 7월 20일, 동료 닐 암스트롱의 역사적인 달 착륙 장면을 TV로 지켜보며 ‘반드시 달에 가보고 말리라’는 자신의 꿈을 다시 한번 아프게 가슴에 새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뜻밖에도 일찍 그 기회가 찾아옵니다. 6개월 후에 발사될 아폴로 13호의 선장이 중이염으로 도중하차하게 되어 짐이 13호 탑승팀으로 교체 투입된 것이었습니다.
* 관제센터의 총지휘자 진 그란츠(에드 해리스 분)
노련하고 포용력 있는 선장 짐 러블과 연습 벌레이자 완벽주의자인 사령선 조종사 켄 매팅리(게리 시나이즈 분), 재치 있고 용의주도한 달착륙선 조종사 프레드 헤이스(빌 팩스턴 분), 세 사람은 6개월 동안 고통스러운 훈련을 감내하며 달에 갈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러나 발사 이틀을 남기고 예비 탑승팀에 홍역환자가 발생해 아직 홍역을 앓지 않은 켄이 전염됐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팀에서 제외됩니다. 대신 예비 탑승팀의 일원이며 신참내기인 잭 스위거트(케빈 베이컨 분)가 사령선 조종사로 팀에 새로 합류합니다. 지상에 남게 된 켄은 분루를 삼키며 허탈감에 빠집니다.
* 왼편부터 러블,매팅리,헤이스(매팅리는 탈락하고...)
드디어 발사 당일, 새턴 5호 로켓에 실린 아폴로 13호가 어마어마한 화염을 일으키며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마침내 달 탐험의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구 궤도를 이탈해 달을 향한 비행을 시작하고, 달착륙선과 도킹까지 무사히 마친 비행사들이 달 궤도 진입에 앞서 휴식을 취하려는 순간, 난데없는 폭음과 함께 우주선이 요동하기 시작합니다. 산소 탱크 안의 코일이 전기 합선으로 감전을 일으켜 폭발한 것입니다.
냉철하고 철저하기로 소문난 우주 관제센터의 진 크란츠(에드 해리스 분) 관제 본부장은 휘하의 기술진을 몰아치고 독려하며 신속히 사태수습에 나섭니다. 크란츠는 폭발로 기계선 엔진이 손상됐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즉시 회항’ 대신 달 인력을 이용해 우주선이 달 궤도를 돌고 나온 후 착륙선 엔진을 작동시켜 귀환 길에 오르게 한다는 ‘자유순환 궤도’ 방법을 택합니다.
* 무사 귀환한 우주인들
전력의 많은 부분을 상실한 사령선을 재진입시 활용하기 위해 사령선은 일시 폐쇄하고 착륙선을 구명정으로 삼아 지구 재진입 지점까지 운항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또 한번의 위기를 맞지만, 직원들이 기지를 발휘해 아슬아슬하게 넘깁니다.
탑승팀에서 제외된 후 실의에 빠져 있던 매팅리 역시 동료들의 소식을 듣고 팔을 걷어붙입니다. 며칠 동안 냉동 상태에 있던 사령선을 전류 20암페어만으로 재가동시키는 방법을 알아내라는 과제를 맡은 매팅리는 필사적으로 작업에 매달려 마침내 풀어냅니다.
* 무사히 착수한 러블
컴퓨터도 없이 수동조종으로 궤도 수정을 해가며 천신만고 끝에 대기권 진입 지점까지 오게 된 비행팀은 마지막 고비를 맞습니다. 방열판이 손상됐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기권과의 마찰로 발생할 섭씨 2000도의 고열을 캡슐이 견디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모두가 불안해하는 가운데 대기권 진입에 돌입하고, 통신 두절 상태가 시작됩니다. 3분이 지나고, 4분이 넘도록 비행사들로부터 응답이 없어 모두 포기하려는 순간, 관제센타의 화면에 낙하산 세 개에 매달린 우주선 캡슐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짐으로부터 "다시 만나서 반갑다!"는 응답이 전파를 통해 전해지자, 관제 센터직원과 가족들, 그리고 온 미국민이 감격하며 환호합니다.
* 성공적인 실패
이렇게 하여 달 착륙에는 실패했지만, 극적인 귀환에는 성공한 아폴로 13호의 대 드라마는 '인간 승리'의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된 채 그 막을 내립니다. 아래는 우주선장 팀 러블의 기록입니다.
“이 날의 감격적인 일은 '성공적인 실패'로 불렸다. 수개월간의 조사 끝에 폭발은, 산소 탱크 안의 불량 코일이 전기 합선으로 불꽃을 일으켰던 게 원인으로 밝혀졌다. 그것은 내가 탑승 배정을 받기 2년 전에 발생한, 사소한 결함이었다.
* 사령선의 무사한 착수
프레드 헤이스는 아폴로 18호에 탑승할 예정이었으나 예산 삭감으로 취소돼 그 후 다시는 우주비행을 못했다. 잭 스위거트는 항공 우주국을 그만둔 후 하원의원이 됐으나 의정 활동을 펴기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켄 매팅리는 아폴로 16호 사령선 조종사로서 달 궤도를 돌고 우주 왕복선에도 탑승했으며 그 후로도 홍역은 앓지 않았다.
진 크란츠는 비행 계획 국장을 지내다 얼마 전에 은퇴했다.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관제센터를 떠났으나 일부는 남아있다. 내 얘기를 하자면 아폴로 13호 비행이 내 마지막 우주비행이 되었다. 그 후로도 동료나 후배들이 달에 갔다가 무사히 귀환하는 모습을 관제 센터나 휴스턴의 내 집에서 지켜보았다.
지금도 가끔 달을 올려다보며 행운의 여신이 함께 했던 우리의 긴 여정과 우리를 귀환시키기 위해 애썼던 수천 명의 사람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언제, 누가, 다시 또 저 달을 밟을 것인가?“
* 탈락해서 슬픔에 잠긴 매팅리, 그는 후에 아폴로 16호에 승선합니다
* 현재의 러블
[ 아폴로 13호 사고 전말 ]
* 우주비행사
선장 : 제임스 러블
사령선 조종사 : 존 스위거트
(원래는 켄 매팅리였는데 바뀌었습니다)
달 착륙선 조종사 : 프레드 헤이스
* 우주선 닉네임
사령선/기계선 : 오디세이
달 착륙선 : 아쿠아리우스
< 사고 및 귀환 과정 >
아폴로 13호는 시작부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제2단 로켓 S-II의 중앙 엔진이 예정보다 빨리 연소가 멈췄습니다. 다행히 주위의 4기의 엔진이 자동적으로 연소시간을 연장하고, 궤도를 수정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장 원인은 공진에 의한 것으로, 엔진의 진동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는 순조롭게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구로부터 321,860km 떨어진 지점에서 기계선 2개의 산소 탱크 중 하나가 갑자기 폭발합니다.
* 폭발한 기계선 모습
비행사가 제2탱크의 스위치를 넣었을 때, 내부의 전선이 합선하면서 순간적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우주비행사들은 그 당시에는 무언가와 충돌한 것이라 생각했답니다. 워낙 큰 폭발이었기 때문에 옆에 있던 1번 탱크에도 손상이 갔습니다.
계기판의 산소 잔량 표시는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고, 몇 시간 뒤면 기계선의 산소는 완전히 비게 되는 위험에 처했습니다. 기계선의 산소가 없어지게 되면 연료전지가 작동하지 않게 되고 새로 전기를 만들어 배터리를 충전할 수 없게 됩니다.
전기가 없으면 사령선은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사령선에 있는 산소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기계선을 떼어낸 뒤 대기권 재돌입 시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휴스턴의 관제센터는 일단 사령선의 기능을 완전하게 정지시키고 달 착륙선으로 피난하도록 비행사들에게 지시합니다.
이 피난은 이미 지상에서 훈련을 몇 차례 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아폴로 8호처럼 달착륙선이 없었으면 3명의 우주비행사는 지구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고로 인해 달 표면에 착륙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달의 중력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달의 중력을 이용하여 자유 귀환 궤도에 오르면 그나마도 신속하게 지구에 귀환 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 전력 부족
이렇게 귀환 방법이 결정됐는데 전력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전력이 지구로 귀환까지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의 최저한도까지 떨어뜨려야 했습니다. 연료전지가 정상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아있는 전력은 사령선에 있는 배터리와 달 착륙선의 배터리가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사령선에 있는 배터리는 추후 지구 재진입 절차를 고려하면 막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고 결국 최소한의 생명유지장치와 꼭 필요한 장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장비를 꺼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에는 항법 컴퓨터마저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꺼놓고 항로 수정이 필요할 때만 잠시 켜서 계산하는 식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나중에 재진입하기까지 전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시되자 자동조종장치도 꺼버리고 조종사들이 아예 손으로 항로를 계산하고 달 착륙선의 수동조종장치로 항로를 수정하는 지경에 놓였습니다. 어쨌든 관제센터와 우주비행사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지구로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달 표면에 최대한 접근한 뒤 2시간 후에 달착륙선의 강하용 엔진을 사용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또 하나 생깁니다. 바로 전력 문제입니다. 전력이 지구로 귀환까지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의 최저한도까지 떨어뜨립니다.
* 이산화탄소의 방출
또 다른 문제는 이산화탄소의 방출이었습니다. 사람이 숨을 쉬면 이산화탄소가 나오는데 이산화탄소의 양이 많아지면 숨을 쉬기 곤란해집니다. 사령선에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해주는 필터가 있었는데 정작 이 필터가 사령선과 착륙선의 규격이 달랐습니다.
결국 선내의 남아 있는 골판지나 비닐봉투를 껌으로 붙이는 등 난리를 치면서 임시 필터를 만들어내면서 이 문제는 간신히 해결했습니다.
* 임시 필터 모습
* 열악한 생존 환경
여러가지 산적된 문제들은 그럭저럭 해결되고 있었지만 우주비행사들이 노출된 열악한 상황은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승무원들은 하루하루를 핫도그 한 개와 물 3온스, 즉 90mL로 버텨야만 했습니다. 알기 쉽게 비유하면, 음료수인 비타500이나 미에로 화이바의 유리병 양이 100ml입니다. 하루 식수를 그 하나로 버텼다는 의미입니다.
* 달 착륙선 아쿠아리우스를 떠나 보내며...
결국 헤이스는 신장염을 얻게 되어 귀환 후 오랫동안 고생했습니다. 물은 워낙 중량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우주선에 직접 싣고 가지 않습니다. 대신 연료전지가 가동을 하면 수소와 산소가 합성되어 부산물로 물이 나옵니다. 즉, 우주인들은 이 물을 정수해서 마시게 되며 이게 정수기의 시초이죠.
그런데 산소가 부족하니 물도 부족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게다가 전력을 아끼기 위해서는 히터도 꺼야 했기에, 내부 온도는 영하로 떨어져 그나마 3온스의 물은 얼음으로 먹어야 했고, 당연히 방한 대책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추위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월면화를 신어서 발이 시려운 상황은 피할 수 있었지만 원래 달에 내려갈 사람이 2명이니 월면화도 2켤레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 명은 추위를 버티는 수밖에 없어 결국 헤이스는 우주에서 지독한 감기에 걸렸습니다.무엇보다 사고 후 며칠 동안의 고난으로 승무원들의 심신은 한계에 내몰려, 한때는 무력감에 휩싸여 생존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NASA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이들은 마침내 4월 17일 지구에 재진입에 성공하고 무사히 귀환하기에 이릅니다.
* 무사히 돌아온 우주인들
< 사고 원인 >
우주비행사들이 돌아온 후 바로 사문위원회가 조직되어 폭발 원인에 관한 조사가 착수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폭발의 이유가 참 가관이었다. 원래 28볼트가 최대 수용가능 전력으로 설계되었던 산소 탱크 히터 부품에 아폴로 우주선의 통용 전압인 65볼트가 넘는 전압이 걸렸던 것입니다.
문제는 아폴로 우주선의 통용 전압이 65볼트라는 사실은 아폴로 우주선이 제작되던 때 NASA가 제조업체인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 사에 통보했으며, 노스 아메리칸 사는 이를 하청업체인 비치크라프트Beechcraft 사에게 모든 규격을 65볼트로 맞출 것을 지시했었습니다. 그러나 비치크라프트 사는 이를 깜박 잊고 탱크 히터의 온도조절장치와 부속된 전류차단장치의 가용 전압을 28볼트로 그냥 놔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 폭발광경, 상상도
이 때문에 처음에는 액체산소탱크의 액체산소를 기화시키는 히터가 작동해서 탱크온도가 섭씨 28도에 이르자 자동온도조절장치가 작동했으나 기계선의 65볼트 전류가 계속 흐르자 28볼트로 설계되어 있던 온도조절장치를 순식간에 녹여버렸습니다. 히터는 계속 켜진 상태로 있게 되어 최종적으로 탱크 내의 온도는 섭씨 538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온도계는 섭씨 28도까지 밖에 표시되지 않게 되어 있어서 이런 비정상을 알아챈 요원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탱크 내의 산소가 재충전되자 폭탄과 같은 상태가 되었고 전선에서 발화한 스파크로 인해 순식간에 300파운드의 액체 산소가 기화되었고, 팽창한 가스가 탱크를 날려버린 것입니다. 덕분에 엄청난 폭발로 인해 옆에 있던 정상적인 탱크 및 공용으로 사용하는 배관까지 박살나서 그야말로 우주선이 깡통으로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 휴스턴 관제센터, 왼쪽에서 두번째가 진두지휘한 진 그란츠
[ 미-쏘 우주개발 경쟁 ]
< 쏘련의 선공 >
*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 - 스푸트니크 충격
* 스푸트니크 1호
그 당시 미국 사람들은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무기체계와 과학 전반적인 기술이 냉전 체제의 적대국인 소련(러시아)보다 당연히 앞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예상을 깨고 소련에서 먼저 인공위성을 쏘자 매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를 사람들은 "스푸트니크 충격"이라고도 합니다.
이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의 자극을 받은 미국은 과학 교육, 군사, 기술 부문 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자존심 만회를 위해 1958년 1월 31일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항공 자문위원회 NACA를 1958년 7월 현재의 미국항공우주국, 즉 NASA로 개편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후 NASA에서는 머큐리 계획, 제미니 계획,아폴로 계획 등을 세워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스푸트니크 호는 그 이후로도 계속적으로 발사되어 24호 까지 발사됩니다. 그 중에서 스푸트니크 2호는 세계 최초로 지구의 생명체를 우주 공간에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 기술로는 되돌아 올 수가 없어서 결국 이 생명체는 우주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 생명체는 바로 인류와 친숙한 개이며 이름은 라이카입니다. 스푸트니크 5호는 개 2마리, 쥐 40마리를 태우고 우주로 발사한 뒤 하루 만에 무사히 생명체를 첫 번째로 우주 비행시킨 뒤 귀환시킨 우주선입니다.
* 최초의 우주 개, 라이카
* 보스토크 프로젝트
이렇게 위성을 발사하여 발사기술과 재진입 기술을 확보한 소련은 '인류최초로 사람을 우주로 보내기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합니다.
바로 '보스토크 프로젝트'였습니다.1960년 소련은 약 스무명의 우주비행사를 선발하여 훈련시켰는데, 이중 첫번째로 발탁되어 올라간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유리 가가린이었습니다.
* 보스토크에 탄 유리 가가린
유리 가가린과 함께 훈련을 진행한 동료인 게르만 티포프는 96년 우주비행 35주년을 맞이하여 한 회고에서 "자신이 유리 가가린 보다 성적이 우수 하였으나, 유리 가가린이 첫 우주비행사로 뽑힌 이유는 다름 아닌 준수한 용모 때문이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마도 세계최초의 첫 우주비행사이니, 소련당국에서도 곧 쏟아질 전세계적인 관심에 맞추어 잘생긴 유리 가가린을 첫번째 비행사로 발탁하지 싶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외모 때문에 유리 가가린 한테 밀린(?) 티포프는 두번째 보스토크 호에 탑승하여 우주에 올라가게 됩니다.
* 유리 가가린
[ 미국의 반격 ]
소련이 1957년에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 발사에 성공한 뒤로 우주는 미국과 소련이 경쟁을 벌이는 또 하나의 전장이 되었습니다. 소련의 위성이 지구 궤도를 돌면서 언제라도 머리 위에서 핵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생각에 미국인들은 불안하고 초조해졌습니다.
미국은 1958년에야 최초의 우주선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1961년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고 이어 지구 궤도에 올려놓자 미국인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자 케네디는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미국은 달에 사람을 상륙시킬 것이며 또한 그를 다시 지구로 데려올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62년 8월, 미국도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나타났습니다. 존 글렌이 ‘머큐리 프로젝트’에 따라 지구 궤도를 돌았던 것입니다. 1960년대 중반에 미국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장기간 여행할 때 사람에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시험하는 ‘제미니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 제미니 계획
라틴 어로 쌍둥이를 의미하는 제미니 호는 우주 비행사 2명을 태울 수 있었습니다. 이전의 머큐리 호에 비하면 1명 더 탈 수 있었지만, 뒤에 나올 아폴로 호에 비하면 탑승 인원이 1명이 더 적었습니다.제미니 호는 여러 차례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 제미니 우주선
1965년 8월에는 8일 동안 우주비행을 함으로써 최장기 우주 비행 기록을 세웠고, 1966년 11월에는 최초로 자동 장치를 통해 대기권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제미니 호는 또한 비행 중인 두 우주선의 도킹에 성공했으며 미국 최초의 우주 유영을 기록했습니다.
* 아폴로 계획
아폴로 계획은 우주 비행사를 달에 착륙시켰다가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아폴로 1호는 1967년 1월 21일 훈련연습 도중 우주선 안에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고로 유능한 우주비행사 그리섬Grissom, 화이트White 2세 및 채피Chaffee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이 일어났고, 아폴로계획은 1년 반 이상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아폴로 계획은 1968년 10월에 발사된 아폴로 7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폴로 7호에서는 아폴로 우주선의 성능 실험을 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습니다. 아폴로 8호와 9호는 사람이 달에 다녀오는 과정 중에 일어날지도 모를 모든 위험들을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아폴로 10호는 달을 31회나 돌면서 달에 착륙하기 위한 마지막 실험을 끝냈습니다. 사람이 달에 착륙하게 된 것은 아폴로 11호였습니다.
*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왼쪽부터 암스트롱, 콜린스, 올드린)
아폴로 11호는 아폴로 10호가 달에 갔다 온 지 불과 1개월이 지난 1969년 7월 16일에 지구를 떠나 20일에 드디어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올드린Aldrin 및 콜린스Collins 3인이 달에 도착하였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콜린스는 사령선을 타고 달을 주회하면서 대기궤도(待期軌道)상에서 달 표면 사진을 찍는 일을 맡았습니다.
* 달 착륙 장면
이로써 인간이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아닌 다른 천체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바로 1969년 7월 21일이었는데 이로써 우주원년(宇宙元年)이 시작된 것입니다.1969년 7월 16일, 지구를 떠난 아폴로 11호는 5일이 지난 7월 21일 오전 11시에 달 표면에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아폴로 11호가 달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미국의 아폴로 계획은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1969년 11월, 아폴로 12호는 ‘폭풍우의 대양’에 착륙하여 7시간 35분 동안 달을 탐사한 다음 34kg의 월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1970년 4월에 발사된 아폴로 13호는 1970년 4월 11∼17일에 러블, 헤이스, 수위거트를 태우고 달세계를 향해 갔으나 우주선의 산소 탱크가 파손되는 사고가 일어나 달 착륙을 포기하고 지구로 귀환했습니다. 1971년 2월에는 아폴로 14호가 발사되었습니다. 아폴로 14호는 손수레를 가지고 가서 무거운 짐들을 운반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 아폴로 우주선의 착수장면
아폴로 15호는 1971년 7월 26일∼8월 7일까지 스콧Scott을 선장으로, 한국에도 1972년 10월에 왔던 어윈Irwin 및 워든Worden 일행은 달세계에 네 번째로 착륙했습니다. 이 때 ‘로버Rover’라는 월면주행차(月面走行車)로 착륙선에서 최대 9.6km까지의 거리를 탐사했습니다. 또 텔레비전 카메라를 장치해서 가는 곳마다 달의 풍경 사진을 지구로 중계해 줄 수 있었습니다.
1972년 4월에는 아폴로 16호가 달에 도착하여 20시간 14분 동안 머물고서, 월석 95kg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1972년 12월에는 아폴로 17호가 달에 착륙했습니다. 아폴로 17호는 아폴로 계획에 의해 발사되었던 마지막 우주선입니다. 아폴로 17호가 무사히 지구로 되돌아온 다음, 아폴로 계획은 성공리에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 우주왕복선 >
스페이스셔틀(space shuttle)이라고도 합니다.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쓰지 못하는 로켓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주공간과 지구 사이를 반복해서 왕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유인우주선입니다. 80년대부터는 한번 사용하고 폐기해야하는 로켓을 대신할 우주왕복선 개발이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 발사
미국의 우주왕복선 개발 계획은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승인으로 시작되어 1977년 8월 12일 '엔터프라이즈호'의 실험 성공을 거쳐, 1981년 4월 12일 존 영과 크리프 2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운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발사되었습니다.
컬럼비아호는 이후 수십 차례에 걸친 항해를 하며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각종 과학실험을 수행했습니다. 두 번째로 개발된 우주왕복선은 챌린저호로 1983년 4월 4일 첫 비행에 나선 후 우주왕복선 사상 최초의 우주유영,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샐리 라이드 탑승, 최초의 흑인 우주비행사 기언 블러퍼드의 탑승 등 많은 화제를 낳았습니다.
*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호
그러나 1986년 1월 28일 7명의 승무원을 태운 챌린저호가 발사한지 1분 13초만에 폭발,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2년간 중단되었던 우주왕복선 발사는 1988년 9월 29일 '디스커버리호'에 의해 재개됐습니다.
디스커버리호는 1990년 그 유명한 허블우주망원경을 우주공간에 띄운 우주왕복선으로, 지난 2000년 100회 우주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했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138억년 전 우주가 빅뱅에 의하여 탄생되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여 유명해졌습니다.
1989년엔 애틀란티스호가 첫 비행에 나서, 금성 탐사선 마젤란 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애틀란티스호는 1995년에 러시아의 우주정거장 미르호와 사상 첫 도킹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1992년엔 엔데버호가 발사되었습니다.
첫 비행에 나서 궤도를 이탈한 통신위성 인텔새트 6호를 회수하는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환했으며, 이후 허블우주망원경 수리, 국제우주정거장 조립 등을 위해 비행을 했습니다. 2011년 7월 아틀란티스호의 33번째 우주비행을 마지막으로 1981년부터 2011년까지 30년 동안 진행되어온 미국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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