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8. 20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가 세 번째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성인 1인당 1억원 지급’ 공약을 내놨다. 매달 150만원씩 배당금을 주겠다고도 했다. 화끈한 돈 풀기 공약에 사람들은 “역시 허경영”이라며 화제에 올렸다. 그는 장군 복장에 백마를 타고 출마 선언장에 등장했다. ‘왜구’와 칼싸움도 벌였다. 살벌한 비방이 난무하는 대선 격투장에서 웃음이 터졌다.
▶ 만 18세 이상 인구가 4400만명 정도이니 1억원씩 주려면 4400조원이 든다. 작년 GDP(1837조원)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도무지 계산이 서지 않는다. 결혼하면 현금 1억원과 주택자금 2억원, 출산하면 5000만원을 주겠다고도 했다. 황당 그 자체지만 고단한 살림살이의 국민 중엔 그래도 대접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람들도 있다.
▶ 허씨는 선거에 나올 때마다 돈 풀기 공약을 쏟아내 ‘사기꾼’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그를 흉내 낸 공약들이 속속 등장해 ‘허경영 따라 하기’ 논란을 불렀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 시리즈’나 ‘청년 세계 여행비 1000만원’, 이낙연 전 대표의 ‘제대 남성 3000만원’. 정세균 전 총리의 ‘사회 초년생 1억원 통장’ 등 허경영 아류의 공약들이 쏟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을 비롯해 홍준표 의원의 ‘의원 정수 축소’, 유승민 전 의원의 ‘여성부 폐지’, 추미애 전 장관의 ‘사회적 배당금’, 박용진 의원의 ‘모병제 전환’도 허씨가 과거 발표한 공약집에 담겨 있다.
▶ 그래도 허씨는 재원 대책도 제시한다. 한 해 550조원 규모 정부 예산에서 70%를 절약해 385조원을 만들고, 탈세 방지로 200조원을 더 걷겠다고 한다. 여기에 교도소를 90% 줄이고, 재산에 비례해 벌금을 매기는 제도로 바꿔 100조원을 충당하는 식으로 매년 758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말도 안 되지만 무언가 열심히 머리를 짜내는 시늉은 한다.
▶ 여야 대선 주자들의 공약도 다 합치면 수천조원이 들지만 재원 대책은 허씨만도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재정 구조개혁이니 조세 감면 축소, 토지세·탄소세 징수 등의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늘어놓고 구체적인 방법엔 침묵하고 있다. ‘역세권 기본주택 건설’을 공약한 사람에게 ‘땅이 어디 있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집을 짓는 곳에 역을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개그가 따로 없다. 급기야 허씨가 “30년 전 내가 국민 배당금을 줘야 한다고 말할 때 미친놈 취급하더니 지금은 모두가 따라 한다”며 ‘저작권’을 주장할 지경이 됐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윤영신 논설위원 ysyoon@chosun.com
조선일보