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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중국해 서사군도의 가장 큰 섬인 영흥도에 중국이 설치한 길이 2500m의 군용 활주로. |
1970년대 초까지 서사군도 동쪽은 중국이, 서쪽은 베트남(남베트남)이 암묵적으로 관할해 오던 묵계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서사해전의 승리로 중국은 서사군도의 산호도, 감천도, 금은도 3개 섬에 주둔하던 베트남(남베트남) 군대를 모두 몰아냈다.
서사해전 이후 확립된 서사군도에 대한 중국의 실효 지배는 아직까지 이어진다. 지난 3월 초에는 서사군도 주변 해역에서 조업하던 베트남 어선 2척과 어민 21명이 ‘불법조업 혐의’로 중국 측에 억류되기도 했다. 최근 중국 국가여유국과 하이난성 정부는 “서사군도 여행을 실시할 것”이란 계획도 밝혔다. 하이난섬에서 출항하는 크루즈 여객선에 관광객들을 태워 영흥도 등을 둘러보게 하는 것이다.
국제법상 ‘도서의 선점 원칙’은 ‘우선 발견과 명명’ ‘우선 경영과 개발’ ‘우선 관할권과 주권 행사’로 이뤄진다. 여행객들에게 영흥도를 개방하는 것은 ‘우선 경영과 개발’의 일부라는 것이 중국 언론들의 설명이다. 왕즈파(王志發) 중국 국가여유국 부국장은 “서사군도 여행은 변경 방어와 주권 소재를 알리는 데도 좋고, 다른 도서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좋다”고 말했다.
가장 큰 태평도엔 대만군 주둔
그나마 중국의 실효 지배로 일단락된 서사군도와 달리 남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틀리군도)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남사군도는 230개가 넘는 도서와 모래톱(사주), 암초로 이뤄져 있다.
11개 섬과 5개 모래톱, 20개의 암초가 해면 위에 드러나 있는데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 7개국은 각각의 이유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 중 군병력을 파견해 점유하고 있는 도서의 숫자로만 치면 베트남이 29곳으로 가장 많다. 그 뒤를 이어 필리핀(10곳), 말레이시아(8곳), 중국(8곳), 대만(2곳) 등이 점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브루나이는 주둔 병력이나 상주 인구 없이 “200해리 경제수역 범위 안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정도다.
총면적 0.49㎢로 남사군도에서 가장 큰 섬인 태평도(太平島)에는 대만의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가 휘날리고 있다. 태평도는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항에서 무려 1600㎞나 떨어져 있다. 하지만 대만은 서사군도 영흥도와 마찬가지로 길이 1200m의 군용 활주로를 섬 위로 냈다. 지난 2007년 대만이 태평도에 C-130 군용 수송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닦은 활주로다.
태평도를 처음 군사기지화한 것은 일본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39년 태평도를 점령했다. 이후 육전대(해병대)와 기상정보대, 통신부대와 정찰부대를 섬에 주둔시켰다. 특히 일본은 1945년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 직전인 1944년 섬에 잠수정 기지를 건설할 정도로 태평도의 군사적 중요성에 신경을 기울였다.
태평도가 대만의 지배하에 넘어간 것은 1946년 12월부터다. 당시 중화민국(대만)의 린준(林遵) 2함대 사령관은 태평호와 중업호 두 척의 구축함을 끌고 남사군도 곳곳에 깃발을 꽂았다. 태평도란 이름도 군함 태평호에서 딴 것이다. 린준은 아편전쟁의 주역인 임칙서(林則徐)의 질손뻘로, 훗날 중국에 투항해 해방군 화동군구 부사령관까지 지낸다. 남사군도 일대의 섬들에는 당시 린준이 세워둔 경계석이 곳곳에 서 있다.
하지만 대만은 경계석만 남겨둔 채 남사군도 일대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대만 본토와 1600㎞ 이상 떨어져 있고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아서 ‘계륵(鷄肋)’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남사군도 아래에 매장된 해저 자원이 주목받으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2006년 대만 국방부를 중심으로 “태평도에 군용 활주로를 건설하자”는 얘기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대만의 환경주의자들은 “산호초가 파괴된다”며 활주로 건설에 반대했다. 그래도 대만 정부는 활주로 설치를 강행했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가 모두 무력을 남사군도에 배치한 상황에서, 군용 활주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안보우선론’이 먹혀 들었다.
당시 대만 국민당과 민진당은 국방부가 주도한 활주로 건설에 여야가 따로 없었다. 활주로 건설 직후인 2008년 2월에는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이 C-130 군용기를 타고 태평도를 찾았다. 천수이볜의 태평도 방문에 베트남과 필리핀 등 주변국들이 항의했지만, 대만은 “남사군도는 대만의 강역”이라고 비판을 일축했다.
베트남, 중국과 두 차례 해상전투
대만이 태평도에 활주로를 깐 것은 베트남을 의식한 측면도 크다. 남사군도를 ‘황사군도(黃沙群島)’로 부르는 베트남은 네 번째로 큰 섬인 ‘남위도(南威島)’를 점유하고 있다. 면적이 0.15㎢에 불과한 남위도에도 길이 600m의 활주로와 500톤급 함정이 정박 가능한 부두가 있다.
과거 남베트남(월남)은 중국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죽(竹)의 장막’에 갇혀 있을 때 남사군도를 속속 점령했다. 베트남을 통일한 북베트남(월맹)은 남베트남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현재 베트남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남사군도의 29개 도서와 암초도 대부분 그때 점령한 곳들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회의 때 서사군도와 남사군도에 대한 주권 선언을 했고, 당시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이 베트남의 입장이다. 식민지 종주국이던 프랑스가 1933년 서사군도와 남사군도를 점령했고, 베트남이 이 권리를 승계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은 “샌프란시스코회의 때 초대도 못 받았다”며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은 1975년 북베트남(월맹) 정부의 발표도 근거로 든다. 과거 북베트남은 “베트남의 동쪽 끝은 동경 109도”라고 밝혔다. 베트남전이 막바지이던 당시 북베트남은 남사군도의 주권을 주장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1975년 베트남 통일 후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국토의 동단을 109도에서 118도로 슬며시 바꿔 놓았다.
결국 중국과 베트남의 대립은 1988년 남사해전으로 비화됐다. 서사해전에 이어 중국과 베트남 간에 벌어진 두 번째 해전이다. 남사군도 영서초(永暑礁)에 해상 관측기지를 건설하려는 중국과 이를 막으려는 베트남 해군 간의 분쟁이 기폭제가 됐다. 결국 베트남은 함정 2척이 침몰하고, 1척이 대파되며 400여명이 죽거나 다치며 퇴각했다. 영서초에는 우리나라 이어도보다 수십 배 크고 군병력도 주둔할 수 있는 중국의 해상 관측기지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남위도 등 남은 도서들에 대한 실효 지배는 더욱 굳건히 다졌다. 지난 2004년부터는 해군 함정에 여행단도 태워서 보냈다. 중국이 서사군도 영흥도에 여행 허용을 검토한 것보다 8년이나 앞서 단행한 조치다. 2008년에는 소형기만 뜨고 내릴 수 있던 활주로를 길이 600m로 재단장했다. 지금도 550명에 달하는 베트남 군병력이 남위도에 주둔하고 있다.
지난 3월 13일에도 베트남은 “남사군도에 베트남 승려 6명을 파견하겠다”고 나서 중국과 대만의 신경을 여전히 긁고 있다. “남사군도의 한 섬에 1975년부터 폐허로 방치된 사찰이 있는데, 승려들을 파견해 남사해전 때 전사한 영혼을 달래겠다”고 밝힌 것. 중국과 대만은 베트남의 남사군도 승려 파견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필리핀 “미국·베트남과 협력”
중국과 대만의 신경을 긁기는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면적 0.37㎢로 남사군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중업도(中業島)는 필리핀이 점유하고 있다. 중업도는 1946년 이 섬에 상륙한 중화민국(대만) 함정 중업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필리핀은 1971년 “카라얀군도(남사군도)는 필리핀의 200해리 경제수역 안”이라며 중업도(파가사섬)를 점령해 실효 지배에 들어갔다. 대만이 사실상 섬을 방치한 사이에 필리핀이 점령한 것이다.
필리핀은 군용 활주로도 닦아 C-130 수송기가 뜨고 내리도록 했다. 지난 2008년에는 활주로 길이를 1300m로 더욱 늘렸다. 필리핀 군병력 50여명은 6개월씩 돌아가며 중업도를 지킨다. 현재 필리핀은 중업도를 비롯해 남사군도 10개 도서를 실효 지배 중이다.
이에 중국과 대만은 남중국해 영토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한다. 중국 언론들도 ‘대만령’은 사실상 ‘중국령’으로 간주하고 있다. 1974년 중국과 베트남(남베트남) 간 서사해전 때 대만이 주적(主敵)인 중국 편을 든 전례도 있다.
당시 중국 해군은 베트남(남베트남)과의 전투를 앞두고 저장성 닝보(寧波)의 동해함대를 남중국해로 이동시켜 전력을 보강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지름길인 대만해협을 통과하려면 대만군의 포격 위협을 감수해야 했다. 이때 장제스 대만 총통은 “동해함대의 대만해협 통과를 허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장제스의 묵인하에 함정을 신속히 배치한 중국은 서사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장제스가 자유 진영인 남베트남(월남)을 버리고 공산 진영인 중국을 도운 것은 후일 논란이 됐다.
남사군도 문제에 관해서는 지금도 ‘중국·대만 대(對) 베트남·필리핀’이란 구도가 유효하다. 중국과 대만은 지난 3월 23일 “중업도에 100m 콘크리트 부두를 설치하고, 1300m 군용 활주로를 보수하겠다”는 필리핀의 발표를 동시에 비난했다.
중국과 대만의 강한 반발에 필리핀은 미국, 베트남과의 연합전선 구축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필리핀 외교부는 최근 미 해군과의 남중국해 합동훈련 가능성을 시사하며 “필리핀 전역의 공군기지들을 미군에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리핀 측은 “남중국해에서 베트남 해군과의 연합 훈련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2차 남사해전은 태평양전쟁이 될 것”이란 얘기가 중국에서 나오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