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산 : [김동렬]중국 인민일보 '한류는 중국의 치욕'
2020 | 추천:22 | 조회:8790 | 2005-02-11
연휴 동안 빠짐없이 출근하는 독자라면 다르다고 보오. 다른 분들을 위하여 각별한 다섯 편을 보태려고 했소. 찌질이들과 꼴통들은 읽다가 중간에 떨어져 나갈 따분한 내용으로 메뉴를 구성해서 말이오.
그러나 쓰지 못했소. 그래서 대략 몰아서 한꺼번에 쓰려고 하오.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찬 바람을 쐬었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하오. 쓸 수 있을지 모르겠소.
● 지율스님 단식 100일 가능하다. ● 조갑제는 악한(惡漢)이 맞다. ● 양은냄비 대중노선은 안된다. ● 현충사는 박정희시대의 기념비적인 조형물이다. ● 한류는 본질이 굳건하므로 오래 간다. 대략 이런 내용들이라오.
한류 이야기부터 하겠소. 한류가 몇몇 연예인들의 개인적인 활약에 지나지 않는다면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소. 그러나 그건 잘못 본 거요. 먼저 아래 발췌한 신문기사가 참고가 되겠소.
한류의 근본이 유가사상이라는 평은 정확히 짚은 것이오. 중국은 청나라 이후 오랑캐의 지배를 받아 유가사상이 퇴조하였소. 중국에서 유가는 단순한 통치술에 불과한 측면이 있소. 진정한 유가는 한국에서 완성되었소.
여기서 ‘유가란 무엇인가?’ 하는 점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소. 사농공상, 남존여비, 삼강오륜.. 이런건 유가가 아니오. 왜냐하면 그런 따위는 공자가 등장하기 이전 부터 중국 농경문화의 전통으로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오.
아니.. 물론 그런 따위를 유가라고 말할 수도 있소. 유가에는 장단점이 있다는 말이오. 소위 말하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평 말이오. 맞는 말이오. 아직도 죽지 않았다면 공자는 지금 죽어야 하오.
그러나 이미 공자가 죽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오. 아세아문명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말이오. 이해를 돕기 위해 남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텔레 노벨라(Tele Novela)'를 인용할 수 있소. 남미에는 특이한 드라마 형태가 있소.
한류 드라마와 비슷하오. 한국 드라마가 비판 받듯이 텔레노벨라도 뜻있는 식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소. 보수적이고 황당무계하고 여성의 희생에 의한 가족의 보호가 강조되고.. 각설하고.
중요한건 텔레노벨라가 남미 전역을 휩쓸고 있다는 거요. 왜? 이유가 있소. 우리가 헐리우드 영화를 볼때 짜증나는 장면.. 가족주의의 지나친 강조.. 아내와 아기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듯한 람보류의 한심한 발상.
여기서 헐리우드 영화의 보수성을 나타내는 가족주의, 미국제일주의, 패권주의, 과학만능주의가 보수적인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텔레노벨라의 보수성, 그리고 한류 드라마의 뿌리인 유가사상.. 이 셋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거요.
무슨 뜻인가? 미학이오. 인민일보가 말하는 한류 드라마의 유가사상은 남존여비나 사농공상이나 유교적인 이념이나 이런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오. 그렇다면? 미학이오. 텔레노벨라가 그 무수한 비판받아야 하는 잘못들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끄는 이유는 남미인의 미학의 정수를 꿰고 있기 때문이오.
예컨대 한때 미국인들을 열광시켰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만 해도 그렇소. 그 문학의 메시지나 주제나 철학이 평가되는 것은 아니오. 그렇다면? 그 미학이 평가되는 것이오.
그것은 고향을 잃어버린 청교도들.. 즉 고향인 유럽을 등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18세기 유럽의 화려한 문화를 미국 남부에 재현하려고 했던 자들의 잃어버린 꿈에 대한 향수라고도 할 수 있소.
그 절반은 허상이고 그 나머지 절반은 상상이지만 어쨌든 그 미학은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것이오. 요는 예술이 미학적으로 어떤 완성된 고전적인 형태를 획득하게 되면 그것이 무한 복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오.
예컨대 판소리 다섯마당이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과 같소. 새로운 판소리는 나오지를 않소. 서구의 오페라나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면극도 마찬가지요.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가 끝없이 연장공연 되듯이 작품성이 인정된 고전작품을 계속 반복, 복제하고 있는 것이오.
생경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창작오페라를 보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냥 옛날에 봤던 춘향전을 한번 더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오. 한류드라마는 본질인 유가사상을 반영하는 측면에서 미학적으로 완성된 형태에 도달했기 때문에 무한, 복제, 반복 표절된다는 거요.
이러한 자기 표절과 부단한 반복은 어느 면에서 본다면 예술적으로 몰가치 하기 때문에 평론가들에게는 지탄의 대상이 되지만.. 그 만큼 저력이 있다는 말이오. 이 경우 그 수명이 매우 길다는 특징이 있소. 남미의 텔레노벨라도 앞으로 한 100년은 갈 것이오.
중요한 것은 고전적인 미학적 완성형태가 한국에서 찾아졌다는 사실이오. 그러므로 한류는 앞으로 한 100년 더 갈 수도 있소. 남미의 텔레노벨라는 결국은 ‘산업화로 인한 가족공동체의 해체에 대한 불안’을 담고 있다고 보오. 그것이 남미의 공통된 정서라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진실이오.
한류드라마도 비슷하오. 그것이 아세아의 공통된 정서라면, 그 정서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미학이 ‘유가적 미학’이라면 그 유가적 미학에 가장 충실한 나라가 한국이라면 다른 나라가 이를 흉내내기는 쉽지 않소.
물론 한국에도 유가 뿐만 아니라 불교도 있고 도교도 있고 기독교도 있소. 마르크스교도 있소. 그러나 한국의 불교미학, 도교미학, 기독교미학을 서로 견준다면 아무래도 유가의 미학이 한국인의 정서, 곧 앞에서 말한 ‘산업화로 인한 가족공동체의 해체에 대한 불안의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오.
그런데 왜 불교도 도교도 기독교도 동학도 있는데 유가가 가장 잘 이를 반영하는가.. 하고 의문을 던질 수 있소.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중국에도 베트남에도 유교는 있는데 왜 유독 한국이 이를 드라마에 가장 잘 반영하는가 하고.. 질문할 수도 있소.
그게 바로 ‘미학’이라는 것이오. 예컨대 한국인의 해학을 김삿갓의 한시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민중의 예술인 판소리가 더 잘 표현할 수 있듯이 미학이라는 것은 아주 미세한 차이라도 확실히 가려내는 특징이 있는 것이오.
각설하고 그러한 이유로 한류 드라마는 아세아의 공통된 코드의 핵심을 잡은 것이오. 많은 비판을 받겠지만 중요한건 주도권을 잡느냐이오. 이미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칭찬을 들어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나갈 것은 분명하오.
결론적으로 한류는 무수한 식자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계속 갈 것이오. 개나 소나 한류를 씹어야만 지식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올 것이오. 한류에 관해 할 이야기는 매우 많지만 네 편을 몰아서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만 줄이오.
현충사는 박정희 시대의 기념비적인 조형물이다
유홍준이 말을 잘못했소. 현충사는 박정희의 기념관이 아니라 박정희시대의 기념비적인 조형물이오. 어차어피 그 말이 그말이지만 조중동이 찌질한 딴지를 걸기 때문에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조형물이 있기 마련이오. 일제시대에 시멘트가 처음으로 등장했소. 이 새로운 소재에 매력을 느꼈던 일본 넘들이 이걸 어디에다 써먹을까 궁리하다가 두 곳에다 써먹었던 것이오.
첫째는 토함산 석불사의 석굴지붕을 덮어서 석굴암 본존불에 이끼가 끼도록 만든 짓이오. 둘째는 익산 미륵사지 9층석탑에다 그냥 발라버린 거요. 그들은 큰 업적을 세운 것이요. 시멘트라는 신문물을 전파한 것이오. 잘난 일본인들이 들여온 시멘트라는 것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을 몽매한 한국인들에게 가르친 것이요.
그 결과는.. 50년 후 우리는 쓰바쓰바 하면서 그 시멘트를 다시 뜯어내게 되었소. 익산 미륵사지 9층석탑은 해체되었소. 일본인들은 한국인들로부터 칭찬을 듣기는 커녕 욕만 태배기로 먹게 된 것이오.
박정희는 시멘트의 쓸모에 감동하였소. 아니 박정희 뿐만 아니라 당시의 모든 이들이 그러하였소. 초가집을 대체한 쓸레트의 편리성에 감동하였듯이 말이오. 그리하여 원래 있던 현충사를 밀어내고 황당한 시멘트 현충사를 만든 것이오.
112군데의 절터와 61기의 석탑과 80여체의 석불이 있는 경주 남산에는 산 정상을 관통하는 일주도로가 닦아져 있소. 삼화령 대연화좌대 바로 아랫쪽에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한 흔적이 남아있소.(삼화령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습니다. 미륵삼존불이 있었던 남산토성 위라는 설도..그러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남산 남쪽 생의사는 용장사지 위쪽이라고 봅니다.)
대연화좌대 바로 밑에다 겁도 없이 다이나마이트를 박은 것이오. 그곳은 경주 남산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오. 바로 아래 매월당이 금오신화를 썼던 용장사지가 있소. 아마도 매월당은 수백번도 더 이곳을 올랐을 것이오. 그만치 매력적인 곳이오.(하기사 그곳의 전망을 보지 않고도 경주 남산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는 있소만.. 지금은 산불로 황폐해졌으니 매월당이 보았을 그 지극함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백년 안에는 없소.)
나는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소.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에다가 누군가가 심심풀이로 수염을 그려놓았다면 어떻겠소. 왜 그런 끔찍한 짓을? 중요한건 박정희가 그것을 자신의 커다란 업적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이오.
사실 그 도로는 전혀 쓸모가 없는 도로라오. 지금은 자동차 통행을 못하도록 막아 놓았소. 박정희가 한번 멋으로 지나가고 난 다음 아무에게도 이용되지 않고 버려져 있는 것이오. 무수히 많은 방문자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면서 말이오.
왜 박정희는 112곳의 절터와 61기의 석탑과 80체의 석불이 있는 남산을 다이나마이트로 때려부쉈을까? 결국은 이렇게 아무도 이용하지 않을 것인데도. 그 이유를 알고 싶거든 김일성에게 왜 금강산에다 낙서를 해두었는지 물어보면 되오.
그것이 필자가 말하는 바 그 시대의 기념비라는 것이오. 당신이 해외여행을 가서 낙서를 해놓고 온 심리와 같소.
박정희와 김일성은 헬기를 타고 돌아다니며 그렇게 거대한 낙서를 하고 다닌 것이오.(김일성은 기차만 탔다구요?) 112개의 절터와 61기의 석탑과 80체의 석불이 있는 저 경주남산에 다이나마이트 한 트럭을 박아버린다면? 신나겠지요.
하여간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관광객이라도 불러모으고 있지만 박정희의 다이나마이트 낙서는 오는 관광객을 도로 내쫓을 뿐이오. 할 말이 많지만 박정희 욕해봤자 내 입만 더러워질 뿐이므로 이 정도에서 줄이고자 하오.
박정희는 그 외에도 못된 짓을 매우 많이 했는데 그 중에 내가 꼭 없애버리고 싶은 것 둘을 말한다면.. 남산 밑을 파서 만들어 놓은 화랑교육원과 남산 꼭대기에 만들어놓은 시멘트 전망대라오.
시멘트라는 신소재의 쓸모에 대한 박정희의 지나친 감동이 남긴 흉물이오.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와 건물의 담벼락을 노리끼리한 색으로 칠했듯이 말이오.
다섯편을 짧게 쓰려고 했는데 막상 쓰니까 터무니 없이 길어지는 군요. 너무 길어졌으므로 대략 이 정도로 줄이려 하오. 미처 쓰지 못한 세편은 생각해보고 올릴 지를 결정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