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히 한 말씀 올립니다.
저는 종자기님이 누구신지 전혀 모릅니다.
님께서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라고 묻기에 제 소견을 적어봅니다.
저는 제 글이 성격상 이곳에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
올해부터 본글을 올리지 않기로 결심했고 실천중입니다만,
대신 웬만하면 긍정적인 답글을 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님께서는 <횡설수설>이라는 익명방의 성격에 대해
“실명으로 하기엔 좀 껄끄러운 얘기, 운영진에 대한 쓴소리나 직언 등은 익명성이 보장될 때에 보다 편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 글의 내용이 논리적이고 합당한 지적이어야 겠지요.” - 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저의 생각과 일부는 같고 일부는 다릅니다.
“실명으로 하기엔 좀 껄끄러운 얘기”에는 같은 생각이지만
“운영진에 대한 쓴소리나 직언 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글의 내용이 논리적이고 합당한 지적이어야”한다는 것에는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2. <횡설수설>은 문자 그대로
이치나 조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얘기나
조롱이나 비난 받을 자신의 개인사도 말할 수 있는 곳이기에
여울에서 유일하게 익명을 보장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논리적이거나 합당한 지적”이 아니어도 무방하며
“쓴소리나 직언” 등은 아니함이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글은 <토론방(가칭)>을 따로 만들어 토론이나 논쟁을 하면 되겠지만
이 또한 정치나 종교나 사회적 이슈는 다루지 않는 게 좋을 것이며,
개인에 대한 비방이나 모욕적인 발언은 삼가야겠지요.
(글 쓴 이의 의도가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물론 비난이 아닌 비판이나, 모욕이 아닌 충언은 고맙고 필요하지만요.
3. 왜 운영자가 <횡설수설>의 문을 닫고 실명으로 한다 했을까요.
저는 며칠 전까지는 그 글을 읽었지만
답글들이 점점 진부해지며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와
‘논쟁을 위한 논쟁’ 혹은 ‘배타적인 아집의 글’이라는 느낌이 들어
제 감정을 상하고 정신을 소모하는 것 같아 최근의 답글은 읽지를 않았습니다만,
운영자의 입장은 어떠했을까요?(논쟁의 대상이 아닌, 순수한 운영자의 입장을 말합니다)
제가 운영자라면 많은 고민을 하다가 역시 잠정폐쇄하는 쪽으로 기울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 읽은 글이 “이제 그만 합시다”라는 시의(時宜)적절한 내용이었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소모적이고 모욕적인(혹은 충고하는?) 글이
올라왔으리라 홀로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짐작과, 이를 근거로 한 저의 판단은 분명 저의 주관입니다만
제 나름으로는 최대한 객관으로 보려 노력하며 쓰는 글임을 밝힙니다.
운영자님은
자신이라는 개인에 대한 비판(충고? 비난? 비방?)을 배제하더라도
(타인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하더라도)
1) 소리여울에 해가 되고
2) 읽는 이들에게 정신적 피로감을 주고
3) 발전적이거나 참고할 만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음이 분명하며
4)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과히 유쾌하지 않은, 몸과 마음을 소모하는 이런 글은
운영자 자신 만의 판단으로
그것이 옳던 그르던, 맞든 틀리든
그것이 자신만의 철학이든 주관이든
삭제하거나 폐쇄하거나 실명으로 전환할 권리가 당연히 있습니다.
(설혹 비난이 따르더라도)
4. 모두가 옳습니다.
종자기님은 님의 주관으로 옳으며
운영자님은 그의 주관으로 옳으며
저는 제 주관으로 옳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쓰는 이 글을 포함하여, 이러한 글들은
국악이 좋고, 그런 사람이 좋고, 우리소리의 정보를 알고 배우고 싶어
들르는 많은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피곤하게만 할 것이니
비록 님께서 옳다하더라도 아쯤에서 멈춰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명확하거나 올바른 결론은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님의 글을 읽고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도 하는 사람임을 고백하며
님의 그런 마음을 존경하는 한사람이오니 행여 오해는 말았으면 합니다.
토요일, 저는 오후 네 시까지 근무합니다, 근무 중에 글을 써 조리가 없습니다만
제 뜻(혹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긍정적으로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주말, 봄꽃처럼 곱고 신선한 날 되시길...
또한 좋은 소리의 화음을 이루는 만남 있길 바랍니다.^^
첫댓글 오늘아침 라디오에서 이런이야기를 하더군요
(JTS법륜스님曰: 부부사이의 싸움과 승기를 잡으려는 모습을 보면서)
비난 보다는 충고가 좋고
충고 보다는 이해가 좋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는 그것이 욕심이다
나 자신도 바꾸지 못하는데 어찌 다른사람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라고요..
제일 먼저 나를 바꾸고나서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아야 할 듯 합니다..
빠달님의 글을 읽다보면
참으로 많은것을 배우고 갑니다..
어떤 공부를 해야
빠달님처럼 글을 쓸수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요...
보리님의 댓글에 얼굴이 발개집니다.(부끄러워라~~)
저는 책을 읽지도 않고 글을 쓸 줄도 모릅니다.
다만, 2974일 전의 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8년 전의 2월 11일, 제가 새로 태어납니다.
삼십년을 꼬박, 마지막엔 하루 세 갑의 흡연에 종지부를 찍은 날이지요.
정말 목숨을 걸고 이루어냈으니 과정이 평범할 수는 없었답니다.
첫 한 달간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리운 술은 독작을 하곤 하였는데
고독한 싸움에 지쳐 멍하니 있는데 곁에서 말을 거는 친구가 있더군요.
그 친구의 이름은 은행나무, 느티나무, 소나무였으며
시멘트 갈라진 틈의 민들레와 돌 틈의 들풀들이었지요.
봄에는 소주병 꿰차고 야산에서 진달래꽃 띄워 한잔하고
초여름에는 소주잔에 오동꽃 심어 꼴깍거리고
여름에는 소주에 소낙비 타서 마시며
천일을 지냈더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더군요.
삼천일이 가까운 제 일상의 단편 :
오늘, 이른 아침에 야산을 오르며
박새, 어치, 딱따구리의 사랑가 들으며
노란 경단으로 허공에 걸린 생강나무 만나고
하얀 냉이, 노란 꽃다지, 보라 제비꽃을 눈에 넣고
꽃을 빗는 현호색, 할미꽃, 진달래와 만날 약속을 하고 왔답니다.
저는 이런 친구들로 외롭지 않습니다.
아니, 외로워서 그런 친구들과 만나는 건가요?
내 발길이 닿는 어디나 그들이 있어
가만 이름을 부르면 사랑으로 다가오지요.
사랑, 넓히면 인간을 건너 자연까지 확장되고
자비, 키우면 너도 그도 다 나의 생명입니다.
사랑과 자비, 이 명제를 전면에 걸고 성공치 않은 종교는 없습니다.
보리님, 퇴근 준비하렵니다, 주말 평안을 빕니다, 사랑합니다.
빠달님의 훌륭하신 글을 읽고 그러면 안되지 싶었지만 저는 사랑이나 자비심이 절대 부족한듯 합니다. 죽을때나 그런마음이 생길런지 모르겠네요. 공부 많이 하겠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