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만 하여도 세계는 1차산업이 주류였다.
우리나라도 옛날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해서
정월 대보름날 달집을 태우면서 그 해의 풍년을 기원했다.
가뭄이 들기라도 하면 모내기를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나왔다고 한다.
오월말부터 유월초까지 모내기를 끝내야 하는 데 그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도 하지 못하고 대신 메일 같은 것으로 대체작물을 심었다.
당시에는 저수지도 없었고 오직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들이었는데
왜정시대에 와서야 저수지도 막고 보도 만들었다고 한다.
모내기를 한 후에도 가뭄이 들면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쩍쩍 금이 가면서 갈라지고
심어놓은 모는 잎이 발갛게 타 들어가면 농부들 가슴도 새카맣게 타 들어갔다.
심어놓은 나락이 말라져 죽게되면 식구들 양식도 구할수 없게 돼 굶어죽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저수지에 조금 남은 물을 펌프로 퍼 올려 잎이 배배 꼬여 말라들어가는 논에 한 바가지라도 끌어들이기 위해
밤을 새워 순서를 기다리던 때가 바로 엊그제 일 같다. 서로 자기 논에 물을 먼저 끌어들이기 위해 싸우다가
살인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연유로 생긴 것이다.
영국에 잠시 나가 있을 때 들은 이야기다.
영국 정부나 단체에서 빈민구제를 위해 아프리카 여러국가에 원조를 해 주려고 하면 그쪽에서 나온 대사나 정부관리들이
원조금을 꼭 자기계좌로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고 했다. 기부금을 개인이 착복하겠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운동이나 시민운동을 내걸고 하는 사람들이 각종 비리로 처벌을 받기도 했었다.
그들은 대의명분을 앞 세워 포장만 그럴듯하게 해서 뒷전에서는 호박씨를 까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정의연 사태를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아전인수가 한 술 더 떠 아전인전(我田引錢)으로 버전업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