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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별명 중 하나가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이다. 좁은 의미에서 정치는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 관련한 활동이지만 사실 우리 삶의 많은 활동이 다 정치에 해당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이 정치 성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데, 과거엔 교육, 민족, 문화, 소득 등 사회적 요인에서 답을 찾아 왔다면 최근엔 신경과학에서 찾으려는 노력도 눈길을 끈다.
» 영화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 출처/씨네21 자료사진
20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은 영국 배우 콜린 퍼스(Colin Firth)에게 돌아갔다. 그는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에서 말 더듬는 왕의 역할을 맡아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줬기에 배우로서 큰 영예인 아카데미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2011년은 배우인 그에게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신경과학 분야의 경력이 추가된 해이기도 하다. 한 유명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에 제 3저자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콜린 퍼스의 실험에 참여한 보수당 하원의원 앨런 던컨과 노동당 하원의원 스티븐 파운드. 출처/BBC 콜린 퍼스는 사실 연기 외에 소수 종족의 권리 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정치적 망명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본국 송환을 반대하고, 공정무역 운동을 지지하고, 사회 현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등 정치·사회 분야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2010년 12월 <비비시(B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오늘(Today)>의 객원 편집위원이 그는 정치 성향에 따라 뇌 구조에 차이가 있는지, 나아가 뇌영상을 통해 진보 혹은 보수 성향을 예측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연구진의 도움으로 먼저 보수당과 노동당 하원의원 두 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1]
비록 두 의원이 상반되는 정치 성향을 갖고 있었지만, 두 명의 뇌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콜린 퍼스의 궁금증을 푸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두 의원의 뇌 구조에 설령 차이가 있더라도 이는 통계적 유의성을 갖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연구진은 추가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는 2011년 발표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콜린 퍼스와 같은 해에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도 대학원 시절의 연구로 <뉴로 이미지(NeuroImage)>라는 학술지의 논문에 제5저자로 이름(본명 Natalie Hershlag)을 올린 적이 있었던 점이다.[2] 2011년 우리는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연기와 신경과학 두 분야에 업적을 남긴 남여 배우의 탄생을 목격한 것이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뇌에는 어떤 일이?
콜린 퍼스가 저자로 포함된 영국 카나이(Kanai) 교수의 연구 결과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3] 연구진은 먼저 9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매우 진보적인지, 진보적인지, 중도 성향인지, 보수적인지, 매우 보수적인지 질문해 이들의 정치 성향을 파악했다. 이어서 이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한 뒤 특정 영역과 정치 성향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봤다.
그 결과, 먼저 참가자가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여길수록 전측 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d cortex)의 회색질 부피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수주의의는 우측 편도체(amygdale)의 회색질 부피가 증가하는 것과 연관성을 띄고 있었다. 연구 결과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앞서 소개한 두 하원 의원의 뇌영상 결과도 이와 일치했다.
» 진보적일수록 전측 대상피질의 회색질 부피가, 보수적일수록 우측 편도체의 회색질 부피가 증가하고 있음. 출처/각주[3]
12개국 88개 연구물을 종합 분석(메타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정치적 성향은 공포와 불확실성을 다루는 심리적 과정과 연관이 있다.[4] 즉 안정을 저해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진보적인지 혹은 보수적인지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연구 결과를 살펴보도록 하자.
전측 대상피질의 기능 중 하나는 불확실하거나 갈등이 있는 상황일 때 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안정을 위협하는 상황에 놓일 때 진보주의자는 발달한 전측 대상피질 덕택에 변화가 초래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갈등을 더 잘 견디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반면에 편도체의 기능 중 하나는 공포 처리인데, 이 편도체가 클수록 공포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5] 따라서 보수주의자는 변화의 기로에 설 때 큰 편도체로 인해 더 두려워하면서 기존 신념을 더욱 굳게 붙잡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반응-비반응 검사(Go No-Go Test)를 이용한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6] 반응-비반응 검사란 피검자에게 두 가진 신호 중 하나에만 반응하고 다른 하나에는 반응하지 않도록 지시한 다음에 행하는 검사 방법인데, 일반적으로 반응 신호가 비반응 신호보다 많이 주어진다. 따라서 반응 신호는 습관적이 되고 비반응 신호는 습관적 반응을 억제하도록 해, 반응 신호에 익숙해진 피검자에게 갈등을 일으킨다. 쉽게 말해 군대에서 얼차려를 줄 때 “앉아, 앉아, 앉아, 앉아”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서”하는 상황을 떠 올리면 된다.
연구에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모두 반응 신호를 유사하게 인식했다. 하지만 비반응 신호를 봤을 때에는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에 비해 실수를 덜 했고, 이 때 이들의 전측 대상피질의 활동량이 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늘 유지하던 입장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가 주어지면 진보주의자는 그 신호가 평소의 방식과 충돌할 지라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에 비해 보수주의자는 예전 방식을 고수하며 둔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2004년 미국 대선을 떠올려 보자.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조지 부시와 민주당 후보 존 케리가 설전을 펼친 쟁점 중 하나가 이라크 전쟁이었다. 조지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한결같은 태도로 지지하면서 존 케리가 입장을 번복했다며 말 뒤집기 선수(filp-flopper)라고 비난했는데, 이런 모습 역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변화”에 대처하는 특성이 나타난 것이었을 수 있다.[7] 물론 조지 부시 역시 다른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여러 번 말을 뒤집은 전력이 있음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2004년 미국 대선 때 존 케리의 말바꾸기를 공격하는 조지 부시 진영의 광고.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선율을 깔고서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존 케리를 공격함]
과학으로 정치 성향 풀어보기
인간의 많은 별명 중 하나가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 즉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가 인간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 정치는 특정 정치가나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 관련한 활동이겠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어릴 때 전교 회장을 선출하는 것, 회사에서 어떤 상사에게 줄을 설지 고민하는 것, 은퇴 후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누가 대장을 맡을지 결정하는 것 등등 우리 삶의 많은 활동이 다 정치에 해당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정치 성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데, 과거에는 교육, 민족, 문화, 종교, 소득, 지위 등 사회적 요인에서 그 답을 찾아 왔다면 최근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과학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 외부자극 민감, 변화에 유연 -진보 성향
그동안의 신경과학 연구에서 나타난 진보주의자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자. 이들은 외부 상황의 변화나 갈등 상황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이들의 유전자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0년 미국의 세틀(Settle) 교수는 국가 청소년기 건강추적조사(National Longitudinal Study of Adolescent Health; Add Health)에 등록된 2574명의 유전자 정보와 정치 성향을 살핀 뒤, 특정 유전자(DRD4-7R)가 진보주의와 연관이 높은 것으로 보고했다.[8] 단, 이들이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참여해 친구가 많다란 추가 조건이 필요했다.
DRD4는 뇌에서 신경전달물질 도파민(dopamine) 수용체의 한 아형을 만드는 유전자인데, 이 중 7R이라는 긴 형태의 대립 형질(allele)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기질(novelty seeking)과 연관되어 있다. 이런 기질이 두드러지는 사람은 단조로운 것을 잘 견디지 못하고, 늘 새롭고 특이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우며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띄기도 한다.[9]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이런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상황을 지속하고 싶어하는 보수 성향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 성향을 띄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만으로는 이런 경향을 다 설명할 수 없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청소년기에 활발한 사회 생활을 해 친구가 많을 때에만 진보 성향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 연구 결과는 흔히 “유전자가 정치 성향을 결정한다”로 뭉뚱그려져 소개되곤 하는데, 이는 논문의 결론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 말미에서 정치 성향과 관련된 “유전자가 발견되었다”가 아니라 “유전자와 환경이 상호작용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 DRD4-7R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친구가 많을수록 더 진보 성향을 보임. 출처/각주[8]
외부 자극에 민감한 진보 성향은 눈동자 반응 실험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도드(Dodd) 교수의 2010년 연구를 살펴보자.[10] 참가자 72명은 먼저 하얀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뒤 눈동자가 없는 간략한 형태의 얼굴을 응시했다. 잠시 뒤 화면 속 얼굴에 왼쪽 혹은 오른쪽을 쳐다보는 눈동자가 나타났는데, 참가자는 이미 눈동자 방향이 잠시 뒤 나타날 목표물의 위치와는 관련이 없다는 얘기를 연구진한테서 들은 상태이다. 이어서 화면에 목표물인 검은 점이 나타나면, 참가자가 가능한 한 빨리 컴퓨터 자판의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것이 전체적인 실험 과정이었다.
» 도드 교수 연구에서 참가자에 제시된 컴퓨터 화면의 순서. 출처/각주[10]
참가자는 눈동자가 바라보는 방향에 목표물이 나타날 때 이를 더 빨리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른 사람의 눈동자가 응시하는 방향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인 ‘응시 신호(gaze cue)에 대한 반응’ 때문이다.[11] “눈으로 말해요”란 말이 있듯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눈은 감정, 믿음, 바램과 같은 마음 상태나 관심의 방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언어 수단이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진보 성향의 참가자는 보수 성향의 참가자에 비해 컴퓨터 화면 속 얼굴의 눈동자 방향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진보주의자에서 응시 신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전통적으로 증세나 복지와 같은 주제에 비판적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자율성(autonomy)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보수주의자는 다른 사람의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외부 자극에 둔감하고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 무덤덤한데, 이런 경향이 눈동자 반응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는 응시 신호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보수주의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부 자극에 민감해 다른 사람을 많이 신경 쓰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흔히 정치 성향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고 하는데, 적어도 눈동자 반응에 있어서는 이 말이 과학적으로 사실이었던 것이다.
■ 공포·혐오에 예민, 자기집단 보호 -보수 성향
다음으로 그동안의 연구물에서 나타난 보수주의자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앞서 살펴봤듯이 보수주의자는 공포에 민감한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실제 신체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히빙(Hibbing) 교수의 2008년 연구를 살펴보자.[12] 연구진은 참가자 46명의 정치적 성향을 파악한 뒤 이들에게 위협적인 사진(예. 겁에 질린 사람의 얼굴에 붙어있는 매우 큰 거미, 얼굴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멍한 표정의 사람,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 열린 상처)과 그렇지 않은 사진을 보여줬다.
참가자가 사진을 볼 때 연구진은 이들의 피부 전도 반응(skin conductance response; SCR)을 측정했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면 긴장하면서 교감 신경이 활성화한다. 이로 인해 몸에 땀이 나면, 피부의 물기는 전기가 전달되는 속도를 빠르게 한다. 따라서 참가자의 피부 전도 반응을 살핌으로써 이들이 위협에 맞닥뜨릴 때 얼마나 공포를 느끼는 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연구 결과,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위협적인 사진을 볼 때 피부 전도 반응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위협적이지 않은 사진을 볼 때에는 정치 성향에 따른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이는 보주주의자의 공포에 대한 생리적 민감도가 높은 것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선거철에 종종 북풍 혹은 공안정국이 선거국면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는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국가안보란 위협 앞에서 공포에 예민한 사람들이 보수주의 아래 강하게 결집할 뿐만 아니라[13] 진보주의자마저 보수주의자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이다.[14]
» 군비 증강, 사형, 애국심, 이라크 전쟁 등을 찬성하는 보수 성향의 참가자들에서 위협적인 자극에 대한 생리적 민감도가 증가함. 출처/각주[12]
또한 보수주의자는 공포 외에도 혐오와 같은 부정적 감정에도 민감한 모습을 보인다. 2011년 네덜란드의 인바(Inbar) 교수는 25,588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얼마나 혐오에 민감한지(disgust sensitivity), 이들의 정치 성향은 어떠한지, 그리고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존 맥케인과 민주당 후보 버락 오바마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를 조사했다.[15]
그 결과 혐오스러운 자극에 예민한 사람일수록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염(contamination)이 보수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보이고 있었는데, 실제 오염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맥 케인 대신 오바마에게 자신의 표를 던질 가능성이 낮게 관찰되었다. 혹시 미국인만 이런 특성을 지닌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연구진이 121개국 5457명을 대상으로 한 추가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와, 혐오 민감도와 보수주의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일수록 혐오스러운 자극에 민감한 모습을 보임. 출처/각주[15]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혐오감은 예컨대 상한 음식을 먹은 뒤 발생할 수 있는 전염병을 피할 수 있게 하는 마음 진화의 산물로 여겨진다. 이런 심리적 반응은 내가 속한 집단과 풍습(예. 음식, 성, 청결)이 다른 외부 집단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 병원체와 같은 외부 요인으로부터 자기 집단을 지키며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혐오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자기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보수주의와 연결된다. 예를 들어 이들이 기존의 사회 풍습이 아닌 ‘동성간 결혼’에 직관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이런 성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16]
신경정치학의 실제 적용과 주의점
지금까지 여러 연구를 살폈는데 대부분 외국의 사례여서 그다지 와 닿지 않았을 수 있다. 친숙하고 공감하기 쉬운 국내 사례는 없을까? 아쉽게도 신경정치학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여서 관련 연구가 활발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케이비에스(KBS) <과학 카페>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17] 선거 약 한 달 전에 대선 후보 한나라당 이명박과 민주당 정동영의 열성적 지지자 30명에게 각 후보 사진을 보여주면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를 이용한 이들의 뇌 촬영이 시행되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정동영 지지자가 이후보의 사진을 봤을 때에 두드러지게 활성화한 부위는 편도체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편도체는 두려움이나 위협 등 부정적 감정과 연관된 부위이다. 이런 결과는 정동영 지지자가 이후보의 사진을 보면서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위험하고 내게 해를 끼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원초적 위협을 느낀 것으로 해석되었다. 반면 이명박 지지자에서는 전측 대상피질이 활성화했는데, 이 영역은 갈등과 불활실성을 처리하는 곳이다. 당시 이후보를 둘러싼 비비케이(BBK)와 관련된 논란이 한창이었는데, 이로 인해 이명박 지지자는 지지하면서도 많은 갈등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추론되었다.
» 왼쪽 - 정동영 지지자가 이명박 후보 사진을 볼 때 활성화한 뇌 영역. 오른쪽 - 이명박 지지자에서 활성화한 뇌 영역. 출처.KBS <과학 카페> 화면 갈무리
미국에서도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연구진이 뇌영상을 이용한 흥미로운 결과를 일간신문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바 있다.[18] 연구진은 당색이 옅은 부동층 유권자(swing voter) 20명을 대상으로 후보자 물망에 오르내리던 힐러리 클린턴, 밋 롬니, 프레드 톰슨, 존 에드워드, 버락 오바마, 존 맥케인에게 느끼는 감정을 조사했고, 또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후보자의 사진과 연설하는 장면을 볼 때 이들의 뇌가 어떻게 활성화하는지 살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으로, 오바마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차기 대선의 유력 후보로, 우리에게 친숙한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결과를 먼저 살펴보자. 그를 싫어하는 유권자가 그의 사진을 볼 때 전측 대상피질이 활성화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 영역의 기능이 갈등을 관찰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클린턴을 싫어하는 유권자는 사실 그를 좋아하려는 마음도 있어 고민 중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클린턴이 부정적 반응을 누그러뜨린다면 부동층 유권자의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 힐러리 클린턴(왼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의 사진을 볼 때 활성화한 전측 대상피질(오른쪽). 출처/Wikimedia Commons, 각주[18]
롬니의 경우에는, 다른 경쟁자에 비해 그의 연설 장면이 부동층 유권자의 뇌를 가장 많이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유권자가 처음으로 사진을 봤을 때 느낀 불안이 그의 연설 장면을 보면서 약해지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연구진은 유권자가 그를 자주 볼수록 점차 편안해질 것이므로 그가 잠재력을 지녔다고 분석했다. 2008년 예비선거에서 낙선한 롬니가 2012년 대선에서는 공화당 후보로 지명된 것을 보면 연구진의 예측이 정확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진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뇌 반응 자체를 별로 유발하지 않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받은 오바마와 맥케인이 정작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후보가 된 것을 보면, 연구진의 예상이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친숙한 사례에서 살폈듯이 신경정치학은 적절히 활용된다면 선거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어 보인다. 선거의 기본 전략은 전통 지지층의 표는 지키면서 중도 및 상대 지지층의 표를 뺏어오는 것이다. 집토끼를 잡는 방법과 산토끼를 모는 방법이 같을 수 없기에 유권자의 성향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보통은 여론조사나 과거 선거결과를 토대로 이런 작업을 시행하지만, 이에 더해 신경정치학의 연구결과도 유권자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뒤 맥락에 대한 고민이나 제한점을 살피지 않고 여러 연구 결과를 바로 적용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 특히 뇌영상학과 관련해 뇌의 여러 영역이 한 가지 기능만을 수행하지 않는 점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정 뇌 영역이 활성화했다고 해서 이를 꼭 특정 감정과 일대일로 연관 지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신경정치학은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학문으로 여겨짐과 동시에 일각에서는 쓰레기 과학(junk science)이란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앞서 살핀 <뉴욕 타임스> 기사에 대한 여러 신경인지과학자의 대응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3일 뒤 같은 신문을 통해 뇌 영역이 복합 기능을 수행함을 지적하면서 전문가 동료평가(peer review)도 이뤄지지 않은 결과가 기사로 다뤄진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19] 우리나라에서도 <과학 카페>의 실험결과가 관련 논문이나 후속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종종 언급되는데 역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언론이나 전문가가 정보를 전달할 때 진의가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체질이 따로 있다”라는 엠비시(MBC)의 2013년 뉴스를 떠올려보자. 뉴스에 소개된 논문의 주제는 “자기 이익 추구 성향과 상체 근력과의 상관 관계”였는데,[20] 뉴스에서는 이를 “보수와 진보 성향에 따라 차이 나는 알통 굵기”로 해석해 전달했다. 많은 시청자가 뉴스를 시청한 뒤 “정치 성향이 이렇게도 설명되는구나”라며 과학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근육질 김종국은 보수주의자, 말라깽이 한민관은 진보주의자?”하며 냉소적 실소를 보이지 않았던가.
» 알통 굵기로 보수와 진보의 정치 성향을 나눌 수 있다고 소개한 뉴스는 나로 하여금 “근육질도 아니고, 마른 체형도 아닌 나는 중도파?”라고 반문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음. 출처/MBC 뉴스 화면 갈무리
6·4 지방선거 앞두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
신경정치학은 정치학 또는 사회학의 영역이던 정치가 과학의 영역에도 들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 그 성과만큼이나 한계도 두드러지지만, 정치 성향과 관련해 우리 뇌가 어떻게 반응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보여주며 과거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뇌영상으로 진보 성향과 보수 성향의 특징을 들여다보려는 ‘과학적’ 세상에서, 우리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에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나? 혹시 관심이 없다며 투표하지 않거나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넘어가고 자신만의 정치 틀에 고착되어 있는 ‘비과학적’인’ 모습은 없을까?
1988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는 매사추세추 주에서 시행되던 ‘죄수 주말 휴가제도’를 이용해 민주당 듀카키스를 공격했다.[21] 이 정책은 듀카키스가 아닌 전임 지사가 도입한 정책이었고 실제 범죄 예방에도 효과적이었지만, 부시 진영은 이 제도가 죄수들이 사회로 나오는 ‘회전문’과 같아 안전을 위협한다며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펼친 것이다. 선거 결과 부시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당시 대선 투표율은 겨우 50 퍼센트에 불과했다. 더욱이 선거운동 기간 중 공약이 검증되지 않은 후유증으로 부시는 정작 재임 중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네거티브 선거가 결국 부시에게도 미국 국민에게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죄수 주말 휴가제도를 회전문에 빗댄 당시 공화당의 네거티브 선거운동 광고 영상]
진보 혹은 보수 성향에 따라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는 어떨까? 앞서 살펴 본 <과학 카페>에는 정동영과 이명박의 공약을 바꿔서 상대 후보 지지자에게 보여주는 실험이 있었다. 놀랍게도 지지자의 51.4 퍼센트가 바뀐 공약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 혹은 지지하는 정당이라는 틀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공약은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는 투표 전에 기존의 정치 성향에 따른 맹목적 지지가 아닌 객관적 잣대에 따른 비판적 지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묻지마 신뢰”는 “묻지마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김어준은 그의 책 <닥치고 정치>에서 “투표는 내 스트레스의 근원을 줄이려는 노력”이라 말했다.[22] 정치란 것이 허공을 맴도는 형이상학적 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모쪼록 많은 사람이 뜨거운 감성으로 이번 선거에 관심을 갖고, 차가운 이성으로 후보자를 평가해 의미 있는 투표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주]
[1] http://www.bbc.co.uk/blogs/legacy/today/tomfeilden/2010/12/
[2] Baird, A.A., et al., Frontal lobe activation during object permanence: data from near-infrared spectroscopy. Neuroimage, 2002. 16(4): p. 1120-5.
[3] Kanai, R., et al., Political orientations are correlated with brain structure in young adults. Curr Biol, 2011. 21(8): p. 677-80.
[4] Jost, J.T., et al., Political Conservatism as Motivated Social Cognition. Psychol Bull, 2003. 129(3): p. 33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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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킹메이커제작팀EBS, 킹메이커. 2012: 김영사ON.
[22] 김어준, 닥치고 정치. 2011: 푸른숲.
최강 의사, 르네스병원 정신과장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첫댓글 보수와 진보를 떠나 내성향이 어떻든 객관적인 사고를 하도록 노력 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글을 올립니다.
-주관적인 성향을 벗어나 올바른 객관성을 유지해야 대한민국공동체가 좀 더 성숙해 질 것 같아서 입니다.
우리나라엔 진짜 보수가 없으니 비교를 못할것 같네요. ㅎ
보수란....올바른 가치관을 지키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람들이지 똥고집에 다른 사람들을 힐난이나 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함다. 전 제가 보수도 진보라고도 생각 해 본 적이 없습니다.
B형이란 혈액형 덕분인지 아님 조상대 유전 덕분인지....단지 잘못된걸로 아부하여 출세하지 못할 뿐 입니다. 기회는 있었지만요.
진짜 보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진짜 진보도 없죠. 60년대의 케켸묵은 이데올로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일부 사이비 진보야말로 말 그대로 수구 꼴통이고.. 세상이 변화된 것을 받아들일줄 몰라 외국인 혐오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진보도 가짜 진보고.. 내 생각과 다르다고 쌍스럽고 혐오스런 언사로 남을 비난하는 날나리 진보도 엉터리 진보니까요...
맞습니다 ㅎ. 친일매국노들이 보수행새하는것도 그렇고 진보행세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 모두 가짜들이죠. 그런데 보수 진보를 꼭 나눠 편갈라 싸워야 할까 생각도 해봅니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갈라야죠. 보편적 사고에 기인해서
재밌는 연구네요 사실 진보나 보수나 종이한장 차이라고 봅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순식간에 바뀔수도 있죠
더큰건 양쪽모두를 막론하고 남의 부정은 못본척해도 자신의 사소한 불이익은 못참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이게 문제가 된다고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