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이 시를 읽으면 내 표정은 꼭 영화 '25시'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안소니 퀸의 표정처럼 변한다. 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웃을 수도 없는, 그래서 표정의 반쯤은 웃고 나머지 반쯤은 울먹여 결국은 이상야릇하게 일그러지는 그런 얼굴이 된다. 이 시를 쓴 사람이 천상병 시인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시와 그 사람을 마음 속에서나마 이어보려고 애를 쓸수록 더욱 그렇게 된다. 천상병은 평생 가난했다. 서울대 상대를 나오고, 더럽게도 동백림 사건에 얽혀 들어 컴컴한 곳에서 전기 고문도 마구마구 당했다. 그 때문에 정신도 오락가락했단다. 행방불명이 된 적도 있었다. 주위에서 천상병이 죽은 줄 알고, 유고시집도 출간해 버렸다. 이로써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의 유고집이 ‘세계 최초(?)'로 나오게 되었다. 한때는 행려병자로 수용되기도 했다. 그는 술을 하해와 같이 마셨다. 친구들에게 술값을 아주 조금씩 뜯어냈다. 아이스크림과 골목의 아이들을 좋아했다. 직장은 없었지만 아주 착한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인사동에서 '귀천'이라는 이름의 찻집을 운영한다. 지금도 그 찻집에 가면 천상병의 넋과 놀 수 있다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여러 해 전에 간이 나빠져서 죽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시를 썼다. 눈이 맑은 사람들이사 그런 사람이니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이런 시가 나올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 눈은 혼탁해서, 눈에 보이는 거라곤 돈밖에 없어서, 천상병처럼 살다간 사람 입에서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하는 말이 어찌 나올 수 있느냐고, 죽었다 깨도 안 나와야 한다고, 그래야 정상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천상병의 세상나들이, 그의 '소풍'은 그렇게도 아름다왔더라니, 어떻게 그이는 세상을 이리도 아름답게 볼 수 있었는지,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이유이다. 이런 영혼도 있는데, 나는 와 이래 천박시럽게 사노. 천상병은 좋았겠다. 돌아갈 하늘이 있어서, 하늘이 자기가 난 본향이며 '소풍'만 끝내면 집으로 돌아가듯 훌훌 털고 그냥 그렇게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서, "소풍 재미 있더냐?"라고 엄마가 물으시면 "응, 아주 재미있었어"라고 신나게 대답하는 열살박이 개구쟁이처럼 살 수 있어서, 천상병은 참 좋았겠다. 내 비록 세상을 ‘아름다운 소풍'이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하고 아직도 지긋지긋한 신병 교육대 연병장처럼 여겼던, 그리고 지금도 일상이 어찌 이리도 녹록하지 않은가 하며 살고 있는 속물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가끔 심신이 노골노골한 밤이면 아무도 모르게 혼자 부끄러워하며 이 시를 읽곤 한다. 세상에는 나같지 않은 깨끗한 사람도 많이 산다.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포근해진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시를 자주 써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같은 속물들도 믿고 의지하며 바라보고 살 곳을 마련하지 않을까 싶다. 그이들처럼 살지는 못할지라도, 오래 쳐다보기라도 한다면 어느덧 우리 눈이 조금은 그들을 닮아 맑아져 있지 않을까? 세월은 훌쩍 흘러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로 접어들었다. 사랑할 시간도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이렇듯 강팍한 세월이라니…. 누가 뭐라든 수만 권의 재테크 서적과도 내 감히 바꾸지 않을 천상병 시인의 이 시 제목은 '귀천', 즉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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