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정(徐居正)의 〈국화불개 창연유작(菊花不開悵然有作)〉중 “만(謾)” 자의 번역
국화불개 창연유작(菊花不開悵然有作)
아름다운 국화가 금년에는 비교적 늦게 피어 / 佳菊今年開較遲
한 가을의 정과 흥취가 동쪽 울타리에 속았다 / 一秋情興謾東籬
서쪽 바람은 크게스리 정다운 생각이 없어서 / 西風大是無情思
누런 꽃에는 들지 않고 살쩍에 들었다 / 不入黃花入鬢絲
ⓒ 한국고전번역원 | 김달진 (역)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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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피지 않아 슬퍼하며 짓노라(菊花不開, 悵然有作)〉
佳菊今年開較遲 아름다운 국화 금년에는
가국금년개교지 피는 게 비교적 늦으니,
一秋淸興謾東籬 이 한 가을 맑은 흥취
일추청흥만동리 동쪽 울타리아래서 시들하구나.
西風大是無情思 서쪽 바람 정말로
서풍대시무정사 정다운 마음씨 없어,
不入黃花入鬢絲 누런 꽃에 불어들지 않고
불입황화입빈사 내 귀밑 털에 불어드네.
*빈사(鬢絲): 얼굴과 귀 사이에 나는 털로, 흔히 머리가 백발이 되기 시작할 때 이 부분부터 먼저 센다고 함.
아래의 번역은 내가 하여본 것이다. 이 번역을 보고서 미국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한 친구가 다음과 같이 영어로 번역을 하여 보여 준다.
Longing for Chrysanthemums
Beautiful chrysanthmum blooms are late this year;
This autumn’s crisp air withdraws under the fence to the east.
Indifferent winds from the west blow on by;
Touching not golden petals, but on my temple, on my silvering hairs they land.
이 시는 작고하신 김종길 선생님께서 수 10년 전에 영국에서 한국한시 100수를 번역하여 낸 책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그 책의 제목을 이 시의 뜻을 취하여 “Slow chrysanthmum”이라고 붙이기도 하였다. 그 책이 지금 내 수중에 없어 거기서는 이 시를, 특히 여기서 문제가 되는 “만”자를, 어떻게 번역하여 두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앞에서 인용한 김달진 선생님의 이 글자 번역을 보니, “속았다”라고 되어 있다. 내가 “시들하구나”라고 번역한 것 보다는 훨씬
뜻이 명확한 말이다. 어떤 뜻이 이 시구에서 더욱 알맞은 맞는 것일까? 이 “謾” 자는 현대 북경어에서는 평성[2성]일 때는 欺, 측성[4성]일 때는 輕慢, 媟誤 廣範라고 뜻을 분간하여 설명한 사전(國音字典)이 있고, 우리나라의 운서 중에는 이 자가 평성일 때는 欺也, 측성(상성)일 때는 欺語, 且也라고 설명한 책(御定詩韻)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欺也라는 말과 欺語라는 말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또 且也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아마 처음에 입기야 자가 붙은 말은 동사로 “속인다”는 뜻이고, 두 번 재 나오는 말은 “속이는 말” 같이 명사로 사용한다는 것일까? 그 다음 且也라는 말의 뜻은 “아직까지도 또한”이나, “그러함에도 또한” 과 같은 부사일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위의 시에서 이 謾 자는 평칙 배열상 평성이 아니고 측성이어야 하는데, 측성으로는 이 글자가 “慢(태만하다)” 자나 “漫(산만하다)” 자와 비슷한 뜻을 가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 국화꽃이 피는 것을 고의로 늦장을 부리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고 있던 흥취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시들하다”고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