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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선사의 말에 공양주보살은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대웅전으로 들어가 먼저 물 묻은 항아리에 떨리는 손을 푹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물 묻은 손을 그대로 밀가루 담은 항아리에 푹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그 넣은 손을 대중스님들 앞으로 번쩍 들어 내밀었다.
“아악! 저게 뭐야!”
“아! 이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밀가루 하나 묻지 않았다니!”
대중스님들이 공양주보살의 손을 제 눈을 의심하며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모두 깜짝 놀랐다. 사실 그 손을 보고 더욱 놀란 것은 공양주보살 바로 자신이었다. 물 묻은 손을 밀가루 깊숙이 넣고 뺐는데 이렇게 밀가루 하나 묻어 나오지 않았다니 벌렁 까무러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화엄사 공양 간에서 오직 밥 짓고 나무 해 불 때고, 나물 캐 나물 만들고, 국 끓여 올리고 설거지하는 일밖에 모르는 자신이 그런 엄청난 재물이 들어갈 대불사의 화주가 되다니 그건 절대로 말이 안 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험! 참으로 신이한 이적입니다. 공양주보살님의 일심정진에 대한 부처님의 응답이시옵니다. 이로써 장육전 중건불사의 대화주로 우리 공양주보살님이 정해진 것입니다.”
계파선사는 대중스님들에게 엄숙히 선언했다.
“선사님! 저는 아닙니다. 일자무식인 저는 오직 밥 짓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제발 거두어 주소서! 선사님!”
파리하게 얼굴이 질린 공양주보살은 계파선사의 말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공양주보살님이 이 화엄사 절에서 10년을 공양주로 열심히 일한 공력이 일심으로 참선 수행을 해온 천여 대중스님들보다 더 뛰어나니 이렇게 오늘의 실험에서 신비로운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실험한 것이 아니라 지리산의 주인이신 문수보살님께서 꿈에 나에게 지시한 것이니 공양주보살님을 오늘 화주로 선택한 것은 바로 문수보살님입니다. 그러니 아무 말 마시고 이제 대시주자를 얻어 장육전 중건불사를 잘 이루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계파선사는 공양주보살의 말을 단호하게 자르며 말했다. 다른 대중스님들도 공양주보살이 장육전 중건 불사의 화주로 정해진 것을 알고는 공양주보살에게 엎드려 삼배하고 장육전 건립을 위한 화주의 중임을 그 자리에서 맡기게 되었다. 꼼짝없이 그날 화주의 중책을 맡게 된 공양주보살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직 밥 짓고 설거지하며 부처님 앞에 조석으로 공양 올리는 일밖에 모르는 자신이 엄청난 재물이 들어갈 장육전 대불사의 책임을 맡다니 자다가도 기절할 일이었던 것이다. 어찌하여 일자무식에다 시쳇말로 땡전 한 푼 가진 것 없는 자신에게 수 천만 냥의 거금이 들어갈 그런 커다란 대불사의 큰일이 맡겨졌단 말인가!
<계속>
첫댓글 화엄사 각황전...
사찰의 재미있는
이야기 기다려집니다
부처님 앞에 공양 올리는
대보살님 마음이 천심입니다.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공양간 밥짖던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