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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예수님께서는 유년과 청소년 시대를 한 작은 산촌에서 보내셨다.
이 세상에서 그분의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예롭게 되지 않을 장소는 하나도 없었다.
왕궁에서라도 그분을 손님으로 영접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유한 가정이나, 왕궁이나, 유명한 학자의 저택을 지나치시고, 궁벽하고 천시 받는 나사렛을 거처로 삼으셨다.
그분의 초기 생애에 관한 간단한 기록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 눅2:40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얼굴에서 비추는 햇빛 아래서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눅 2:52)
셨다. 그분께서는 정신이 민활하고 통찰력이 있으셨으며, 나이에 비하여 생각이 깊고 지혜가 있으셨다.
그러면서도 그분의 품성에는 균형 잡힌 아름다움이 있으셨다.
정신력과 체력은 아이의 성장 법칙에 따라 점점 발달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유년의 독특한 사랑스러운 기질을 나타내셨다.
그분의 자발적인 손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그분께서는 아무 것도 침해할 수 없는 인내와 결코 고결함을 희생시키지 않는 진실성을 나타내셨다.
69 원칙에는 반석과 같이 확고하셨지만 그분의 생애는 이기심 없는 인정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그분께서 능력을 발휘하시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주목하였으며
그분의 품성에 나타난 완전의 표적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기쁨으로 그 명랑하고 감수성이 많은 아이의 마음을 격려하기를 힘썼다.
그녀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만을 그의 아버지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하늘 천사들과 협력하기 위한 지혜를 받았다.
아주 옛날부터 이스라엘의 신실한 자들은 청소년의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주님께서는 아이들을 아주 어릴 때부터, 특히 하나님의 율법에 명시되고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위대하심에 대하여 가르치라고 명하셨다.
찬미와 기도와 성경의 교훈들은 지성이 뜨이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마음에 적응되도록 해야 할 것이었다.
부모는 그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표현인 것과 또한 그들이 율법의 원칙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의 심령에 새겨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였다.
가르치는 일은 주로 구두로 하였으나 청소년들은 또한 히브리 저술들을 읽는 법을 배웠고 양피지
두루마리에 기록된 구약 성경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 당시에는 청년들의 종교적 지도를 위하여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마을이나 도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곳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 교훈은 형식화되어 있었다. 유전이 성경을 대신하는 일이 많았다.
참된 교육은 청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행 17:27) 하도록 인도할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인 교사들은 의식에 대한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의 마음은 배우는 자에게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더욱 높은 학교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할
그런 요소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임으로 얻어지는 경험은 그 교육 제도에서 자취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외양적인 것들에 열중한 학생들은 하나님과 조용히 보낼 시간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였다
. 그들은 지식을 찾는 가운데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돌아섰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요긴한 것이 무시를 당하였다. 율법의 원칙들은 모호해졌다.
탁월한 교육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참된 향상에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랍비들의 훈련을 받음으로 청소년들의 능력은 억압을 당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제한을 당하고 좁아졌다.
70 아이 예수님께서는 회당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으셨다. 그분의 어머니가 최초의 인간 교사였다.
그분은 어머니의 입술과 선지자들의 두루마리로부터 하늘 사물에 대하여 배우셨다.
그분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바로 그 말씀을 이제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배우셨다.
유년기에서 소년으로 자라나실 때에도 그분은 랍비의 학교를 찾지 않으셨다.
그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얻는 교육이 그분에게는 필요하지 않았는데 이는 하나님이 바로 그분의 교사이셨기 때문이다.
구주의 공생애 동안에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요 7:15).
고 한 질문은 예수께서 글을 읽으실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랍비의 교육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지식을 얻으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처럼 성경에 정통하신 사실은 소년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부지런히 연구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분 앞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으로 채워진 큰 도서관이 펼쳐져 있었다.
만물을 만드신 그분께서 당신의 손으로 친히 땅과 바다와 하늘에 쓰셨던 교훈을 연구하셨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부정한 방법들을 떠나서 천연계로부터 학문적 지식을 얻으셨다.
그분께서는 식물과 동물과 인간의 생명을 연구하셨다.
그분께서는 유년 시대부터 오직 한 목적에 사로잡히셨는데 곧 남을 축복하기 위하여 생애하셨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원을 그분은 천연계 가운데서 발견하셨다.
식물과 동물, 생물의 생태를 연구하시는 동안 새로운 방법과 수단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번개같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분께서는 보이는 사물로부터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소개할 수 있는 예증들을 끌어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셨다.
공생애 동안 비유를 들어서 진리의 교훈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신 것을 보면 그분은 천연계의 감화에 대하여 얼마나
마음 문을 열어 놓으셨으며, 일상생활의 환경으로부터 영적 교훈을 어떻게 취하셨는지를 알게 된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 사물의 이치를 깨달으려고 힘쓰셨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천연계의 깊은 뜻이 그분께 펼쳐졌다.
하늘의 천사들이 그분의 수종자였으므로 거룩한 사상과 교제를 계발시킬 수 있었다.
지성의 눈이 처음 뜨일 때부터 그분께서는 영적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끊임없이 자라나셨다.
어떤 아이든지 예수님께서 지식을 얻으셨던 것처럼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늘 아버지와 친숙하게 되려고 노력할 때에 천사들은 우리에게 접근하고,
우리 마음은 연단되며 우리의 성품은 고상해지고 세련될 것이다.
우리는 더욱 우리 구주와 같아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천연계 가운데서 아름다움과 웅대함을 볼 때에 우리의 애정은 하나님을 좇아간다.
정신은 경외감에 젖어드는 한편 영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연계를 통하여 무한하신 자와 접촉함으로 활기를 얻는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은 지적·도덕적 기능을 계발시키며, 우리가 신령한 사물에 대한 사상을 계발시킴에
따라서 영적 능력은 굳세어진다.
71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과 조화된 생애였다. 그분께서 어렸을 때에는 생각과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러나 아무런 죄의 흔적도 그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께서 시험에서 면제된 것은 아니었다. 나사렛 사람들은 악하다는 평판이 있었다.
그들이 일반적으로 받았던 낮은 평판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
는 나다나엘의 질문에서 엿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품성이 시험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순결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항상 경계하셔야 할 필요가 있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싸움을 싸우셨으니 이는 그분이 아이 때나 청년 시대나 장년 시대에 있어서
우리에게 본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사단은 나사렛의 아기 예수를 정복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게 노력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늘의 천사들의 보호를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생애는
흑암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운 긴 투쟁의 생애였다
. 이 지상에 악의 더럽힘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은 흑암의 왕에게 불쾌하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 썼다.
인간의 어떤 자녀도 우리 구주께서 당하셨던 것처럼 그렇듯 치열한 시험과의 투쟁 속에서 거룩한 생애를 살도록
부르심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72 예수님의 부모는 가난하여 그들의 매일 수고에 의지하여 그날그날을 살아갔다.
예수님께서는 빈곤과 극기와 궁핍을 잘 아셨다. 이 경험이 그분에게는 한 방벽이 되었다.
그분의 부지런한 생애에는 시험을 이끌어 들일만 한 한가한 시간이 없었다.
부패한 교제를 위한 길을 터놓는 목적 없는 시간이 없었다.
그분께서는 할 수 있는 대로 시험하는 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으셨다.
돈이나 오락이나 또는 칭찬이나 비난도 그릇된 행동에 동의하도록 그분을 유인할 수 없었다.
그분께서는 악을 식별하는 일에 지혜로웠으며 그 악을 대항하는 일에 강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죄 없는 분이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거의 30년을 나사렛의 사악한 사람들 가운데서 사셨다.
이 사실은 흠 없는 생애를 살자면 장소, 재산, 번영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견책이 된다.
시험, 빈곤, 역경이야말로 순결과 확고부동함을 계발시키는 데 필요한 수련이다.
예수님께서는 시골집에 사시면서 가사를 돌보는 일에 자신의 역할을 신실하고 기쁜 마음으로 행하셨다.
그분께서는 전에는 하늘의 사령관이셨으며 천사들은 그분의 말씀을 이행하기를 즐겨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자원하는 종이 되시고 사랑스럽고 순종하는 아들이 되셨다.
그분께서는 기술을 배우고 몸소 요셉과 같이 목공소에서 일하셨다.
그분께서는 보통 노동자가 입는 검소한 옷을 입고 비천한 작업을 위해 내왕하면서 그 작은 마을의 거리를 오르내리셨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부담을 경감시키거나 수고를 덜기 위해 당신의 신성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유년과 청소년 시대에 일을 하심으로 심신이 계발되었다.
그분께서는 체력을 무모하게 사용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기에 알맞은 그런 방법으로 체력을 사용하셨다.
그렇게 하신 것은 각 방면에 최선의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분은 연장을 다루는 일에도 서툴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품성이 완전하셨던 것처럼 일꾼으로서도 완전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모본을 통해 근면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일은 정확하고 철저하게 행하여야 할 것과 이러한
노동은 고귀한 것임을 가르치셨다.
쓸모 있는 손이 되도록 가르치고 청소년들로 인생의 부담을 나누어지도록 훈련시키는 활동은 신체를 강하게 만들어
주며 모든 기능을 계발시킨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유익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어떤 일을 찾아서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노동을 축복으로 지정하셨는데 오직 부지런한 일꾼만이 인생의 참된 영광과 기쁨을 발견한다.
부모의 부담을 분담하면서 가사에서 맡은 일을 즐겨 감당하는 유년들과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신실한
보증으로 임한다. 이러한 자녀들은 가정으로부터 나가서 사회의 유용한 일원이 될 것이다.
73 예수님께서는 지상 생애 동안에 언제나 열심으로 일하셨다.
그분께서는 많은 것을 기대하셨으므로 많은 것을 시도하셨다. 공생애에 들어가신 후에 그분께서는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른다고 자칭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수고와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셨다.
많은 사람이 연약하고 일에 능숙하지 못한 까닭은 이러한 훈련을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귀하고 사랑스런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난관에 봉착하거나 곤경을 극복하여야 할 때에는 무기력하고
거의 무익하여진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과단성과 활력, 품성의 견고함과 능력은 그분께서 견디신 것과 같은 훈련을 통하여 우리에게서도
계발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받으셨던 은혜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구주께서 사람들 가운데 생애하시는 동안 그분은 가난한 자의 처지를 맛보셨다. 그분께서는 경험을 통하여 가난한 자의
근심과 고난을 잘 아셨으므로 모든 비천한 일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실 수 있으셨다.
예수님의 생애의 교훈에 대한 참된 개념을 가진 자들은 결단코 계급의 차별이 있어야 한다거나 부자는 유덕한 가난한
자보다 더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즐겁고 재치 있게 행하셨다.
성경의 종교를 가정 생활과 일터에서 실천하고, 세상의 사업에 힘을 기울이면서도 오직 일편단심 하나님의 영광만을
염두에 두는 것은 많은 인내와 영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돕는 자가 되신 것은 바로 이러한 환경에 있을 때이다.
그분께서는 결코 하늘 사물을 생각할 시간이 없을만큼 세상의 관심사에 몰두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자주 시편의 시와 하늘의 노래를 부름으로 마음속에 있는 기쁨을 표현하셨다.
동민들은 그분이 음성을 높여서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올리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분께서는 시와 노래로써 하늘과의 교통을 유지하셨다.
그분의 동료들은 일로 피곤하다고 불평할 때 그분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멜로디로 원기를 얻었다.
그분의 찬미 소리는 악한 천사들을 쫓아버리고 향연처럼 그 장소를 향기로 채우는 듯하였다.
그분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 자들의 마음은 그들의 지상의 나그네 생활에서 떠나 하늘 본향으로 이끌러 갔다.
74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치유하시는 은혜의 샘이셨다.
나사렛에서 은둔 생애를 하신 온 기간에 그분의 생애에서는 동정과 친절의 조수가 흘러나왔다.
연로한 자나, 슬퍼하는 자나, 죄 짐을 진 자나, 순진한 기쁨 속에서 즐겨 노는 어린이나, 숲 속의 작은 피조물들이나,
무거운 짐을 실은 참을성 있는 짐승을 무론하고 모두 그분이 계심으로 더 행복해졌다.
능력의 말씀으로 우주를 붙들고 계셨던 그분께서 상처를 입은 한 마리의 새를 살리시려고 몸을 굽히시곤 하셨다.
그분의 주목을 끌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봉사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와 같이 지혜와 키가 자람에 따라 예수께서는 더욱 하나님과 사람의 총애를 받으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모든 사람을 능히 동정할 수 있음을 보임으로써 모든 사람의 공명을 이끌어 내셨다.
그분을 둘러쌌던 소망과 용기의 분위기는 그분을 모든 가정에서 축복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종종 안식일에 회당에서 선지자의 교훈을 낭독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것을 듣는 자들의
마음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성경의 말씀에서 새로운 빛이 비춰 나오는 것을 느끼고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과시를 피하셨다.
나사렛에서 사시던 온 기간에 그분께서는 결코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높은 지위를 구하지 않았으며 아무런 칭호도 받지 않으셨다.
그분의 조용하고 단순한 생활, 그리고 그분의 유년 시절에 관하여 성경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까지도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아이의 생애는 조용하고 단순할수록 곧 인위적인 흥분에서 떠나고 자연에 조화될수록 심신의 활력과 영적
능력에 더 유리하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의 유년 생애의 교훈은 주목하지 않고 지나치면서 공생애 기간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 모든 유년들과 청소년들의 모본이 되신 곳은 바로 그분의 가정 생활에서였다.
그분께서 자기를 낮추사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가 비록 비천한 처지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생애의 평범한 일들 가운데서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명예롭게 하며 영광 돌리기 위하여 생애하셨다.
그분의 사업은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하여 수고하는 직공의 천한 직업을 신성하게 하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분께서 목수대에서 일하던 때나 후에 군중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던 때를 막론하고 똑같이 하나님의 사업을
행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비천한 가정에서 보이신 신실과 순종의 모본을 따르는 모든
청년은 하늘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해 그분에 대하여,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사 42:1)
고 하신 말씀이 자기에게도 해당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첫댓글 가짜예언자로군 내가 진리를 깨달았으니 예수님의 유년시절을 굳이 말하고 싶다면 나를 비슷했을것이다. 나는 진리를 깨달으면서 내가 예수님처럼 살아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한 성인스러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은 천사숭배적인 것이고 우리는 오직 말씀에서 진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속죄제단 말씀을 전하는 것은 잃어버린 어린양을 찾는 일입니다. 재림이나 바라고 예언이나 바라고 살았던 화잇씨는 마호멧일 뿐입니다. 예언자는 예언자를 알지 님처럼 일반사람은 알수가 없죠
분명히 경고하는 데 안식교는 정신차려야 한다 지금 예수의 어릴적 생애는 나랑 비슷하다 거의 똑같다 그래서 나는 많은 것을 유추해서 알 수 있다 님은 그런거 알면 안된다 마귀가 화잇여사에게 알려준것이다 거짓과 사실이 섞여있다 그러나 나와 예수님은 분명히 다르다 진리를 모르고 예수의 인간적인것을 알게 되면 가짜가 되는 것이다
님의 뭐가 예수님과 닮았습니까? 전혀 닮은 점이 없는데요
@하니발 잘보세요 저는 처음 기억이 어머니등에 업혀서 교회에간 기억이고 어린시절을 산동네에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연속에서 배우고 글씨를 배우고 처음 읽은 책이 성경이나 마찬가지로 생각자체가 성경으로 부터 시작하며 어릴적 선물받은 백과사전으로 동식물 자연 인간 특히 사람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고요 아버지나 어머니가 일을 해서 그 일은 항상 도우며 비슷하게 살아온 것입니다 비슷하죠 그리고 장남이죠 비슷하죠 비슷하지 않으신 하니발님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니고데모 그리고 저는 유아세례받지는 않았습니다 만 12살에 세례를 받았죠 12살에 하나님께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것입니다
@니고데모 님이 예수님을 닮은 것처럼 위장한다고 천국가는게 아닙니다
@하니발 난 위장한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겁니다 나는 예수님은 아니죠 그러나 가짜들을 섬기지는 않습니다
@니고데모 안봐도 님의 어린 시절이 뻔한데 뭘 그리 뻥을 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니고데모 예수님은 태어나 8일만에 할례를 받으셨는데 님도 할례를 받았어야죠
@하니발 할말이 없나보군요
@니고데모 님이 예수님을 눈꼽만큼이라도 닮으려면 죽어야죠
@하니발 이미 나는 내가 예수님과 닮은 어린시절을 자주 언급했고 화잇여사책은 본적도 없습니다
@니고데모 육체로 말하면 님은 마귀입니다
@니고데모 그렇게 육체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났습니까?
@하니발 님도 안식교로 바꾸셨나봅니다.
@니고데모 안식교가 문제가 아니라 님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하니발 님은 저로 인해 치매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저만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다른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되고 저를 통해서만 말씀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니고데모 님은 자신은 하나님이니 다른 사람은 잘못되었다라는 식이 옳은겁니까?
@하니발 저는 님이 틀린것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니고데모 님은 신이 아닙니다,
@하니발 내 살은 참된양식이고 피는 참된 음료라고 하죠 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야 구원받는 다고 전에 말했던 것처럼 내 살을 뜯어 먹어야 진리를 알게되죠 님은 열심히 제 살을 뜯어먹고 있죠
@니고데모 우리가 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하겠습니까?
@니고데모 님이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니발 님이 모르고 떠드는 것보다는 성경을 말하는 것이 옳은 것 뿐입니다
@니고데모 님은 성경도 없이 삶으로 말한건 잘못된거죠
@하니발 님이 예수를 안다고 말해도 안식교보다 몰랐잖아요 그러나 님은 나를 통해 예수님을 알았으니 다행인겁니다
@니고데모 님은 어릴때부터 읽었다는 성경은 위인전 이나 동화책이죠. 님은 성경 수준은 백지상태입니다.
니고데모님 장하십니다....
8일만에 할례한적 없고...
12살때는 물만뿌렸고...
땅의복을받아 삼성전자에 입사했고...
마귀를 영접하여 점을치면서...
스스로 작은예수라 하다니.....
님같은 분을 두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대적하는 자며 또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모든것과 숭배받는 대상위에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보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느니라"
진리를 믿지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자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거듭난자들은 ...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은자들로부터
부활하신것만 증거합니다
이것이 바울사도가 받은 복음입니다
디모데후서2:8~9
"나의복음대로 다윗의씨인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은자들로부터 일으켜 지셨음을 기억하라"
"이복음으로 인하여 내가 악을 행하는 자처럼
매여서 까지 고난을 받고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라느니라"
바울사도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시려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주님내안에
거듭난자들은 침례로 옛사람을 장사지내고
죽은자들이 지금 내몸을 대신해서
살고 있는상태입니다
내몸은 침례로 죽었으니...
지금살고 있는 몸은 죽은자들의 몸이
그리스도와 함께 내몸 대신 살고 있다
이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실때 죽은자들이 썩지않는
<<몸>>으로 부활하여
그들의 <<몸>>과 나의<<혼>>이
다시태어난 그리스도의<<영>> 과
연합하여 하늘의형상으로 변하게
되는것입니다
때문에 그분이 오실때까지
그리스도<<영>>과 구원받은 나의<<혼>>과
죽은자들의<<몸>>을 보존하기를 바라노라고
하신것입니다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란 뜻입니다
진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알텐데 아는 이가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