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美 설리번-中 왕이 8시간 대화… 韓, 눈 떼선 안 될 움직임
입력 2023-05-15 00:00업데이트 2023-05-15 08:57
마주앉은 미중 외교사령탑 10일(현지 시간)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에서 두 번째)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오른쪽)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동하고 있다. 빈=신화 뉴시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11일과 12일 이틀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동했다. 설리번 보좌관과 왕 위원은 8시간에 걸쳐 미중 관계와 대만,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 대해 “솔직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미국 고위당국자가 밝혔다. 2월 초 중국 정찰풍선 사태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이 전격 연기된 이후 3개월 만에 이뤄진 양국 간 최고위급 회담이다.
미중 외교안보 사령탑 간 회동은 그동안 단절됐던 소통 채널을 복원해 갈등 악화를 막고 긴장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상호 인식에 바탕을 둔 시도일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공개 메시지를 발신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양측은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재추진과 함께 재무장관, 상무장관의 방중 건도 논의했다고 한다. 외교와 군사, 첨단기술 등 분야에서 격하게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관계 관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미중 간 무역 비중은 감소하고 있지만 교역량은 되레 늘어나며 역대 최대치 수준인 700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긴밀히 얽힌 양국 경제의 디커플링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결과다. 이런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나라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경제보복에 맞섰던 호주는 6년 만에 양국 정상회담에 이어 이달 베이징에서 통상장관 회담을 갖고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정상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신냉전의 치열한 진영 싸움 속에서도 국익을 위한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사례들이다.
대중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또한 중국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나라다. 더구나 지금은 중국이 동북아의 ‘약한 고리’로 여겨지는 한국에 유독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시점이다. 최근 한중 간 예정됐던 각종 회의와 행사를 돌연 취소하는가 하면, 뒤로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 훼방을 놓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중국과의 갈등을 제때 관리하지 못하면 우리 기업과 국민이 보게 될 피해는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베이징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동시에 중국의 견제에 대응할 정교한 대중 외교전략을 풀어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