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가 돌아왔다. 2008년 출간되어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올리브 키터리지』를 통해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 괴팍하지만 매력 넘치는 여인이 11년 만에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좀더 나이를 먹고, 조금은 더 외로움에 흔들리면서도 여전히 지독하게 ‘올리브다운’ 모습으로.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인 『다시, 올리브』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국 메인주의 작은 타운 크로스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의 풍경을 예리한 통찰과 절절한 아름다움을 담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리고 물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삶을 놀랍도록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주인공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총 1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올리브가 칠십대 중반에서 팔십대 중반이 될 때까지, 십여 년에 걸친 말년의 인생을 다룬다. 올리브의 비중은 장마다 다르고 때로는 스쳐가듯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작품 전체에 강력한 존재감을 드리우며 일련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단단히 결속한다.
올리브의 귀환은 사실 작가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있던 작가의 눈앞에 불현듯 나이든 올리브가 차를 몰고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 스트라우트는 깨달았다. “오 이런, 올리브가 돌아왔구나.” 일단 올리브가 돌아오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이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마땅히 그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녀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기록하는 것. 이 퉁명스럽고 무뚝뚝하며 직설적인, 그러나 결국에는 우리가 공감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올리브의 두번째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올리브는 그 사실이 놀라웠다. 첫 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여기 세상이 있다고. 하루하루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비명을 질러대는 세상이. 그리고 그것에 감사했다.” _본문 335∼336쪽
『다시, 올리브』에서 스트라우트가 그리는 노년의 삶은 결코 느긋하거나 여유롭지도, 지혜와 통찰로 충만하지도 않다. 나이든 육신은 사춘기에 막 들어선 청년의 몸만큼이나 낯설고 혼란스럽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빈자리에 수시로 엄습하는 외로움과 공포는 낡고 해진 마음속으로 여과 없이 스며든다. 그러나 등뒤에 드리운 죽음으로 인해 눈앞에 펼쳐진 삶의 풍경은 더 또렷하고 찬란해진다. 다음 계절을 약속하는 고요한 햇빛과 새로 움트는 꽃봉오리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띠고 선명히 다가온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외로움과 무지를 깨달을수록 우리는 타인을, 그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 이해의 바탕에는 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우리가 본질적으로 같은 혼란과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다소 씁쓸한 위안이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삶의 불가피한 비극을 통해 맺어진 그 뿌리 깊은 연대는 우리를 자기 연민이나 체념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를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쇠락한 육신과 해진 마음에도 여전히 사랑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은.
홀로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 새벽에도,
세상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은.
메인주의 해안 타운 크로스비에는 여전히 다양한 문제를 겪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이 뭘 끌어안고 사는지 보면 늘 놀라게 돼.” 소설에 등장하는 어느 나이든 변호사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중에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성적인 욕망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소녀가 있고, 오래전 각기 다른 인생을 선택함으로써 이제는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생긴 형제를 바라보며 슬픔에 잠긴 남자가 있고, 자신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의 방식을 택한 딸로 인해 갈등하는 아버지가 있고, 치명적인 병에 걸려 죽음과 삶의 기로에 놓인 여성도 있다. 그들의 삶은 제각기 다른 지점에서, 다른 이유로 고통스럽다. 은퇴한 수학 교사이자, 고집스럽고 지나치게 솔직한 태도로 평생 이웃들의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아온 그녀, 올리브 키터리지도 예외는 아니다.
첫번째 남편 헨리가 세상을 떠난 후 이제 노년에 깊숙이 접어든 올리브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계절은 늘 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속에서 그녀의 시간은 끝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고 있음을 올리브는 점점 분명하게 깨닫는다. 그러나 누가 노년의 삶을 고요하다고 했던가. 올리브의 인생에는 계속해서 크고 작은 파도가 들이치며 그녀를 사정없이 흔들어놓는다. 올리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두번째 결혼을 하고, 베이비샤워에 갔다가 얼떨결에 차 뒷좌석에서 아이를 받고, 죽음의 위기를 넘긴 후에야 소원했던 아들과 가까스로 화해를 하고, 팔십이 넘은 나이에 노인 복지 아파트에서 새 친구를 사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십 년을 ‘올리브’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해 놀라울 만큼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외로움이여. 오, 외로움이여!
그것이 올리브를 괴롭혔다.
평생 그런 감정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그녀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 마치 그녀 밑에-평생 동안-큰 바퀴 네 개를 달고 살아왔는데, 그것을 당연히도 인식하지 못하다가 이제 네 개 전부가 흔들흔들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군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지 못했다.” _본문 414쪽
올리브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노년은 놀라움의 연속이자, 대체로 고통스러운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주는 것은 언제나 그녀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타인들이다. 올리브는 인생관도, 정치적 신념도 다른 잭 케니슨이라는 남자와 부부가 되면서 첫번째 남편의 빈자리와 자신의 깊은 외로움을 인식하게 된다. 아들을 윽박지르는, 그녀와 너무나 닮은 며느리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어머니로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계관시인이 된 옛 제자와의 우연한 만남에서는, 평생 그녀를 따라다니던 근본적인 결핍과 허영을 적나라하게 들켜버린다. 그러나 올리브의 놀라운 점은 육체적인 쇠락과 정신적인 충격을 겪으면서도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내내 성장해나간다는 것이다.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도 올리브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오해하고, 이해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그녀는 “내가 인간으로서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아마 그것은 비로소 그녀의 마음속에 타인이 들어올 공간이 생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스트라우트의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다시, 올리브』 역시 절묘한 순간에 우리의 삶에 나타나 모든 것을 흔들어놓는 타인들,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에 한마디 말이나 한 번의 손짓으로 우리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타인들과의 우연 같고 운명 같은 마주침에 주목한다. 더불어 스트라우트의 전작들을 즐겁게 읽어온 독자라면, 작가가 창조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등장인물들과의 반갑고 놀라운 마주침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에 등장했던 인물들뿐 아니라 『버지스 형제』(2013)의 주인공이었던 세 남매, 그리고 무려 21년 전에 발표했던 스트라우트의 첫 장편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의 인물들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올리브와 이저벨이 어떻게 만나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 지켜보는 것은 이 책이 선사하는 크고 감동적인 선물 중 하나다.
명멸하는 삶의 불꽃이 비추는,
처절하고 찬란한 생의 마지막 순간들
팔십이 넘은 나이에 노인 복지 아파트에서 살게 된 올리브는 자신의 인생을 기록해 글로 남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을 더듬으며 삶을 돌아본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 이 책이 말하는 나이듦이란 노련함이나 충만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며, 자신이 평생 끌어안고 살아온 수많은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행위에 가깝다. 그 길 위에 서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 올리브』가 건네는 위로는 ‘그럼에도 결국 삶은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스럽지만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분명 찬란히 빛나는 순간들도 있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이 정말로 눈앞에 다가왔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서서히 스며드는 그 저녁에,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래도 내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고 중얼거리는 올리브처럼 말이다. 마침내 삶의 혼란과 화해를 이루고 한평생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는 올리브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무척이나 다행하고 감동적인 일이지만, 그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독자로서는 못내 마음이 아프고 먹먹해진다. 하지만 아마도 올리브는, 우리의 아쉬움과 슬픔에는 아랑곳없이, 언제나처럼 무심하게 머리 위로 한 손을 휙 던지며 뚜벅뚜벅 마지막 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것은 올 것이다.
˝그래, 그래.˝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거기 꽤 오래, 심지어 정말로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앉아 있었다.
마침내 올리브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천천히 일어섰고,
테이블로 이동했다. 의자에 앉았고, 안경을 쓰고 타자기에 새 종이를 끼웠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자판을 톡톡 쳐서 한 문장을타자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더 타자했다. 종이를 빼내 쌓인 기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방금 쓴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가지도 알지 못한다.
올리브는 지팡이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이저벨에게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