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원일 |
한국사 |
세계사 |
비고 |
1608 |
대동법실시 |
|
|
1644 |
|
명멸망 |
|
1725 |
탕평책실시 |
|
|
1789 |
|
프랑스대혁명 |
|
1840 |
|
아편전쟁 |
|
1860 |
동학창시 |
|
|
1866 |
병인박해, 병인양요 |
|
|
1871 |
신미양요 |
|
|
개인 선정 중요사실
우선 순위 |
중요사실 |
선정이유 | |
1 |
1804~ |
세도정치 |
조선 후기 특히 19세기에 한 명 혹은 극소수의 권세가를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던 정치형태를 세도정치라고 한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정조의 유탁으로 김조순이 그의 딸을 왕비로 들여, 헌종 때는 풍양조씨에 의한 세도정치가 15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 뒤를 이은 철종의 비가 김조순의 일문인 김문근의 딸로 다시 안동김씨의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로 이어졌다. 이렇게 외척가문의 독점과 그 영향을 신분체제 변화 중심으로 살펴본다. |
2 |
조선후기 |
삼정의 문란 |
삼정의 문란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재정수입원인 전정 군정 환곡의 폐단을 말한다. 전정은 땅에다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매관매직으로 관직을 산 관리들이 일정세율보다 배로 높은 세율로 징수하여 백성들이 힘들어했다. 군정은 군대 갈 장정들에게 거두는 세금으로 이것도 탐관오리의 횡포로 배로 징수되거나 징수대상이 아닌 아녀자나 배 속의 아기까지 에게도 군정을 매기는 등의 악질을 일삼았다. 그리고 환곡은 곡식을 빌려주어 되값는 형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본래 환곡이란 매우 낮은 이자율로 백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시행된 것이지만 탐관오리들은 빌려 간 백성에겐 배로 이자를 뜯어내고 빌려 가지 않은 자에겐 강제로 빌려주어 이자를 뜯어내는 행동을 하였다.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농민들의 피해와 그로 인한 농민반란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
3 |
1811 |
홍경래의 난 |
대개 경제적으로 몰락한 잔반들의 의하여 지도되어 대규모적인 반란으로 확대되었다. 그중 순조 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이 대표적이다. 홍경래는 평안도 지방의 몰락한 양반으로서 과거에 실패하여 출세하지 못한 데 불만을 품고, 자기와 처지가 같은 우군칙, 김사용등과 같이 평안도에 대한 차별대우를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청천강 이북은 거의 모두가 그의 지배 밑에 들어갔지만, 관군에게 진압당하였다. |
4 |
1863~1873 |
흥선대원군의 집권 |
철종의 뒤를 이어 고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국왕의 생부인 흥선군이항응이 대원군이 되어 정치적 실권을 잡게 되었다.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는 호포제를 실시했다. 그리고 비변사를 폐지시키고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시켰다. 또한, 대전회통과 육전조례 같은 법전들을 편찬하였고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없앴다. 또 안동김씨 같은 세도가를 견제하기 위해 능력에 따른 인재들을 등용하였고 사창제를 시행하여 농민의 부담을 줄였다. |
발표주제: 조선 후기 신분체제의 변화
주제소개: 오랜 시간 유지되었던 신분체제가 사회혼란으로 인해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공동 삶의 원리를 찾아보자
윤리교육과 김선정
1. 세도정치
조선 후기 특히 19세기에 한 명 혹은 극소수의 권세가를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던 정치형태를 세도정치라고 한다. 세도란 세상 가운데의 도리 란 뜻으로서, 세도의 책임은 원래 국왕에게 있어야 하지만, 조선후기로 가면서 신료의 발언권이 강해짐에 따라 세도(世道)를 세도(勢道)로 바꾸어 표현했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겨우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외척세력은 왕권을 완전히 압도하였다. 순조 초에 안동 김씨인 김조순이 왕비의 아버지로 정치를 전담하였고 헌종 때 헌종의 어머니가 조만영의 딸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풍양 조씨 일족이 고위관직을 많이 차지하였다. 그러나 철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김문근의 딸이었으므로 다시 세도가 안동 김씨로 돌아갔다. 이러한 형세였으므로 이씨의 왕조라고는 하지만, 종실이라 하더라도 김씨의 세력에 눌려서 살아야 했다. 안동김씨의 적대하는 어떠한 가문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들은 주로 비변사를 이용하여 관직을 독점했으며 이것은 곧 정치의 파탄을 불러왔다. 이로 인해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지방 관리들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일이 많아져서 백성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2. 삼정의 문란
세도정치에 의한 권력의 집중은 정치의 문란을 가져왔다. 많은 뇌물을 바치고 관직을 얻은 관리들은 그 대가를 농민들에게서 염출했다. 그 결과 국가의 재정기구는 관리들의 사재를 불리기 위한 협잡기관으로 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삼정의 문란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재정수입원인 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이라고 말한다. 전정이란 토지의 부과하는 모든 세금을 말하는데, 이 토지세는 1결당 4~6두로 정해졌다. 하지만 각종 세금이 부과되어 1결당 쌀 20두정도 거두는 일도 많았다. 전정은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이 납세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에게 부담이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군정은 정 1인에 대하여 군포 1필씩 징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황구첨정, 백골징포, 족징, 인징등 각종 협잡이 있어서 백성들을 괴롭혔다. 끝으로 환곡은 춘궁기에 가난한 농민들에게 국가의 미곡을 빌려 주었다가 추수기에 1석에 대하여 1두 5승의 모곡을 가산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모곡이 실제로는 이자의 구실을 하였다. 빈민의 구제를 위한 환곡이 일종의 고리대로 변하여 그 폐해가 삼정중에서도 가장 심하였다.
3. 신분체제의 변화
조선 후기에 신분체제의 변화는 여러 부분에서 일어났다. 세도정치나 삼정의 문란으로 양반층은 물론 농민, 노비층에서도 신분을 바꾸려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양반층의 몰락이었다. 조선 전기 성리학에 의해 합리화되었던 양반, 중인, 평민, 천민이 조선 후기에 들어서 세도정치나 벌열정치 같은 일부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일부 가문을 제외한 다수의 양반들이 잔반으로 전락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또 임진왜란 이후에도 납속책과 공명첩이 발행되면서 양반의 수가 증가했다. 양반은 각종 세금을 면제받기 때문에 양반층의 증가는 국가재정을 궁핍하게 만들었다. 또 적서의 차별 타파와 중인들도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켰다. 역관, 의관, 서리 등이 자신의 학문적 소양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향상해갔다. 농민들도 세도가의 대토지 소유로 인해 영세소작농, 임노동자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농민들이 양반이 되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양반은 군역세를 내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농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빈곤했는지가 보여진다. 노비신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임진왜란 때 노비안이 불타버려서 공노비수가 줄었으며, 국가에서 군역 대상자를 보충하기 위해서나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서 노비를 해방시켜주는 일도 많았다. 또 국가에서는 노비종모법을 시행했다. 노비종모법은 어머니가 노비인 경우에만 그 자식을 노비로 칭하는 것이다. 노비종모법의 시행으로 노비의 수는 급격히 줄었다. 그리고 결국 순조 때 대부분에 노비들은 해방되었다고 본다.
4. 혼란의 조선 후기
(1) 몰락한 양반들이 주도하는 민란의 발생
세도정치가 행해지고 삼정의 문란이 심해지면서 피해를 보는 쪽은 농민들이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농민들의 반란이 많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대개는 경제적으로 몰락한 잔반들에 의하여 지도되어 대규모적인 반란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 순조 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이 대표적이다. 홍경래의 난은 세도정치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부당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어 오던 평안도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 등이 평안도에서 일으킨 농민 봉기였다. 가난한 농민들을 중심으로 광부, 품팔이꾼까지 끌어들여 세력을 키웠다. 반군은 한때 청천강 이북의 여러 고을을 점령하였으나, 정주성 싸움에서 패하여 진압되었다. 이 난은 평안도 지역에 한정되어 일어났고, 지도자들이 농민층을 조직적으로 끌어들일 개혁안을 내놓지 못함으로써 실패로 돌아갔다.
(2) 동학의 발생
농민들의 사회적 불만은 동학이라는 종교운동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동학은 철종 때에 최제우가 제창하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유, 불, 선 3교의 장점을 취하여 서학에 대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동학의 교리 속에는 천주교에서 취한 것도 있으며, 민간의 무술 신앙에서 받아들인 것도 있었다. 동학은 인내천을 내세웠는데 즉 사람은 곧 하늘이라는 뜻이다.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늘이 섬기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사상은 사회적인 신분이나 계급을 초월한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3) 흥선대원군의 등장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 삼정의 문란, 신분체제의 변화로 혼란한 사회에서 등장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왕권 강화와 민생안정을 위한 개혁을 시작했다. 비변사의 폐지, 서원정리, 인재등용, 법전정리 등 개혁을 했다. 하지만 경복궁 중건을 하면서 당백전을 발행하고 원납전을 내게 하는 등 백성을 괴롭게 하는 일도 있었다.
5. 공동 삶의 원리
신분제는 국가가 바뀌어도 유일하게 유지되는 제도였다. 국가마다 제도 안에서의 방식만 달라질 뿐 그 근본은 똑같았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사회혼란은 오랜 시간 유지되었던 체제에 변화를 이끌었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나 삼정의 문란은 백성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위협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치열해졌다. 치열함은 곧 답을 찾는다. 백성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은 것이다. 물론 좋은 의도를 가지고만 신분을 벗어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 이것은 자신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바꾸려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조상들의 모습을 지금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고 그 위기를 또 다른 좋은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첫댓글 신분 체제의 변화라는 주제를 통해 권력의 속성과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토론할 수 있게 발표를 준비해준 선정 학우에게 수고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절대권력을 부패한다는 권력의 속성에 대해 다시 한번 알 수 있었으며, 권력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지도자는 실력에 초점을 맞춰 인재를 등용해야 하며, 공평하게 인사를 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다수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12장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권력의 특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 후기는 몇몇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행해졌습니다. 권력을 가진 세도가들은 관직을 매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였고, 그들에게 관직을 산 관리들은 백성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 탐관오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백성들의 삶은 점점 궁핍해졌습니다. 이는 생계의 위협을 받은 백성들의 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권력은 인간 사회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이 지나치게 소수에게 집중되면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하며 독재정치의 수많은 폐해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서 권력은 견제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이렇듯 권력이 분산된 사회가 바로 다수가 행복한 민주주의 사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윤연승 : 글쓰기를 마치면 반드시 퇴고하세요.
수정했습니다.^^
* 윤연승 : 1)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하고, 독재정치가 발생하는 등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합니다. 이번 장을 통해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서 권력은 견제되어야 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권력이 분산된 사회가 다수가 행복한 민주주의 사회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하며 독재정치의 수많은 폐해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서 권력은 견제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이렇듯 권력이 분산된 사회가 바로 다수가 행복한 민주주의 사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정했습니다. ^_^
조선 후기 신분 제도의 동요를 통해 권력의 속성과 현실의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까지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토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당대의 신분 제도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피지배계층들의 권력을 잡기 위한 노력들과 권력을 뺏기지 않으려는 세도 정치가들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욕심을 현실의 우리들 삶에서 또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세도 정치가들(소수)에 의해서 사회적 잠재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 했던 조선의 모습을 거울삼아 현실의 우리 삶에서도 반성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과연 다수를 위한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가, 권력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번 발표와 토론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권력의 속성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먼저 권력을 가진 자는 변화를 거부합니다. 시대가 변하면 권력의 흐름이 변하고 그로 인해 본래 권력의 소유자는 자연히 그 힘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권력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권력이 강제성을 지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제한받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수한 일도 권력이라는 힘으로 묻어둘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권력은 한 사람에게 집중될수록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는 왕권 중심 사회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의 독점이 계속된다면 자연히 그 폐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번 발표 범위였던 12장에서도 소수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자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질서를 위해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도정치가 이루어질 때에는 권력이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데에 이용되었지만, 본래 권력은 공정하게 나누어져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이득이 될 때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권력간의 균형과 긴장을 유지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 윤서현 : 1)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제한 없이할 수 있고, -> 2) 권력은 공정하게 나누어져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이득이 될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 문장을 좀 더 보완하세요.
수정했습니다. ^^
선정 학우는 발표를 할 때, 긴장이 많이 됐는지 목소리가 많이 떨렸습니다. 그러나 발표 내용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잘 준비를 했으니, 자신감 있게 발표를 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토론의 키워드는 역시 권력이었습니다. 신분 체제, 계급, 권력, 관계 이런 단어들이 이번 주제에 핵심이었습니다. 권력은 권력을 낳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더 큰 권력을 가지려고 하고, 더 큰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후기 민란을 통해 보아 듯이, 권력이 한 사람 혹은 한 집단에게 집중되면, 갈등과 혼란이 발생합니다. 이 갈등과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게 견제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체제, 공동 삶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저는 조선 시대 후기 민란의 발생은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 이자 민주주의를 외치는 백성들의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김시목 : 1) 그러나 조선 시대 후기 민란을 통해 보아 듯이, 권력이 한 사람 혹은 한 집단에게 집중되면, 갈등과 혼란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 갈등을 막기 위해서는 견제해야 합니다. ->> 2) 조선 시대 후기 민란의 발생은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 이자, 민주주의를 외치는 백성들의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 문장을 좀 더 다듬으세요.
수정했습니다.
. 선정 학우의 발표를 보면서 피피티의 중요성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일목요연하게 짜인 피피티 덕분에 선정 학우가 말하려고 했던 바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세도"라는 단어가 의미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또 한번 본질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르게 하고자 했던 일들이 오히려 권력의 집중이라는 폐단을 낳아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힘이라는 건 리더로써 필요한 조건이지만, 힘이 한 곳에 집중돼서 남용된다면 여러 가지 폐단이 생깁니다. 따라서 힘이 집중되게 하지 말고 여러 사람에게 분산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 수업을 들으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은 이 시대는 민주주의이지만, 제대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나라가 몇일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겉으로 포장된 다수를 위한 국가의 이미지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속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다시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억압의 시기에서도 권리를 찾으려고 했던 우리 농민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야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11.11 19:02
수정했습니다.
* 천현화 : 3) . 선정 학우의 발표를 보면서 ->> 4) 힘이라는 건 리더로써 필요한 조건이지만, ->> * '~로써'를 '~로서'로 바꾸어 써야 하는 이유를 [우리말 바루기]에 밝히세요.
* 김선정 : 1) [발표자료] 신분체제의 변화 ->> [발표자료] 신분체제의 변화(제12장 중인층의 대두와 농민의 반란) 2) 발표 범위 : 제12장 중인층의 대두와 농민의 반란
< 과제 불이행 : 박종철 이용현 이혜원 권혁솔 >
이번 선정학우가 선정한 주제는 권력의 성질이 그대로 드러난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은 다양한 성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권력은 집중될수록 힘이 커지고 독재성이 강해지며, 나누어 가질수록 그 부작용이 적고 공정한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고 3권 분립을 토대로 운영되는 것입니다.
권력은 쉽게 부패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이 잘 사용되기 위해서는 공정하게 나누어져야 하고 항산 주변의 인물들에 의해서 견제되어야만 합니다. 현 시대의 지도자들은 지금 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권력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이들의 권력이 부패하고 비대해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성실히 해야 합니다.
정치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이였던 것 같습니다. 칼은 물건을 이용하기 쉽게 자르기도 하고 생명을 찔러 죽이는데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칼을 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 칼의 쓰임에 웃고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이유를 들었지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행동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고 그게 참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되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