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산(龍岩山 635.5m)은 대동여지도에도 이름이 올라있는 이름난 산이다.
용바위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용(龍)과 관련한 듯하고, 또 주위엔 봉황(鳳)과 관련한 지명도 여럿 보인다.
맥꾼들은 백두대간 묘적령에서 분기한 ‘자구지맥’과 달밭고개에서 천부산으로 분기하여 용암산으로 갈아탄 능선을 또다른 단맥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산줄기엔 등지리봉, 주마산, 시루봉 등 지형도에 올려져 있는 이름만해도 한 능선에서 말잔등처럼 미끈하게 용암산과 한몸으로 이어져 있다.
거기다 ‘용암산 바위공원’의 ‘용암산 12바위’는 아기자기한 스토리텔링이 입혀져 있어 볼거리를 더하고, 오르내림이 유순하여 어려움이 없다.
솔밭길 가끔씩 나타나는 조망바위는 산행재미를 최고조로 상승시킨다.
다만 들머리인 성곡보건진료소에서 능선으로 접속하는 구간과, 중간 무릎재에선 사과 과수원지역으로 출입통제 울타리가 막아서고 있다.
따라서 영주시에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로 농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길을 내어 이정표를 세워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극도로 예민해진 농민들과 심한 다툼으로 형사사건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
주마산(走馬山 550.9)은 달리는 말의 형상이고, 등지리봉(543.3)의 등지리는 닭이 알을 낳아 병아리를 품을 때 쓰는 짚으로 만든 둥우리를 말한다.
옛날 봉화대가 있었던 등지리봉을 마을 사람들은 봉화대라 불렀고, 그 모습이 둥지를 닮아 둥지리봉이라 한다.
시루봉(606.9)은 떡시루처럼 생겼대서 붙여진 이름으로 영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며, 안정면 주민들이 매년 새해맞이 행사를 하는 곳이란다.
표지판의 삼국시대 고분군과 봉암성터(통일신라시대)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나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날머리 봉황대(鳳凰臺)는 전설이 있는 전망바위로서, 깨뜨려진 바위에서 봉(鳳) 세 마리가 나왔으나 한 마리가 피흘리며 죽은 바위란다.
봉황사 돌탑위에 우두커니 얹어진 불두(佛頭)는 언밸런스로 생경스럽기만 하다.
코스: 성곡보건진료소~성곡교회~신탁농원~능선철탑~등지리봉~주마산~무릎재~누에머리~시루봉~봉화대~용암산~소백전망대~봉황대~봉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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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1km로 5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도표

네비엔 '성곡보건진료소'를 입력하여...

성곡리 버스정류소에서 차를댄 뒤 성곡보건진료소 표석 뒤로 진입을 한다.

마을 앞 노거수가 오래된 마을임을 웅변하고...

마을길을 곧장 들어가노라면...

교회탑이 우뚝한 성곡교회를 지나게 된다.

마을을 벗어나 포장농로를 접어들면 유명한 영주사과가 익어가고 있고...

11시 방향으로 우뚝한 봉우리가 보인다. 지형도의 498.8봉인가?

우측으로 잘못간 사람들이 되내려오지만 결과적으로 그 길로 들어서야만 된다.
우리가 올라가는 이 길은 선답자들이 다녔던 길로 트랙이 그어져 있지만 지금은 사진에서 보듯 과수원으로 울타리가 쳐져 진입할 수 없는 것.

그 막다른 지점에 농가가 있으며 산길 진입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것. 좌측 농로로 산길을 찾아보노라니 오만 육두문자가 쏟아져 들어온다.

개인소유지라며 "내 땅"이라는데는 할 말은 없다. 농로도 자기네 땅이란다. 자기네 땅이니 무조건 나가란다.
육두문자를 덮어쓰고 어떻게든 산길을 찾아보기 위해 좌측 농로로 들어가다 결국은 뻥 터지고 말았다.
<동영상> ~클릭~ 미옥 씨가 한 마디한다. "아저씨가 욕을 그래하면 안되지 그래."

하는 수 없이 되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우측 능선으로 진입을 시도해보지만 불가.

<돌아본 사진> 좌측 길이 우리가 되내려온 길이고, 다시 우측으로 올라간다.

우리가 붙을 나즈막한 능선으로 임도가 보였기 때문.
일행들은 반대편으로 산길을 찾아 떠났고, 나는 미옥 씨한테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하였다.

기다리고 있는 곳은...

신탁농원 표석이 있는 지점. 농원 옆 농가에서 농민 한 사람이 나오며 어디서 왔느냐고 말을 건다.
사정을 설명하니 손가락으로 산길을 가리키며 잘 생긴 사과 두 개를 먹으라며 건넨다.
"영주사과 사먹지 마라."라고 하였다가 영주시 이미지 체인징 되는 순간이다.

그 친절한 분이 가리키는 지점은 철탑이 있는 지점으로 올라서게 된다는 것.

반대쪽에서 길을 찾다 되돌아오는 일행들.

탐스럽게 익은 사과 과수원 농로를 따라 산자락으로 접근하노니...

야옹이 한 마리 다가와 바짓가랭이르 휘돌며 재롱을 피운다. 도시의 길고양이만 보아왔던 나는 그 재롱이 살가워 몇번이고 쓰다듬었다.

농가 창고를 지나고...

마지막 농가 뒷편 차량 좌측...

작은 능선으로 올라 붙는다.

짖어대는 강아지를 달래며 돌아본 모습.

묘지를 지나자...

금방 임도를 만난다.

능선으로 산길은 없어 좌측 임도를 따라...

기존 트랙이 그어진 등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임도가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올라 붙으며...

임도 좌측으로 고개를 빼보니 아까 출입을 막았던 농가에서 올라오는 길인 듯.

임도를 버리고 산길 진입 후...

다소 가파른 오름을 한 뒤...
주능선에 올라섰더니...


아까 밑에서 올려다 보았던 그 철탑(라바 9022 6558)이 있다.

그런 뒤 올라선 등지리봉. 아무런 표식이 없어 우측에 '등지리봉'이란 노란 시그널을 매단 뒤 서명을 하였다.
지형도엔 이 봉우리가 등지리봉이지만 안내판엔 시루봉과 용암산 사이에 등지리봉(봉화대)이 적혀있다.

등지리봉에서의 산중부폐. "너거 신랑 문어 잡나?" 문어를 자주 가져오는 외숙 씨에게 누군가 하는 말이다.

작은 동산과 벌판 사이에 촌락이 형성된 평온한 마을.

주마산 직전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있어...

다가 갔더니 길게 자구지맥이 선을 긋고 있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주마산에 역시 노란 시그널을 걸고 서명을 하였다.

무릎재를 내려서며 트랙 좌측으로 살짝 벗어나는 바람에 만난 사과밭.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해서 산짐승 전기철망을 타고 넘었다가 된통 혼이났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몇번이고 사과를 해도 과수원 주인은 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포장 농로에 올라서서 좌측으로...

산길 진입을 하다...

뒤돌아본 모습. 우측 추럭이 있는 농장으로 빠져 나온 곳. 트랙은 이 사진의 좌측으로 있었지만 무심코 앞서간 사람들을 따랐던 것.
어차피 트랙을 벗어났다면 사진에서 보듯 차라리 능선을 그대로 따라야만 욕을 먹지 않았을 것인데. 쯥

여기서부터가 영주시에서 꾸며놓은 바위공원인 듯 이정표가 보인다.

무덤을 지나...

데크시설을 지나면...

봉우린 듯 아닌 듯 널따란 바위 전망대를 만난다. 이정표의 ‘누에머리’ 지점이다.

천부산 뒤로 자구지맥의 달밭산.

좌측으로 자구산.

누에머리 이정표.

누에머리의 도드라진 바위.

조금 당겨본 천부산.

앞서가는 분은 맥(脈)꾼 ‘깨암목’ 님.
차가 성곡보건진료소로 진입할 때 도중에서 하차하여 한천사에서 '예천 주마산(516.2m)'을 오른 뒤 벌써 나를 앞서간다.


흡사 송이를 닮은 송이바위.

히티바위 갈림길 이정표.

송이 자생지인 듯.

바위 무더기가 있는...

시루봉.

영주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시루봉 안내판.


시루봉 바로 아래에서 시루봉을 향하여 절하는 모습의 거북바위.

용수사갈림길 이정표.

나란히 줄지어선 바위 일곱을 칠형제 바위란다.

어떻게 보아야만 상어의 모습인가?

샤크 랔.

잔디도 아니면서, 콘크리트도 아니면서 잘도 관리되고 있다. 통덕랑(通德郎)영해박씨묘.
'통덕랑'은 정5품 문관으로 지금의 중앙정부 과장급인 4급 서기관 정도로 보면 될 것.

업다운이 평이한 솔밭 능선길에선...

나뭇꾼들이 바위에 입맞춤한다고 입맞춤바위. 나는 쪼개진 두 바위가 입맞춤하는 줄 알았네.

히티바위 갈림길.

등로 옆 둥그스름한 바위에 계단이 있어 살짝 올라 보았더니...

봉화대(둥지리봉)란다. 천연 봉화대? 알 낳는 둥지를 엎어놓은 듯해 둥지리봉이라고도 한단다.

등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장독바위는 부도(浮屠)를 닮았다.

바위가 부드럽게 갈라진 등로를 지나자...

정자가 마련되어 있다.

잘 관리되고 있는 정자에선 영주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줌인>

이정표의 여의주바위는...

그저 푯말로만 접하고...

여의주를 떨어뜨린 용을 찾아...

용암산을 올랐다. 요새 신바람난 옥분 씨. 컨디션이 좋아지니 자신이 넘쳐 보이고...

덩달아 나도 氣를 받는다.

새끼자라바위는 퍼즐을 맞추듯해야만 되고...

곧 좌측으로 만나는 도드라진 곳을 올랐더니 건너편에 일행들이 보인다.

돌아 갔더니...

천혜의 조망처다.

아까 머물던 일행들은 모두 떠나버렸고, 이렇게 바위 위에 카메라를 얹어놓고 셀프촬영을 하자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까부터 보아온 자구지맥과...

천부산과...

더 우측으로 헌걸찬 소백산 능선.

시설물이 있는 연화봉을 살짝 당겨 보았다.

천부산과 우측 뒤로 묘적봉인가, 도솔봉인가?

묘적봉과 도솔봉과 우측 끄트머리에 연화봉.

긴가민가하지만 그래도 당겨보며 산중 희열을 맛본다. 오늘 산행 중 최고로 멋진 조망대로서 '소백산전망대'라 이름을 붙였다.

천부산 뒤로 달밭고개와 달밭산, 그 아래 6~700고지에 고지대마을인 '윗무래이'마을이 보인다.

이제는 봉황대 방향.


바위를 쪼개고 뚫고 나온 소나무 한 그루. 솔바위는 퍼즐을 맞추듯해야만 알 수 있으려나, 젖먹이는 어머니의 모정을.

바위 위에 덩그러니 얹힌 또다른 바위. 반달모양이라 반달바위로 불린다.

미나리 단지 갈림길에선...

미나리단지 0.6km. 용암산 미나리는 암반수를 이용한 청정 미나리란다.

봉황대 방향.

말바위 형상을...

말바위라 부르지만 말(馬)인지 말(言)인지 아리송하여 편한대로 생각하라는 말.

용암산 고분군 안내판과...

이정표가 있지만...

고분은 확인하지는 못했다. 두리번거리다가 이것! 이건 땅굴? ㅋ

울타리 안에 잘 모셔진 '처사 단양 우씨와 유인 전주 이씨 묘'.

이것도 묘지일까? 뚝이 있을 리도 없고, 무덤이라면 무슨 봉분이 기차처럼 길쭉할까? 특이한 모습이다.

반풍수의 시각으로 보면 전형적인 명당자리다. 거기다 용의 산이므로 여의주가 제값을 할 것.

봉암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성으로 기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주변에는 고분군이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지점의 이정표.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지점. 봉황대다.

"봉암동 마을에 고관대작을 지내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던 큰 부자가 있었다. 하루는 탁발스님이 시주를 청하였는데 거만스러운 주인이 `이 집이 어느 집인 줄 알고 시주를 달라 하느냐`고 호령하며 하인에게 당장 곳간에 잡아 가두라 명령해 갇혀서 며칠을 물도 마시지 못하고 있던 스님이 간계를 생각해내고 주인과 면담을 요청했다. 자신을 살려주면 자자만대 영화를 누릴 비법을 알려준다고 해 주인이 승낙하였다. 스님은 마을 뒤에 있는 바위를 깨뜨리면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주인은 스님을 풀어주고 석공을 불러 바위를 깨트리니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봉(鳳) 세 마리가 나타나 한 마리는 학가산으로, 다른 한 마리는 비봉산으로 날아가고, 남은 한 마리는 다리가 부러져 붉은 피를 흘리면서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봉이 날아간 후로는 그 부잣집은 망하였고, 피 묻은 바위에는 아직 피 자국이 남아 있으며, 봉이 나왔던 바위라 하여 후세 사람들이 이 바위를 봉황대라 하였고, 마을 이름도 봉암동이라 하였다."

일행들은 모두 쭈루루 내려가고, 나는 봉황대 위로 올랐다.

바위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

중앙고속도로가 보이고, 앞의 파란 지붕 건물이 있는 삼거리(▽)에 '용암산바위공원'이라는 표석이 서있다.

고개를 들어 주변 을 살피다...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영주시를 관망한다.

살짝 당겨본 '용암산바위공원' 표석이 있는 삼거리(▽). 우리 버스는 마을길을 들어와 주차장에 대기중으로 좌측 소나무 뒤에 가렸다.

물탱크를 벗어나며...

돌아본 모습.

봉황사 불두는 화살표가 가리키는 우측에 있다.

돌탑으로 몸통을 쌓은 뒤 불두를 올렸다.

돌탑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불신(佛身)을 만든 뒤 불두(佛頭)를 올려놓은 모습. 스님은 불신을 이루는 돌탑을 더 높이 쌓을 것이라고 하였다.
봉황사는 마을입구에 있고, 여기는 돌탑 부처님을 보호 관리하는 간이시설만 있다.
둘러보니 예전 폐사지인 듯 제법 널따란 터가 마련되어 있다. 어느 불심 깊은 보살이 덤뿍 시주를 한다면 그럴듯한 불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살짝 당겨본 불두.

뒤돌아보다...

용암산 바위공원 안내도가 있는 봉황사에서...

대기 중인 우리 버스가 보이고, '봉암 순두부'집은 청국장이 유명하단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뒷풀이 마당. 막걸리부터 두어 잔 연거푸 마셨다.
진영논리가 극한점에 이르렀을 때 말의 폭력은 예리한 흉기와 같았다.
더욱 더 독한 언어로 상대방의 가슴을 찔러 일도필살(一刀必殺)해야만 성에 찼을까?
'데이 셔퍼트'라는 사람이 쓴 '세 항금문(Three golden gates)'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우선 팩트(Fact)가 중요하고, 꼭 해야만 할 말인지 숙고한 후,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를 살피라는 말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