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 로드(저자 탁재형)
여행의 순간을 황홀하게 만드는 한 잔의 술
세상은 넓고 맛있는 술은 많다
‘세계테마기행’ 탁재형 PD가 맛본 최고의 한 잔!
유쾌한 일탈을 부르는 세계 음주 기행
비일상의 여유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시간, 스피릿 로드
거침없는 입담과 위트로 풀어낸 ‘술’ 그리고 ‘여행’ 이야기
*스피릿Spirit
1. 정신, 영혼
2. 진정한 의미, 참뜻
3. 증류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
알프스 어느 산자락에 자리잡은 이글루 호텔의 노천온천에서 글뤼바인 한 잔을 마시고 탄성을 자아내던 한 남자의 감동에 찬 표정을. 다큐멘터리 PD이자 오지 여행 PD, 때로는 출연까지 자처하는 탁재형 PD는, 나라 밖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경험은 그 나라의 술을 마셔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술이란, 한 민족이 살고 있는 자연 환경과 성정과 특질이 농축된 문화의 결정체라는 것이 그의 설명. 그래서 여행지에서 술을 마시는 순간은 곧 그 지역의 문화와 접신하는 흥분의 찰나인 것이다.
이 책은 해외 취재와 여행 중 탁재형 PD가 맛본 수많은 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강렬함을 선사했던 어떤 술의 맛과 향기, 그리고 술에 얽힌 때론 황당하고 때론 진중한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술을 향한 그의 ‘진정성’까지 느껴질 정도다. 인기 팟캐스트인 ‘나는 딴따라다’와 ‘탁 피디의 여행수다’를 통해 솔직한 입담과 위트를 자랑했던 한 애주가가 풀어내는 술과 여행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술에 얽힌 지적이면서도 유쾌한 수다
진중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극단의 재미
이 책의 첫 번째 미덕, ‘술에 대한 다양하고도 해박한 지식’.
소금, 레몬과 짝꿍처럼 붙어다니는 40도에 달하는 술 ‘테킬라’, 아무 맛도 지니지 않아 마시는 이의 감정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술 ‘보드카’, 효모와 곡식의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맥주 ‘바이스비어’ 등은 많은 애주가들이 즐겨마시는 대중적인 술이다. 그렇지만 이들 술 각각에 얽힌 사연을 제대로 알고 마시는 이는 많지 않다. 저자는 《스피릿 로드》를 통해, 직업적인 특성 덕에 더욱 깊숙이 알 수 있었던 술 이면의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재료, 주조 과정, 술에 담긴 의미 등을 다큐멘터리 PD 특유의 통찰력과 해박한 지식을 통해 생생하게 풀어놓는다.
이 책의 두 번째 미덕, ‘웃음과 휴머니즘’.
‘세계테마기행’이나 팟캐스트를 통해 사람들이 기억하는 탁재형 PD의 유쾌한 이미지는 그만의 독특한 유머감각과 솔직한 화법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 유쾌한 수다는 《스피릿 로드》에서도 리얼하게 재연된다. 브라질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펼쳐지는 삼바 여인들의 육감적인 춤사위를 보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렸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상큼한 칵테일 몇 잔에 취해 결국 돌아서야 했던 사연, 러시아 룸살롱 취재 중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주저앉고 만 사연 등 키득키득 웃음나는 에피소드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뿐만 아니다. ‘사람’과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에서는 잔잔한 감동마저 느껴진다. 진중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극단의 재미. 흔한 술 정보서를 제쳐두고 이 책을 집어들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이제야 내놓는 탁재형 PD의 첫 번째 책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한 잔의 술이 끄집어내는 여행의 기억
그리고 다시 한 번 떠나는 상상 여행
‘술을 마시면 이성보다 감성이 두뇌를 지배하기 시작하고, 우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주변과 상호작용을 시도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무의식 중에 농축된 기억으로 저장된다.’
일상에 지치고 힘들 때 바(Bar)나 집에서 술을 한 잔 마시다 보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 술을 마시던 그때 그 장면으로 돌아가게 된다. 목울대를 울리던 맛과 코끝을 스치던 향기, 바로 그 조건만 충족된다면 우리는 언제든 햇살이 쏟아지던 크레타 섬, 비가 퍼붓던 히말라야 산자락, 잔잔하게 흐르던 메콩강변, 끝없이 펼쳐지던 러시아 초원으로 다시금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술은 삶의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와 위로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여행과 닮았다. 여행의 순간을 황홀하게 만든 술에 대한 기억, 그리고 술 때문에 더욱 깊은 의미로 남은 여행의 기억을 모두 담은 《스피릿 로드》를 읽다 보면, 일상의 권태와 스트레스쯤은 사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나의 술벗 탁 PD 형과 술을 마시면 언제나 기분이 쫄깃해진다. 술에 취하고 형님의 술얘기에 취하고, 늘 곱빼기로 취한다. 형은 음주계의 혜민 스님이자 김난도다. 이 책의 제목은 《마시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나 《천 번을 마셔야 어른이 된다》가 되었어야 했다.
술은 최고의 요리였다. 종가집 종부의 마지막 자존심은 소줏고리에서 결정되었다. 또한 술은 최고의 과학이었다. 증류주의 화학과 발효주의 생물학이 혀와 코의 미학을 완성시켰다. 그러므로 술에 대한 이야기는 최고의 여행서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세계테마기행’을 연출했던, 그리고 술을 너무나 사랑하는 탁재형 PD는 술 여행의 최고 안내자다.
책속으로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현지의 전통 증류주를 마실 때마다 나는 일종의 접신과도 같은 체험을 한다. 한 민족이 발전시킨 먹고 사는 문화의 피라미드 정점에 위치하는 것이 증류주이기에, 그리고 그 제조방법 역시 곡물이든, 과일이든, 벌꿀이나 동물의 젖이든, 그 지역의 자연이 가진 풍미의 정수(Spirit)만을 모으는 어려운 과정이기에. 따라서 증류주를 마시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오랜 체험과 역사를 담은 대용량 USB 메모리를 내 몸에 꽂는 것처럼 단시간에 주입하는 행위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단 몇 초 만에 가라테와 헬리콥터 조종법을 몸에 다운로드하는 장면처럼.
- ‘끝내 사라지지 않을 금단의 열매(수단 - 아라기 편)’ 中에서
인상 좋게 생긴 흑인 청년의 손이 바빠진다. 익숙한 솜씨로 라임을 썰어 셰이커에 넣고, 설탕을 넉넉히 뿌린 다음 머들러(Muddler: 칵테일을 만들 때 재료를 찧는 작은 절굿공이)로 찧기까지, 손놀림에 막힘이 없는 것을 보면 같은 동작을 하루에 수백 번씩 반복해서 얻어진 장인의 풍모가 엿보인다. 라임과 설탕이 사각사각 경쾌한 소리를 내며 한 몸이 되자 얼음을 넣고, 마지막으로 선반에서 까샤사 병을 꺼내 셰이커에 붓는 것으로 준비는 끝인 모양이다. 셰이커는 발사 준비를 마친 우주선처럼 입구가 봉해진 후, 공중으로 치솟아 리드미컬하게 뒤섞여 우리 앞에 착륙한다. 틴컵과 유리잔이 분리되자 흘러나오는 액체에선 삼바걸의 땀냄새와도 같은 독특한 군내와 상큼한 과일향이 동시에 풍겨나온다. 그리고 잘 으깨진 얼음은 이구아수 폭포의 미니어처인 양, 유리잔 속으로 낙하하며 예쁜 소음을 만들어낸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 까이삐리냐의 맛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 ‘삼바의 향을 닮은 열대 칵테일(브라질 - 까이삐리냐 편)’ 中에서
제작진끼리 오붓한 촬영 종료 파티를 꿈꾸던 우리의 계획은 첫 번째로 상 위를 가득 채운 후난 요리 앞에, 두 번째로 마오쟈판띠엔지우(모가반점에서 직접 양조한 바이지우)의 화끈하면서도 청량한 맛 앞에, 마지막으로 지배인 ?웨이씨의 무지막지한 술 공력 앞에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한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한 손에 술병을 들고 우리 일행 4명에게 쉴 새 없이 ‘깐(乾: 원샷)’을 외치면서도(즉 우리의 4배를 마시면서도), 30분 만에 혼자서 바이지우 두 병을 비우도록 낯빛 하나 변화 없는 그에게 꼬이려는 혀를 간신히 펴고 물었다.
“오늘에야 강호가 넓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히 여쭙는데 혹시 무슨 기공이나 특별한 수련을 하시나요?”
“하하하. 특별히 수련하는 것은 없으나 어렸을 때 집이 술도가를 했지요. 무엇이든 조금씩 계속하다 보면 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중국 촬영 마지막날 밤의 기억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 ‘세계 정상을 노리는 중국의 자존심(중국 - 바이지우 편)’ 中에서
연거푸 바가지를 비워 불콰해지는 술기운에 기분좋게 몸을 맡기면서, 이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장인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아무쪼록 이것을 드시는 분들도 만드는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았으면 좋겄소. 감기약을 먹어보니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다고, 사흘치를 한꺼번에 먹어불면 그 사람은 어찌되겄소? 마찬가지로 이 술은 드시고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안해지시라고 만든 것인데, 그것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드시고 괴로워불면 내 마음이 어떻겄냔 말이오.”
마시는 사람이 끝까지 즐겁기를 바라는 장인의 마음 앞에서 그동안 내가 저질렀던 만행들을 반성하는 가운데, 바가지에 담긴 술은 아쉽게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 ‘대나무를 닮은 장인의 마음(대한민국 - 죽력고 편)’ 中에서
<저자소개>
저자 : 탁재형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정훈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더 이상 어디 틀어박혀 공부하는 게 신물이 나 외주제작사에 들어갔다가, 호랑이 같은 감독님을 만나 박박 기면서 방송을 배웠다. 때려치울까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술힘으로 버텼다는 소문이 있다.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프라임 - 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다. 현재는 해외콘텐츠 전문 프로덕션 ‘김진혁공작소’에서 다큐멘터리 PD로 일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행 많이 하니 좋겠다’며 부러워하지만, 사실 그의 정체는 시청률이라는 굶주린 양떼를 몰고 아이템의 초원을 찾아 떠도는 생계형 유목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