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범회장님의 카톡에서]
퀵! 꼭 읽어야 하는글
📢 샛문과 여백
"도둑은 잡지 말고 쫓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행록에도
"남과 원수를 맺게 되면
어느 때 화를 입게 될지 모른다."
라고 했고
제갈공명도 죽으면서
"적을 너무 악랄하게 죽여
내가 천벌을 받는구나..."
라고 후회 하며
"적도 퇴로를 열어주며
몰아붙여야 한다."
는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집에는 대문이 있고
뒤쪽이나 옆모퉁이에
샛문이 있는 집이 많았습니다.
우리 집에도
뒤뜰 장독대 옆에
작은 샛문이 하나 있어서
이곳을 통해
대밭 사이로 난
지름길로 작은 집에
갈 수 있어서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이 샛문은
누나들이나 어머니가
마실을 가거나 곗방에 갈 때,
그러니까
어른들 몰래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배려였는지도 모릅니다.
옛날 어른들은 알면서도
눈감아 주고
속아준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여유"이고
"아량"일 것 입니다.
제가 열세 살 때의 일입니다.
황금 물결 넘실거리던
가을 들녘은 추수가 끝나자
삭막하였지만
넓은 마당은 다니기도 어려울 만큼 나락베눌(낟가리)로
꽉 차 있었습니다.
하늘 높이 쌓아놓은
나락베눌은
어린 우리들이 보기에도
흐뭇했는데
여름내내 땀흘리며
고생하셨던 어른께서는
더욱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신나게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습니다.
늦가을 어느 날 타작을 하며
나락을 마당에 쌓아놓고
가마니로 덮어놓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수선한 소리에
나가보니
거위 한 마리가 목이 잘린 채
대문 앞에 죽어 있었습니다.
원래 암놈 거위는
목소리가 크고 맑아 소리를 쳐서
엄포를 놓거나
주인에게 구호 요청을 하고
숫놈 거위는
허스키한 목소리 를 내며
괙괙 소리를 지릅니다.
목을 길게 빼고는
날개를 치면서
덤벼들어 물어뜯는
고약한 성질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이 무서워서
우리 집에는 얼씬도 못했습니다.
웬만한 개보다도
사나워 집 지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 무렵은 식량이 귀하던 때라
도둑이 많아 개나 때까우 (거위)를
키우는 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웬 일인지
그날 밤에
도둑이 든 것입니다.
때까우가 도둑놈의
바짓가랑이를 물자
낫으로 목을 후려쳐 죽이고
나락을 퍼담아
가지고 간 것입니다.
그날 밤은 초겨울 날씨로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웠습니다.
마침 싸락 눈이 내려
발자국이 눈 위에
선연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
강아지 마냥
종종 걸음으로
쫓아갔습니다.
발자국은
고샅(마을의 좁은 길)을 지나
맨꼭대기 오두막집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서 발자국을 지우며
내려오시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아버지는
호랑이같이 무섭고
급한 성격이라
당장 문을 차고 들어가
도둑의 덜미를 잡고 끌어내서
눈밭에 팽개치거나,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멍석말이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경찰서로 끌고가서
곤욕을 치르게 하거나
형무소를 보냈음직한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뒷짐을 지고
돌아 오셨습니다.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런 짓을 했을라고..."
어린 소견이었지만
여름내내 불볕 더위 속에서
땀흘리며 농사지어
탈곡해 놓은 나락을
훔쳐간 도둑을 당장
요절이라도 냈어야
평소 아버지다운
위엄이 설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아버지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음의 여유"이고
"지혜"라는 것을!
"도둑은 잡지말고 쫓으라." 는
말씀도 함께...
그 날 이후 H씨는
평생토록 원망과 원한 대신에
나락 한가마니 빚을 지고
아버지 에게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하며
궂은 일도 마다치 않고
도맡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 일은 꼭 생각같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치나 원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있다.
남의 사소한
실수 같은 것을 덮어주지 못하고
몰아세우고 따지는
우를 범하지 말아라.
사람을 비난할 때도
상대방이 변명할 수 없도록
무차별 공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상대방이 달아날
구멍을 항상 조금은 남겨 놓아라..."
현대를 사는 우리도
"샛문"과 "여백"의
아름다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동양화 에서
여백은 무한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여백은 보는 이의 몫으로
구름, 새, 꽃, 나아가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도
그려 넣을 수 있는
"여유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수묵화의 넉넉함과
아름다움을 즐기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데는 인색합니다.
항상 위만 쳐다보고
달려가다 보니 고달프기도 하고 외롭습니다.
"적정한 소유가
마음의 평안을 주고
여유를 가진 삶이
풍요를 누린다."는 진리를
우리는 대부분
지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너무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은 타인이
접근하기가 부담스럽고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공자는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남의 옳고 그른 것을
계속 살피다보면
친구가
남아 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약간 엉성하고 빈 틈이
있어야 함께
어우러지기도하고
서로 동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요즘 입니다.
"돈을 귀히 여기는 자는
재물을 가지나,
사람을 귀히 여기는 자는
천하를 얻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도
귀한 사람과 주위에서
존경받는
오늘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고영기박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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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의 급소+
제2차 世界大戰이 끝난후 영국에서 하느님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회의가 있었다.
이를 증명하기위하여 천문학 박사와 의학 박사 두사람이 강연을 하였다.
먼저 천문학 박사가 강연을 시작했다.
"얼마전에 저는 최신형 망원경을 갖게 되었는데,
이 망원경은 현재 우리가 발견한 가장 멀리 있는 별도 볼 수 있는 고성능 망원경입니다.
그런데 이 망원경으로 아무리 천체를 살펴도 하느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하느님이 계시다면
하느님의 옷깃이라도 보여야 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하느님이 없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자 많은 청중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맞아! 맞아!
하느님은 없는게 틀림없어!''
두번째 강연자는 의학 박사였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평생을 의학을 연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도무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수술했으며 시신을 부검해 본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번도 영혼을 본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영혼이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살속에 있습니까?
뼛속에 있습니까?
아니면 핏속에 있습니까?
역시 그렇군 기독교인들이나 성경은 다 거짓이야!
도대체 영혼이 어디에 있단말이야?"
수많은 청중이 큰소리로 환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연이 끝나고 사회자가 청중을 향해 질문을 하라고 했으나 모두들 잠자코 있었다.
사회자는 "그러면 이것으로 하느님이 없다는 것이 증명 되었으므로 회의를 마칩니다. 라고 말했다.
그때 맨앞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제가 할말이 있습니다" 라고 하더니 연단위로 올라갔다.
할머니는 먼저 천문학 박사께 질문을 했다.
"박사님. 박사님이 갖고 계신 그 망원경은 아주 고성능 망원경이죠?
예. "무엇이든 잘 보이지요?"
예. "그렇다면 바람도 보입니까?"
바람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바람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어떻게 있습니까? 보이지도 않는데."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하는 것은 옳은 말입니까?"
"또 바람도 볼 수 없는 망원경을 갖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
천문학 박사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곧이어 할머니는 의학 박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박사님은 아내가 있습니까? ''
''예"
''자녀도 있습니까?''
''예"
''그러면 박사님은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십니까?''
"예
저는 제아내와 자식들을 무척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칼을 가져오세요.
내가 박사님을 해부해서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어디에 들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그 사랑이 "살"속에 들어 있습니까?
아니면 "뼛"속에 들어 있습니까?
아니면 "핏"속에 들어 있습니까?
도대체 박사님이 말하는
"사랑"은 어디에 들어 있습니까?
그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하느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였던 이 회의는 한 할머니의 급소를 찌르는 송곳 같은 질문으로 말마암아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회의가 되고 말았다.
ㅡ 너무 좋은 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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