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호를 기억한다
김 성 문
매스컴에서 도로가 무너지고 강에는 흙탕물이 넘실거리는 태풍 ‘힌남노’에 대한 피해 모습을 알리고 있다. 강물이 크게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모습만 보면, 1959년 우리나라 역사 중 가장 큰 자연 재난 중 하나였던 태풍 ‘사라호’를 잊을 수 없다. 우리 가족이 이 태풍으로 겪은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가슴 쓰리고 아프게 떠오른다.
그해 9월 17일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었다.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낸 후, 11시경 갑자기 흙탕물이 집 안마당까지 들어차 넘실거렸다. 금호강은 비가 오면 자주 홍수의 악마가 덮쳤지만, 사과밭의 중앙에 있는 우리 집 안마당까지 물이 들어찬 일은 없었다.
흙탕물이 닥치자 부모님은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셨고, 누나는 나에게 얼른 집 밖으로 나가자고 성화였다. 어린 철부지 두 동생은 겁이 났는지 마냥 울기만 했다. 우리 가족은 황급히 몸만 빠져나와 집에서 조금 떨어진 높은 지대 쪽으로 피난했다. 아버지는 집에서 가지고 나와야 할 귀중한 물건이 생각나셨는지 다시 집을 향해 가셨지만, 이미 도로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침수가 심해 아버지의 가슴높이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간신히 집 근처까지 가셨다. 그러나 이미 불어난 홍수로 인해 집에 접근하지 못하고 아쉽게 돌아와야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더욱 불어난 홍수로 중간 지점에서 소방대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로 밖으로 나왔다.
홍수는 점점 불어나서 내가 거주하는 하양면 소재지 전체를 처참하게 집어삼키고 황토색 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안전지대에서 악마의 목구멍처럼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홍수를 바라보고 있으니, 소와 집까지 떠내려가고 있었다. 중간중간 사람 같은 형체의 모습도 보였다. 온 마을이 공포와 죽음의 강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갑자기 이재민이 된 우리 가족은 임시 대피소인 학교 강당에서 추운 하루를 지냈다. 강당에 모인 이재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놀라서인지 하염없이 우는 사람, 또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나는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비닐 포대가 깔린 마룻바닥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는 나의 손을 꼬옥 잡고 하염없이 울기만 하셨다.
이튿날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던 홍수는 줄어들었고, 집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집이 있었던 곳은 수마가 할퀴어 아무런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흙더미만 쌓여 있었다. 내가 생활하던 집은 간 곳 없고, 흙더미만 있는 것을 보고 앞이 캄캄하고 넋을 잃고 말았다.
농사짓던 큰 사과밭은 반 이상이 강으로 변해 버렸다. 부엌 앞에 있던 수도는 호수 위에 한쪽 다리로 서 있는 황새처럼 보였다. 수도 외에는 집과 모든 것이 송두리째 홍수가 집어삼켜 버렸다. 우리 가족은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오직 대피할 때 입고 있던 옷뿐인 처량한 환경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이재민을 위해 헬리콥터로 비상식량인 건빵과 모포를 낙하했다. 건빵은 낙하하는 순간, 포대가 터져서 땅 위 여기저기 흩어진 것을 이재민들은 서로 많이 주워 모으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나와 어린 동생들도 열심히 주워 모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다시 큰 천막 한 개가 헬리콥터에서 낙하했다.
겨우 설치한 천막 속에 이웃의 세 가정이 사용할 수 있는 임시 생활공간이 마련됐다. 끼니는 친척의 도움으로 당장은 해결이 됐다. 점점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여 밤이면 추위와 배고픔까지 덮쳐 너무나 무섭고 고통스러웠다.
우리 가족은 겨울이 오기 전, 집터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친척 사과밭 농막으로 가서 생활하게 됐다. 당시 농막에는 전기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밤이면 캄캄한 암흑세계였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과 겨울 추위는 피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농막 옆에 있던 화장실에 갔는데 그곳에 날카로운 과도가 떨어져 있었다.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지난밤에 도둑이 든 것으로 생각하니 온몸이 오싹했다. 아마 도둑도 세간살이가 아무것도 없어 그냥 돌아가다 화장실에 볼일을 본 후 과도가 떨어진 것도 모르고 간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로는 해가 지면 외딴집이기에 모두가 집에 일찍 들어왔다. 그 후 큰 피해는 없었지만 어린 나는 겁이 났다.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고, 설상가상 조금 남은 사과나무에는 가지가 마르는 병과 탄저병이 덮쳐 농사를 몽땅 망치게 됐다. 겨우 수확한 사과로는 1년 지은 농비가 부족할 정도였다. 태풍 이후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출가한 맏누님과 친척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우리에게는 구세주였다.
태풍으로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되니, 물질적 부족뿐 아니라 마음도 많이 위축되고 스스로 용기가 없어졌다.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만 끼니를 해결했다. 그조차 넉넉하지 않아 마음껏 배불리 먹을 수도 없었다. 가끔 부유한 친구 집에서 놀다가 점심때가 되면, 친구집 방바닥에 이불로 덮어 보온해둔 점심밥 양푼에 마음이 끌렸다. 배고픔에 친구의 점심을 같이 비울 때가 종종 있었다.
이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새로 이사한 곳에서 채소와 고추, 담배 등을 재배해 차츰 경제 사정이 나아졌다. 겨우 하루 한, 두 끼로 견디다 세끼가 해결되는 것만으로도 이전의 행복을 조금은 되찾을 수 있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 금호강 옆에 있었던 사과밭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아파트와 초등학교, 여러 가지 건물이 들어서며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지금은 제방(堤防) 시설도 무척 잘 갖추어져 있다. 금호강 상류 지역에는 1980년 영천댐의 준공으로 수위 조절이 가능해 예전 같은 홍수로 인한 범람은 찾을 수가 없다. 하양과 진량을 이어주던 잠수교는 넓고, 크고, 높은 다리로 변했다. 지난날 아픈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은 까맣게 잊은 듯 아무렇지 않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재난이나 역경에 처하곤 한다. 힘든 고난을 겪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경험들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의 삶을 헤쳐 나가는데 많은 가르침과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11살 철부지에게 찾아온 사라호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절망의 순간에 놓인 나를 살포시 기억해 본다. 많이 힘들었다고, 잘 이겨냈다고, 가난과 배고픔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전부가 아니라고 위로해 본다.
첫댓글 태풍 사라호의 옛 일을 자세히 이야기한 글을 읽고 옛날 어려웠던 삶이 생각나는구나, 좋은 글 잘 읽고 감명깊게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장희진 ^^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
대구는 힌남노의 피해 없이 잘 지나가서 정말 축복 받은 땅이구나 했는데, 1959년 사라호땐 인근 하양이 피해를 입었네요.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네요. 꾸준한 집필 활동하시는 모습 멋져요.
강해순.^^
강 선생님! 대구는 힌남노가 잘 지나갔습니다만 사라호 때는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좋은 멘트에 댕큐. ^^
1959년 9월 17일"사라호" 태풍이 들이닥친 일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었지요
일순간 해일과 홍수로 엄청난 재산과 생명을 앗아간 예는 그당시로서는 단군 이후 저음이라 핟만한 재난이었고요.
양계를하던 우리집도 풍비박산이 나서 하늘을 원망하고 았었습니다. 아~ 그날의 재난은 정말 끔찍했어요. 이무웅.^^
이 회장님 댁에도 큰 재난이 있었군요.
정말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피해가 컸습니다.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
사라호 때를 회상하는 글을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멋진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집필 모습 보여주세요. 행복을 기원합니다. 신인한^^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ᆢ
사라호 때 저도 하양에 살고 있었는데 어려서인지(?) 기억이 없어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어린 시절로 추억
여행을 다녀왔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계속 읽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곽채경.^^
곽 선생님! 읽어 주시고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상상이 잘 가지 않는 모습을 직접 글로 표현하셨네요. 항상 활동적인 모습 멋지십니다. 김광자.^^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뉴스로만 봤던 홍수를 직접 겪으셨다니 너무 엄청난 일이예요
글이 너무 생생하네요. 이경미.^^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그런 큰 아픈 추억이 있으시군요. 어릴 때 밥을 제 끼 못 먹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모를 것 같아요.
태풍이 온다고 할 때마다 우리 집에 피해가 없다고 해서 마음이 놓이진 않더라구요. 해마다 걱정이 됩니다.
그 큰 어려움을 다 극복하시고 훌륭하게 잘 성장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직접 경험은 기억이 더 살아나는 것 같아요.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사라호라는 말은 들어보기는 했지만 얼마나 극심한 피해가 있었는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직접 겪었던 일이었으니 그 참담함이 가슴 절절히 다가오네요. 지금 포항에 재해를 입은 사람들 생각도 나고요. 멀리는 파키스탄도 생각납니다. 이번 기회에 그들을 돌아보고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훌륭한 생각을 가지신 조 선생님 존경합니다.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대단한 태풍이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의 모습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글 잘 음미했습니다. 채성만.^^
채 선생님! 바쁘실텐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