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村(강촌)
두보(杜甫:712~770)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
본적은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陽)이지만, 하남성(河南城) 공현(鞏縣)에서 태어났다. 장안 근처의 두릉(杜陵)에 살았으므로, 두릉포의(杜陵布衣) 또는 소릉야로(少陵野老)라고 불렀다.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아 이백은 시선(詩仙), 두보는 시성(詩聖)이라 칭한다.
안녹산의 난을 거치면서 우국충정이 넘치고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친 사회 시를 많이 남겨 그의 시를 시사(詩史)라고도 한다.
특히 율시를 잘 지어서 율성(律聖) 또는 두율(杜律)이라 부르기도 한다.
저서로는 『두공부집(杜工部集)』 25권이 전한다.
맑은 강물은 한 굽이 마을을 감싸 안으며 흐르고
淸江一曲抱村流 청강일곡포촌류
긴 여름 강마을에 하는 일마다 한가롭네
長夏江村事事幽 장하강촌사사유
대들보 위의 제비는 수시로 들락날락하고
自去自來梁上燕 자거자래량상연
서로 친하고 서로 가까이하는 것은 물에 있는 갈매기라네
相親相近水中鷗 상친상근수중구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老妻畵紙爲碁局 노처화지위기국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서 낚싯바늘을 만드네
稚子敲針作釣鉤 치자고침작조구
아픈 곳이 많다 보니 필요한 것은 오직 약물뿐
多病所須唯藥物 다병소수유약물
보잘것없는 몸이 이 외에 또 무엇을 구하리요?
微軀此外更何求 미구차외갱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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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19세 때 상원 원년(760)에 성도 완화계(浣花溪)의 초당에서 지은 시다.
이때가 시인에게 있어서 생활의 여유와 평온날을 보낸 시기다.
그러나 이런 생활도 오래가지 못하고 3년의 짧은 생활을 접고 또다시 방랑의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