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와 숙주나물의 유래
1456년 단종 복위에 목숨을 바친 인물들을 우리는 특별히
사육신이라는 칭호로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6명을 가리킨다 조선 중기 이후 충절(忠節)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지금까지도 기리고 앞으로도 그 명망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에 반해
같은 집현전 학사였던 신숙주는 안타깝게도 변절자의 대명사로서
그 이름을 남기게 됐다.
그러나 신숙주 역시 세종대왕이 아끼고 사랑했던 학사들 중
한 명이었다 총명했으나 병약한 문종과 후일의 단종이 된 어린
세손을 보면서 후일의 보필자로서 이들의 곧음과 학식을 높이 산
까닭도 있었으리라 학문의 연마가 곧 인격의 완성과 비례한다고
보았던 전형적인 문인사회였던 조선에 있어 선비와 학자로서의
올곧음을 지닌 이들은 훗날 병약한 문종과 어린 세손의 훌륭한
학문적 보필자이자 충신이 될 것임을 헤아려 본 탓일 게다.
역사는 잔인하게 흘러 세상을 재빠르게 읽은 신숙주는 세조의
뜻에 부합해 능력을 보태었고 세조가 왕위 찬탈자이긴 하나
조선왕조의 기틀을 공고히 함에 관료로서 적지 않은 공헌을
하게 됐다. 신숙주는 조선 초기 학자로 세종 때 집현전 학자로
들어와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고 나중에 영의정까지 지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특별히 아끼셨던 세종의 뜻을 저버린 일을
결코 잊지 않았다
숙주나물 이름의 유래만 봐도 그렇다 숙주나물은 녹두에 싹이 나서
키운 것으로서 왜 녹두 나물이라 부르지 않고 숙주나물로 부르는
것인가? 콩으로 키운 것은 잘 알다시피 콩나물이라 부르면서 말이다.
대부분 야채나 채소는 삶아서 나물로 만들어 놓으면 맛이 잘
변하기는 한다 그러나 유독 녹두 나물은 콩나물이나 다른 여타
나물에 비해 더 잘 변질되고 상해 버리는데 이러한 성질을 조선
초기의 관료였던 신숙주에 비유해 숙주나물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안타깝기도 하면서 참으로 민심은 천심인 것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그는 시절을 잘못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가
안정된 때 태어났더라면 그는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직 그의 훌륭한 학문적 재능과 탁월한
관료로서의 능력으로 명성을 남겼을 수 있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위에 말했다시피 그의 이름이 녹두 나물을 대신한 것은 그를 비롯한
많은 학자가 세조가 찬탈해 간 단종의 왕위를 복위시키려는
과정에서 등을 돌려 세조 편에 섰기 때문이다 뜻을 같이했던
집현전 학자 중 변절해서 잘 사는 신숙주를 대표 격으로 비아냥
거리면서 잘 쉬고 잘 변하는 녹두 나물에 비유한 것이다.
한명회나 다른 동조자와는 달리 이미 세종으로부터 지극한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었기에 당시 세간의 상심과 실망은 더욱 컸었으리라
세상의 마음은 나는 못 그럴지언정 또는 내가 못 그러기에 잘난
다른 사람이 진정한 군자(君子)의 면모를 보여주기를 기대했던
것이었으리라 당시 조선의 가장 큰 대의명분이던 군자의
도(道)라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그리하여 세상의 권력과 영화를 초개처럼 아는 올곳은 지조와
의리였기에 말이다 학문을 하는 이유는 학문의 연마가 곧 인격의
완성 즉 군자의 완성을 이루는 일이라 믿었었기에 사회의 엘리트인
선비들은 학문을 연마하는데 일신을 바쳤던 것이다 숙주나물에
대한 단상치고는 그 배경에 세상의 눈이 엄정함을 보게 된다.
권력과 영화의 무상함과 함께
- 어느 글에서-
첫댓글 고령 신씨 가문에선 녹두 나물이라 부르고 이 나물을 밥상에 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에선 라멘에 빈대떡, 육개장, 만두소로 많이 사용합니다. 일본어로 모야시
비빔밥에는 숙주나물이 빠지면 비비는 맛이 없습니다.....ㅎㅎ
@항상 숙주가 물기가 많아 콩나물을 쓰지 않나요? 비빔밥 재료가 정해진건 아닌데 고사리, 호박, 도라지, 시금치가 많이 쓰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