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운별미(禪雲別味)
연하(煙霞) 인 두솔궁(兜率宮)에 동백꽃 뚝뚝 지고
선시(禪詩)가 들려오니 산너울이 두둥실
딸기술 장어 익는 집 녹차향이 더 은은
* 선운산(禪雲山 336m); 전북 고창.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호남의 내금강’으로 옛 이름은 도솔산이다. 명찰 선운사(禪雲寺)를 비롯, 4km에 달하는 동백숲(천연기념물 제184호), 도솔천 옆 바위를 감고 오른 한 마리의 푸른 용 송악(담장나무-천연기념물 제367호), 꽃무릇(石蒜-석산)군락 등 명소가 많다. 야트막한 산릉과, 낮게 깔리는 구름, 울창한 숲, 고송과 바위, 맑은 내 등이 어울려 마치 신선의 동네 같다. 산의 높이는 낮아도 이외로 시간과 힘이 많이 들어,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 장어(옛날에 풍천장어가 유명)는 복분자술과 함께 먹여야 제격이다. 녹차를 마셔 입안에 남은 기름기를 지우면 개운하다. 나는 그걸 시식하지 못했다. 1966년 국민은행 김해지점 행원 때는 ‘구포장어’를 먹어 보았고, 1975년 마산지점장 대리 시절에는 가족과 함께 ‘진동장어’를 맛보았다.
* 졸저 한시집『北窓』오언절구 1-27 '兜率無明'(두솔무명) 참조. 2015. 5. 30 도서출판 수서원.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332(268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2. 세월 낚는 곰
연쪽빛 진해만 위 꽃비늘 어지러워
고소한 깻묵바위 밑밥으로 던졌더니
능소니 웅크린 채로 세월 가득 낚노매
* 웅산(熊山 703m); 경남 진해, 창원. 산자락에 벚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이 좋다. 만개한 벚꽃이 하염없이 바다 위로 날린다. 이 산의 명물은 뭐니 해도 한눈에 금방 들어오는 곰 혹은, 아낙네 젖무덤을 닮았다는 시루봉(표고666m, 곰메바위 높이 10m 둘레 50m)이다.
* 능소니; 곰의 새끼.
* 취적비취어(取適非取魚); 낚시에서 즐거움을 취함이요 고기를 취함이 아니라는 뜻으로, ‘어떤 행동에 있어서 목적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데에 있음‘을 이름.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1-453(342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3. 꽃시주 받은 산
옻칠을 새로 했지 진홍색 바리때
기름기 졸졸 흐른 산신표(山神標) 철쭉 지짐
꽃시주 실컷 받고선 배가 터진 땡추여
*지리산 바래봉(일명 삿갓봉 1,185m); 전북 남원. 스님의 발우(鉢盂-바리때)를 닮은 둥그스름한 봉우리인데, 진홍(眞紅), 담자색(淡紫色) 철쭉으로 명성을 날린다. 세석평전의 철쭉(지리10경)과 함께 지리산 제일로 친다. 집단시설 지구에는 지짐을 많이 부쳐 손님을 유혹한다. 철쭉은 화전을 부치지 못함.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522(385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4. 초파일의 행운
초파일 신록능선 산채향(山菜香) 상큼한데
소 등에 잠시 켜둔 우바새 연등(蓮燈) 덕에
황천(黃泉)에 놀러갔다 온 배불뚝이 칠점사(七点蛇)
* 성지봉(聖地峰 787.4m); 경기 양평, 강원 횡성 경계에 소재하는데, 그 쪽 능선은 길게 누운 소 등을 연상시킨다. 천주교와 관계가 있는 산이다. 마침 먹이를 잔뜩 삼켜 배가 탱탱해 행동이 둔한 독사(칠점사)를 발견했다. 주위에 산나물 뜯으려 나온 아주머니들이 많았는데, 모두 등산화를 신지 않아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를 염려하여, 또 불탄일이라 귀찮지만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도해 살려주었다.
* 우바새; 출가하지 않고 부처의 제자가 된 남자. 거사, 청신남, 청신사 등으로 부름(佛).
* 공곡공음(空谷跫音); 빈 골짜기의 발소리. 적적할 때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로, 뜻밖의 즐거운 일이 생기거나 반가운 소식을 들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장자 서무귀편)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357(282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5. 춘산오음(春山五音)
새하얀 돌배꽃잎 청류를 덮어오고
바위 위 늙은 솔은 황금가루 뿌리는데
산소리 다섯 화음(和音)이 교향곡을 빚느니
* 오음산(五音山 930.4m); 강원 횡성. 홍천, 한강기맥. 다섯 장수와, 세 마리 백마(三馬峙-삼마치)의 전설을 간직한 이 산은 노송, 바위, 계류가 좋다. 마침 송화(松花)가루가 펄펄 날린다. 정상은 부대가 있어 출입금지다. 故 김형수 선생(400 산행기 저자)은 팥배나무가 많다고 언급했다.
*오음(五音); 원래 ‘궁상각치우’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물소리, 바람소리, 벌레소리, 새소리, 나무소리 아닐까?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424(324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6. 장승의 놀림
살며시 젖 내보인 깜찍한 구슬봉이
춘흥(春興)에 못내 겨워 벗은 입맛 다신다만
지친 몸 뉘인 영마루 메롱 하는 여장승
* 싸리봉(812m) 경기 양평, 한강기맥. 이름도 정답지만, 산봉우리가 ‘초봄의 청순한 소녀’인 연남빛 구슬봉이(용담과 두해살이 풀)를 닮았다. 때마침 농다치고개의 여자벅수(지하여장군)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우리 일행을 놀려주기라도 할 듯, 혀를 내밀고 “메롱”하는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391(305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7. 금물하정(今勿夏情)
샛바람 젖빛 산록 밤꽃은 흐드러져
구린 듯 달콤한 향 털 달린 방망이들
도깨비 좀 나와 봐라 저 청상(靑孀)의 흰 속내
* 금물산(今勿山 780m). 경기 양평, 강원 횡성, 한강기맥. 조망과 계곡이 비교적 좋으나, 임도가 복잡하다. 산자락은 소득사업으로 밤숲을 많이 조성했다.
* 요즈음 청상과부가 있으랴만, 예전에 청상의 시어머니는 청상더러 “보리밭에 가면 문둥이가 나오고, 밤숲에 가면 도깨비가 나온다.”며 며느리의 외출과, 탈선적 성욕(性慾)을 경계했다. 당시의 가치관으로는 그럴 법도 하겠으나,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가혹한 성억제(性抑制) 관습이다. 겉으로 내색은 않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의 속마음이야 다 같지 않을까?
* 밤꽃 향은 약간 노리끼리한 남자의 정액냄새가 나, 같은 남자라도 성적 자극이 일어나는데, 과부야 말할 나위 있겠는가? “죽어도 좋으니 도깨비를 만나 요술방망이를 맞아봐야지!”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山韻 3-52(505쪽) '비온 뒤 밤꽃' 시조 참조.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부제 산음가 山詠 1-77(98쪽).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8. 가리산 원경(遠景)
송화분(松花粉) 떠 내려와 황금 물든 소양강
뱃고동 메아리는 쑥꾹새를 울리는데
호안석(虎眼石) 쌍둥이바위 고물 뒤로 뜨누나
* 가리산(加里山 1,051m); 강원 홍천 춘천. 소양강을 끼고 있으며, 자연휴양림도 있다. 마침 봄이라 송화가루가 출렁이는 강물위로 떠다녀, 황금파도를 이뤄 장관이다. 안개 낀 날 정상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가리, 가리왕, 가리봉 등 비슷한 이름의 산이 많다. 이산은 독특하게 두 개의 암봉을 가지고 있으며, 구름 위로 솟은 원경이 특히 아름답다.
* 졸저 『名勝譜』 홍천9경 중 제2경 가리산 시조 참조(72면). 2017. 7. 7 도서출판 수서원.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제1-3번(47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발행
9. 호수 마신 말
편자는 광이 번쩍 단숨에 날듯해도
재갈이 물리고야 한 소리 낼 수 있나
모가지 길게 빼고선 호수 마신 총이말
* 말목산(710m); 충북 단양. 일명 상악산 또는, 마항산(馬項山)이다. 큰 능선 네 개로 이루어진 말 모양의 산으로, 남쪽에 청풍호가 있으며, 주위에 구담봉, 옥순봉, 가은산 등 명산이 포진해 있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173(164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0. 각다귀가 덤빈 산
구성진 아라리에 산나물 지천이오
아우라지 양장(羊腸)계곡 무릉도원 가없는데
산신의 속눈썹 뜯는 각다귀랴 몹쓸 것
* 상원산(上元山 1,421m) 강원 정선. 옥부용(玉芙蓉)을 깎아 세운 듯 아름답다. 산세가 험준하여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은 남한강 지류인 송천(松川)이 꾸불꾸불하게 흐른다. 자주 갈 수 없는 오지의 산으로 조용하고 산나물이 많다. 유감스럽게도 등산로 옆 수백 년 된 참나무를 교묘히 죽일 목적으로, 밑동 둘레의 껍질을 무참히 벗겨내 흉물스럽다. 한번 훼손된 자연은 회복하기 힘 드는데, 각다귀처럼 추잡스런 인간들...
* 산나물; 재배용보다 100배 효과 있으며, 농약의 독성도 없다. 봄에 많이 잡수시라! 장수(長壽)에 관한 한시 하나. 장수묘도군지부(長壽妙道君知不) 산채해조두맥량(山菜海藻豆麥粱) 허심세작불과량(虛心細嚼不過量) 일일일선만보행(一日一善萬步行)-장수의 묘한 길을 그 대는 아는가/ 산나물과 해조류 콩 보리 기장 등을 먹고/ 빈 마음으로 잘게 씹고 양을 넘지 않도록(소식)/ 하루 착한 일 하나에 만보를 걸어라.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319(259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