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Europa Universalis
 
 
 
카페 게시글
밀리터리 매니아 전쟁/전투 [펌] 1.4 후퇴
크릭스마리네 추천 0 조회 502 09.12.23 20:46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09.12.23 21:04

    첫댓글 교과서에는 1.4후퇴에 대해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하여 우리군은 역부족으로 후퇴했다는 식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쓰여져있는데... 삽질이 심했네요. 그래서 퍼옵니다.

  • 09.12.23 21:24

    흠 한줄로 정리하면 정찰을 안한 탓으로 중공군의 사령부를 파악하지 못한것과 중공군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은 맥아터의 판단으로 된것이 1.4후퇴?

  • 09.12.23 23:54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중공군 사령부를 파악하고 중공군 개입을 인정했다 하더라도 40만 이상의 대병력이 한번에 밀고 내려오면 그 당시에는 저지할 화력이 부족했으니 똑같이 후퇴했으리란 판단입니다, 다만 얼마나 피해를 입었느냐 차이겠죠.

  • 작성자 09.12.25 14:20

    평양정도 선에서 방어로 전환했다면 방어가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압록강쪽은 동서로 워낙 넓어서... 미8군이라면.. 2차세계대전 서부전에 패튼의 미3군 정도의 규모라면 지형규모가 한반도 평양축정도라면...

  • 작성자 09.12.23 21:52

    콜디스트 윈터라는 책에 의하면 중국은 외교적으로 한국전 참전을 선언했고 그에 따라 워싱턴에서 맥아더에게 지속적으로 경고도 했었고 예하부대들은 중공군 포로까지 잡아다가 보고했지만 맥아더는 38선 이북 공략에 대해서 이미 워싱턴 행정부와 사이가 틀어져있었으므로 자기가 원한 정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믿지 못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만약 중공군 참전 사실이라면 자기가 밀어붙인 사안에 문제가 생기니까요. 맥아더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전쟁을 끝내기를 원했다고 하네요. 맥아더의 참모들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센 성격도 한몫 한듯

  • 09.12.24 00:36

    그 당시 최대의 삽질은 국군이었습니다. 정확한 사단명이 생각이 안나지만 워커장군을 비롯한 미군과 여러 국군 장군이 중공군 참전이나 북한군의 추가 저항을 예비하여 "방어선"을 구축하여 꾸준히 압록강으로 진격하고 있었는데 중간에 국군의 한 사단이 평양에 먼저 도달하겠다고 그 방어선을 빠져나오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해서 뒤틀린 방어 계획은 그 틈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군을 막을 수 없었고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각개격파되었다고 합니다.

  • 09.12.24 10:24

    미 10군단과 함께 정식 작전부대인 1사단을 제외하면 당시 평양에 입성한건 7사단 예하 8연대 인데
    7사단은 미군 명령계통과는 별계로 육본의 명령을 받고 평양으로 진입했습니다.
    기존의 설은 크릭스마리네님이 위에서 하신 말씀 처럼 중공군의 침입에 대비하지 않고, 빠른 전쟁 종결을 위해 우리하게 진입한 탓이라 보고 있죠. 실루님이 말씀하신건 새로운 견해네요.

  • 09.12.24 23:37

    제가 밑에 설명을 달았습니다.

  • 09.12.24 04:22

    맥아더장군이 긴 전쟁이라도 확실하게 이길 생각으로 밀어 붙엿으면 정말 세계3차대전이 일어났을까? 이런 생각도 나름 드네요

  • 09.12.24 10:13

    국군이 평지로 쭉쭉 올라오는동안 중공군은 산타고 쭉쭉 내려오는 기이한 현상

  • 09.12.24 13:31

    이런말 하긴 좀 뭣하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국이 전쟁을 그리 잘한적은 없습니다.

  • 09.12.24 16:48

    국제정치학적으로도 중국의 발언신뢰도(대외적으로 한 발언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성향)은 매우 높이 평가받지요. 만날 한국전쟁 이야기 나오면 한국사람들은 '중공의 불법개입'이라며 치를 떠는데 크릭스마리네님 말씀대로 전혀 불법개입이 아니었다는 거....유엔군이 청천강 넘는 순간 바로 참전할 것이라고 워싱턴에 통보해 두었죠.

  • 09.12.24 23:37

    제가 말씀드린것은 우리나라의 KODEF 안보총서 "히든제너럴"에서 따왔습니다. 미 10군단 등 맥아더를 비롯한 UN사령부와 여러 미군단들은 경고를 무시한채 무리하게 북진을 강행했고 그 결과 전선이 3배 이상 넓어지게 되어 부대간 연락이 부실해지고 연계가 힘들어졌습니다. 그 와중 전선 중앙을 책임지던 국군 2군단이 평양을 반드시 미군보다 먼저 선점하라는 이승만의 명령을 받고 주력인 7사단을 우회시켜 평양에 진주시켰습니다. 그렇게 중앙에 뚫린 간격으로 중공군이 뚫고 들어왔죠. 그리고 미군 제1 기병사단이 국군을 추월하려고 중공군을 무시하고 내달리다가 그대로 무너지면서 다시 후퇴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