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902. 두려움(240103)
티비를 보다가 성심원 수사 신부인 유의배 신부님(스페인 출생)이 유재석의 프로에 나와 자신의 방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40년을 산 조촐한 그의 작은 방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살아서 가난한 사람을 사랑한 사람은 죽을 때 두려움이 없다”
라는 문구였습니다.
나이가 드니 가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 봅니다.
죽는 것보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 더 두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는 죄사함을 못 받고, 죽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는 지위를 잃은 상태가 될까 봐 두렵기도 하구요.
가난한 자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면 분명 그만큼 세상은 아름다워 졌을 테고, 그것이 하늘나라가 세상에 임하시게 하시라는 주의 기도 한 부분을 실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은퇴를 하고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물질적 도움을 주는데 한계를 느낍니다만 조금이지만 남을 돕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선교사 수녀님의 말씀을 들으니 300만원만 있으면 학교를 하나 세울 수 있다고 합니다. 어느 편지를 보니 월 3만원만 있으면 아이를 고등학교까지 졸업 시킬 수가 있다고 합니다. 케냐에서는 700만원이면 샘을 파서 식수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어렸을 적 외국인 선교사들이 주는 우유 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먹었고 미국이나 캐나다, 아일랜드 등지에서 그들이 입던 옷을 받아 입었지요. 나름 원조의 덕을 본 셈이지요.
고향 꽃동네를 처음 시작할 때 18명이 살 집을 지을 때 노동을 했습니다.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와 20일을 오웅진 신부에게 붙들려 집을 짓는데 노력동원을 했습니다. 꽃동네를 있게 한 최귀동 할아버지는 제가 어릴 적 ‘똔똔이’ 라고 놀려대던 거지였습니다. 그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나 일본 징용을 갔다 와서 정신이 좀 이상 해졌고, 거지가 되어 밥을 빌어다 다리 밑에 사는 다른 거지들을 먹여 살렸고, 끼니 때가 아니면 거리의 유리조각을 주워 모아 버리곤 했지요. 아이들이 다친다고.
우리가 가난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기에 이젠 우리가 다른 누구를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죽을 때 두렵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