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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도는 말씀을 따라 온유하며 담대해야 합니다.(행18:5-11)
2026, 7/26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8:5-11절 말씀으로“성도는 말씀을 따라 온유하며 담대해야 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부정선거는 없다,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부정선거를 말하는 사람들을 음모론에 빠진 극우라고 매도했는데, 이번에 선관위 전산 직원들이 전국 여러 곳에서 서버에 투표율을 조작해 입력한 혐의로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서버 확보에 나섰답니다.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선관위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후보에게 돈을 받던, 정권의 요구에 의하든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 결과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상적인 특검이 구성되어 서버를 확인하면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날 겁니다. 하여 부정선거를 획책한 사람들은 이를 필사적으로 막을 것인데, 특검을 거부하거나 물타기를 시도하는 자가 범인입니다. 부정선거는 민의를 왜곡시켜 나라를 독재와 범죄자들 천국으로 만듭니다. 이건 하나님과 역사 앞에 큰 범죄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특검 찬성도 84.8%로 나왔는데 이는 우리 국민의 집단지성이 아직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2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성도는 세상에서는 담대하고 교회에서는 온유해야 합니다.(6절)
둘째로, 신앙인의 행동은 말씀을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11절)
그러면 말씀을 따라가면서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성도는 세상에서는 왜 담대하고 교회에서 온유해야 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도는 세상에서는 담대하고 교회에서는 온유해야 합니다.(6절)
본문 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아멘.
사도바울이 고린도로 내려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복음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습니다. 이 현상을 영적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세상은 복음에 대해 무조건 적대적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을 장악한 사단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을‘이 세상의 임금’이라(요12:31, 14:30, 16:11) 부르셨는데, 이는 사단의 세력이 사람들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사탄이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입니다. 또 사도바울도 사탄을‘이 세상의 신’이라 말했고, 또‘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한다’고도 했습니다(고후4:4).
뿐만아니라 엡2:2절에서는 사단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말씀함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탄이 세상에서 강력하게 역사하는 영적 세력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요15:19절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단의 권세가 제한적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임으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사탄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욥기서에 사탄이 하나님께 욥을 시험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 그를 시험합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고, 마지막 심판 때는 사단의 권세는 완전히 끝장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사단이 세상 권세 자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신앙인들을 대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서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오늘 사도바울 보십시오. 사단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대적하고 비방하자 그들을 향하여 옷을 떨면서‘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렇게 말했는데, 여기서 '피'는 죽음이나 멸망을 의미합니다. 즉‘너희가 복음을 거부했으니 나중에 심판을 받아도 그 책임은 오롯이 너에게 있다.’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이런 바울의 단호한 태도는 참으로 올바르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태도입니다.
물론 바울의 이런 자세는 주님이 말씀하신‘복음을 영접치 않으면 발의 먼지까지 떨어버리라.’는 가르침 때문이겠지만(막6:11) 어쨌든 이런 자세는 우리 신앙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참으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심으로 세상 권력자들 앞에서 조금도 위축되거나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행22:25, 23:3, 24, 26장)
특히 3차전도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중,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이렇게 말씀함으로 복음을 전할 때 그 어떤 것과도 타협지 않겠다. 즉 ‘나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겠다,’ 그것도 ‘조금도’ 귀하게 생각하지 않겠다고 말함으로 그의 의지와 결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세상에서 복음을 전할 때든, 일상을 살아갈 때든 정말 기죽지 말고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고, 그분의 보호하심을 받고 있는데, 권력자와 돈 많은 자들에게 비굴하고 기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공동체에서는 한없이 온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고린도 교우들에 대한 바울의 마음을 보면 그걸 알 수 있는데, 고전2:3절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세상 권력자나 지식인들 앞에서는 조금도 떨거나 두려워하지 않던 그가 교회 앞에서는 마치 자신을 종과 같이 약한 존재로 생각했고, 두려워서 심히 떨었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린도 교인들이 아주 아주 대단해서 약하고 두려워 했을까요? 아닙니다. 고전1:26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이렇게 말씀한 것을 볼 때 고린도 교인들도 별볼일 없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런 교우들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이 세상에 대해서는 강하고 단호했지만, 반면에 같은 믿음을 가진 형제들에게는 한없이 겸손하고 온유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세상은 내가 살아있을 때만 유효하지만, 교회공동체의 형제자매는 이 땅을 떠나서도 관계가 이어지는 영원한 형제이기 때문에 바울과 같은 처신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세상에서는 담대하고, 형제들에게는 온유해야 하는데, 힘 있고 돈 있는 자들 앞에서는 할 말도 못하고 입을 닫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아부하며 그들의 꼬붕이 되어 악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그러면서 교회에서는 교역자나 다른 형제들을 무시하며 우쭐해하지는 않는지요? 또 학교 선생님에게는 이것저것 잘 보이려 애쓰면서도 교회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식사 한 번 대접하지 않는 그런 신앙인은 아닌지요?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라 세상을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권력자고 많은 돈을 가졌어도 저들은 모두 사단에게 잡혀 사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우리 영혼에는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습니다(마10:28),
반면에 믿음의 형제는 세상적으로 볼 때 권세도 없고, 돈도 없고, 낮고 천한 존재일지 모르나, 장차 천사들까지 심판할 권세를 가진 영원히 왕 노릇할 분들입니다(고전6:3) 더구나 교역자들과 교회 학교 교사들은 천국의 진리를 가르치는 분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누구를 더 존경하고 더 잘 대해야 할 것인지 답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기억하여 세상을 향해서는 담대하고, 교회에서는 온유함으로 서로를 섬길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모습이고(눅13:32 요18:23 19:33-37), 사도바울의 모습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에는 담대하고, 형제에게는 온유한 사람이 됨으로 복 받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신앙인의 행동은 말씀을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11절)
본문 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아멘.
사도바울은 고린도에 1년 6개월을 머물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칩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바울에게 말씀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주셨다는 뜻이고, 또 복음이 빠르게 전파되어 말씀으로 양육할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고린도에 1년 6개월이란 긴 시간을 머문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당시 고린도가 동서 무역의 중심지로 인구가 매우 많은 국제도시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모이는 곳입니다. 또 로마의 중요한 행정도시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면 고린도 사람들만 아니라 여러 지방에서 온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는 겁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셨듯이 선택받은 백성들이 많아서 이들을 구원할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실제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온 집안 식구들, 또 다른 회당장 소스데네와 수많은 고린도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고린도에 큰 추수를 예비하셨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그곳에 오래 머물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교회로 들어오면서 교회를 튼튼히 세울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이고, 고린도의 영적 분위기 때문에 분쟁과 음행, 우상의 제물과 은사 남용, 부활에 대한 오해 등 여러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말씀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했는데, 그래서 1년 6개월을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단순히 전도만 한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말씀을 교육하고 제자를 세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느라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오래 머물라고 격려하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18:9-10) 이렇게 말씀했는데, 당시 바울은 이미 여러 도시에서 박해를 경험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고, 데살로니가에서는 쫓겨났으며, 베뢰아에서도 유대인들의 추격을 받았고, 아덴에서는 노력에 비해 작은 결실만을 얻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린도에서도 유대인들의 대적과 비방이 심각해지자 하나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고린도를 떠나지 말고 계속 전하라’는 말씀을 듣고 바울은 하나님을 믿고 안심하고 장기간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고린도에 머물렀는데, 사실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오래 머무른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의 신앙과 인격과 성품이 고린도라는 도시 자체의 성격과 너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에 대해 조금 더 말씀을 드리면 그는 하나님 말씀에 붙잡힌 사람으로 (5절) 아덴에서는 길거리에 즐비한 우상들을 보고 분노했던 사람입니다(행17:16).
또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율법에 아무 흠이 없다고 스스로 고백했던 정도였고(빌3:5-6), 또한 로마서 7장에서는 자기 마음속 안에 들어있는 죄 때문에‘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토록 깊게 탄식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린도는 어떻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방 신전들의 영향으로 성적 타락이 심각한 곳입니다. 난폭한 선원들과 이방인들, 그리고 창녀들이 우글거리는 이 도시를 매일 거닐면서 얼마나 많은 괴로움에 시달렸겠습니까?
악인들이 득세하여 의인들을 괴롭히며 힘을 과시하는 걸 보는 게 큰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1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고린도에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곳에 머물며 내 백성을 구하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에 있는 저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랬던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본인은 고린도에 있는 것이 고통이지만, 하나님께서 그곳에 내 백성들이 많다고, 그 백성들을 구원하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을 뒤로하고 오직 그 말씀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내 사정이나 형편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순종하고, 기뻐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소아시아 북쪽 본도 출신으로 로마로 이주해 와 아마도 그곳에서 주님을 만난 후 그들은 정말 주님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로 와서 사도바울을 만나 함께 천막을 만들며 복음 사역에 전념하다, 바울의 선교를 도우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갑니다. 에베소에서 유명한 설교자 아볼로에게 성령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에베소에서 또다시 로마로 갔을 때는 그의 집을 교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롬16:5)
다시 로마에서 에베소로 이주하는데, 그들 부부는 비록 평신도였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이유는 오직 사도바울처럼 주님만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부부처럼 살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기도 어렵겠지요. 그러나 교회를 지키기 위해 이사도 포기하고 사는 것도 나중에 큰 평가를 받을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모든 욕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갈5:24).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은 오직 하나님 말씀과 사명을 위해서 결정 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시고, 오직 사도바울처럼 세상에서 담대하고, 교회에서는 온유하며, 말씀을 따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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