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찌하리 경기의 핸디가 자리를 잡았는데, 그러면서 새로운 혼란이 벌어졌다.
순장식 당구에서 100점을 치던 사람이 이찌하리 경기에서는 20점을 치게되는데, 이 사람의 핸디를 100점이라고 칭하는 것이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이상했던 것이다.
사실 이때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찌하리라는 일본 말의 뜻을 모르는 상황이었고, 또 1할이라는 뜻을 알아도 이미 2할을 치는 상황에서는 그것을 연결하여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았다.
'이찌하리 경기는 한번 득점을 하면 10 점으로 세는 것이고, 순장식 당구는 이찌하리 경기의 반을 친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해를 하였다.
순장식 당구는 100점, 이찌하리는 200 점.
이렇게 통용이 되었을 때 두 가지 경기의 핸디가 분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냥 200점이라고 해도 어느 경기냐에 따라 다른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표현되는 수치에서 반, 혹은 두 배라는 단순성 때문에 우리 머리 속에서는 여전히 동일한 핸디로 자리하였기에 혼란은 매우 컸다.
그러다가 순장식 당구가 점차 인기를 잃어가고 이찌하리 경기가 주종을 이루게 되자, 이 혼란은 저절로 정리가 되었다.
1득점을 하면 10점으로 세어간다는 것으로.
그 동안에 3쿠션 경기는 특정층에서 유지가 되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돈 내기 당구의 형태였기에 수행능력치와는 무관한 아주 다른 형태의 핸디캡이 통용되었다.
뱅크샷을 2득점으로 인정하는 독특한 계산법에 기반을 둔 이 핸디캡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을 것이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물론 3쿠션 경기에서 돈내기 당구가 아닌 일반 방식의 경기도 없지는 않았다.
1980년대 초까지는 뱅크샷을 2점으로 하여 대개 이찌하리 경기 핸디의 절반을 치는 방식으로 경기의 핸디를 정하였다.
그러다가 61.5 밀리미터의 3쿠션 공이 유행하면서는 별도의 핸디 체계가 자리하였는데, 이찌하리 경기로 300점 정도의 실력이면 12점~14점을 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때 12점, 13점은 120 이나 130으로 표현되지 않았으며, 12점 득점을 이루는 조건(가령 몇 번의 공격이라거나)도 전혀 정해진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해진 등급은 절대적인 수치인 수행능력치에서 벗어나 상대적인 개념의 핸디캡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전적으로 3쿠션 경기를 하는 층이 늘어나면서 기술이 발전하고 당구 용품이 개선되면서 핸디가 대폭 상승되어 1990년대 중반 경에는 300점 정도면 3쿠션 경기도 30점을 치는 정도까지 올라갔다.
그렇다고 3쿠션 30점 경기가 이찌하리 300 점을 치는 경기 시간이나 이닝수와 동일한 것은 아니므로, 상대적 개념의 핸디캡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찌하리 경기의 핸디와 거의 분리가 되었다.
근래 들어 국제식 대대가 보급되고 유럽 당구계에서 활용되는 에버리지 개념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바이다.
이 에버리지는 우리 나라 당구에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핸디캡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상대적 개념의 핸디캡으로 굳어가던 핸디에 에버리지가 가미되면서 다시 수행능력치의 기능을 되살린 것이다.
지역에 따라, 그리고 클럽에 따라 25 이닝, 30 이닝, 35이닝, 심지어 40이닝 등 다양하기는 하지만 일정한 이닝에 완수할 수 있는 점수가 핸디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조금 먼 길을 돌아오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핸디의 역사와 변천 과정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당구의 핸디라는 것에는 절대적인 수행능력치의 개념과 상대적인 핸디캡의 개념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핸디는 앞쪽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머릿 속이나 감정은 그것과 또 다르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용하는 핸디를 자꾸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내가 어느 정도의 수행능력을 보이느냐보다는 내가 누구와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하고, 그것도 상대보다 많은 득점을 올리는 능력 대결 보다는, 서로 다르게 정해진 점수에 누가 먼저 도달하느냐 다투는 게임의 승부를 원한다.
그럴때 상대방의 핸디를 올려서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결과를 낳는다.
상대를 좋게 봐주는 인격자가 될 수 있으며, 핸디가 높아진 그 상대와의 경기에서 한결 수월할 것이고, 또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내 핸디가 높게 평가되어 돌아온다.
좋은 일이다. 사람이라면 이 좋은 결과에 초연하게 자유롭기 어렵다.
혹은 이와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어떤 쪽이건 한번 흐름을 타면 순환 상승 효과를 가져온다.
그 결과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다.
'대대 32점 치면서 조심스럽게 사용하던 큐 입니다.' 중고 큐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문구이다.
32점이라... 어느 정도 수준일까?
에버리지 0.8?(만일 40이닝 기준 32점이라면), 아니면 1.3?(25이닝 기준이라면)
어느 쪽일까? 이 글을 쓴 사람은 어느 쪽으로 보이고 싶어할까?
'그 동네, 당구 세지, 거기 핸디가 얼마나 짠데.' 이런 말도 들린다.
핸디가 짜면 실력이 좋은 것일까?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그래도 핸디는 이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자꾸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뀌어간다.
점점 복잡해지고, 헝클어지고, 믿을 수 없게 되어간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런데 이런 핸디가 왜 필요할까? 우리는 왜 핸디를 사용할까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상대방과 승부에서 이기고 싶고, 또 게임비를 낼 사람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과시라는 말로 압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결론으로 쓰고자 한다.
핸디를 버리자.
상대방과 승부를 다투지 말고, 당구 실력을 겨루자.
게임비는 똑같이 지불하자.
그리고 남에게 과시하지 말고 내 자신의 만족을 찾자.
그러면 될 것 같다.
그래도 꼭 핸디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상대적 개념의 핸디캡이 아니라, 절대적인 능력치인 에버리지를 사용하면 될 일이다.
애우 짠, 혹은 약한 19점이라는 말 필요없다. 인천 22점, 부산 30점? 역시 필요 없다.
에버리지 0.65 라는 표현이면 다 될 것이다.
서화.
*----------------------------
우리 클럽에도 제안을 하고 싶다.
핸디 표기 안하면 어떨까?
어짜피 우리 클럽은 에버리지를 기록하며, 경기 승패로 회비를 뒤집어 쓰지도 않는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경기는 누구나 동일한 점수를 가지고 하면 될 것이다.
유럽 당구에서 하는 대로, 그리고 다른 종목의 운동경기에서 하는대로 말이다.
가령, 모든 경기를 22점 경기로 할 것을 제안한다.
상황에 따라 상호 협의에 의해 15점 경기나 30점 경기를 하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두 경기자가 동일한 점수로 경기를 해야 한다.)
매달 에버리지를 통해 수준이 나타날 것이며, 몇점 치는 선수라는 표현 필요 없고, 핸디가 몇점인데 그에 비해 에버리지가 어떻다는 말 더이상 안 해도 된다.
자기 능력에 따라 승률이 결정될 것이며, 승률이 어떻다고 핸디를 조정하느니 마느니를 이야기 할 필요 없다.
클럽에 새로 온 회원도 몇 점 치는지 따지지 말고 아무 생각없이 22점으로 동일하게 경기하면 된다. 그러면 조만간 에버리지 어느 정도인 선수라고 확인된다.
대회는 무슨 재미로 치르냐고?
승부라는 것은 예상과 다르기 때문에 여전히 재미 있을 것이며, 그래도 초심자에게 동기부여가 더 필요하다면 평소 에버리지를 기준으로 거기에 비해 어느 정도를 달성했는지를 가지고 상을 주면 될 것이다.
이것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임을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같이 나누다보면 언제인가는 불합리한 핸디를 던져버리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충분히 보상이 되기에 썼을 뿐이다. ^^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멋진글이며 합당한 글이라 여겨집니다^^
3부작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능력치에 해당하는 과학적으로 좀 더 의미있는 수치는 에버리지입니다. 감자를 예로 들면 감자의 가격은 핸디에 감자의 무게측정값이 에버리지에 해당한다고 할까요. 그런데 능력치는 시시각각 또 상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에버리지=능력치로 결론 짓기도 역시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처음 만난 사람(아마추어)들이 합리적으로 경기를 갖는 통일안을 만들기위해 궂이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저도 서화님과 같이 에버리지를 택할 것 같습니다. 에버리지 0.5인 사람과 1.0인 사람이 시합한다면 핸디가 비율에 맞게만 결정되면-15대 30 이든 7 대 14이든-그나마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화님의 제안은 매우 파격적으로 보여서 저는 찬성입니다. ^^
잘읽었습니다....22점제..경기...정말 맘에 듭니다 ㅎㅎ
잘읽었습니다...에버리지로 자신의 실력을 말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저도 한때 에버리지에 많이 목매고 살았는데 제 경우에는 승률이 젤 중요하더라구요 ㅡㅡ; 시합을 나가다보니 에버 2를 쳐도 뒷공 잘줘서 지면 아무 의미없더라구요 ㅎㅎㅎ...
22점제 찬성합니다...^^ 게임이 회원간에 재미있을 것 같네요.
일단은 제안을 받아 들이겠습니다....
운영자 입장에서는 이에 따른 부작용도 염려하지 않을수 없는데,
공론화 시켜서 회원들의 의중도 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어쨋든 이제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겁이 나는게 사실입니다.
얼른 참신한 후계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잘 읽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한글입니다. 당구실력만큼이나 생각도 짧아서... 무엇이 좋은지를 판단하긴 어려우니... 저는 열심히 당구실력을 키우는데 정진하겠습니다.
두가지경기타입을 다 적용하기는 힘든가요?
어떤 방식이던지 전 재미있게 칠수있습니다 ㅎㅎ
저두 좋은것 같은데요,,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실지,,,,
동일한 점수내기 찬성입니다. 그래야 각 플레이어가 자신의 실력이 어느정도위치에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을듯 합니다. 실력이 좋은사람이 승부에서 이기는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우선 찬성하며 의견은 생각을 다듬어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