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疎
二發心大性 謂已發無上正等覺心
이발심대성 위이발무상정등각심
둘째, 발심이 대승의 본성과 맞다. 말하자면 무상정등각의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대승에서 본 소승의 궁극적 목표는 아라한이다. 이것은 작은 열반이다. 큰 열반은 깨달음 자체가 구경이고 원대하다. 그 깨달음을 무상정등각이라 부른다.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원어 그대로 아누다라삼먁삼보디라고 음역했다. 줄이면 대각이라고 한다. 이 대각은 대승불교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불교에서의 발심은 대각을 이루고 부처가 되어 대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대승은 통이 큰 자가 수용하는 가르침이다. 받아들이는 용량이 작으면 작은 법을 받아들이고 용량이 크면 큰 법을 받아들인다. 대승은 가슴이 넓고 생각이 깊은 자들이 거짓 마음을 비운 자리에 받아들이는 큰 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인배들처럼 무조건 반대하고 거부하지 않는다. 모른다는 엄살로 눈을 감고 귀를 닫지 않는다. 천천히 그러면서 묵묵히 향상해 가면서 능동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서 그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일으키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처럼 받아들이는 용량이 크고 넓기 대문에 대승의 본성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마음은 바다와 같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지고 깊어진다. 어린아이는 얕은 곳에서 놀지마는 커갈수로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범부는 마음 언저리에서 놀지만 부처는 마음 자체를 가지고 놀다가 궁극에는 마음까지 버리고 만다. 이것은 꼭 물과 분리되면 물을 겁내지만 물과 하나가 되면 물속을 마음껏 유영하다가 물에서 자유롭게 나오는 것과같은 이치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_()_
발보리심.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