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단풍 구경하기에 딱이지만 음악을 듣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하긴 가을이란 단어에는 음악뿐 아니라 뭐를 갖다 붙여도 다 어울린다. 문득 가을 노래 몇 곡을 떠올려 본다.
패티김의 구월의 노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최양숙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그리고 며칠 지나면 이용의 그 유명한 노래 시월의 마지막 밤이 각종 가요 프로에서 흘러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 제치고 가을 노래 하면 심수봉의 <올 가을은 사랑할 거야>를 꼽는다. 내 누이가 이미자 다음으로 좋아하는 가수가 심수봉이다. 누이는 유행가란 무조건 슬퍼야 한다고 했다.
"슬프지 않으면 그것이 노래냐?" 그래서 이미자 노래도 동백 아가씨, 여자의 일생 , 기러기 아빠를 즐겨 부르고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를 좋아한다.
유명도로야 이미자가 한국 가요의 여왕이기에 심수봉보다는 윗길이지만 인생을 헤쳐온 사연으로 치면 심수봉이 훨씬 드라마틱하다. 예전부터 내가 유독 심수봉에게 관심을 둔 이유이기도 하다.
심수봉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피아노를 치며 노래 <그때 그 사람>을 불러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였다. 심사위원들은 당시의 트렌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수봉을 외면했다.
본선에서는 수상하지 못하고 탈락했지만 대중들은 그녀의 노래에 환호했다. 보기 드물게 뽕짝을 부르는 대학생 싱어송 리이터가 심수봉이었다. 이후 심수봉은 유명한 무명 가수로 활동을 한다.
심수봉은 10.26 사태로 세상을 떠난 박정희 대통령과 뗄 수 없는 사람이다. 1979년 10월 27일 아침에 나는 박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때 나는 부천의 한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는 대입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는데 우리에게 구내식당처럼 밥을 해주던 작은 식당이 공장 건너편에 있었다. 식당 아줌마가 테이블에 반찬을 놓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대." 당시 10대 후반인 나는 갑자기 쌀쌀해진 그날 날씨만큼이나 가슴 한 켠이 서늘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 식사 중에 실없는 농담을 하던 형들도 아무 말 없이 밥만 먹었다.
심수봉이 만찬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한참 나중에 알았지만 심수봉은 이 사건 이후 가수 활동을 금지 당한다. 노래 그때 그 사람이 한창 유행을 할 때였지만 심수봉은 서서히 잊혀졌다.
이듬해 심수봉은 활동을 재개한다. 바로 그 노래가 <순자의 가을>이다.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도 불렀고 <아낌없이 바쳤는데>라는 영화 주제곡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나는 심수봉이 출연했다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이 노래는 선율도 좋지만 특히 가사가 너무 시적이다. 심수봉 작사 작곡인데 가사가 일반적인 유행가와 달리 한 편의 아름다운 시다.
그런데 당시 대통령 부인 이름이 순자라는 이유로 이 노래는 금지곡이 된다. 당연 각 방송국에서 심수봉을 외면하면서 심수봉의 시련은 계속된다. 심수봉은 이 노래가 묻히는 게 너무 아까웠다.
심수봉은 노래 제목을 <올 가을은 사랑할 거야>로 고친 후 가수 방미에게 부르게 한다. 심수봉은 도입부의 코러스로 나오고 피아노 연주도 직접했다. 당시 노래를 들으면 심수봉 목소리가 나온다.
방미가 부른 이 노래는 히트를 친다. 한동안 방미 노래로 알려진 이 곡은 나중 심수봉이 다시 불러 본 주인을 찾는다. 심수봉이 1984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재기에 성공한 이후다.
가사 일부를 고치고 다시 편곡한 곡이지만 올 가을은 사랑할 거야는 가을이라는 계절과 심수봉의 애절한 음색이 아주 잘 어울리는 노래다. 나는 제목도 원제인 순자의 가을로 돌아왔으면 한다.
시대에 따라 이름도 유행이 있다. 지금이야 이런 이름 짓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예전 여자 이름엔 子가 흔했다. 열에 둘셋은 O자였다. 내 친구 중에도 순자는 없지만 영자, 숙자, 선자, 경자 등이 있다.
언제부터 이런 이름들이 촌스럽다고 불리기 쑥스러운 이름이 됐을까. 예명을 쓰는 연예인들 본명 중에도 자가 수두룩하다. 그 O자들은 연예인이 되기 위해 부모가 준 이름을 바꿔야만 했다.
이름은 죄가 없다. 그래서 순자도 죄가 없다. 이 땅의 수많은 순자들이여 부끄러워 마시라. 나는 노래 순자의 가을이 좋다. 심수봉의 노래가 좋다. 이 가을이 좋다.
첫댓글
심수봉
본명이 심민경
민경이란 이쁜이름 대신 수봉이란 예명을 누가 지어주었단 말인가요
한자 이름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요
지킬 수
산봉우리 봉
산봉우리를 지킨다는 뜻인거 같은데
5천년 지독한 가난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고 잘살게 기반을 닦아준 장엄한 산봉우리 박정희
그 박통을 총알로부터 수호하지는 못했지만
박통의 외로운 심기를 노래로 지켜 주었던 심수봉
참고로
남대문 옆 도코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알바로 노래부르던 심민경을 나훈아가 발견하여 연예계에 발탁이 되었다 하는군요
진정 인간은 이름대로 살아가는 것인가요
심수봉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군요.
수봉이란 이름은 어머니가 역술인에게 문의해서 지은 거라고 하더군요.
도큐호텔에서 노래 부르는 심수봉을 보고 나훈아가 가창력을 인정했다니
고수가 알아본 그 실력이 어디 가겠는지요.
팔자 때문인지 아니면 개명한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심수봉이 참 특이한 삶을 산 건 분명하네요.
올가을에 사랑할 거야ㅡ는
방미보다는
심수봉이 불러야 제 맛이 나죠ㆍ
그런데
저는 올 가을이 오기전에
ㅡ사람 마음에 욕심을 두지 말자ㅡ를
깨달아 버렸으니
사랑은 하되
갈테면 가라지입니다 ㅎㅎ
참고로
저는 이미자스타일입니다ㆍ
맞아요.
방미에게는 미안하지만 노래도 부르는 사람과 궁합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윤슬님의 사람 마음에 욕심을 두지 말자는 다짐에 동의하면서
하여, 사랑밖에 모르는 사람도, 사랑할 사람이 없는 사람도
만남이든 떠남이든 가을은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는,,
글구 저는 모든 노래를 오직 제 스타일로 부르네요.
일명 망치스타일,,ㅎㅎ
차분한 인상에
비음이 스며들어
묘한 뉘앙스를 주는
트롯에 어울리는 가수
호태님이 심수봉을 제대로 묘사하셨습니다.^^
안에서 끓는 예술 에너지를 분출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일 터,
심수봉은 자신의 광대 기질를 노래와 악기로 푸는 듯 싶네요.
호태님도 한 광대 하시는 분이구요.ㅎㅎ
모르던 사실이었습니다
글에 포함된 동영상은 대부분 지나치지만 자세한 뒷이야기에 끌려 듣게 됩니다
방미 심수봉 이제 희미하게만 떠오르는 이전의 이름들이군요
심수봉은 비슷한 연배일것 같은데 재주 많은 사람이었지요
앗! 단풍 물이 곱게 든 댓글이네요.^^
예전에 심수봉이 쓴 책 <사랑밖엔 난 몰라>를 읽었더랬지요.
소설 형식의 자서전 비슷한 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가물가물)
이후 심수봉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었네요.
인생에서 자기가 조절할 수 운명도 있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나는 심수봉노래 쫌 별로에요.
.
.다 청승맞어요.눈물 콧물 질질 짜서...ㅎ
.
.밝고 명랑한 노래 부르는 현숙? ㅋㅋ
당당한 자기 의사 표출이 보기 좋습니다.
본인 의견을 나타내지 못하고 대부분 그냥 묻어가는 사람이 많은데요.
밝고 명랑한 노래를 부르는 현숙을 좋아하는 음유시인 님의 취향을 존중합니다.ㅎ
@유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