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문헌의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신라인의 구성은 여러 민족이 여러 시기에 걸쳐 혼합되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한-신라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살면서 수많은 고인돌을 남겨 놓은 토착 농경인들, 기원전 3세기 중에 진(秦)나라의 학정을 피해 이민해 온 사람들, 기원전 2세기에 이주해 온 고조선의 유민들, 고구려에게 멸망당한 낙랑(樂浪)에서 내려온 사람들 등이다.
그런데 4세기 이후 한반도 남부의 사정은 급변하고 있다. 삼한(三韓)은 사라지고 백제와 신라, 가야연맹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신라는 356년 내물왕 즉위 이후 중국에 사신을 보내는 등 고대 국가의 모습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내물왕 26년(381) 신라는 북중국의 유목민족 국가 전진(前秦)에 사신을 보낸다. 삼국사기에는 이때 전진의 황제 부견(符堅)과 신라 사신 위두(衛頭) 간의 대화가 기록돼 있다.
‘부견이 위두에게 묻기를 “그대의 말에 해동(海東:신라)의 형편이 옛날과 같지 않다고 하니 무엇을 말함이냐”고 하니 위두가 답하기를 “이는 마치 중국의 시대변혁·명호개역과 같은 것이니 지금이 어찌 예와 같을 수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이 기록에 대해 지금까지는 신라가 내물왕 시기에 들어 나라가 크게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답변이라고 풀이해 왔지만 일반적으로 시대변혁·명호 개역은 단순히 나라의 체제가 정비된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큰 격변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이전까지의 석(昔)씨 임금 시대가 끝나고 외부세력이 정권을 장악해 모든 면에서 과거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음을 의미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내물왕 이후 석(昔)씨는 신라 역사의 주류에서 사라진다. 왕은 물론 왕비나, 재상, 학자, 장군 가운데서 석씨는 찾아볼 수 없다.
신라 김씨보다 역사가 오래된 석씨지만 현대 한국사회에서 석씨는 대단한 희성인데 이는 내물왕 집권기에 석(昔)씨가 철저히 제거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이 경주의 적석목곽분 출현을 마립간시대에 북방기마민족이 신라지역에 들어와 지배계급이 됐음을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 증거로 제시하고 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필자: 이종호 박사 -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 제출상을 수상하고 해외유치 과학자로 귀국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현대과학으로 다시 보는 한국의 유산 21가지>,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공저), <피라미드 과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