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 귀의하옵고
바라밀 전시회를 빛내 주시기 위하여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존경하시는 귀빈 여러 선생님 그리고
인자한신 대덕 여러분 스님 선남선녀 내빈여러분 존체 안녕 하십니까?
산하대지에는 이름모를 온갖 꽃들이 만발한 있 때 이름모를 새들은 허공에서 노래하며
깊은 산 계곡에 맑음 물이 흐르고 향긋한 풀 내음이 불어오는 싱그러운 5월 생동감이 넘쳐흐르는
황홀한 이 아름다운 계절에 오늘부터 일주일간 이곳 경인 미술관에서 저를 비롯한 재소자 장애인 돕기
바라밀 전시회를 개최하려고 궁핍한 생활 속에 반신불수의 몸으로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으시고 칠전팔기
정신력으로 준비자금을 마련하지 못 하시여 전시회 날자를 연기까지 하시면서 저의들의 아픔을 나누어가지시며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시려고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동분서주 애쓰신 랑 승자 만자 시인님을 비롯 하시와 서예와 그림 도자기 등
많은 작품을 창조 출품하여주신 고명하신 여러 선생님 이번 바라밀 전시회를 위하여 추천사 격려사를 하여주신
선생님 전시회 홍보를 하여주신 여러 신문사와 각계
각층 유관기관에서 협조 하여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이 자리를 비러 서 드리오며
오늘날 이 사회는 물질과 황금만능주의로 인하여 과소비시대에 살고 있으며 일인당 국민소득 5천불을
넘는다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이 마당에 장애자 올림픽 까지
치룬 국가에서 아직도 수많은 장애인들이 소외된 삶 속에서 편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이 시점에
많은 분들이 인식을 새롭게 하여 장애인을 대할 때 따뜻한 사랑에 눈길로 상부상조 하며 더 불어 함께
살아간다면 극락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세상이 바로 무상보리가
그대로 실현 미륵 종 불님 용화세계 불국 정토로 변할 거시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많이 가진 자는 많이 가진 자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춥고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을 위하여 베풀 줄
아는 마음을 가질 때 그런 분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우러러 받드는 대 보살이라 생각합니다.
내 배가 부르면 남의 배도 부른 줄 알고 수전노와 같은 삶을 살다가 숨 한번 들이 키고 내쉬지 못하면
억만 장자인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공 수레 공수 거 인데 남이도움을 청할 때 베풀어 놓은 음덕은 미래세를 위하여 저축해놓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면서 오늘 이렇게 저의들을 위하여 모든 자존심도 명예도 모두 버리시고
발우를 들고 구걸 하시려고 바라밀 전시회를 개최하시느라 근 일년간 준비하시며 노심초사 애쓰신
랑 승자 만자 시인님에 높고 깊은 뜻을 부처님은 헤 아리 시와 십시일반으로
협조하여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우리 모두에게 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빌면서
불초 소생은 저 먼곳 안동호 주변 산골마을에 살고 있으면서 라디오방송 전파를 통하여 랑 승자 만자
시인님을 알게 되어 저의 피 눈물 나는 30여 년 동안 불치병과투병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수기 집을 만들고 싶다는 편지를 드린 거시 인연이 되어 장애환우들 시집 만들어주기
위한 바라밀 전시회에 저도 한목 넣어주시고 초청하여 주셔서 이렇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존경하옵는 여러 선생님 오늘날 이 세상에는 피치 못할 사정에 따라 자식도 낳아서
버리고 심지어 부모도 버린다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하오나 그러나 더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도우려는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자애로운 보살행을 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느끼면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방안에서만 살아오던 저가 빌딩 숲 속에 차도 많고
사람도 많은 이 넓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 경인 미술관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가 훌륭하신
여러 선생님 앞에서 감히 인사 말씀을 드리게 됨을 황송스럽게 생각하면서 바쁘 신데도
불구하시고 바라밀 전시회를 빛내주시고 축하와 격려를 하시기 위하여 오늘 이렇게 시간을
아끼지 않으신 존귀하신 여러 선생님 대덕 여러 스님 선남선녀 여러분 귀댁 가정마다 불은이
항상 함께 하시고 바라는 일들이 모두 다 잘 이뤄지시길 빌며 아울러 건승하심을 삼보 전에
합장 축원을 올리면서 장애화우들을 대신하여 이것으로 인사 말씀을 대신 코저 합니다 감사합니다.
1990년 불기 2534년 5월18일 권오윤 합장.
첫댓글 20년전 이런 전시회를 치루셨군요 참 훌륭하십시오
도움주신 여러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전시회는 잘 마무리 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혹여 또 이런전시회를 계획하시는지요???
만약 또 있으시면 제가 작은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
저는 육체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허나 장사를 하면서 마음의 장애인이 참 많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금춘가족에 감히 제 솔직한 이야기를 올릴 수 있는건, 마음의 깊이는 여느 사람들보다 훌륭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를 돌아보게 하고, 겸손하게 해주는곳이 금춘가족입니다.
늘 겸손하게 지금 누리는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때 인천에 살고계시는 랑승만 시인께서 산골소녀옥진이 시집을 출간하도록 힘써주셨음을 알고 서신으로 인연이되어 장애인돕기 작품 을기증받아 전시회 한다고 참석해달라해서 저와동생이 함께 동참했으며 그후로는 작품전시회 기회는오지않았습니다 성공하지못했습니다 많은 작품을 기증받아서 작품이 얼마 팔리지않았습니다
토마토님 따뜻한 마음 많이라도 감사합니다. 우리카페에 훌륭한 은일님 글을 올려주셔서 카페가 한층 빛나고있습니다 앞으로 아름다운 글 많이올려주세요 모두가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형님께서 그때 썼던 글이 어찌 남아 있었네요... 행사 팜프렛에 함께 인쇄된 것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그 당시 경인미술관에서 좀 지루하게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보니 형님께서 20년전에 이미 한 문장 하셨네요. 스스로 못 배웠다 낮추지 않고 여기저기 공모에 응했었다면 분명 큰 발전이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로부터 인정도 받았을텐데...지나버린 그 세월이 아깝게 여겨지는군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일기를 쓰고 지난날 썼던 글을 발표하고 하다가 보면 알게모르게 문장력은 향상될 것이고, 간절히 표현코자 하는 그 무엇이 문학 작품으로 쏟아져 나올 것임에 분명합니다. 타자도 치기 힘든 상태의 건강이지만 분명 하면됩니다.
여러사람앞에 인사말쓴것이 최초라 그동안 원본을 보관하고있었지 팜푸렛은 먼저 만들었으므로 내가 쓴 인사말은 실리지않았으며 편지장이나 쓰던 글로 거기 모인사람들은 모두가 시인이고 학자들이고 훌륭하신분들 앞에 내가 감히 인사말을 한다는거도 어쩌면 추위탈 자리엿는데 감격스럽게도 인사말을 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이 보이지않아 눈물닦아달라할수도없고 읽느라 고생했다네머리쓰는게싫어서 자포자기하고살아서그래 누구한테 심사받고 하는게골아푸게하는것 같아서 마음조이지않고 편한건만 찾아서글치 요즘 은 처음시작해서 일기쓸때보다는 문장력이 아마 좀 더 발전 있는지도모르지만 아직은 많이더노력하면 모를까 힘이없네
랑승만선생님을 저도 명숙씨 덕분에 딱 한번인가 두번인가 만났습니다. 아마 중풍에 걸린 선생님을 13년전인가 봐요. 인천학익동에 살고 계시죠. 그이후로 교류는 안하게 되더라구요. 전 시에 별관심이 없으니까.....
그랬는가 그때 시화전에가서 명숙씨를 만나서 그때부터 일게 됐으며 랑시인 시화전하는데 나 명숙시 김진탁 정인순 구족화가 죄소자 김충호 그렇게 도와준다고 초대받아갔다네 지금도 반지하방에 살고있다하시데 맏아들하고 며느리안보고 아들이 아버지시중들고 살고있다하시더군 한달 전즘 통화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